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기획]흔들리는 e스포츠협회
e스포츠협회(회장 김신배)가 상설경기장 건립 문제로 궁지에 몰렸다. 그동안 e스포츠 발전을 위해 노력해온 관계자 및 전문가들이 대부분 협회에 등을 돌려버렸고, 문화관광부 조차 2기 e스포츠협회 발족을 위해 구성했던 ‘e스포츠 발전 포럼’을 재가동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4월 e스포츠를 정식 스포츠 종목으로 육성하자는 공감대 속에서 화려하게 출범했던 2기 e스포츠협회가 출범 7개월만에 ‘왕따’ 신세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e스포츠협회가 이같은 위기 상황을 맞게된 데는 출범 이후 최근까지 무려 7개월간 기대에 전혀 못미치는 답답한 운영을 해온 것이 근본 배경이 됐다. 2기 e스포츠협회는 사실 지난 7개월간 ‘개점 휴업’이라는 지적을 숱하게 받아왔지만 아직까지도 이사회 한번 개최한 적이 없다.
사업계획도 완성하지 못하고 그때 그때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에 여념이 없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불거진 상설경기장 건립 문제는 e스포츠협회를 궁지에 몰아 넣는 결정적인 빌미가 됐다.
e스포츠협회는 상설경기장 건립건을 철저하게 숨긴채 독단적으로 추진한 것. 협회는 이 사실을 계약 체결 전날 저녁에야 전화 메시지를 통해 공표했고, 이는 수많은 의혹을 불러 일으켰다.
결국 이같은 문제는 e스포츠협회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면서 대다수 관계자들로 하여금 e스포츠협회에 등을 돌리게 하고 말았다. 그러면서 그동안 e스포츠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대의를 위해 묻어두었던 각계의 불만이 한꺼번에 폭발하기 시작했다. “한마디 협의도 없이 뭐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 전용경기장 취지 무색케 하는 상설경기장
e스포츠협회의 하상헌국장은 상설경기장을 “당장은 전용경기장 건립이 어렵기 때문에 브릿지 형태로 운영할 임시 경기장”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경기장 건립을 위한 부지와 비용 등 모든 것을 현대역사측에서 부담키로 했다는 점을 들어 협회에서는 아무런 투자도 하지 않고 상설경기장을 마련할 수 있으니 좋은 일 아니냐”며 관계자들의 반응을 의아해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전용경기장 건설 취지는 물론 현재 e스포츠 대회가 어떻게 운영이 되고 있는지에 대해 전혀 모르는 문외한의 발상”이라고 꼬집고 있다. e스포츠협회가 덜컥 체결해 버린 상설경기장 건립 계약은 전용경기장 건립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어 버린 ‘사고’ 라는 것이 이들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e스포츠 전용경기장 건립은 e스포츠협회의 숙원 사업 가운데 하나로 지방자치단체의 행사를 흡수, 지역연고제를 시행해 나가기 위한 발판으로 검토됐다. 여기에 전용경기장 건설을 통해 대기업들의 투자와 참여를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경기장에서 발생하는 많은 이권을 활용해 협회 및 구단 지원을 위한 부대수익을 올리면 e스포츠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계산도 깔려 있었다.
사실 문화부도 이같은 방안이 e스포츠 대중화 및 위상 제고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판단, 이례적으로 70억원에 달하는 거금을 예산으로 책정하는 등 핵심 과제로 삼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협회가 계약을 체결한 상설경기장은 이같은 전용경기장의 취지를 하나도 살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집객과 방송 중계조차 불가능할 정도의 악조건이라는 평가다. 실제로 상설경기장 건립 부지로 결정된 용산 고속철 역사 내 아이파크 건물 옥상은 올라가는 길이 복잡할 뿐만 아니라 공간도 협소해 어느정도 규모의 경기장이 들어설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태다. 또 아직도 방송사와 방송 중계 방법 등에 대한 협의가 전혀 없다는 점도 실현 가능성을 희박하게 만들고 있다.
e스포츠협회는 12월 이후 치러지는 협회 주최의 모든 대회를 상설경기장에서 진행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협회 이사회 멤버이기도 한 방송사들과 주변 관계자들은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이들 관계자에 따르면 온게임넷과 MBC게임 등 양대 방송사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프로게임단들도 상설경기장에서 진행하는 행사에는 불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관련 e스포츠리그를 개최하고 있는 방송사의 고위 관계자는 “방송 중계는 전혀 고려치 않은 전시행정으로 보인다”며 “협회가 현안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문제만 더 꼬이게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 상설경기장 건립 계약을 두고 ‘성급한 판단에 따른 실수’라고 단언했다.
# 베일에 가려진 상설경기장 건립 배경
e스포츠 전용경기장은 많은 이권이 걸려있는 사업이다. 이에 따라 도대체 왜 협회 사무국이 훨씬 더 좋은 조건의 많은 후보지를 놔두고 최악의 조건인 아이파크 옥상을 선택했는지, 또 왜 지금 시점에 예정에도 없던 상설경기장을 서둘러 계약했는지 등을 둘러싸고 각종 의혹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이를 두고 한 관계자는 “협회 사무국이 어떤 이득을 챙겼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에 아무런 이권도 획득하지 않은 채 계약을 체결했다면 이는 협회 및 회원사들에게 큰 손실을 가져온 행위를 한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아무것도 드러난 것이 없는 상황에서 협회 사무국을 의심할 수는 없으나 엄청난 이권이 걸려 있는 전용경기장 관련 권리를 현대역사측에 고스란히 넘겨준 협회의 무능함을 꼬집고 싶다는 이야기다.
또 다른 관계자는 얼마전 WEG가 외국 초청선수의 비자 문제로 협회의 인증을 요청했을 때 협회에서 거액의 인증료를 요구한 사례를 들어 “협회 운영비를 확보하기 위해 국제대회 주최측에 인증료를 요구할 정도로 수익에 목말라 있는 협회가 정작 커다란 이권이 걸린 전용경기장 건립 건을 허술하게 처리했을리가 없을 것”이라며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협회 사무국은 상설경기장 건립 계약을 체결하고 난 이후로도 이와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는 여전히 함구하고 있어 이를 둘러싼 의혹은 아직도 베일에 가려져 있는 상황이다. 어쨌거나 이번 사건으로 인해 부회장사를 포함한 e스포츠협회 이사사들의 존재 이유는 사실상 없어졌고, 협회 사무국은 자청해서 ‘왕따’로 전락한 셈이 돼버렸다.
이같은 상황을 두고 한 관계자는 “2기 협회가 임기중에 전용경기장을 완공할 수 없다는 판단에 전용경기장은 포기하고, 단지 상설경기장을 마련하는 것으로 생색만 내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회장사의 애매한 입장을 비난하고 나섰다.
그는 특히 “회장에 출마할 때 밝혔던 그 많은 공약들 가운데 하나도 실천에 옮긴 것이 없는 김신배 회장이 이런 문제까지 야기시키는 것을 보면 더이상 믿을 수 없다”며 회장 퇴진론까지 들고 나와 파문이 예상된다.
# 암담한 협회, 돌파구는 없나
상황이 이처럼 급박하게 돌아가자 위기감을 느낀 협회 사무국은 뒤늦게 공청회를 열겠다고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지난 5월 개최하겠다고 약속했던 것을 차일 피일 미뤄온 공청회다. 그렇지만 이미 주변 분위기는 싸늘하게 식어 있는 상황이라 얼마만큼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e스포츠협회가 이같은 상황을 타개해 나가기 위해서는 뭔가 혁신적인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물론 이미 대부분의 e스포츠 관계자와 방송국을 비롯한 이사사들 및 프로게임단들의 관심이 식을 대로 식어버린 터라 지금에 와서 뭔가를 해보겠다고 나서는 것만으로는 분위기를 쉽게 반전시킬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관련 한 전문가는 “그동안 수없이 많은 의견을 개진하고 심지어는 필요한 핵심 사업을 정리해 브리핑까지 해줬음에도 협회에 압력을 가한다는 황당한 소리를 들어야 했다”며 “현 e스포츠협회 사무국에 e스포츠계의 현안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문제의 단초이기도 하지만 주변 의견을 수용할 줄 모르는 임원들의 태도가 더욱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주변의 반응을 종합해 보면 현재의 e스포츠협회는 암담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재로서는 e스포츠협회가 구태를 벗고 제자리를 찾아 e스포츠 발전을 위해 진정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으로 보인다.
물론 그 이전에 상설경기장 건립 배경 및 운영방안과, 새로운 경기장 건립을 통한 이권 사업을 둘러싼 모든 의혹을 한줌의 의구심도 없이 푸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김순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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