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2/01/20 19:33:16
Name 멋진신세계
Subject [일반] [리뷰] 망량의 상자 (교고쿠 나츠히코) (수정됨)
나이가 들면서 책을 읽는 빈도도, 책을 읽는 능력도 점점 쇠퇴해가던 차에
연말에 PGR을 통해 책에 군침이 당긴 날이 있었습니다.

ESBL님께서 추리소설을 작가 별로 1편씩 뽑은 글을 올려주시고,
거기에 수많은 분들이 집단지성적으로 좋은 책들을 추천해주셨죠.

덕분에 정말 간만에 도서관에 가서 교고쿠 나츠히코의 <망량의 상자>를 빌려왔습니다.
<우부메의 여름>과 고민하다가 충격과 공포가 어느정도인지 너무 궁금했거든요.



저는 추리소설을 추리하면서, 진상을 파헤치면서, 범인을 탐정보다 먼저 찾고자 노력하면서 읽는 편은 아닙니다.
그냥 추리를 해야 하는 (=부정적인 상황이 발생한) 그 특유의 긴장감 속에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하면서 읽는 타입이지요.

그리고 정말..... <망량의 상자>는 저에게 기대 그 이상의 작품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읽어서 불이 붙을 때까지 꽤 고생을 했고 요괴에 대한 장광설들이 어렵기도 했지만 
원래 괴이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취향이라 완전 괴이함 + 추리의 긴장감이라는 종합선물세트같은 책이었어요.

마찬가지로 연말에 추천받았던 시바타 준의 <월광욕>을 들으면서 읽는데,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로 오싹하고 멍해지고 말았습니다.
진짜 며칠동안 그 감명에 헤어나오지 못했다가 좋은 책을 추천해주신 PGR 많은 분들께 감사를 드릴 겸, 
아직 못 보신 분들이 계시면 꼭 추천드릴 겸 감상을 간단히 적어봅니다.



책의 전반부는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아주 작은 조각들이 흩어진 듯이 조각조각 흘러갑니다.
가장 첫 발단을 열었던 요리코와 가나코의 일탈과 사고, 끔찍한 사건의 전조였던 발견들, 그리고 계속해서 나타나는 [망량]이란 키워드들.

그리고 보는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들정도로 계속해서 변화하던 시점은 어느 순간 합쳐집니다.
조금씩, 마치 흩어져 있던 퍼즐 조각들이 천천히 제 옆의 조각을 찾아내듯이
하나 하나 겹쳐지던 퍼즐들이 어느 순간 결국 단 하나의 그림으로 합쳐집니다.

그리고 그 그림이 완성된 이후, 그 그림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하나하나 독립적이고 의미를 가진 채, 그러나 서로의 연결을 통해 하나의 그림이 되어버린 결말은 소름끼칠 정도로 충격적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이야기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모든 사건이 (과학을 잘 모르는 저에게는) 굉장히 현실감있게 다가왔다는 점입니다.
각각의 퍼즐로 볼 때는 말도 안 되게 기이하게 느껴지던 퍼즐들이었는데,
모두 제자리를 찾은 후에 돌이켜보면 이거... 가능한 것 같긴 해...! 라는 기분이었달까요.

사람들의 동기는 정말 말도 안될만큼 충격적인데, 그 동기로 인해 하는 행동과 일어나는 사건은 현실적입니다.
뭐라고 할까요... 미친 사람이 미친 목적을 위해 합리적인 발상과 계획을 세우는 기분입니다.

(정말 개인 취향인데) 우부메의 여름보다 망량의 상자를 조금 더 높게 평가한 이유는,
망량의 상자의 사건 혹은 트릭이 조금 더 현실적으로 보여서 그러했습니다.
그럼으로 인해 동기의 광기와 행동의 합리성이 대비되면서 더 극적인 효과가 두드러졌다는 기분이었거든요.
광기로 범벅된 사건들이지만, 막상 심플하게 그 기괴함을 덜어내보면 납득 가능한 행동과 흐름으로 이어졌다는 점이 특히 좋았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힘겨운 소설, 괴로운 소설을 잘 안 읽게 되는 경향이 생겼는데,
망량의 상자는 그런 저를 강제로 잡아끌어서 이야기의 마지막 장을 넘기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몇날며칠동안 그 수많은 조각들을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즐겁지도, 웃기지도 않지만 어쩐지 곰곰히 생각하게 되는 이야기들.
어쩌면 그런 것이야말로 저에겐 이 책이 [좋은] 소설이었다는 뜻이겠지요.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망량의 상자를 모든 이야기를 읽으신 분들께는 이런 화두도 던져보고 싶네요.
[그리고, 그래서 그들은 행복했을까요?]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음란파괴왕
22/01/20 19:42
수정 아이콘
이거 그건가요? 사람 팔다리 잘라서 가지고 다니던? 자세한 내용은 기억안나는데 꽤나 신기했던 기억은 납니다.
멋진신세계
22/01/20 19:49
수정 아이콘
넵 정확하십니다. 처음엔 엽기성에 경악하다가 뒤로 가면 갈수록 엽기가 문제가 아니고 사람들의 광기가 느껴지는 거 같은 기분이었어요 흐흐
한뫼소
22/01/20 19:51
수정 아이콘
우부메의 여름부터 광골의 꿈까지는 봤던거 같은데 그 중에서도 망량의 상자가 제일 재미있었습니다. 워낙 예전에 봤던거라 인상으로밖에 생각이 안나는데 후반 클라이막스 부분의 장소? 장면 묘사 같은건 도구라마구라의 인트로에서 읽은 숨막힐 것 같은 공간의 정서랄지 분위기랑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한창 빠졌었던 기억이 나네요.
멋진신세계
22/01/20 20:26
수정 아이콘
도구라마구라를 읽진 않았지만 숨이 막힐것 같은 정서라는 게 무슨 느낌인지 정말 공감이 됩니다. 개인적으로 그 비현실적이면서도 납득할 수 있는 결말이 정말 화룡점정이었어요
우리아들뭐하니
22/01/20 20:07
수정 아이콘
저는 책 말고 애니로 봤던 작품이네요. 인상적이었고 재미있었어요.
멋진신세계
22/01/20 20:27
수정 아이콘
애니는 클램프가 만들었다고 하던데 정말 다들 미형이더라구요 흐흐 애니는 아직 보지 않았지만 책의 그 분위기를 잘 살렸는지 궁금하네요
설사왕
22/01/20 20:08
수정 아이콘
예전에 책으로 200페이지? 정도 보다가 말았는데 혹시 애니로 보는건 어떨까요?
노안이 와서 책으로 보는건 힘드네요. ㅠㅠ
멋진신세계
22/01/20 20:29
수정 아이콘
애니는 아직 저도 보지 못했습니다ㅜㅜ 개인적으로 딱 200페이지 정도까지 정말 안 읽히다가 어느 순간 잘 넘어갔어요. 사이비 교주님의 비밀(?)에 대해 나오는 시기부터 술술 읽히더라구요!
시린비
22/01/20 20:31
수정 아이콘
만화책판도 있던듯요. 편하신걸로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런지. 억지로 책으로 보시라고 할수도 없잖...
서류조당
22/01/21 00:50
수정 아이콘
만화책으로 보시죠. 5권짜리인데, 상당히 고퀄입니다.
원펀치
22/01/20 20:52
수정 아이콘
이걸 추리소설로 봐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현실적으로 말이안되잖아요. 말이 안되는 트릭과 설정인데 등장인물들이 그렇군 과연 그랬던거군 할때 뭐지 얘네들 이게 말이된다고 생각하나 라고 헛웃음이 나더군요.

마치 예전 추리만화에서 추운 날씨에 물을 뿌려 탑꼭대기까지 얼음다리를 만들어 사람을 끌고 올라가서 탑에 꽂았다라는 트릭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솔직히.... 현실적으로 말이 안되지 않나요? 소설에 나오는 탐정은 저게 정말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건가...
22/01/20 21:55
수정 아이콘
그럴때는 트릭이 현실적이지 못한 '미스터리' 혹은 '추리소설' 이라고하면됩니다.

사실 트릭의 정합성 유무는 추리소설이라는 정체성을 갖게하는데 그리 중요한 필수요소는 아닙니다
멋진신세계
22/01/20 22:09
수정 아이콘
저는 의외로 곰곰히 생각해보니 하나씩은 (예를 들어서 미미사카 박사의 연구 및 성과물) 의외로 말이 된다고 생각해서 고평가 했던 거 같습니다 흐흐 인공투석기나 그런 것들이 고도로 발달하면 그런 연구까지 갈 수도 있지 않나? 라고 생각했거든요. 물론 저 시대에 그정도의 성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게 맞으니까요...
저는 뭔가 그런 말도 안되는 것들에 대해 '정말 물리적으로 말이 안되는 건가?' '인간의 도덕성 때문에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럼 정말 도덕성을 내버릴 수 있으면 저게 현실적으로 가능한건가?' 이런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서류조당
22/01/21 00:52
수정 아이콘
요새 트렌드는 더 심해서요.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이라거나, 시인장의 살인이라거나....
그리고 같은 작가의 소설 중에서 그나마 현실성 있게 느껴지는 게 이 소설입니다. 이 뒤에 나오는 광골의 꿈 읽으면 기겁하실듯요 크크크크
시린비
22/01/21 12:42
수정 아이콘
애초에 초능력자 에노키즈가 나오는 시리즈인걸요.. 작품 내에서 합만 맞으면 상관없다는 파가 다수라
일본에서도 많이 팔리고 애니도 나오고 만화도 나오고 여튼 인기가 많았던 거겠죠.
추리소설은 현실적이어야 한다 이런게 없어진지도 오래되어서..
이쥴레이
22/01/20 21:08
수정 아이콘
저는 취향이 맞아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상/하권 두께가
어마어마한데 몰입도가 높아서 한번에 다 읽었네요. 트릭도 어떻게보면 간단한 트릭인데 나중에... 아~ 하게 되는지라 추리물보다는 사람의 광기와 그 바람(?)의 선을 한순간 넘느냐 마느냐... 알수 있었던거 같습니다.

그냥 욱하면.. 아니면 한이 쌓인다면... 여러가지 생각 많이 했던 작품이었습니다.
멋진신세계
22/01/20 22:11
수정 아이콘
처음에는 각각의 괴이함에 멍해져서 눈치를 못채고, 그 다음엔 이상한 방향(망량이란 키워드...!)에 혹하느라 눈치를 못챘던 거 같아요. 약간... A-B-C로 연결될 줄 알았던 퍼즐이 사실 C-A-B로 연결된 것이다! 를 깨달은 느낌이었달까요...
저도 두께에 헉하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진짜 몰입감이 장난 아니더라구요.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마스터충달
22/01/20 21:32
수정 아이콘
저는 만화책으로 봤는데, 제 인생 역대 추리물이었습니다. 추리소설로서 대단하다는 느낌이 아니라 그냥 이야기와 결말이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스티븐 킹 소설과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멋진신세계
22/01/20 22:12
수정 아이콘
저랑 딱 같은 느낌이신 것 같아요 흐흐.. 정말 그냥 이야기 자체가 너무나 괴이하면서 매력적입니다..!
서류조당
22/01/21 00:53
수정 아이콘
만화가 진짜 고퀄이에요. 추리만화 중에선 탑으로 꼽습니다.
오퍼튜니티
22/01/20 22:19
수정 아이콘
저도 여기서 추천받아 도서관에 있는 교고쿠 나츠히코의 작품은 거의 읽었는데 딱 우부메와 망령까지만 제 이해의 영역에 간신히 들어오더군요. 그 뒤 작품 철혈 도불 기타등등은 가장 먼길로만 돌아돌아 도착하는 느낌의 설명에 지쳐서 몇번이나 원래의 내용을 놓치면서 간신히 읽기만 했네요.
꽃이나까잡숴
22/01/20 22:22
수정 아이콘
진짜 잊을 수없는 소설이에요 시간이 아무리지나도
류지나
22/01/20 22:45
수정 아이콘
저는 이 작품을 표절했다고 알려진 게임 '껍질소녀'를 통해서 간접적으로만 접했습니다만 안에 담겨있는 광기와 씁쓸함이 장난아니더군요.
유지애
22/01/21 01:08
수정 아이콘
교고쿠 나츠히코 작품은 몇개 읽었는데
그 중에서도 미스터리/추리소설 찾는 사람이라면 이건 꼭 읽어봐야 한다고 추천하는 작품입니다.
상자의 후~하는 한숨이 아직도 제 뒷목에 소름이 돋게 하네요.
及時雨
22/01/21 09:01
수정 아이콘
말이 너무 많아요 크크크
세타휠
22/01/21 12:15
수정 아이콘
동감합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4863 [일반] <어나더 라운드> - 그래서 술, 그래도 술.(스포) [8] aDayInTheLife6984 22/01/20 6984 0
94862 [일반] 경마 업계를 떠난 말은 어떻게 되는가? [43] 담배상품권16388 22/01/20 16388 28
94861 [일반] [리뷰] 망량의 상자 (교고쿠 나츠히코) [26] 멋진신세계7281 22/01/20 7281 2
94860 [일반] 게임이 청년 남성의 노동시장 참여를 줄였다? [49] 데브레첸15496 22/01/20 15496 31
94859 [일반] 이상한게 다있는 중국 (IT관련) [19] 그림속동화14693 22/01/20 14693 2
94858 [일반] 보상 없는 방역 정책은 바뀌어야 [64] 구텐베르크10623 22/01/20 10623 48
94857 [일반] 오미크론 변이 대유행 시작, 우리사회는 어떤 준비를 해야하는가? [92] 여왕의심복21260 22/01/20 21260 111
94856 [일반] 구조 중 찍힌 알몸영상 따로 옮긴 소방대원에 고작 '경고' [62] 로즈마리18661 22/01/20 18661 12
94854 [일반] 배달비 논란에 대한 생각 [289] 삭제됨20047 22/01/20 20047 3
94853 [일반] 2021년 일본 추리소설 랭킹과 코멘트 [31] ESBL10454 22/01/20 10454 11
94852 [일반] 노트북이 든 가방을 지하철에 두고 내렸습니다. [61] ESG13357 22/01/19 13357 76
94851 [일반] 다른 부서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26] 픽킹하리스10498 22/01/19 10498 10
94850 [일반] [성경이야기]여호수아와 요단강 [22] BK_Zju12757 22/01/18 12757 31
94849 [일반] 송도타워..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링크] [44] 드르딩당당18099 22/01/18 18099 1
94848 [일반] 소설 '태자비승직기' 소개 글(스포 최소화) [12] 마음속의빛7229 22/01/18 7229 2
94847 [일반] (스포) 블리치 애니화 재개 기념으로 블리치를 돌아보는 글 [32] 원장12174 22/01/18 12174 1
94846 [일반] 선게에 글 리젠이 활발하지 않은 이유... [178] 원펀치21984 22/01/18 21984 9
94845 [일반] 생각보다 대단한 과학자, 우장춘 박사 [45] jjohny=쿠마14825 22/01/18 14825 19
94844 [일반] 화이자 부스터샷(3차) 후기 - 뭐? 안아프다고?! [93] 랜슬롯16563 22/01/18 16563 8
94843 [일반] [성경이야기]모세의 죽음과 다음 지도자 [11] BK_Zju11406 22/01/17 11406 19
94842 [일반] 철면수심 차돌짬뽕 리뷰..(+쬐끔 더 맛있게 먹기) [46] Lelouch15236 22/01/17 15236 14
94841 [일반] 전고체 배터리가 안되는 이유? [70] 어강됴리18497 22/01/17 18497 3
94840 [일반] (스포)뒤늦게 본 스파이더맨 노웨이홈의 실망스러운 후기 [31] 시간10953 22/01/17 10953 1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