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3/09/25 10:56:49
Name likepa
Subject [일반] 위대한 응원을 받았습니다. (수정됨)
제 취미는 달리기 입니다.
처음 대회에서 10K를 달렸을 때 반환점을 넘어 달리고 있는 하프 주자들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인간이 10K을 넘어 두 배의 거리를 달릴까?
수 개월 후 처음 하프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여 저의 골인지점이 누군가들의 반환점이 되는 것을 보고
또 다시 생각했습니다.
42.195km를 달리는게 인간이 할 짓 인가?
몇 년 후 스스로 인간이 할 짓이 아닌 짓에 도전하고 있지만 여전히 마라톤 풀코스는 인간이 할 짓이 아닌거 아닌가? 라는 의문은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7~8월 30도 이상의 심야에 25K를 달리며 탈수에 블랙아웃에 이런 저런 고비를 넘어서 이제 11월 JTBC대회를 앞두고 이제서야 얼추 30K~35K를 달리고 있습니다.
여전히 이게 인간이 할만한 짓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좋아 동호회나 러닝크루 가입은 고려한적이 없습니다.
아마 상급 러너분들을 만나 배우고 수정하고 훈련하며 지금과 동일한 시간을 달리기에 투자했더라면 더 좋은 결과를 내고 있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길 위에서 몇 시간씩 보내는 시간의 소중함을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혼자서 보내는 시간의 소중함이 아직 기록에 대한 욕심을 넘어서고 있어 아마 한동안은 어딘가에 소속되어 함께 달리는 일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가끔씩 주말 이른 아침 자세가 무너지며 슬슬 멈출까 하는 저를 향해 맞은편에서 달려오시는 러너 분들의 진심을 가득 담은 파이팅을 외쳐주시고 그 파이팅을 반납하여 외쳐드릴때의 소름끼침에, 나도 슬슬 같은 목표를 향하는 누군가들과 함께 이 지독한 시간을 보내는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지난 토요일에는 자고 있는 가족들이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준비하여 아침 6:30분에 30K를 목표로 출발하였습니다. 
생각보다 일출이 빨랐고 유독 태양은 쨍한 아침이었습니다.
강동, 송파, 하남쪽의 러너들에게 한강 암사 정수장을 넘어가는 속칭 아이유고개는 참 잔인하고 고마운 훈련코스 입니다.
강한 햇볕을 핑계로 아이유고개의 오르막에서 오늘은 슬슬 접을까 하는 생각이 스물스물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고개는 떨어지고 어깨는 점점 앞으로 굽고 이게 걷는건지 뛰는 건지 모르겠는 속도가 될 즈음에 보행자 도로에서 뛰고 있는 저를 향해 자전거 도로의 누군가가 “파이팅. 할 수 있다”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순간적으로 ‘아.. 감사하지만 저래주시면 내가 못 멈추는데..’ 하며 돌아 본 순간, 하체가 없으신 어르신 한 분이 리컴번트 자전거의(누워서 타는 자전거)의 패달을 두 손으로 카약 노젓듯이 당기시며 저를 향해 외치고 계셨습니다.
“파이팅!! 할 수 있습니다” 라는 외침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왔고 그분은 유유히 저를 앞질러 가셨습니다.

이미 상체로 자전거의 페달을 돌리는데 단련이 되셔서 그 분에게는 그 잔인한 언덕이 별거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사지 멀쩡한 제가 그분의 응원을 듣고 든 기분은 우월감, 안도감, 동정심 같은 기분은 아니었습니다. 
그 순간 만큼은 너무나도 위대한 분이 저에게 극복하라고 할 수 있다고 마음 담아 외쳐주신 점에 대한 감사함만이 저를 계속 뛰게 했습니다. 
다행히 30K 완주 후 가족들과의 아침식사에 늦지 않았고 최근 몇 주간의 30K중 가장 빠른 기록을 찍었습니다.

한 달여 남은 풀코스 대회에서 저는 목표했던 서브4를 못 이룰지도 모릅니다. 
어딘가에 쥐가 날지도 모르고 몸에 이상이 생긴다거나 부상을 입게 될지도 모릅니다. 
다만 힘들다는 이유로 완주를 못 했다는 핑계는 이제 댈 수 없을 거 같습니다. 
출발지의 총성에서, 마의 35K 구간에서, 골인지점에서 이름도, 배경도, 성격도 아무것도 모르는 토요일 아침의 어르신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 
저는 멈추지 못하는 위대한 응원을 받았습니다.

42.195km를 달리는건 여전히 인간이 할만한 짓은 아닌 거 같습니다. 그렇지만 참 한번쯤은 해 볼만한 짓 인 거 같습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고오스
23/09/25 11:02
수정 아이콘
등산, 마라톤 제대로 하시는 분들은 매너가 참 좋으시더라구요

귀한 응원 획득 축하드립니다 흐흐흐
23/09/25 11:06
수정 아이콘
울림이 큰 글 입니다.
감사해요.
대회도 좋은 결과 있기를!!
크림샴푸
23/09/25 11:08
수정 아이콘
발바닥을 타고나지 못해,
맞춤신발부터 나이키 줌플라이 / 베이퍼 플라이 등 1켤레에 30만원 넘는 신발도 투자해 보았지만...
무조건 물집이 발생하는 발바닥을 타고나서... 거기에 준평발까지...
일단 살려면 파스로 바닥 전체와 발목아래까지 감싸주고 뛰어야 온갖 통증과 후유증을 그나마 예방할 수 있어서리...

10km 완주 증명서 9개가 있지만 그 이상은 도저히.. 도전을 할수가 없네요..
연습도 오래하면 꼭 왕물집들이 왕창왕창 생기는데... 온몸의 어디는 굳은살 박히는걸 개극혐하는지라..

그래서 제일 잘할 수 있는 운동임에도 달리기는 포기...
수영만 하는 입장에서..

응원합니다. 하실 수 있습니다. 화이팅 입니다.
Lainworks
23/09/25 11:12
수정 아이콘
저도 8월부터 조깅 시작해서 이제 10km 뛰고 있습니다. 속도로 따지면 러닝은 아니고 그냥 조깅인데....내년까진 하프 뛰어보고 싶네요. 재밌습니다 뛰는게
교자만두
23/09/25 11:19
수정 아이콘
어제 10키로 완주를 대회에서 처음 하였는데, 참 기분좋더군요. 1시간 안으로 돌아오는것을 목표로했는데 간신히 59분!! 하프도 있었는데 하프 1등한 사람 보니까 말 그 자체... 달리기 아주 좋습니다.
무무보리둥둥아빠
23/09/25 11:44
수정 아이콘
문외한이라 일반적인 상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말로 멋진 문화?네요 흐흐흐
응원합니다!!!
만렙꿀벌
23/09/25 12:00
수정 아이콘
낭만... 울컥하네요.
HighlandPark
23/09/25 12:02
수정 아이콘
헉헉거리며 그만 멈추고 싶을때 지나가는 사람들이 외쳐주는 화이팅 한마디가 다시 다리를 움직이게 하죠. 준비 잘 하시고 화이팅입니다!
숨고르기
23/09/25 12:20
수정 아이콘
앞으로 인생의 고비마다 떠올릴 수 있는 귀한 경험 얻으셨네요. 참 부럽습니다.
척척석사
23/09/25 12:35
수정 아이콘
와 낭만 덜덜
23/09/25 13:30
수정 아이콘
장거리 달리기 하시는 분들은 다 대단한 거 같습니다
휴머니어
23/09/25 13:46
수정 아이콘
와우.. 대단하네요. 5킬로 완주도 쉽지 않던데 말입니다. 화이팅입니다.!
작고슬픈나무
23/09/25 13:46
수정 아이콘
멋지고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성공을 기원합니다.
MovingIsLiving
23/09/25 13:52
수정 아이콘
저도 JTBC 마라톤 준비 중이고, 어젯밤에 30k 달렸습니다. 서브4가 목표이지만 무사히 완주하면 그걸로 만족하려구요. 응원합니다!
김건희
23/09/25 14:07
수정 아이콘
작지만 응원합니다. 화이팅! 할 수 있다!
우주전쟁
23/09/25 14:23
수정 아이콘
저는 일단 내년 10K 목표입니다. 일주일에 3~4번씩 한번에 6킬로씩 뛰고 있습니다. 단 문제는 페이스가 거북이라는 것...ㅜㅜ
풀코스 꼭 서브4 달성하시길 바랍니다!!!
23/09/25 15:00
수정 아이콘
사람이란게 참 묘하죠

옆에서 그런 응원 한마디에 . 죽어가다가도 한스텝 더 밟을 힘이 난다는게

저도 달리기 시작해야되는데, 엄두를 못내고있습니다, 화이팅 !!
프라임에듀
23/09/25 15:17
수정 아이콘
제가 아는 코스라서 그런지
글에서 현장감이 느껴지네요.
저도 JTBC 풀코스 준비중입니다.
모두 파이팅입니다~!
리안드리
23/09/25 15:49
수정 아이콘
힘든 시기에 좋은 글이네요. 이 글이 저에겐 “파이팅. 할 수 있다”가 되었습니다.
페로몬아돌
23/09/25 16:33
수정 아이콘
다들 jtbc에서 만나유~
23/09/25 16:59
수정 아이콘
'그래도 사람은 패배하기 위해 창조된 것이 아니다.' - 노인과 바다 中'
김태발
23/09/25 17:08
수정 아이콘
다 할수 있습니다. 이번에 못하면 다음에 하면 되고요. 달리기란게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저도 첫 풀코스는 4시간 20분대, 두번째에는 3시간 40분대 기록했습니다.

사실 첫 레이스때는 가장 힘든 32-35키로 구간에서 한번 멈추니까 도저히 다시 달려지지를 않더라고요.

그래서 두번째 레이스때는 힘들면 속도를 줄이되 절대로 멈추지 말자를 목표 삼았더니 결국 해내더군요.
경험 많은 분들도 저 구간은 다 힘들어하시고 참아내면서 뛰는 방법 밖에 없다고 하더라고요. (당연한 소리만…)

꼭 목표하신 서브4 달성하시기 바라며 설령 못하시더라도 가을에 경치좋은 춘마 혹은 내년 3월 동아마라톤(이젠 서울 마라톤이던가요?) 때 또 뛰시면 됩니다.

파이팅입니다!!
김태발
23/09/25 17:12
수정 아이콘
꼭 강조드리고 싶은 말이라 덧글로도 한번 더 말씀드립니다.

절대로 러닝을 멈추지 마세요.

30키로 구간 넘어서서 달리기를 멈추면 허벅지가 내 의지대로 움직여주질 않습니다.
(아프다거나 힘들다거나 하는게 아니라 내 몸인데 내가 컨트롤 할 수가 없는....그런 느낌)

절대 멈추지 마세요~~~~ gogogo~
구르는너구리
23/09/25 17:57
수정 아이콘
벌써 30~35km 달려내고 계시다니, 목표달성 꼭 하실겁니다.
JTBC 대회 끝나고 마라토너로 한 단계 업글되어 있길!!
노래하는몽상가
23/09/25 19:00
수정 아이콘
저도 할줄 아는 유일한 운동이자 취미가 런닝인데
최근 마라톤 시즌이 다가오면서 글들이 많이 올라오네요 흐흐
다들 화이팅입니다
23/09/25 22:17
수정 아이콘
낭만이 살아있네요.
23/09/27 10:04
수정 아이콘
멋지십니다 제마 재미있게 완주하시길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9928 [일반] [팝송] 다니엘 슐츠 새 앨범 "Someone Send This To My Mom" 김치찌개5914 23/09/29 5914 1
99927 [일반] 이완용이 천하의 역적임에는 분명한데, 과연 구한말이 이완용이 없었으면이라는 질문은 잘 안 나옵니다. [94] petrus16413 23/09/29 16413 2
99926 [일반] 추석주 극장개봉 영화 후기 [22] 트럭11379 23/09/28 11379 14
99921 [일반] 북한 "불법 침입 미군병사 트래비스 킹 추방 결정" [55] 기찻길14533 23/09/27 14533 1
99918 [일반] [뻘글] 운동을 하면 오줌이 찐해지는가? [26] 사람되고싶다9706 23/09/27 9706 3
99916 [일반] 나름 단단하다고 믿었던 본인 멘탈이 깨진 이야기(feat 신앙) [72] SAS Tony Parker 15908 23/09/26 15908 40
99911 [일반] 메이드 카페에 다녀왔습니다 (오타쿠주의) [27] 토루10428 23/09/26 10428 30
99910 [일반] 뉴욕타임스 9. 8. & 6. 8. 일자 기사 번역(길고양이 문제) [8] 오후2시8915 23/09/25 8915 4
99906 [일반] 두번째 모발기부 후기 (어머나 운동본부) 긴머리 주의! [9] 사랑해 Ji6639 23/09/25 6639 24
99905 [일반] 서울 지하철 재승차 무료 15분!! [43] 똥진국12176 23/09/25 12176 38
99904 [일반] 위대한 응원을 받았습니다. [27] likepa11265 23/09/25 11265 88
99903 [일반] [2023여름] (스압) 활활타는 여름 미국여행 [18] 척척석사7918 23/09/25 7918 11
99902 [일반] [2023여름] 몽골 고비사막의 여름 (데이터 주의) [18] 유료도로당7198 23/09/25 7198 16
99901 [일반] <그란 투리스모> - 자극적이지만 맛있는 인스턴트의 맛. [2] aDayInTheLife7117 23/09/24 7117 0
99900 [일반] 그란 투리스모 후기 - 게임은 이용 당했습니다.(노 스포) [6] 43년신혼시작9034 23/09/24 9034 0
99898 [일반] 3개월의 짧았던 아빠 육아휴직을 마치며... [24] 비 평 = 이 백 만11488 23/09/23 11488 30
99897 [일반] 최고의 스마트폰 자판은 무엇인가? [157] 반대칭고양이21352 23/09/23 21352 143
99896 [일반] [2023여름] 신선계라 불리는 곳 [10] mumuban10821 23/09/22 10821 19
99893 [일반] (스포)너와 나 16~17권(기나긴 연중끝에 드디어 완결) [2] 그때가언제라도6972 23/09/22 6972 0
99892 [일반] 최근들어서 학생이 선생님을 때린다는 건 옛날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하는 부분이었습니다. [66] 애플댄스13487 23/09/22 13487 1
99891 [일반] [에세이] 싸움에 질 자신이 있다 [7] 두괴즐8188 23/09/22 8188 7
99890 [일반] [2023여름] 더우니까 일출이나 보러 갑시다...산으로? [17] yeomyung7157 23/09/22 7157 12
99888 [일반] 정크푸드만 먹던 사람의 이상지질혈증,당뇨 전 단계 해결 후기 [17] 기다리다11672 23/09/22 11672 14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