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6/01/25 19:29:24
Name Forgotten_
Subject 컴파일러 없이 코딩하기
#1
적게나마, 돈을 받으면서 맵을 만들어온지 1년쯤 됐다. 그런데 항상 만들 때마다
무언가 익숙한 느낌이 든다. 이것과 비슷한 프로세스를, 전혀 게임과는 관련 없는
곳에서 하고 있다는 착각. 뭐랄까 데자뷰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고 할까. 대체 이
느낌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러다가 얼마 전에 그 정체를 깨달았다. 그건 다름아닌 내
전공에 있었다.

내 전공은 전기공학Electrical Engineering이지만, 시대가 시대인지라 납땜보다는
코딩을 더 많이 한다. 그런데 시간에 쫓겨 과제를 하다 보면 역시 듀가 코앞에 와
있는 경우가 많다. 밖에 나와 있는데 약속시간까지는 아직 남아 있고, 오늘 자정까지
숙제를 ftp로 제출해야 하는 상황. 이 때는 보통 가까운 PC방을 찾게 된다. 그리고
시작메뉴에 실행...을 눌러 notepad를 입력하고 엔터를 친다.

맵을 만드는 것은 이것과 놀랍도록 비슷한 상황이다. 컴파일러 없이 메모장만으로
코딩을 하는 상황. 분명히 이러이러한 의도를 가지고 프로그램을 신중히 짜지만,
문법에서 에러가 날 지, 아니면 또 엉뚱한 곳에서 에러가 날 지 전혀 알 수 없는
것이다. 맵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만들 때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 만들어도 버그가
튀어나오고, 아예 구조적인 문제로 밸런스가 무너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컴파일러가 주어진 상황에서 내가 프로그래밍을 잘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_-)


#2
귀맵 논란 덕분에 다행히(?) 좀 묻혀진 결승 5경기와 7경기. 어찌 보면 굉장히 억울한
일일 수 있다. 선수에게나 맵제작자에게나.

네오포르테. 어느 방향은 언덕에서 드라군과 러커가 앞마당을 타격할 수 있고, 어느
방향은 타격할 수 없다.
러시아워2 11시. 앞마당에 해처리를 펴고 입구를 방어하는 것이 다소 까다롭다.

포르테는 좌우 뿐만 아니라 상하로도 완전히 대칭인 맵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아래의
밸런스가 맞지 않으리라고는 제작단계에서 상상하기 힘들다. (어떻게 보면 언덕
모양을 좀 잘못 만들어 놓은 블리자드의 실수도 있다.)
기범군이 만든 러시아워는 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의
언덕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것만 있고 반대방향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몇인용맵을 만들던간에 한 스타팅은 입구가 다르게 나게 된다. (로템 8시나
개마고원의 5시, 815의 7시 등이 그러한 예이다.) 사실 맵제작의 능력이라는 것에 이
불리함을 어떻게 없애는가가 어느 정도 부분을 차지한다. 러시아워도 분명 여러 가지
대안이 있었고, 그나마 나아 보이는 방법 중 하나를 사용했다. (앞마당을 밑으로
내리고 입구를 위로 당기는 것도 한 가지 대안이나, 러쉬거리에 차이가 발생하게 되는
문제가 있다. 어떤 문제를 감수할 것인가는 어떻게 보면 가치판단의 문제이다.)

하는김에 신815 얘기를 해 보자. 815의 7시는 입구가 배럭스 하나로 막힌다. 이걸
방지할 수 있었는가? 사실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 가치판단의 결과이다.

1. 배럭스만으로 막히지 않도록 언덕을 깎았다면 언덕 밑에서 가스통을 타격한다.
2. 가스를 타격하지 못하도록 밑으로 내렸다면 가스수급률에 차이가 발생한다.

실제로 1과 2 모두 0.90~0.92b까지 있던 5번의 베타버전 중에 대안으로 나왔던 바가
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네오비프로스트의 7시가 그랬듯이, 그냥 저그의 경우
드론으로 확실한 방해를 하는 것이 그나마 최적인 것 같다.'라는 판단을 했고, 큰
후회는 없다. 어떻게 만들든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한다면, 어떤 것이 작은
문제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아예 문제를 없애는 것이 최적이지만.

또 어려운 것은, 버그가 발견되는게 참 늦다는 측면이다. 네오포르테의 경우 그
버그가 리포트 된 것은 네오버전에서이며, 러시아워 역시 그 문제가 불거져 나온 것은
두번째 시즌에 러시아워2로 버전업된 이후였다. 두 맵 모두 초기버전에서부터 이런
버그가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늦은 타이밍에 리포트가 되었다.

선수들과 맵제작자, 그리고 테스터들이 1시즌동안 붙잡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잘
몰랐던 버그들이 그 다음시즌에 발견된다. 컴파일러 없이 코딩을 하는 느낌은 바로
이런 것이다. 맵제작자들이 1~2시즌의 밀도에 해당하는 테스트를 어떤 방식으로 할 수
있을까. 어떤 대안이 있을까. 참 어려운 문제인데, 그래도 해결해야 한다. 공식맵
제작자니깐.


#3
종석이형이 맨날 하는 말이 있다.

'맵제작자랑 해설자는 아무 말도 안나올 때가 제일 잘하고 있는거야. 이 판이 원래
그래.'

원래 잘되면 선수탓, 안되면 맵제작자 탓이다. 어찌보면 그게 당연한거다. (비꼬는게
아니라 진심이다.)

뭐 그렇다. 에힝.






잘하자. :p





ps1. 내년 프로리그에 들어갈 신규 팀플맵을 만들다가 발가락 잘못 움직였다가 컴퓨터
전원이 나가서 약 1분간 좌절하고, 문득 생각나서 쓴 글입니다. 블로그에 올렸던
글이라 반말체입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ps2. 21일 교류전때 뵌 homy님, canoppy님, unipolar님, 박진호님 모두 반가웠습니다.
여러가지 의미에서, 항상 감사드립니다. 사실 이 말을 쓰고 싶어서 pgr에 이 글을
올립니다. :)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AttackDDang
06/02/05 18:16
수정 아이콘
맵돌이닷컴에서는 맨날봐요...... ^^;;
아케미
06/01/25 19:38
수정 아이콘
힘내세요! 파이팅! (……교류전 날 박진호님도 오셨었군요. 크흑.)
KuTaR조군
06/01/25 19:38
수정 아이콘
포가튼님 오랜만에 글 올리시는 것 같네요. 온게임넷 맵 제작팀에 들어가시더니 pgr방문이 뜸하신듯.. 이렇게 다시 글 보니 반갑습니다.
06/01/25 19:41
수정 아이콘
그 수고 덕분에 재미있는 게임을 보고 있습니다. ^^
맵은 이제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중 한가지가 되었습니다.
그만큼 공식맵 제작자 분들에게 거는 기대가 큰거죠
좋은글 .감사 ^^
06/01/25 19:48
수정 아이콘
열심히 하세요^^

그리고 궁금한 게 있는데, 오늘 아침에 스타무한도전을 보니까 유즈맵 지형에 엠겜 로고가 박혀있더라구요.... 그걸 이용해서 워3처럼 맵에다 스폰서 로고를 박을 수 없는지 알고 싶네요......

그리고, 언덕문제는...... 아래에서 위로 나가는 입구를 다른 프로그램으로 만들수 있지 않나요? 그런 프로그램이 있는줄로 아는데 ;
메딕아빠
06/01/25 19:55
수정 아이콘
하나의 프로그램을 만들면 ... 테스트를 합니다 ...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경우를 발생시켜 보면서 ...
화면은 제대로 나오는지 ... 데이터는 정상적으로 생성이 되는지 ...~~
이 정도면 되겠지... 라는 생각으로 오픈을 하면 ...
여지없이 ... 발생하는 문제점들 ...
덕분에 오늘도 이 시간까지 회사에 남아있네요 ...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 만들어도 버그가
튀어나오고, 아예 구조적인 문제로 밸런스가 무너지기도 한다는 ...
Forgotten_ 님의 말이 ...
이 밤에 저에게 위로가 되어 주는군요 ^^

호미님 말씀처럼 ... 맵 제작자들의 이런 수고 때문에 ...
우리가 게임을 더 재밌게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
때론 맵에 대한 불만이 쏟아져 나오지만 ...
그런 불만 모두가 게임에 대한 팬들의 애정이라 생각해 주시고 ...
더 멋진 맵 많이많이 만들어 주세요^^
엠케이
06/01/25 20:29
수정 아이콘
수고하십니다. ^^;;;
06/01/25 20:44
수정 아이콘
본문중에 "원래 잘되면 선수탓, 안되면 맵제작자 탓이다. 어찌보면 그게 당연한거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반면 맵제작자들의 노력에 스타크래프트의 다양성을 발견하고 또 선수들의 또다른 역량을 끌어낼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힘내세요~ 멋진 맵 기대하겠습니다.
김연우
06/01/25 21:03
수정 아이콘
서버관리자도 그렇고 골키퍼도 그렇고, 아무 말 없는게 제일이죠.

문제는 그렇다고 아무 논란 없이 잘 끌고 있어도 '저거 쉬운 일인데 돈 너무 많이 받는거 아냐?'라는 이상한 말까지-_-

제 별명이 메모장 없는 컴파일러라, 이상야릇한 느낌으로 글 재밌게 읽었습니다.
나도가끔은...
06/01/25 21:55
수정 아이콘
음...815맵에 7시 같은경우는 입구앞에 1칸짜리 중립건물같은 것
(예를들면 해골?)같은걸 만들어 놓으면 되지 않나요?
발업리버
06/01/25 22:12
수정 아이콘
속편... 디파일러 없이 버로우하기
06/01/25 23:56
수정 아이콘
전적으로 맵메이커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재미와 밸런스는 맵디자인하는 사람이 혼자 고민한다고 해결돼는 사항이 아니지요. 시간이 가면 갈수록 맵이 경기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크다 보니 충분한 검증과 연구를 같이해서 맵을 만들고 수정해야 하고.. 리그준비에서 얼마나 맵에 투자하고 있는지 몰라도... 지금 쏟는 투자의 몇배이상은 투자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상황에서는 질타보다는 오히려 맵을 만드는데 더 성원과 지원을 해줘야 할텐데요.
06/01/26 09:34
수정 아이콘
그렇지만 컴파일러의 검증이 없는 코드라면, 그 누구도 신뢰하려 하지는 않겠지요. 몇시즌 끝나면 그 가치를 드러내는 맵들이 반드시 나타나게 될겁니다^^
06/01/26 10:09
수정 아이콘
PgR에서는 오래만에 보는 글이라 꼼꼼하게 읽었어요.
왠지 모르게 걱정도 되고 그랬었는데, 이 글 보니 안심해도 될 것 같군요.^^
06/01/26 11:42
수정 아이콘
덕분에 멋진 경기들 보고 있습니다. 다음 시즌에 쓰일 팀플맵도 기대되는데요.^^
06/01/26 15:15
수정 아이콘
"컴파일러 없이 코딩하기" 정말 맞는 비유인거 같습니다.
My name is J
06/01/26 16:07
수정 아이콘
잘읽었습니다.
pgrbbs에서는 놓쳤던 글인데...이렇게 보게되니 더 즐겁네요.
성의준
06/01/26 16:45
수정 아이콘
본문보다는 추신에 더 마음이 가네요..
내년 팀플맵 기대해 봅니다 ^^
카르디아
06/01/26 17:10
수정 아이콘
사실 변수가 있기때문에 재밌는 겜이 나오지 않나 싶습니다 ~
까꿍러커
06/01/26 20:51
수정 아이콘
7시는 건물이 안지어지는 타일로 작게 입구 앞쪽을 깔면 되지 않나요?
06/01/27 08:06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좋은 맵 많이 만들어주세요 ^^;;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26 @@ 최연성 ... 그와 그의 게임에 대한 작은 글 ...! [55] 메딕아빠12600 06/02/02 12600
25 KTF 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프렌차이즈 스타 입니다. [19] 토스희망봉사12405 06/02/01 12405
24 TAPE -> CD -> MP3로 음악을 들으면서... [44] SEIJI10868 06/02/01 10868
23 스타크래프트 까페? 호프? [25] mchoo9491 06/01/31 9491
22 KeSPA 랭킹 과연 정당한가!? [63] 미라클신화12446 06/02/01 12446
21 [이벤트종료]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40] homy10708 06/01/31 10708
20 [스타 추리소설] <왜 그는 임요환부터...?> -50편(외전: 별에서 온 남자 강민) [23] unipolar12987 06/01/31 12987
19 수비형을 이기기는 어렵다... 게임내 규칙이 필요해 보인다. [66] mars12197 06/01/31 12197
17 전상욱선수가 보여준 신 815에서의 탱크 비비기 (실험 리플 첨부/저그토스추가) [37] eXtreme17013 06/01/28 17013
16 [영화 퀴즈] 즐거운 영화 퀴즈 20문제! 당신의 영화 내공을 알아봅시다! [19] 럭키잭11635 06/01/27 11635
15 '뽑기'를 했습니다. [23] 10844 06/01/27 10844
14 지휘자가 저그를 춤추게 한다. [13] 칼잡이발도제12412 06/01/27 12412
13 [호기심] 개띠 프로게이머들의 활약을 06년도에 기대해보자!!! [23] 워크초짜10464 06/01/27 10464
12 그들에게 재갈을 물려라. [24] 공방양민10542 06/01/26 10542
11 아무것도 아닌것에 우리는... [12] Ace of Base10009 06/01/25 10009
10 전투형 사이보그 TX90, 드디어 완성! (스포일러...?) [31] Blind15084 06/01/25 15084
9 컴파일러 없이 코딩하기 [21] Forgotten_10348 06/01/25 10348
8 프로게임단, 그 수를 줄이자... [48] paramita13101 06/01/25 13101
7 @@ PGR 내에서의 실명제 실시 ... 괜찮지 않을까요 ...? [90] 메딕아빠10181 06/01/24 10181
6 [yoRR의 토막수필.#16]구멍난 고무장갑에 손이 시려 행복한 이. [22] 윤여광9200 06/01/24 9200
5 프로토스 vs 테란전 해법에 대한 제언 [35] 칼잡이발도제13742 06/01/23 13742
4 나는 왕당파다. [69] 아키라12196 06/01/24 12196
2 왕의 남자, 영화관을 빠져나오는 그 순간까지도 심장을 뛰게 하는 영화. [42] ☆FlyingMarine☆15575 06/01/18 15575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