[1] 칸코레, 그리고 소녀전선

일본의 DMM에서 서비스하는 웹게임 함대 콜렉션(이하 칸코레)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4년이 넘도록 아직도 그 인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소녀전선은 좋게 말하면, 칸코레의 상위호환격 게임이고, 나쁘게 말하면 수많은 칸코레 카피캣 중 하나인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실제로 두 게임은 많은 부분에서 닮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왜 칸코레가 성공했나?' 를 분석하면, 그것이 곧 '왜 소녀전선이 성공했는가?' 로 연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칸코레는 왜 성공했을까요?
전함을 예쁘게 의인화해서? 무기 모에화는 유서깊은 장르 중 하나였고, 칸코레와 달리 그냥 격침당한 게임도 많습니다.
과금 유도가 적어서? 분명 그건 게임의 장점 중 하나입니다만, [과금이 적기 때문에 재미없는 게임도 재미있게 즐기는] 유저는 없습니다.
게임성 자체가 굉장히 좋아서? 사실상 인 게임에서 유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편성 말고는 나침반에 기도드리는 게임에 불과한 칸코레에게 게임성이란 어울리지 않는 단어죠.

제가 생각한 답은 이렇습니다. [게임이 유저의 시간을 갉아먹지 않게 만드는 구조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제가 경험해 본 온라인 게임의 대부분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유저를 어떻게든 게임에 묶어두려고 하는 게임이었습니다.
어쩌면 당연할지도 몰라요.

가령 MMORPG 류 게임에서는, 거대 보스나 네임드를 잡기 위해서 파티를 구성해야 하고, 파티를 구성하려면 사람이 유저가 많이 존재해서 그러한 파티 구성에 지장이 없어야 하고
대전 격투 게임, 스포츠 게임, FPS에서는 당연히 유저와 유저의 대결이 메인이니, 유저가 상시적으로 게임에 접속해있어야 좋겠죠.
결국 온라인 게임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이상, 어떻게든 유저풀을 늘리고 끌어모으기 위해서 게임사들이 골몰해 있었는데요


칸코레는 완전 정반대의 길을 걷습니다. 이 게임은 그냥 싱글 게임이에요.
내가 이 게임에 오래 접속해 있는다고 남들보다 뭔가 엄청나게 많은 걸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타인과의 상호교류는 없다시피해도 좋으며 (소녀전선은 이 부분에서 약간 노선을 달리했습니다만 근본적으로는 비슷합니다.)
랭킹 다툼이 있긴 하지만, 그 랭킹 다툼은 사실 무시해도 게임 내에서는 거의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이렇게 되니 게임이 정말 단순해집니다.
[1] 게임 내 자원을 이용해서 가챠를 돌린다.
[2] 가챠를 돌릴 자원이 없으면 인게임에서 자원을 캐오는 원정을 보낸다. (대부분 몇 시간 단위입니다)
[3] 좋은 캐릭터가 나오면 레벨링을 해서 육성을 한다.
[4] 캐릭터도 모았고, 자원도 쌓이면 다가올 이벤트를 대비한다.

이 정도 외에는 크게 게임에서 할 게 없어요.
그런데 이런 단순하고 할 게 별로 없는 게임이, 오히려 유저가 가볍게 즐길 수 있는 환경을 깔아줬다는 것이 저의 분석입니다.

접속시간? 집착 안해도 됩니다. 내가 자주 들어올 사람이면 빨리 돌아오는 원정, 자주 못 들어오면 오래 걸리는 원정을 보내면 되니까요.
5성 캐릭터? 레벨링만 했다면 다 거기서 거기인 능력치입니다. 능력 안 보고 오로지 예쁜 아이만 키워도 무방한 구조에요.

이 게임을 메인으로 잡고 가기에는 컨텐츠, 이용가능한 게임성 등이 부족한 게임이나, 어디까지나 서브 게임으로, 가볍고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요즘 나오는 게임들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노선을 걸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2] 소녀전선은 어떻게 다른가?

위에서 쭉 언급했던 칸코레의 성공에 대한 저의 분석은, 소녀전선에다가 적용해도 100% 똑같습니다. 왜냐하면 똑같은 게임이거든요.
다만 소녀전선은 칸코레의 성공을 보면서 3년간 칸코레의 성공을 분석하고,
칸코레의 장단점을 파악해서 그보다 더 나은 게임으로 발전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녀전선은 칸코레의 완전한 상위호환 게임입니다. 특히나 양쪽 게임을 다 해 본사람은 절실하게 느낄 정도로요.


(1) 소재 선정
칸코레는 서비스 초기만 해도 뚜렷하게 '일본의 전투함을 모에화한다' 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요즘은 아니지만)
당연하게도 이러한 소재로 인해 칸코레는 정말 많은 우익 시비가 붙었고, 이는 현재진행형입니다.

소녀전선은 출발부터 전 세계의 다양한 총기를 모에화함으로 이러한 우익 시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졌으며
'2차 세계대전' 이라는 한정된 시간대를 놓은 칸코레와 달리, 초기 총기 ~ 현대 총기를 전부 다루는 넓은 소재폭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소녀전선의 배경 설정도 '가상의 시/공간'을 설정함으로서 이러한 우익 시비에 대해서 원천봉쇄를 했기에
한국에서도 아무런 거부감없이 이 게임을 수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 칸코레의 불편한 점은 개선한다.
제작진은 칸코레를 해봤음이 분명합니다. '내가 유저입장에서 해보고, 이러한 불편한 점은 바꿔야겠다' 는 사상이 명확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예시는 많지만, 단적으로 들자면, 임무(퀘스트)에 관해서입니다.

가령 칸코레는 한번에 받을 수 있는 임무가 5~6개에 불과하며, 내가 동시에 임무들을 깰 수 있는 능력이 있더라도
동시 작업이 안되었고, 매번 임무가 클리어될 때마다 반복적으로 퀘스트 창에 들어가야 했던 반면
소녀전선은 그냥 스무스하게 게임 자체에서 임무 클리어가 이루어지고 자동으로 다음 임무칸이 채워집니다.

칸코레는 유저가 실수하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실수로 원정함대를 잘못 보냈네? 회수할 때 자원 소모도 동일할 뿐더러, 설정상 돌아오는 시간까지 패널티가 주어집니다. 소녀전선? 그냥 쿨하게 돌아옵니다.
유저의 실수로 칸코레에서 함선이 격침됐다? 그냥 죽는 겁니다. 소녀전선은 전투에서 (보스전 제외) 총기가 완전 격파당할지라도 사망판정은 없고 다만 호감도가 까이는 선에서 그칩니다.

이처럼 게임 곳곳에서 유저 친화적인 UI를 구성하고 있어서 훨씬 편해진 게임이 되었습니다.
유저들은 이제 더이상 '설정' 운운하면서 유저들에게 불편함을 강요하는 게임을 하고 싶어하진 않거든요.


(3) 칸코레가 미진한 부분은 더욱 발전시킨다.

앞서 칸코레는 싱글 게임, 유저간의 상호 교류가 거의 없는 게임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소녀전선도 근본적으로는 비슷합니다. 다만 칸코레보다는 훨씬 타 유저와의 교류가 중요해졌는데요.
바로 '친구 제대'와 '숙소' 시스템의 도입입니다.

칸코레는 아주 강한 상대가 있으면 어떻게든 꼭 내 손으로 격파를 해야 되지만
소녀전선은 친한 친구에게서 강력한 전력을 빌려올 수 있습니다. 때문에 내 전력이 빈약해도 어떻게든 전투를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어요.
또한 친구가 많을 수록 숙소에서 다양한 혜택이 있습니다. 이처럼 소녀전선은 게임의 메인 핵심은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상호 교류면에서 나름 적절한 밸런스를 잡아냈습니다.

전투 시스템에서도 칸코레와 소녀전선은 다릅니다.
칸코레의 그 유명한 기도 메타, 아군함을 출격내보내고 나면 유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오로지 기도 뿐인 게임이었다면
소녀전선은 스킬 시전이나 진형 편성 및 인게임내에서의 컨트롤 등 유저의 개입이 훨씬 많습니다. (대신 그만큼 더 복잡합니다)

이처럼 소녀전선은 그냥 칸코레의 카피캣을 넘어서, 상위호환이 되기 위한 연구를 많이 했었습니다.



[3] 소녀전선은 어떻게 즐기면 되는가?

편의상, 소녀전선에도 별2개 짜리 2성에서부터, 별5개 5성까지 다양한 전술인형이 있습니다만.
5성에 집착할 필요도 없고, 집착해서도 안되는 게 이 게임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냥 효율이 좋다 정도를 넘어서, 성능만 봐서는 5성과 거의 차이가 없는 (대표적으로 M14라던가...) 3성들도 많으며
오히려 5성의 경우 육성의 난이도가 굉장히 높으므로 게임을 장기적으로 오래 바라보면서 키워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결국 이 게임은 캐릭터 게임, 콜렉팅 게임인데요.
내가 좋아라하고 예쁘고 맘에 드는 캐릭이 있다면, 그 캐릭을 가지는 것이 이 게임의 최종 목표입니다. 나머지는 전부 부차적인 것이죠.
그 캐릭터를 뽑기 위해서 느긋하게 잠깐잠깐의 시간을 투자하면, 별다른 현금 없이도 이 게임의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소녀전선, 그리고 칸코레 류 콜렉팅 게임의 가장 큰 장점이니까요.


MMORPG, AOS 에서 생판 남과 협동하느라 진을 빼고
FPS, RTS, 스포츠 게임에서 적을 꺾기 위해서 집중력을 한껏 끌어올려야 하며
하스스톤, 섀도우 버스 등의 CCG 에서 다양한 전략과 손패 구상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면

잠시 쉬어가면서 예쁜 캐릭터나 구경하고 군수지원이나 보내면서 숨을 돌릴 수 있는 게임.
소녀전선은 바로 그런 게임이기에 성공했고, 아마 제법 오래 이 기세를 이어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