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집에서 걸어서 3분 가량을 가면 작은 청과점이 있었다. 내가 그 앞에서 유치원 승합차를 타던 시절도 있었으니 20년은 족히 넘었다. 인도를 오가며 내부가 훤히 보이는 커다란 창을 통해 안을 보면 주인 아저씨는 늘 높은 선반 위의 텔레비전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고 손님이 오면 주섬주섬 일어나 과일 바구니의 과일들을 봉투에 담아 주었다. 누군가는 사과를 어떤 이는 배를, 과일을 사지 않는 이들은 담배를 사갔다.
수십년을 봤지만 그 아저씨는 매일 아침 일찍 가게를 열었다. 학창시절 수학여행 집결지에 일찍 모이기 위해 새벽녁 집을 나섰는데 벌써부터 부산스럽게 장사 준비를 하시던 모습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가게는 작았고 과일을 특별한 것이 없었다. 작은 소쿠리에 사과나 배, 바나나, 딸기 같은 것들이 가득했고 최근 유행한 샤인머스킷이 구석에 보였다.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많다던 애플망고 같은 과일은 들여놓지 않았다. 갈수록 단골만 가는 그런 집이 되어갔다. 나 역시 어린 시절 부모님의 심부름으로 몇 번 구매를 한 것 말고는 방문한 적이 없으니 나는 그에게 손님이라기보단 행인이나 주민이었다.
그곳은 어떤 특별한 추억이 있는 장소라기보단 그냥 풍경 같은 곳이었다. 집 근처에 늘 존재하던 가로등이나 전봇대, 멀리 보이는 붉은 십자기의 불빛 같은거. 대학시절 오랜만에 집에 들렸다 그곳에 진열된 과일들이 너무 반듯하게 놓여있는 것을 보고 싱숭생숭했던 기억이 난다. 새벽녘에 신경써서 과일을 예쁘게 놓았을 주인아저씨의 모습이 상상되며 그의 최선과 고심이 타인에겐 수십년 간 알아채지도 못할 일이었다는게, 아마 나의 최선도 타인에겐 그러할 것이라는 게 마냥 우울했었다.
오랜만에 간 고향집에서 앞 과일가게에서 이제 문을 닫는다는, 정갈한 손글씨로 쓰인 벽보를 읽었다. 그래서 이 글은 과거형으로 쓰여졌다. 내가 집에 머문 고작 며칠 사이에 과일가게는 뜯겨나가고 그 자리엔 어디서나 보이는 편의점이 들어섰다. 편의점이 새로 생기는게 일주일도 채 안 걸린다는게 놀랐고 누군가의 수십년이 정리되는 시간도 찰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한테 말하니 웃으며 우리도 늙었다고, 그래서 이제 그런게 보인다고들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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