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12/05/18 01:12:36
Name 눈시BBver.2
Subject [오늘] 5.18 (1)
                                                


"제가 내려가기 전까지는 남민전이나 학생이 주축이 된 데모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현지에서 보니까 그게 아닙니다. 160명을 연행했는데 16명이 학생이고 나머지는 다 일반 시민입니다. 그리고 데모 양상을 보니까 데모하는 사람들도 하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에게 주먹밥을 주고 또 사이다나 콜라를 갖다 주고 경찰에 밀리면 자기 집에 숨겨 주고 하는 것이 데모하는 사람과 시민들이 완전히 의기투합한 사태입니다." - 김재규

10.16 부마항쟁은 박정희 정권에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반대파 정치인들을 숙청할 때나 고만고만한 시위 진압하는 정도를 벗어났죠. 그건 유신의 주도자들에게 그대로 전해졌고, 김재규는 (속내야 어떻든) 거기서 받은 충격을 10.26의 가장 큰 이유로 얘기했습니다.

비록 이 부마항쟁이 4.19나 6월 항쟁처럼 박정희 정권을 끝장내지는 못 했습니다. 대신 박정희는 측근의 손에 죽었죠. 하지만 그 충격은 오히려 박정희와 그 뒤를 잇는 신군부에 더 강했을 겁니다.

왜 하필 광주였나... 여기에는 참 많은 악선전이 끼어들죠. 홍어니 전라디언이니 슨상님이니 하는 말을 동원하면서요. 광주 사람들이 김대중 광신도라서 그렇다, 그들이 더 과격했다로요. 여기에 하나 더 있죠. 북괴군이 개입한 것이었다요. 아마 그 이전의 사건들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1979. 10. '부마시위'를 진압한 뒤 보안사에서 작성한 작전 결과를 평가하는 [부마지역 학생소요사태 교훈]에 의하면, '시위 발생시 초동단계에서 강경하게 진압해야 된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진압작전과 관련하여 시사하는 점이 있다."

"이 보고서에는 출동부대가 '초동단계에 신속 진압. 군이 진압을 위해 투입되면 인명을 상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과감하고 무자비할 정도로 타격 데모대원의 간담을 서늘하게 함으로써 군대만 보면 겁이 나서 데모의 의지를 상실토록 위력을 보여야 함. (후략)"

- 12.12, 5.17, 5.18 사건 조사 결과 보고서 : 국방부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

과격함으로 따졌으면 부마항쟁도 그리 못지 않았습니다. 초반에 발생한 경찰 부상자만 95명이었고, 계엄군이 내려온 후에도 시위는 계속됐으니까요. 만약 시위의 과격함이 문제였다면, 물러나지 않는 게 문제였다면 부마에서 그런 참사가 벌어졌을 겁니다.


한 달 전인 4월 18일,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에서는 광부들이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합니다. 여기서도 광부들은 군경과 강력하게 대치하면서 사북읍을 장악합니다. 하지만 24일 양측의 합의 하에 파업이 종결됩니다.

5월 15일의 서울역 회군, 여기서는 시위를 주도한 운동권에서 먼저 물러납니다. 이 때도 과격함으로 따지면 그리 딸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군이 개입하기 전에 자진해산했죠.

광주에서는 서울역 회군에서처럼 군이 오기 전에 물러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부마항쟁이나 사북 사건에서처럼 군이 와도 딱히 물러나지 않은 경우가 있었죠.

여기에 "경상도 군인들이 잡으러 왔다"든지 하는 유언비어도 한 몫 하긴 했습니다. 이것이 시위의 과격함에 영향을 주긴 했겠지만, 그것도 다른 곳과 비교해서 더 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4.19 때라고, 부마에서라고 그런 유언비어가 없었을까요. 그런 유언비어는 최근의 시위에서도 계속 나오는 것인데요.

그 원인은 시위대가 아닌 진압군에서 찾아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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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부산-마산 소요사태 당시, 파견된 특전사 소속 장교와 사병들은 '머리를 박살낼' 준비가 되어 있었고, 그럴 의지도 있었다."

"가장 최근 원주에서 대기상태에 있었을 때의 태도에 대한 뚜렷한 변화가 있었다. (사북사태에서의) 광부들이 옳다는 의견들을 피력한 바 있다. 광부들의 임금인상 요구는 옳다는 것이였다. 학생 데모진압 활동에 대해서는 이와 다소 다른 견해이긴 하지만, 적극적인 자세는 아니다. 특전사가 학생들에 대한 발포 명령을 거부할 것으로 예상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런 요구들은, 특전사 내의 기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 기밀해제된 미 국무부 문서

부마항쟁 때 계엄군은 준비돼 있지 않았습니다. 박정희도 그 때까지는 강경 진압을 시도하지는 않았죠. 10.26 당시 차지철의 캄보디아 어쩌고 하는 것을 보면 "다시 한 번" 일이 터진다면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위의 '머리를 박살낼'이라는 말은 발포까지는 아니더라도 강경 진압을 뜻 하는 것이겠죠.

어찌됐든 박정희는 생각은 했더라도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혹은 못)은 채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잇는 신군부는 더 큰 부담감을 느꼈죠.



박정희는 앞으로 얼마나 더 커질지 모르는 시위에 "정권 유지"를 위해 싸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신군부는 "정권 창출"을 위해 싸워야 했죠. 자신들의 쿠데타가 집권으로 안전하게 이어지기 위해서는 국내의 안정이 필수였습니다. 여기에 이어진 사북 사건은 그 위기감을 부채질했을 겁니다.

"전 특전사 부대는 소요 사태 진압을 위한 집중 훈련을 받아왔다. 특히, 최루가스 (CS Gas) 사용훈련을 집중적으로 받아왔으며" - 미 해제된 기밀문서
"많은 공수부대원들은 1980 초반부터 이어진 충정훈련 시간이 많아졌으며, 부대에서 퇴근도 하지 못 한 채 계속 충정훈련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 군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

선택된 것은 한국군이 직접 움직일 수 있는 특수부대, 이들은 시위 진압훈련인 충정 훈련만 계속 받았습니다. 진압의 방식도 달랐죠.

+) 이하 미 기밀문서와 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는 출처를 표시하지 않겠습니다. 어투를 보면 짐작 가능하실 겁니다.

"우리 위원회와의 면담에서 광주 시내에서의 시위 진압에 투입된 한 공수부대원은 시위진압이 해산 위주가 아닌 체포 위주였기 때문에 과격진압이 발생했다고 진술했다."

"한국 육군은 전라도 출신 장교들을 폭동 진압임무를 위해 광주 지역으로 이동하도록 명령했다. 이 지역 출신 장교들이 더 성공적으로 데모를 진압할 것이며, 지역 유대감과 지역에 대한 지식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같은 말투를 사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 명령을 하달한 이유다. 이 명령은 일부의 반발을 샀지만, 큰 저항은 아니였으며, 대부분은 마지못해 명령에 복종했다."

"제606대대로 추정되는 1개 대대는 특수 훈련을 받았다. 이 부대 소속병력 모두가 머리를 기르고 있으며, 작업복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이 병력이 학교 구내에서 활용할 병력인지는 확실치 않다."

"이날 회의의 결론은, 개강 후 부분적인 저항운동은 예상되며 군의 토입을 요하는 사태 발생시 강경한 응징조치가 요망된다는 것이다."

신군부의 준비는 철저했습니다. 계속된 훈련으로 시위진압에 특화된 군인들을 양성하고 전라도에 전라도 군인들을 몰아넣었죠. 거기에 시위대 사이에 끼어서 뒷공작을 할 "머리를 기른" 병력도 준비합니다. 그리고, 시위대 해산이 아닌 마지막의 한 사람까지 체포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죠. 물론 그들의 명령 곳곳에 "불순분자와 일반 시민을 구별하라"든지 "적당히 체포하라"든지 하는 미사여구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이건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전두환은, 정부 조사관들에게 학생과 시민들이 군인을 구타하는 영상물을 찾아낼 것을 명령했다. 이 사진을 구하려는 계획은, 타임지나 뉴스위크지같은 외신 보도가, 저항하는 민간인에 대한 군인들 - 대부분이 특전사 병력 (Special Force)이 잔인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도한 것을 상쇄시키려는 의도이다. 그리고, 그러한 물증은 반정부 활동에 적극 가담하고 있는 사람들을 체포하는 데에도 이용할 수도 있다. ▒▒▒▒▒ (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해낸 것이 없다."

"친정부적으로 비쳐지거나, 광주 시민에 호의적이지 않게 보이기 위해 편집된 영상물을 구하려는 노력과 관련하여, 전두환은 주일 한국 대사관에 일본 TV에 방영된 영상물 VTR을 보내도록 지시했다. ▒▒▒▒▒▒▒▒. 일본 TV의 보도물은 전두환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다기보다는, 전체적으로 광주 사태에서 특전사 병력이 과잉대응했다는 것을 보다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될 것이다. 만약 전두환이 그 영상물의 일부라도 활용하고자 할때는, (그 필름에) 꽤 상당 부분에 손을 대야 할 것이다."

지워진 부분은 아직 기밀이 풀리지 않은 부분입니다. 저 안의 내용도 정말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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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는 이 정도면 자기들이 원한대로 "군인들을 무서워해" 시위가 끝날 거라 여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위를 주도하는 학생들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고, 오히려 과잉 진압을 똑똑히 지켜 본 광주 시민들의 참가가 늘어났죠. 시위도 과격해져 갑니다.

"(19일) 광주은행 앞에서는 대학생 200여명이 투석하며 대치했고, 같은 날 15:55에는 계엄군이 시위대에게 구타당하고 총기를 뺏기기도 했다."

"광주 시민들은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공사장의 인화물질로 불을 지르는 등 공수부대의 시위진압에 적극 저항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11:10 계엄군은 광주시 금남로 소재 광주관광호텔 앞에서 장갑차까지 동원해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장갑차의 등장이었죠. 그리고

"대검을 M16에 착검한 사례는 사진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중 도망가는 시위대원을 착검한 채 쫓아가는 사진 속의 주인공은 7공수여단 서00 중사임을 확인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 위원회의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면담조사를 거부했다."

진압봉(이 때 진압봉도 더 긴 신형이 보급됩니다)과 개머리판으로 때리는 것이 아닌, 총검을 꽂기 시작한 것이죠.

참고로 23일, 가슴에 자상을 입고 사망한 이가 있었습니다. 진압군이 여학생의 젖가슴을 잘랐다는 말이 유언비어인 것만은 아닌 것이죠.

"군인들의 데모 진압이 너무 가혹하여 주민들의 증오감이 너무 큰 것 같다" - 국방대학원 중령 김00
"최초 11 공수단이 군중들에게 몽둥이로 과격하게 때리고 군홧발로 밟아서 "전라도 새끼들 다 때려 죽인다"고 하여 자극받은 것이 크게 확대된 원인" - 5공병여단 중령 장00

20일, 강경 진압에도 시위 규모가 더욱 커지는 것에 대한 회의가 진행됐고, 공통적으로 과잉 진압과 유언비어를 문제 삼습니다. 이 때 뭔가 다른 목소리가 나왔다면 일은 더 커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윗선의 생각은 달랐죠.

당시 기갑학교장 준장 이구호는 21일 16:00 육군참모차장 황영시에게 전차를 동원하라는 전화를 받습니다. 정식지휘계통에 따라 명령하라는 그의 대답에 이렇게 말 했다고 하죠.

"이 자식, 전차포를 쏘면서 밀고 들어가면 되는 것 아니냐"

시민들은 강경진압에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신군부는 그런 시민들의 저항에도 물러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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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발포는 5월 19일 16:50, 고장난 장갑차가 시민들의 공격을 받아서였습니다. 장갑차에 불 붙은 짚단을 던지려 하자 작전장교 차00 대위가 M16을 발포한 것이었습니다.

첫 발포에도 시민들은 물러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규모는 더 커졌고, 차량을 동원하기 시작했죠. 20일 당일로 가 보겠습니다.

20일 18:40, 무등경기장부터 금남로까지 200여대의 택시와 버스가 차량 시위를 시작합니다. 이들은 도청으로 진군을 시작하죠.

21:05, 시위대 버스가 경찰저지선으로 돌진, 경찰 4명이 사망합니다.
21:50에는 광주역에서 3공수여단 정관철 중사가 시위대의 차량에 깔려 사망하죠.

이 때 3공수여단에 실탄이 지급됩니다.

같은 시각, 시민들은 광주 MBC 건물을 방화하고 시위를 계속했죠.

그리고 23:00이 옵니다.

"3공수여단 소속 하사 이00는 (중략) 작전 참모와 작전과 선임하사의 지휘 아래 지프와 트럭에 실탄을 싣고 전남대에서 광주역으로 지원 나갔으며, 그 과정에서 지원병력을 막아선 시위대를 향해 발포가 이루어졌다고 진술했다."

이 날 발포 및 진압으로 사망자 2명, 부상자 5명이 나옵니다. 3공수여단에서는 이를 "폭도들에 의한 공격에 의한 사망자"로 왜곡합니다. 그 외에 시위에 참가하지 않은 주민들의 신고가 있었지만 3공수여단의 상급부대인 전교사(전투교육사령부)나 31사단에서는 발포 경위를 파악하는 조치가 없었습니다.

사북 사건 당시 1군사령부는 투입될 예정이었던 11공수여단에 총기사용 원칙을 제시합니다. 거기서 총기 사용은 육군참모총장의 승인을 받는다는 방침이 분명히 있었죠.

이 발포 후, 2군사령부는 22:30에 작전지침을 추가하는데 거기에는 발포 금지와 실탄 통제부터 특전사를 20사단으로 교체하는 것을 검토하는 것가지 들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지침은 지켜지지 않습니다.

그 중심은 11 공수여단, 20일부터 21 새벽까지 11공수여단에는 실탄이 분배됩니다.

"이 같이 발포의 경우 육군참모총장의 승인을 받는 중요 사안임에도 광주에서의 실탄 분배와 발포는 공식적인 보고도 하지 않은 채 이루어졌고, 이후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았다. 오히려 관련자들 중 일부에게는 무공훈장이 주어졌다."

그렇게 21일이 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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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위원회는 발포를 비롯한 발포 명령 문서를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발포는 이루어졌습니다.

"현장에서 발포로 인한 인명살상이 행해졌음에도 이를 적극적으로 제지하는 지휘관이 없었다. 발포 장병들에 대한 문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현지에서는 물론 계엄사 단위에서도 이 발포를 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물지 않았습니다.

"이는 과격진압이 현장에 투입된 장병의 문제가 아니라 최소한 계엄사 당국의 암묵적 지원 아래 행해졌다고 추정케 하기에 충분하다."

발포를 명령한 사람은 없습니다. 마지막에 다시 얘기하겠지만, 그런 문서는 절대 찾을 수 없을 겁니다. 대신 다른 걸 찾을 수 있죠.

5월 21일 04:30 계엄사에서는 대책회의가 열립니다. 이 때 "자위권 발동"에 대한 것이었죠. 그 결론은 이랬습니다.


"전 각하 : 초병에 대해 난동시에 군인복무규율에 의거 자위권 발동 강조"

여기에는 그의 이름부터 수경사령관 노태우 등의 이름도 함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도 있죠.

"이에 대하여 계엄사령관 이희성 장군은 '도청이든 어디든 군인이 가서 보초를 서는데 무기를 뺏거나 생명을 위협할 때는 군인복무규율에 의하면 초병이 정당방위로 자위권을 자동적으로 행사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 광주의 상황이 그러한 정도라면 위의 경우가 적용되기 때문에 여기서 자위권 행사에 대해서 특별히 논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발언하고 거기 있는 모두가 그 말에 동의했다. 그리하여 계엄군의 자위권 행사 문제는 그 회의에서 자동적으로 결정됐다."

"19:30에 이희성 계엄사령관이 방송으로 자위권 보유를 천명하는 경고문을 발표했고, 20:30에 이희성 계엄사령관이 윤흥정 전교사령관에게 자위권 발동 및 실탄 분배를 지시했다."

이에 대한 전교사의 방침은 이랬습니다.

"31사단은 주로 부대에 접근하는 시위대에 대해 발포할 것인가를 검토했다. 그런데 이 때마다 31사단장은 상급부대인 전교사에 문의했고, 전교사령관은 번번이 이를 금지시켰다."

"(교도소에) 시위대 1000여명이 접근하자 31사단장은 문을 부술 경우 발포하라고 명령했으나 전교사령관은 이를 금지시켰다. 31사단장은 5.21. 18:00에 발포명령을 취소한 뒤 어떤 경우라도 허가 없이 발포하지 말고 탄약 장전도 금지하라고 명령했다."

그렇게 21일, 도청 앞에는 시위대와 공수여단이 대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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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0, 11여단과 7여단 35대대가 도청에 집결합니다.
08:00 전옥주씨 등이 묵념을 올리고 도지사와의 면담을 요구했죠.
09:00 아세아자동차 공장에 시위대가 진입해 장갑차 3대와 대형버스를 몰고 옵니다.
09:25 시민대표들이 장형태 도지사에게 "계엄군 투입, 무차별 구타에 대한 공개사과, 연행 학생 및 시민 석방, 금일 12:00까지 공수단 완전 철수"를 요구합니다.
10:00 시민측의 장갑차가 군 저지선으로 돌진, 공수부대는 최루탄을 쏘며 저지합니다. 공수부대는 뒤로 후퇴했고, 시위대를 막던 자들은 63대대 공수부대원과 교돼합니다. 그들은 실탄을 소지하고 있었습니다.

11:00 도지사는 헬기를 타고 공수부대가 12:00까지 철수할 것이라는 방송을 합니다.

하지만 계엄군은 철수하지 않았습니다. 시민측의 장갑차와 버스는 계속 전진했고, 계엄군은 계속 물러납니다.

13:00

군은 최루탄에 이어 공포탄을 난사합니다. 시민들은 일순간 흩어졌지만 공포탄인 것을 확인하고 다시 모여서 전진하죠.

시위대는 기갑학교 소속 장갑차에 화염병을 던졌고, 불 붙은 장갑차는 뒤로 후퇴합니다. 그 때 시위대의 장갑차가 돌진, 공수여단 63대대 소속 무전병 권용운 일병이 깔려 죽습니다.

발포는 이 때 시작됩니다.

장갑차를 뒤따라오던 버스에 10여명의 공수부대원들 발포를 시작, 운전사가 사망합니다. 이를 본 시위대는 차량을 동원해 돌진합니다. 그리고 이들을 맞이한 것은 집단 발포였습니다.


그 때 도청 앞에서는 애국가가 울려퍼지고 있었습니다.

+) 이것이 발포와 관련됐느냐는 의혹은 있지만, 당시 전남도청 내무국장이 상황을 진정시키려고 틀었다고 합니다.
* 信主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2-05-26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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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18 01:14
수정 아이콘
일단 추천부터...
쓰기 어려운 글임에도 이렇게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12/05/18 02:10
수정 아이콘
아.... 오늘이 그날이군요. 발포 관련해서 문서가 없다는 것도 참...
양정인
12/05/18 02:17
수정 아이콘
언제 올라오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2/05/18 16:51
수정 아이콘
글 감사합니다, 눈시BBver.2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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