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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11/24 01:49:03
Name Hell
Subject [LOL] MVP 3강타, 옛날 이야기 (수정됨)
요새 세간의 화제는 스토브리그죠. 이럴 때 글을 써야 스리슬쩍 묻혀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옛날 이야기를 하나 더 풀어보려고 합니다. 지난번엔 10인 로스터 관련 이야기를 했었는데, 마찬가지로 까먹기 전에 미리 어디 써둬야 나중에 문득 찾아보고 추억삼아 소주 한잔 할 것 같아서요.

발단은 정규리그 경기 전날, 애드의 급작스러운 기흉이었습니다. 심지어 전조증상 없이 불쑥 찾아오는 질병인 기흉은, 당시 승강전을 피하기 위해 죽기살기로 노력하던 저희 팀에게는 진짜로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죠. 급하게 라이엇에 상황 보고를 하고, 엔트리를 이미 제출한 상태긴 했으나 감사하게도 상대 팀과 라이엇의 양해를 얻어 급하게 마하를 탑으로 올리게 됩니다.

우선 그날은 아예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다음 날 반 정도 정신이 나간 상태로 경기장에 도착했는데,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해온 팀 단위 연습과 밴픽 플랜은 탑의 부재로 인해 아예 무쓸모가 되어버렸다는 사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있었는데, 마하가 당장 할 수 있는 탑 챔피언이 말파이트밖에 없었습니다. 어쨌든 마하도 롤 겜돌이 짬밥이 어디 간 것은 아닌지라 대충 쓸 줄 아는 챔피언은 꽤 있기에 대충이라도 쓸 줄 아는 정상적인 챔피언으로 탑을 가야 하나 고민했지만, 상대 탑솔러는 칸 선수였습니다. 대충 어찌저찌 틀어막을 수가 없는 상대였죠.

어쩔 수 없이 1경기는 말파이트로 분전했으나 패배하고, 1세트에서 벽을 느낀 마하는 2세트에서 카르마로 버티기를 시도했으나, 2세트 역시 무력하게 패하고 맙니다.

숙소에 돌아와서 선수들 밥을 먹이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정상적인 매치업으론 도저히 답이 안 나오더군요. 다음 경기는 한창 폼 좋은 기인 선수였습니다. 그 상황에서 어떤 탑솔러가 안 무섭겠냐마는, 칸-기인은 좀 너무하지 않나 마 아직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혼자 방에 틀어박혀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는데, 도타 시절이 문득 생각나더군요. 예전 제 선수였던 마치 감독의 증언에 의하면, 한참 뒤 Ti 7에서는 정글 메타가 있었던 적이 있다고는 하는데, 제가 도타를 했을 시절까지만 해도 프로 경기에서 정글을 쓰는 것이 말이 안 되는 메타였습니다. 사실 다른 게 아니라 정글 템이 없었기 때문인데, 공방에서 가끔 정글을 도는 친구들이 나타나면, 상대 팀의 서포터들이 정글이 있는 팀의 세이프 레인으로 TP를 타고 와서 압박을 주는 동시에 상대 정글에 같이 들어가고, 어쩔 수 없이 정글러는 울면서 잔몹처리로 푼돈을 모아 미다스를 구매해야 커서 어른이 될 수 있었던 뭐 그런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다다른 저는, 차라리 미드에 서포터를 세워서 2:1 라인압박 + 정글을 보조하는 게 어떨까란 생각을 했습니다. 애초에 롤은 어떤 팀이든 바텀에는 두 명이 가기에 뭔 수를 써도 양 쪽 정글을 다 봉쇄하는 게 불가능한 게임인데, 미드에 서폿을 세워 2/2/1 로 시작함과 동시에, 라인이 긴 탑에선 상대 탑솔러를 탑 지역 서포터를 통해 디나이하고, 그 과정에서 미드 역시 2명이라 주도권을 잡은 뒤, 각각 서포터가 힘을 합쳐 상대 부쉬로 들어가면 2:1로 상대 정글을 적어도 한 쪽은 기가 막히게 말릴 수 있을 것이다라는 것이 이론의 근간이었습니다. 실제로 연습 및 경기에서도 어느 정도 유효했는데,

QNXSuAe.png
브라움을 끼고 가서 상대 칼날부리를 초반부터 방해하는 장면.

fQLZ8Vu.png
탑 주도권을 바탕으로 상대 정글러를 더 빡치게 하는 장면.

아무튼 이 이론에는 두가지 선결조건이 있었습니다.
1. 브라움을 가져온다. (정글을 말리는 서포터들엔 브라움이 껴야 상대 정글을 말릴 때 소수교전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2. 상대 탑보다 우리 바텀이 혼자 잘 버텨야 한다.

추가적으로 탑 딜러로는 모데카이저를 가져오면 쏠쏠하다는 것도 있었습니다. 당시 모데카이저는 아군과 경험치를 나눠먹을 때 보너스가 있었으니, 우리 캐리 라인의 성장 시간을 좀 더 효과적으로 벌 수 있었죠.

물론, 바텀이 1:2로 버티다가 다이브를 당해 죽긴 죽는 것을 상수로 뒀습니다. 다만, 다이브를 당해 죽더라도 가장 더럽고 치사하게, 상대 바짓단 붙잡으면서 버틸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강타+텔 카서스를 픽해, 초반에 블루를 섭취하고 바텀 텔을 타서 2렙으로 한동안은 라인을 밀 수 있도록 배치했죠.

N1iSEe9.png
필연적인 죽음.

다들 프로 짬밥이 있으니 초중반 라인전만 어떻게 잘 넘기고 조합의 이점이 있는 상태로 후반을 맞이하면 어떻게든 해볼만한 싸움이 나오기에, 결과적으로 그러한 상태에 다다르는 것을 목표로 전략이 구성된 셈이죠.

(여담입니다만, 2세트에서 모데카이저,카서스 밴을 당하고 나온 하이머딩거는, 사실 1레벨에 아이템을 구매하지 않은 채로 버프를 강타로 먹고, 귀환한 뒤 초시계를 사서(당시엔 600원), 초반 다이브를 당할 때 요행을 노려보자는 의도였습니다. 물론 누가 봐도 범상치 않은 발상이었으므로, 해당 선수마저 게임 시작 시 습관적으로 아이템을 사는 바람에 작전수행에 실패하고 맙니다. ㅜㅜ)

아무튼, 정말 절망적인 환경에서 필사적으로 한 경기라도 이겨보고자 급하게 짠 전략이었는데, 팬분들이 많이들 재미있게 봐주셔서 나중에 돌이켜 생각해봐도 참 좋았습니다. 1경기 끝나고 저희 전략의 핵심을 빠르게 파악하여 밴으로 저희를 틀어막은 상대 코칭스태프인 최연성 감독님과 제파 코치님의 판단에도 혀를 내둘렀던 기억이 나는군요. 더불어 지금의 선수들이 보여주는 화려한 플레이와 재기 넘치는 픽들도 여전히 너무 기대가 됩니다. 롤이 이래서 너무 재밌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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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turus
21/11/24 01:58
수정 아이콘
(수정됨) MVP 권재환 감독님이신가요?

그 때 멤버들 애드 비욘드 이안 마하 맥스
정말 응원 많이 했었는데.. 파일럿 모티브 선수도요.
아직도 17년 리프트 라이벌즈에서 RNG 상대로
분전했던게 잊혀지지가 않네요.

MVP라는 팀을 참 좋아했고 그 당시 3강타 전략을 보면서
모든 커뮤니티가 투지를 칭찬했던게 생각납니다.

이렇게라도 비하인드를 들을 수 있게 되서 좋네요.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21/11/24 02:01
수정 아이콘
옛날에 이 경기 보면서 정말 놀랐던 기억이 나네요.

혹시 경기 다시 보고싶으신 분을 위한 링크
https://game.naver.com/esports/videos/456862 (한글)
https://www.youtube.com/watch?v=U1EY9FsqHPo (영문)
21/11/24 02:01
수정 아이콘
권감독님 필력은 여전하시군요.
21/11/24 02:18
수정 아이콘
GSG 5미드 전략 이후로 lck에서 전략 가지고 이정도로 회자된 경기가 없었죠.
작전의 발상과 수행도 비범하지만 글도 정말 깔끔하고 좋네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소믈리에
21/11/24 02:32
수정 아이콘
아 이때 재밌게 본 기억이 납니다

MVP 참 매력적인 팀이었는데요

맥멘 외치던 기억이...'
소믈리에
21/11/24 02:43
수정 아이콘
과거 mvp선수들 생각나서 찾아보니

맥스 한화2군코치
마하 현역입대
파일럿 올 2월까지 터키에 있다가 상호해지
애드 맥시코 아제게이밍 탑
이안 글로벌 젠카데미 코치
비욘드 농카데미 코치

군요.
김하성MLB20홈런
21/11/24 08:47
수정 아이콘
애드와 이안은 더 잘 될거라 생각했었는데 아쉽습니다...
21/11/24 09:31
수정 아이콘
솔직히 2016 시즌 끝나고 SKT 비욘드 좀 탐났었습니다...
21/11/24 09:40
수정 아이콘
맥스도 이번에 군입대 하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manymaster
21/11/24 09:44
수정 아이콘
21/11/24 02:34
수정 아이콘
아직도 mvp가 아무무 꺼내서 16락스 잡았던 경기는 못 잊습니다 크크
21/11/24 02:35
수정 아이콘
프로의 마인드에 대해 이야기 할때 절대 빠져서는 안되는 경기라고 생각합시다
반니스텔루이
21/11/24 02:40
수정 아이콘
이때 쿠로였나 게임 끝나고 왜 하필 우리 상대로 이런 전략 했냐고 아쉬워하던게 기억나네요 크크
황금경 엘드리치
21/11/24 02:48
수정 아이콘
비하인드 스토리 재미있게 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경기 봤을 때 엄청나게 재밌었어요.
펠릭스
21/11/24 02:52
수정 아이콘
이걸 라이브로 본 내가 인생의 승리자.

아 참고로 크트상대 4인 사이온도 본 내가 인생의 패배자.
21/11/24 03:08
수정 아이콘
저도 평소엔 라이브 잘 못 보는 데 본문 경기랑 쿼드라킬 사이온이랑 둘을 어떻게 라이브로 봤던게 자랑
21/11/24 02:59
수정 아이콘
서폿 쿼드라킬이 진짜 인상 깊게 남았는데 이런 경기도 있었군요.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모노리스
21/11/24 04:24
수정 아이콘
이건 정말 전설적인 경기였죠
21/11/24 08:13
수정 아이콘
강퀴가 1경기 이후 카서스 밴 당하면 직스로 대체하는 게 어떻겠냐고 아쉬워했던 경기였죠. 신지드도 숙련도가 필요한 챔프라는 말과 함께...
21/11/24 08:24
수정 아이콘
이 작전은 진짜 엄청났죠
비오는풍경
21/11/24 08:33
수정 아이콘
좋은 의미에서 정말 프로다운 경기였죠.
네~ 다음
21/11/24 08:39
수정 아이콘
저떄 라이브 버전으로는 불가능한 전략아니었나요
김하성MLB20홈런
21/11/24 08:47
수정 아이콘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류의 글은 너무나 귀하고 반갑네요 감사합니다
21/11/24 09:00
수정 아이콘
이 경기는 진짜 그 전략 준비해서 1승 따낸 MVP나, 2세트부터 바로 전략 수정해서 대응한 아프리카나 둘 다 1승을 위해 모든 대응방안을 짜내고 그 수립한 전략에 맞춰 짜임새있게 플레이한 시리즈라서 진짜 프로답다는 생각이 드는 명승부였습니다
파란짬뽕
21/11/24 09:03
수정 아이콘
이때 이걸 라이브로 봤었는데 롤이 피지컬이 상대적으로 부족해도 전략으로 이길수있고 감코가 괜히 있는게 아니다는걸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줬던 경기였네요.
21/11/24 09:45
수정 아이콘
와…기가막힌 전략이었네요. 그게 그거일 수도 있겠으니 [메타를 해석]한 것이 아닌 [전략을 세운] 느낌이라 확실히 특별한 사례로 느껴집니다.
1등급 저지방 우유
21/11/24 09:54
수정 아이콘
본문 내용 읽어보면 당시 팀 관계자신가 보네요
저도 이 경기 기억나긴 합니다
100%기억은 다 못해도 건모선수를 나름 애정하는 선수였거든요
신량역천
21/11/24 10:14
수정 아이콘
롤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하는 전설적인 경기죠
21/11/24 10:14
수정 아이콘
아 정말 너무도 재밌었던 게임이었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혹시 궁금하실 분들 위해 당시 불판 크크
https://cdn.pgr21.com./bulpan/13494
소믈리에
21/11/24 13:15
수정 아이콘
KT 와의 경기에서 서폿사이온 대량학살강타 풀스택으로 4인 띄우고 사이온궁 이어지는 한타대승

맥스 사형선고로 바론스틸 생각나네요 크크크크크
소믈리에
21/11/24 13:17
수정 아이콘
21/11/25 02:59
수정 아이콘
이렇게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즐거운 추억을 떠올리셨으면 하는 것이 이 글 화자의 의도였습니다. ^^7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Silver Scrapes
21/11/25 15:29
수정 아이콘
MVP시절 휴가 기간 피시방에서 도타 하는걸 봤다는 목격썰이 있었는데 진짜였군요 크크
저 다음에 패치 적용으로 저 날만 쓸 수 있었던 전략이라고 다들 리뷰하면서 입모아 칭찬하던게 기억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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