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스타크래프트, 물고 물리는 종족대결 공식은 없다
스타크래프트 종족간 상성이 무너지고 있다.
최근 프로게이머들의 성적을 보면 종족간 상성의 반대결과, 즉 ‘역상성’의 경향이 뚜렷하다. 원래 종족 상성은 ‘테란〈프로토스〈저그〈테란’으로 물고 물리는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상성상 유리한 종족이 6 대 4 정도의 승률을 기록하는 것이 보통. 하지만 최근 경기에서는 이런 상성이 5 대 5 또는 4 대 6으로 역전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대표적인 경우가 지난 온게임넷 ‘SO1 스타리그’의 16강전. 이들 16강 진출자들의 성적을 보면 ‘상성의 법칙’을 의심케 할 정도다. B조에서 테란인 이병민은 저그 이주영에게, 프로토스 박정석은 테란 이병민에게, 저그 이주영은 프로토스 박정석에게 각각 패배해 2승1패를 기록했다.
C조 역시 마찬가지. 테란 서지훈은 저그 변은종에게, 프로토스 박지호는 테란 서지훈에게, 저그 변은종은 프로토스 박지호에게 1패를 당했다. 2승1패로 D조 1위를 차지한 테란 최연성도 저그 김준영에게 패배했고 2위인 프로토스 오영종은 테란 최연성에게 역시 패배했다. 전체 게임의 70% 가까이 ‘역상성’으로 결과가 나온 것이다.
‘역상성’의 결과가 자주 나오는 이유에 대해 분석이 다양하다. 맵 제작시 종족의 유·불리를 최소화하다 보니 역상성의 결과가 나온다는 의견이 그중 하나. 이번 대회에서 사용중인 ‘네오 포르테 맵’은 전 대회에서 사용된 포르테 맵을 수정한 것이다. 본진 미네럴을 9개에서 10개로 늘려 프로토스와 테란에게 유리하도록 조정했고 러시거리를 줄여서 프로토스에게 대저그전 하드코어 질럿러시를 유도했다. 미네럴로 입구를 좁혀 멀티하기에 유리하도록 만들었다. 이런 맵의 수정 결과 승률이 3종족 모두 비슷하게 나오고 있다.
또 게이머들이 상성상 불리한 종족과의 대결에서 다양한 파해법을 연구하는 것도 일조했다. 테란과 프로토스의 상성은 이미 논란이 된 지 오래다. 최연성의 등장 이후 타이밍 러시를 통해 지상물량으로 프로토스를 압도하는 테란이 유행하면서 프로토스가 대응할 전략이 마땅치 않다는 불만이 팬들 사이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최근엔 또 ‘6마린+1벌처+1탱크’로 1차 러시를 감행한 후 더블커맨드 전략을 구사하는 이른바 ‘FD 테란’ 전술이 유행하면서 프로토스가 테란을 상대하기 더 까다로워졌다.
프로토스는 테란에게 당한 패배를 저그에게 앙갚음하는 상황이다. 강민이 완성시킨 ‘수비형 프로토스’ 전략이 유행하면서 저그들이 ‘알면서도 당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확장 이후 후반을 도모하는 ‘수비형 프로토스’와는 정반대로 극초반에 몰아치는 ‘하드코어 질럿러시’라는 강력한 전술이 있기 때문에 프로토스를 상대하는 저그들의 대응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하지만 저그는 대테란전에서 상대를 압도할 만한 전술이 없어 고민이 많다. 저그는 기본적으로 확장을 하며 양으로 승부하는 종족이기 때문에 초반 전략이 실패할 경우 중후반에 양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박성준의 허를 찌르는 공격전술과 박태민의 장기전 운영이 어우러지면서 한동안 ‘저그의 전성시대’를 구가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테란에 무릎을 꿇는 경우가 많다. 정상급 테란게이머들은 종족의 상성과 관계없이 상대를 압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17일 벌어진 SO1 스타리그 8강 진출자 결정을 위한 재경기를 보자. 재경기에 나선 B조와 C조 모두 공교롭게도 종족당 1명씩 살아남았다. 이날 벌어진 경기에서 테란-프로토스전은 ‘예상대로’ 전부 테란의 승리였고 프로토스-저그전 역시 ‘역상성의 결과’대로 프로토스가 이겼다. 하지만 저그-테란전에선 이주영이 이병민에게, 변은종은 서지훈에게 모두 패배하면서 8강 진출이 좌절됐다. 결국 16강에서 6명이던 저그는 박성준만이 8강에 진출했고 4명으로 가장 숫자가 적었던 테란은 4명 모두 조 1위로 8강에 진출하는 저력을 보였다. 프로토스는 5명중 3명이 8강에 진출해 선전했다는 평이다.
WCG 한국대표선발전과 ‘KOREA e스포츠 2005’ 때문에 연기돼 29일 열리는 ‘SO1 스타리그’ 8강 1차전에서도 역상성의 결과가 지속될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경기는 임요환 대 박정석. 2002년 스카이배 스타리그 결승전에서 맞붙었던 이들은 이후 준우승만 한차례씩 차지했을 뿐 우승컵을 안아보지 못하고 있다. 온게임넷에서 대테란전 33승19패를 기록중인 박정석의 미세한 우세가 점쳐지는 한판이지만 유일하게 3전 전승으로 8강에 진출한 임요환의 상승세도 무시할 수 없다.
괴물 최연성과 투신 박성준의 대결도 눈길을 뗄 수가 없다. 2004년 질레트 스타리그 4강전에서 박성준은 최연성을 꺾고 결승에 올라 박정석을 누르고 최초의 저그 우승을 기록한 바 있다. 온게임넷에서 최연성은 대저그전 12승6패, 박성준은 대테란전 27승18패로 상대 종족에 대해 압도적인 승률을 기록중이다. 임요환-홍진호 이후 최대 라이벌로 여겨지는 두 선수는 누가 이겨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접전이다.
이병민-박지호전, 서지훈-오영종전은 관록의 테란과 패기의 프로토스 대결이다. ‘질럿공장장’ 오영종과 ‘박지호 스피릿’ 박지호가 물량 테란을 상대로 어느 정도의 ‘질럿’을 선보이며 선전하느냐가 경기의 초점이다.
〈김준일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