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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2/08/20 21:06:40
Name 공염불
Subject [일반] 망글로 써보는 게임회사 경험담(14) (수정됨)
(16) 더 이상 나쁠 수 없어 보였던 내부

동료님 놈들의 구성은 처음엔 괜찮아 보였다. 처음엔 말이다.
그런 착시 효과(?)를 만든 이유는 바로 입사 동기 친구놈, 나랑 동갑인 녀석은 지금도 종종 연락하는 레벨 디자이너인데.
이 친구와는 참 나도 모르는 인연이 있었다.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전 회사의 낙하산 팀장인 Sy와 이 친구가 나름 회사에서 막역한 사이였던 것. -__-;
입사 후 친해져 얼마 안 있다가 소주 한 잔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킁...
하지만 이 친구는 내가 (Sy와 친구와 친했다는 걸 알고 난 다음에도) 열심히 까대자

"나도 걔 그러는 거 알고 있어. 나랑 있을 때는 심하진 않았는데, 올라가서 변했다는 소리도 들었고. 그 시키가 잘못한 거지."

이렇게 이야기를 함으로써, Sy에 대해서는 암묵적(?)으로 정리가 되었었다 크크. 그냥 나를 위해 이 친구가 져 준 거라고 생각했지만, 뭐가 중요한가?
중요한 건, 이 친구(앞으로 D라 지칭)와 내가 이 회사에서 동료님놈들 때문에 겪을 고초인 것이지.

우선 기획팀장 BG.
나보더 서너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본계 게임 회사에 다녔었고, 그걸 자신의 능력으로 포장해 종종 자랑질. 문서만 깔끔하게 만드는데 치중하고 그 알맹이는 아무것도 없으며, 하나하나 마이크로 컨트롤을 못해서 안달이었던 인물. 하지만 그런 컨트롤을 하려면 필요한 최소한의 요소 중 하나도 충족시키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마이크로 컨트롤을 위해 필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난 보통 세 가지로 본다. 첫번째는 당연히도 압도적인 능력. 잡소리는 능력으로 보여줘서 깨갱하게 만든다. 두번째는 (운빨이든 정치든 능력이든 뭐든 간에 쌓아 올린) 성과. 이제까지의 커리어가 어마무시하다면, 아니면 최소한 한두 프로젝트에서만큼은 남들이 뭐라고 하지 못할 성과를 이룬 사람이라면 먹힌다. 세번째는 엄청난 입담. 뚜렷하게 내세울만한 능력이나 성과가 없어도,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한 뒤 그걸 상대방에게 제대로 설득력있게 전달하는 능력. 상대방이 가지고 있을 만한 이견이나 반론, 혹은 의문점을 명쾌하게, 혹은 최대한 납득이 갈 정도로는 설명을 해서 '일이 제대로 굴러 가게끔' 만들 수 있어야 한다.

BG는? 첫째?

"이 시나리오 구려요."
"아, 그래요?  어느 부분이?"
"그냥, 전반적으로 좀 이상해요."
"...아니, 그렇게 말씀하시면 전체 다 수정을 하라고 하시는 건데, 일정이 안 맞잖아요? 중요한 부분을 알려 주셔야?"
"아니 아니, 그냥 다 마음에 안 든다구요. 이 부분 특히, 이 설정. 이상하잖아. 그렇지 않아 N(좀 뒤에 설명할 팀원)아?"
"...글쎄요.. 뭐, 좀 엉성해 보이기도 하고."
"봐바. 맞지? 이상하다잖아."
"...아니. 그럼 처음부터 다시 쓰라구요?"
"그거야 알아서 해야지."
"일정 안 나와서 수정해야 할 부분을 알려달라고 말씀 드리는 건데 그게 안 되면, 새로 고쳐써야 하는데...수정점을 모르면 힘들잖아요. 무엇 때문에 어느 부분을 혹은 어떤 맥락으로 다시 써야 하는지를 모르면 또 이상하게 나올 수도 있는 거구요."
"그거야 작업자가 알아서 하는 거라니까? 난 그런 것까지 하나하나 컨트롤 하는 팀장이 아니에요."
"차라리 하나하나 컨트롤, 빨간 펜 선생님을 해 주시는 게 나아요. 이렇게 피드백 하시면."
"그건 내 스타일 아니라고요. 작업자가 할 일이지."
"...그냥 제 작업이 마음에 안 드셔서 그런 거 아닙니까?"
"뭐, 그렇다기보다 결과물이 마음에 안 드는 거죠. 아, 작업물 요즘 보면 공염불 님 스타일이 나랑 안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웃으며) 팀장님 스타일이나 방향성을 말씀해 주시면 제가 최대한 맞출 수 있습니다. 피드백만 잘 해 주시면."
"그게 맞춘다고 잘 되려나 모르겠네."
"아니, 이러실거면 왜 뽑으셨어요? (이건 웃으며 농담 톤으로)"
"하하, 그러게. 그땐 몰랐지. (이것도 웃으며 말을 했으나, 난 찐으로 들림,)"
"(개빡침) 팀장님, 이러실거면 그냥 초안을 팀장님께서, 쪽대본이든 간단 시놉이든 뭐든 잡아주시면 제가 그 방향에 맞춰서 다시 써 올게요. 일정 맞춰서."

여기서 BG, 허탈한 듯 혹은 어이없는 듯, 어쩌면 기분 나쁜 듯 웃으며

"아니, 그거 하라고 당신을 뽑은거잖아? 그걸 내가 하면 당신을 왜 뽑았겠어?"

대화 내용이야 세월 보정, 기억 보정에 양념 요소가 들어가지만, 안에 담긴 대화의 흐름과 내용은 다르지 않았다. 정말 딱 저런 맥락으로 흘렀고, 저 마지막 말은 톳씨만 좀 다를뿐 똑같은 내용이었다.
아, 지금 쓰면서도 그 때 생각하면 빡치는데. 크크

아무튼 첫번째 능력과 세번째 입담까지 이 정도면 충분히 설득력있게 전달을 드린 것 같다.
두번째는 뭐...일본계 (그 당시에는 업계에서 거의 보기 드물었던) '무려 콘솔게임 회사'에 다녔다는 것으로 회의 때마다 '니들처럼 PC 온라인 게임 고인물 업계에서만 굴러먹던 인간들'이 뭘 알겠냐고 찍어 누르려고 했으나....
그게 먹히겠습니까 선생님? 선생님께서 지금 계신 곳이 그 고인물 PC온라인 게임 회사라구요.

기획팀장 BG는 이런 패턴으로 업무와 회의를 진행했고 컨펌을 했다. 도저히 일 처리 및 진행이 되질 않는 수준이었고, 나와 D는 정말 암에 걸릴 것만 같은 상황 속에서 업무에 치어 허덕거리며 생활을 해 나갔다.
그나마 일은 돌아가야 하니까, 내가 취한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아트나 개발실에 어필하는 것.

"뭐야? 왜 기획 리뷰 안 해?"
"기획서 안 줘요? 뭘 갖고 만들라고?"
"이거 개발 마감 기한 다 됐는데, 아직까지 퀘스트 이벤트 기획서도 안 넘어왔어요!"

각 실에서 난리를 칠 때, 난 정확하게 '팩트'만 전달했다.

"아, 네. 기획서는 고려시대에 작성을 끝마쳤는데, 컨펌이 안 나서요."

물론 BG는 지랄을 했다. 기획 회의 때마다 '니들은 팀장을 빙다리 핫바지로 본다' '팀장이 너네 얼굴인데, 얼굴에 똥칠하고 좋냐' 는 식의 이야기를 뱉어내며 틈만 나면 갈궈댔다. 물론 나와 D는 물론이고 나머지 두 명의 팀원들의 반응은.
없을 무.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BG는 혼자 쉐도우 복싱을 하다가 나가는 기획 팀의 훈훈한 회의만이 이어졌고. 그 이후 BG는 그나마 (지가 욕을 덜 쳐먹어야 하니까) '니들 맘대로 하잖아 어차피?' 이런 쌉소리를 해가며 컨펌을 가장한 묵인을 해 주어 결국 업무는 돌아가게 만들어 주었다.

아, 혈압 오르니까 BG의 이야기는 그만 쓰겠다. 어차피 나중에 다시 등장해야 하니까, 크크.

이제 나머지 두 팀원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면.
먼저 N.
나와 D와는 동갑. 시스템 기획자이자 초기 멤버로 게임 중요 시스템을 기획해 만들어 놓은 친구이고, 나와 협업해서는 여러 컨텐츠 기획을 대신 진행하기도 했다.
굉장히 시니컬하고 무심해 보이는 태도를 가지나, 그 이면에는 여러 사람들 중에 자신의 편이 될 만한 사람을 골라내어 파벌을 만드는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M.
역시 (N이후 들어오긴 했으나) 초창기 멤버였고 N과 친구였다.
여기서 잠깐, 그럼 기획팀원들은 모두?
맞다. 동갑이었다.
그래서 BG는 팀 회의 때마다 (자신의 뜻과 네 사람의 뜻이 대부분 달랐기 때문에) 우리 띠를 지칭해서
"아, 씨, 망할 늑대띠 새끼들 같으니."
라고 구시렁거렸으니까. 크크.

아무튼 M은 나름 톤앤매너 깔끔하고 성격 모나지 않으며 일 처리도 수월했다. 문제는 N의 추종자라는 것이었고.

그리고 나와 D는 N과는 스타일이 달랐다. 사람들을 골라 만나거나 하지도 않았으나, 특정 사람들에게 친분을 만들려고 일부러 친해지려고 노력하지도 않는 편. (그리고 그렇게 하려고 해도, 이미 N을 필두로 한 고인물들의 관계가 탄탄해서 쉽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업무 방식이 달랐다. 자세히 말하기는 힘들지만, 간략히 설명해 보자면....
나와 D는 기획서를 먼저 쓰면서 초안을 가지고 작업 당사자와 협의를 하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1차 안을 마무리한 다음에 리뷰를 통해 각 이해 관계자와 상의를 해서 최종안을 도출해 내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N은 우선 각 이해 관계자와 입을 맞춰서 초안을 진행하고, 이 초안을 가지고 작업 당사자에게 전달해서 곧바로 일을 진행해 버리는 방식을 쓰곤 했다.

무엇이 다르냐고?
이해 관계자는, 컨펌자다. 작업 당사자는 당연히 작업자.
진행 방식이 다른 것이다.
당연하게도 업무 진행 속도는 N이 빨랐다. 작업 당사자는 기분이 나빠도 컨펌권자의 의사를 존중해 일을 진행하기 마련. 반면 나는 작업 당사자의 의견을 반영 정리해서 기획안을 만들고 그걸 바탕으로 컨펌권자에게 리뷰를 해서 업무를 조율했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던가, 낫다던가 하는 말을 하는 게 아니라 방식이 다르다는 것. 이걸 설명하는 이야기임과 동시에, 이렇게 스타일이 달랐기 때문에 나와D, 그리고 N과 M은 쉽사리 친해지거나 융화되지 못했다.
그리고 나와 D는 N에게 기분 나쁜 감정이 쌓여만 가기도 했다. 그는 회의 자리는 물론이고 사담을 나누는 자리에서도 직간접적으로 나와 D를 디스했기 때문이었다. 위에서 이야기한 팀장과의 회의 때 나온 '엉성해 보이기는하다'는 이야기는 그 뒤에 배경 스토리가 있다. 팀장이 지적한 부분은 초기 시놉시스를 잡아놓은 N의 설정을 어느 정도 가지고 온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와 논의를 했고, N이 '지금 나온 몬스터라던가 배경 오브젝트에 들어간 요소이기 때문에 가져가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난 그리고 그 의견을 수용했었다. 전체 스토리 라인에 영향을 주지 않을 뿐더러, 이미 잡아놓은 설정이라 이야기 볼륨이 커지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
그걸 깐 것이다. 뭐, 아무튼 저런 경우는 왕왕 있었다. 그래서 D는 초창기에는 'N씨' 칭하던 것을 나중에는 'XX 그 새끼는' 이라고 바꿔 버렸었다. 크크.

여기까지가, 내가 몸담고 있는 기획팀 동료님놈들의 상태였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라고 생각하시면 경기도 오산.
아직 시작도 안 했으니까.
왜냐?

우리에겐 협업을 해야 할, 타 실의 동료님놈들이 어마무지하게 계신다.
트롤의 본 고장, 그곳은 이제 막 문이 열리려고 하는 찰나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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及時雨
22/08/21 00:14
수정 아이콘
중간에 N이랑 M이랑 혼동된 거 같아요!
공염불
22/08/21 01:16
수정 아이콘
아 맞네요 둘 이니셜이 비슷해서 크크
감사합니다.
화천대유
22/08/21 01:39
수정 아이콘
기획팀장 저런 화법 구사하는 사람이랑 도대체 일 어떻게 같이하죠? 와 글만봐도 개빢치네 진심
22/08/21 09:51
수정 아이콘
종종 보이는 마인드인데여, 아 모르겠고 다 마음에 안들고 네가 해오는거 보고 항상 판단해줄텐데, 내 마음에 들지 안들지는 나도 잘 몰겠어.
raindraw
22/08/21 10:09
수정 아이콘
전형적인 갑 스타일입니다.
si일 하는 분들 보면 저런 사람들 가끔 만나더군요. (저도 몇번 정도 si 프로젝트에 들어간 적 있음)
심지어는 저런 스타일의 분들은 자기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몇번 떠먹여 주다보면 처음게 제일 좋았는데 돌아가는 경우도 있죠.
22/08/21 12:39
수정 아이콘
적당히 수정하다가 처음거 들고 가면 됩니다.
그렇게 돌고 있으면 어느 순간 이제야 마음에 든다면서 통과 됨
ioi(아이오아이)
22/08/22 09:01
수정 아이콘
자기가 갑일 때 생각보다 자주 나오는 스타일입니다.

갑)이 디자인 맘에 안드는데 한 100개만 더 만들어서 가져와
을)그거 다 맘에 안 들면요?
갑)그럼 100개 더 만들어서 가져오면 되지
라돌체비타
22/08/21 09:04
수정 아이콘
이런 환경에서 흥행하는 게임들이 만들어진다는게 신기하네요 크크
범퍼카
22/08/21 10:32
수정 아이콘
재밌게 잘 보고있습니다
22/08/21 11:37
수정 아이콘
와 하나하나 사직서감인데요 ㅠㅠㅠㅠㅠ
Winter_SkaDi
22/08/21 11:53
수정 아이콘
현직 게임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감사한 마음으로 조용히 다녀야겠습니다....
그럴수도있어
22/08/22 11:05
수정 아이콘
잘봤습니다. 어느 무리에나 있을 법한 군상들이네요.
나선꽃
22/08/23 10:20
수정 아이콘
그런데 궁금한게 글쓴분이랑 D분이 기획하고 일하는 방식이 .. 원래 방식? 바람직한 방법? FM 이라고 해야하나 ? 아닌가요?
공염불
22/08/23 16:24
수정 아이콘
사실 어느것이 좋다 나쁘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문제는, (대충 언급만하고 다 적지 않았는데, 나중에 나올거라 크크) 저걸 가지고 은근 까거나 돌려 까거나 심지어 다른 인원들에게 정치질을 하는데 썼다는 게 문제였죠.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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