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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2/16 01:21:32
Name 클린에이드
Subject [분석] 두번째 흑과백 데스매치, 그리고 우스운 자 임요환
오늘의 데스매치는 워낙 손쉽게 끝나버려서 따로 더할 말도 없지만 예전 임요환의 초반 날빌과 심리전을 떠올리는 부분이 있어 몇 자 적어 봅니다.


1. 손자병법 - 전기와 위공의 경마시합

손빈이 제나라의 장군 전기에게 의탁해 지낼 때의 일이다. 전기는 제나라의 왕 위공과 마차 경주를 하곤 했다. 자신들이 가진 가장 좋은 말 세 마리를 뽑아 차례로 승부를 가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왕이 가진 말들이 조금이나마 좋은 기량을 가지고 있어 전기는 경주에서 매번 패했다. 이에 손빈은 전기를 위해 계책을 내놓는다. 위공의 상등마에는 전기의 하등마를, 중등마에는 상등마를, 하등마에는 중등마를 대결시키는 것. 이로써 전기는 첫 경주에서 패했지만 두 번째, 세 번째 경주에서 승리하며 처음으로 위공을 이겼다.


2. 흑과백 데스매치 2회전 - 유정현과 임요환의 판짜기 전략

유정현은 조유영과의 흑과백 데스매치를 재경기까지 가면서 자신의 안전지향적 플레이스타일을 정확히 보여주었습니다. 이전 데스매치에서의 두 플레이어, 유정현과 조유영의 게임방식은 정확히 똑같았습니다. 낮은 수부터 빼지만 점수를 최소한으로 주고, 후반으로 갈수록 높은 카드를 통해 차이를 따라잡는다. 따라서 첫판, 둘째판의 승패는 오히려 조유영이 한끗차로 이겼다 하더라도 상관없을 정도의 운에 좌우되었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임요환은 두 번의 흑과백 게임을 통하여 유정현의 판짜기 방식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맵을 알고, 상대의 플레이스타일을 아는 임요환은 우리가 아는 꼼수;;와 심리전의 황제다운 플레이를 했다고 봅니다.

흑과백 게임의 필승전략은 없습니다. 오로지 심리전이 좌우하는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 각자는 카드를 총 9번 제시할 수 있습니다. '상대의 하등마를 나의 중등마로, 중등마를 상등마로, 상등마를 하등마로 상대하겠다'는 임요환의 맞춤전략은 유효했습니다. 어차피 9번의 작은 판 중에서 더 많은 수를 이긴다면 그 게임을 승리로 이끌 수 있습니다. 초반에 승수를 쌓아갈수록 상대는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게 되어 있고, 그 심리전의 묘를 임요환이 정확히 살렸다고 봅니다.

유정현은 낮은 카드부터 빼내며 상대가 흑을 낼 때 흑, 백을 낼 때 백을 제시하며 비록 높은 확률로 지더라도 비길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고자 했지만 임요환은 한끗차로 계산을 비껴가며 자신의 전략을 성공시켰습니다. 3연벙 대신 4연카드로 유정현을 앞서갔고, 5번째 시도에서의 0 카드로 유정현의 6을 소모시킨 것 역시 계산을 벗어나진 못했습니다.

여기에서 작은 가정을 해본다면 어떨까요. 만약, 유정현이 단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허당;; 혹은 트롤이미지의 [임]이 아니라 과거 황제라 불렸던 '임요환'이라는 프로게이머의 플레이스타일에 대하여 조금의 배경 지식이라도 갖고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오늘과 같은 플레이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유정현이 똑같은 맵에서 이전과 똑같이 정형화된 전략을 사용하는 플레이어라면 임요환은 반드시 상대의 수를 예측하고, 꼼수와 날빌, 심리전을 더한 판짜기를 시도하는 플레이어였으니 말이지요.

여기에서 우리는 숨겨진 성지를 들춰보아야 할 때입니다. 9화 데스매치 흑과백에 대한 분석글에서 '다인'님을 비롯한 여러 유저들의 댓글을 읽어 보면 이런 게임에서 임요환이 발휘할 수 있는 진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임요환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분석] 9화 데스매치 마지막 선택이 아쉽다?! - 태연 님
https://cdn.pgr21.com./pb/pb.php?id=genius&no=1236&page=3


오늘의 임요환을 보고 다시 생각하는 것이지만, 역시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네요. 이기려고 온갖 수를 다 쓰던 임요환은 나이먹어도 임요환이네요.
실제로 프로게이머 시절의 임요환을 정확히 알고, 이전의 회차들을 지켜본 어떤 시청자가 그 자리에 서서 임요환과 게임을 했더라도 유정현과 조유영의 전략을 그대로 답습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흑과백 게임에서 카운팅보다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 상대가 언제 상등마, 중등마, 하등마를 낼 것이냐 하는 타이밍을 재는 심리전뿐입니다. 그러므로 일반인들도 이미 예측한 것을 흑과백이 나온 시점에서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유정현의 실수, 오늘 데스매치에서 이전의 수읽기를 그대로 사용한 나태한 플레이는 떨어질 만했다고 생각됩니다. 이번 흑과백 데스매치에서만큼은 임요환은 이길만 했고, 유정현은 질만했다고 봅니다. 유정현은 임요환과의 대전에서 맵이 같은 이상, 똑같은 전략을 함부로 두 번 사용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3. 우승자, 그리고 우스운 자.. - 전패우승, 혹은 전패준우승에 대하여

그나저나 임요환의 꼴이 참 우습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깽판, 트롤, 어리숙함으로 점철된 그의 플레이는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었습니다. 메인매치 전패;; 데스매치 2승으로 여기까지 올라왔긴 하지만, 지니어스에서는 이제 임요환이 우승을 하더라도 어리숙하게 당하다가 어떻게 기어올라가 전패우승을 한 우스운자, 준우승을 하더라도 메인매치 깽판치며 결승까지 올랐다가 결국 전패준우승을 한 우스운자가 되게 생겼네요. 어떻게 되든 오래 회자될 우스갯거리가 될 것이니 결국은 홍진호가 떨어진 이 마당에 임요환이 마지막까지 볼 거리를 제공해준다고 생각할 수 있겠네요.


인터넷에 흔히 도는.. '승리해도 병신, 패배해도 병신이 될 거라면 이왕이면 승리한 병신이 되라'는 말이 있지요.
지금까지 다들 욕하면서 보셨겠지만 결승까지 온 이상, 승부사 임요환을 보고 싶은 마음도 더 커지셨을 겁니다.
결승에서만큼은 화끈한 활약을 보여주며 우스운 이미지를 벗고, 우승자 자격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우스운자가 될 거라면 내친김에 '우승한 우스운 자' 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두달 간 암 걸린 가슴을 부여잡고 여기까지 온 이상 다음주까지는 본방사수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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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2/16 01:28
수정 아이콘
홍진호가 온게임넷에서 하는 비하인드에서 흑과백에서 승리한 유정현에게, 저건 잘못된 거다라고 계속 얘기하는걸 보고 깅가밍가했었는데,
아마 이 방송 촬영하고 나서 비하인드를 했던게 아닌가 싶네요. 왠지 데스매치 시작할 때부터 홍진호의 말이 복선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나저나 오랜만에 임요환의 집중하고 또, 압도하는 모습을 보니 좋네요.
클린에이드
14/02/16 02:02
수정 아이콘
그 눈빛을 좀 자주 보여줬으면 하는 기대는 너무 큰걸까요?
참... 여기까지 왔는데도 우스운 자라니..
태연­
14/02/16 01:29
수정 아이콘
엌.. 제글이 올라와있네요 크크 영광입니다
클린에이드
14/02/16 01:57
수정 아이콘
저도 이전에 저 글을 읽은터라 사실 데스매치가 '흑과백'으로 뜨는 순간 왠지 임요환이 이 전략을 사용할 것 같더군요.
임요환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는 확실히 크네요 허허
14/02/16 01:33
수정 아이콘
상대에 대한 표본분석이 이미 끝나서 확신은 미리 했겠지만 그래도 5~8 전략을 생각은 했어도 실행시키는건 쉽지 않을텐데 그걸 초반에 배짱으로 실행해버리니..... 조유영 유정현씨는 한번 서로의 전략을 겪고도 연장가서도 하던대로 신중하게 했었는데;;
클린에이드
14/02/16 02:00
수정 아이콘
앞에 4장의 카드 중 3승 이상을 거두지 못하면 그만큼 허무한 전략도 없지요..
유정현과 조유영의 매치는 답답하긴 해도 보는 아슬아슬하게 보는 재미는 있었는데, 역시 임요환에게 그런건 없군요.
4강전 3연벙이 괜히 나온게 아니죠 크크크
10년이 지났지만 게임하던 사람은 그대로네요.
열심히살자아자
14/02/16 04:36
수정 아이콘
크크크크
10년이 지났지만 게임하던 사람은 그대로네요.(2)

크크크 요환이형님 너무 좋습니다!!! 전패 우승이라 생각하지 않고
0우승 전게임 생존 이라고 생각합니다! 데스매치도 2번이나 갔다오고
14/02/16 06:11
수정 아이콘
글을 읽다가 제 아이디가 나와서 깜짝~~! 영광입니다. 흐흐
마술피리
14/02/16 19:12
수정 아이콘
저도 2주전에 이 작전을 지적했었는데요.
https://cdn.pgr21.com./pb/pb.php?id=genius&no=1202&page=5
임요환의 플레이는 유정현의 수를 읽고 있었다고 볼때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좀 실망스럽네요.
상대의 수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5,6,7,8의 도박수를 두었다는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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