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기에 앞서 저는 일단 더 이상 TFT를 플레이하지 않습니다. 하위권을 했을 때 스트레스가 큰데, 그렇다고 1등을 하지 않는 이상 아무리 상위권이더라도 1등을 놓쳤다는 아쉬움이 너무 크더라고요. 결과적으로 상위권이든 하위권이든 아쉬움이 남는 게임이라 지금은 상위 랭커들 방송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어느덧 TFT 랭크가 도입된 지 일주일 가까이 지났고, 벌써 마스터를 찍은 유저가 등장하는 한편, 여러 게임 커뮤니티 내에서는 TFT가 실력이 좌우하는 게임인지, 아니면 속칭 '운빨겜'인지의 논쟁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더군요. 실력게임이라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일단 랭크가 도입되었으니 판수가 쌓일수록 랭크가 실력을 증명할 것이라고 하는 반면, 랭크란 단지 운이 좋은 사람을 나열한 것일 뿐이라는, 랭크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일단 제 개인적인 의견은, 실력은 분명 존재하되, 실력의 상한선이 그리 높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즉. 어느 정도의 '기본기'만 갖추어져 있다면, 그 기본기를 갖춘 유저간의 랭크, 혹은 등수를 결정하는 것은 순전한 운이라는 것이죠. 여기서의 기본기란, 현 메타에서 가장 강한 조합의 구성원을 암기한 뒤, 대략적인 초중후반 운영법을 익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솔직히 상위권 유저들의 유튜브 영상 및 방송 몇 개만 보고 익히더라도 누구나 갖출 수 있는 기본기입니다.  

기본기를 갖춘 상태에서 대다수의 유저들은 가장 강한 조합만을 완성하기 위해 달립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9.14 패치는 상당수의 유닛, 그리고 아이템이 버프된 그야말로 대격변 패치였음에도 불구하고 며칠 지나지도 않아 이미 정답에 가까운 메타가 이미 등장했습니다(6암4닌). 유저들의 말에 따르면 현재 랭크게임에서는 절대 다수의 유저들이 초반부터 이 조합을 완성하기 위해 달리고, 상위권 등수는 '운'에 의해 얼마나 이 조합을 강하고 빨리 맞추냐에 따라 결정되며, 울며 겨자먹기로 다른 빌드를 선택한 유저들은 게임 진행 도중 6암4닌 조합을 '운'이 좋아 잘 피해다녀야만 순위 유지를 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실력론'을 주장하는 분들은 라이엇 측에서 예고한 잦은 패치로 이러한 고착화 현상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저 또한 이 조합이 그리 오래 강세를 유지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러나 다음 패치로 메타가 바뀐다고 한들, '정답 메타'가 순식간에 등장해 버리고 대다수의 유저가 이를 답습하는 패턴이 바뀔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 패턴이 바뀌지 않는다면, 인게임에서 순위를 결정하는 것에 있어 운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물론 빠른 판단력이 큰 지분을 차지하는 게임인 것은 맞지만, 과연 운보다 큰 지분일까요? 소환사의 협곡과 비교해도 차이가 극명합니다. 패치에 따른 정답 메타가 등장할지언정 일반 협곡 유저들은 아무래도 본인의 숙련도와 애정에 따라 챔피언을 선택하는 경향이 큽니다. 또한 상대적으로 주류 메타에 대한 의존성이 심한 프로 씬에서도 같은 조합을 짜더라도 실력이 앞서는 팀이 승리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결국 TFT에서 패치가 가지는 의미는 협곡에서의 그것과 차이가 너무 심하고, 이는 운에 대한 의존성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잦은 패치는 적어도 TFT에서만큼은 실력의 유무를 논하는 논쟁에서 해결책이 될 수 없어요.

물론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는 게임이며 아직 지켜보아야 할 것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말마따나 '내가 이기면 실력 때문, 지면 운 때문'이라는 가불기를 사용할 수 있어서 매력적인 게임인 것 역시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TFT가 실력게임 논쟁에서 과연 언젠가 벗어날 수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도 생겨서 이 글을 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