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들어가면서

윤석열에 대한 탄핵결정이 있었습니다. 맹자에서 이르기를, [인仁’을 해치는 자를 ‘적賊’이라 이르고 ‘의義’를 해치는 자를 ‘잔殘’이라 이르고, ‘잔적殘賊’한 사람을 일개 지아비인 ‘일부一夫’라 이릅니다. 일부인 주를 죽였다는 말은 들었으나, 임금을 시해하였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라고 하였는데요. 개인적으로 윤석열은 '잔적'에 불과하다 생각하기 때문에, 오늘 헌법재판소에서 윤의 대통령 임기를 끝내버린 것에 기쁘고, 또한 마땅하게 그랬어야 할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와 별개로,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중앙지방법원 소속 지귀연 판사가 내렸던, 윤석열에 대한 구속취소 결정만큼은 타당했다고 생각합니다. 윤이 예뻐서는 아닙니다. 자게에서 제 예전글을 찾아보신다면 제 성향에 대한 검증(?)은 충분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러한 제 입장에서 생각하기에도, 구속 취소 결정만큼은 사리에 맞는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 시기에 피쟐 정치글이 금지되어 있던 때라서 이 글을 올릴 수 없었습니다. 진즉에 적고, 피드백을 받아보고 싶었는데 말이지요. 선게 열린 김에 예전에 페이스북에 적어뒀던 글을 조금 다듬어 올려 봅니다.

이하, 아래의 글은 개인 페이스북에 적었던 것이기에 존대가 없습니다. 너그러이 보아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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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윤석열에 대한 구속취소 결정을 내린 것이 타당하다 생각한다. 오해는 없으면 싶다. 나는 여전히 윤석열이 내란 수괴라고 생각하고, 이 생각을 바꿀 여지는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귀연 판사의 구속취소 결정이 여전히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형사법 체제 하에서 형사법의 대원칙은 "의심스러울 때에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이다. 이 명제가 우선 나의 첫번째 대전제이다. 그리고, 국가권력에 의한 인신구속은 언제나, 가급적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고 믿는다. 이것이 두번째 대전제다. 그리고 나는 이 두 대전제를 전제로 하여, 구속취소 결정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문제가 된 것이... 중앙지법의 구속취소 결정에 있어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을 했을 때의 구속시간 산정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에 관한 형사소송법 201조의2 제7항에서는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피의자심문을 하는 경우 법원이 구속영장청구서ㆍ수사 관계 서류 및 증거물을 접수한 [날]부터 구속영장을 발부하여 검찰청에 반환한 [날]까지의 [기간]은 제202조 및 제203조의 적용에 있어서 그 구속기간에 산입하지 아니한다."

문제는 위 규정에서의 "날"부터 "날"까지의 "기간"이다. 종전 검찰의 실무관행과, 최근 검찰의 즉시항고 포기로 인하여 당분간 이어질 실무는 이러한 "날"을 기준으로 하는 만큼, 영장심사를 위하여 법원이 사건기록을 접수한 "날"부터 기록을 검찰에 반환한 "날"까지의 기간을 구속의 제한기간에서 빼겠다는 것이다. 즉, 2025. 3. 2. 00:01에 사건기록이 법원에 접수되든, 2025. 3. 2. 23:59에 사건기록이 접수되든 기록접수일은 2025. 3. 2.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법원에서 사건기록을 반환한 날이 2025. 3. 3. 23:59에 반환되든, 2025. 3. 3. 00:01에 반환되든 기록반환일은 2025. 3. 3. 이 된다.

이것이... 순서에 맞추어서 2025. 3. 2. 23:59에 사건기록이 접수되고 2025. 3. 3. 23:59에 기록이 반환되면 이익도 손해도 없다. 그런데 사건기록이 2025. 3. 2. 23:59에 접수되어 3. 3. 00:01에 반환된 경우(물론 이럴 일은 없겠지만)와, 사건기록이 2025. 3. 2. 00:01에 접수되어 3. 3. 23:59에 반환된 경우를 대조해 보면 뭔가 이상한 걸 느낄 수 있다. 어떤 이는 구속전 피의자 신문 때문에 단 2분이 소요되었는데 이틀을 더 구금되어야 하는 반면, 어떤 이는 구속전 피의자 신문 때문에 47시간 58분을 소요하고서도 이틀이 더 구금되는 것이다. 이게 맞는 건가???

물론 이건 극단적인 예이기 때문에 실무적으로 이렇게 처리될 일이 없기는 하다. 그러나 재판부의 사정에 따라, 내지는 검찰이나 법원 소속 공무원 개개인의 일처리 속도에 따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이라는 [필요적인 절차], 그것도 [피의자의 이익을 위한 제도]가... 경우에 따라 피의자에게 불이익하게 적용되는 사례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2.

또한 문제는 체포적부심의 경우에도 구속기간에 불산입하는 규정이 있는지 여부다. 형사소송법 214조의 2 제13항은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법원이 수사 관계 서류와 증거물을 접수한 때부터 결정 후 검찰청에 반환된 때까지의 기간은 제200조의2제5항(제213조의2에 따라 준용되는 경우를 포함한다) 및 제200조의4제1항을 적용할 때 - 체포의 48시간 제한의 예외 - 에는 그 제한기간에 산입하지 아니하고, 제202조ㆍ제203조 및 제205조를 적용할 때 - 구속기간의 예외 - 에는 그 구속기간에 산입하지 아니한다."

이게 무슨 의미이냐면, 체포-구속을 거친 피의자가 구속기간 중에 체포적부심을 청구한 경우에도 "체포적부심에 소요된 시간을 구속기간의 제한(원칙적으로 10일)의 예외적인 연장사유로 볼 수 있는지"의 여부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3.

이러한 이유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는 윤석열의 구속취소 결정을 명하였고, 나는 이것이 - 윤석열이 내란 우두머리 내지 수괴임은 분명함에도 - 타당한 결정이라 생각한다. 형사법의 대원칙상 '의심스러울 때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형사법이 적용되는 것이 마땅하고, 국가권력에 의한 인신구속의 여지는 최대한 줄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른, 죽어 마땅할 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법의 적용이 달라져서는 안 될 일이라 믿는다. 원칙은 지켜져야 마땅하다. 저러한 이들에게도 엄정하게 법의 형평이 지켜져야만 나의 권리 역시 보호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는, 법원 내지 판사 개인에게 삿대질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진짜 문제는, 그간의 '관행(?)'이 법원으로부터 부정당했을 때, 자신들은 법조문에 상응하게 실무를 처리하여 왔다는 검찰의 항변이 없었다는 점이다. 검찰은 누가 봐도 명백한 무죄 사건 내지 그에 준하는 사건의 1심 판결이 있을 때 기계적으로 항소해왔던 집단이었다. 그런데 유독 윤석열의 구속취소 결정에 대하여는 이의제기를 포기했었다. 좋다. 뭐 거기까진 그려려니 하는데, 윤석열 외의 다른 피고인 내지 피의자에 대하여는 법원의 위와 같은 결정이 있을 경우 이의제기를 하겠다고 한다. 이게 말이냐 막걸리냐. [이의제기를 할 것이었다면 윤석열 사건에서도 이의제기를 했어야 했고, 윤석열 사건에서 이의제기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면 향후의 비슷한 경우에도 이의제기를 포기하는 것이 일관성있는 자세 아닌가.] 그런데 검찰은 그러한 일관성은 개나 주라는 듯이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4.

아무래도 변호사로서 일한 기간이 있는 만큼, 나는 아무래도 검찰에 적대적인 스탠스를 가질 수 밖에 없기는 하다. 그러나 그러한 점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검찰의 "일관성 없는 태도" 만큼은 까여 마땅하지 않나 생각한다. 서울중앙지법 지귀연 판사의 결정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결정, 내지 피의자 또는 피고인의 인권보호를 위한 결정이라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피고인 내지 피의자에 따라 법원에 이의제기를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고" 하는 식의 줏대없는 결정을 내린 대검찰청은 까여 마땅하다 생각한다. 검찰개혁의 구호가 구호로 그칠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전면적으로 뒤엎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막말로, 윤석열이 아니었어도 검찰이 즉시항고를 포기했겠느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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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우려

구속취소 결정을 내렸던 지귀연 판사의 경우, 딱 저에게만 안면 정도는 있지만, 아마 그 판사님은 저를 기억도 못하고 있을 겁니다. 왜냐고요? 그 분이야 워낙 이름이 특이하셔서 한 번 통성명 후에 별다른 교류가 없어도 기억할 수 있는 선배였는데요. 수십년 간 교류도 없었고, 연락조차 해 본 적 없습니다. 사적 친분 때문에 이런 글을 적는 것이 아닙니다.

지귀연 판사의 구속취소 결정이 정말 법으로 밥 먹고 사는 사람 보기에 부당한가.. 라고 물으신다면, 저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답하고 싶습니다. 오히려, [잔적] 윤석열을 계기로 하여, 다른 갑남을녀 역시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어야 마땅한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욕을 먹어 마땅한 것은 즉시항고를 포기한 검찰이라 생각합니다. 고등법원 판례, 나아가 대법원 판례까지 나아가서 일관된 기준을 만들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다른 평범한 서민들에게도 이런 잣대가 적용될 수 있는지에 관한 대법원의 일관된 기준을 제시할 기회를.......... 검찰이 직접 자기 손으로 그런 기회를 포기한 것이거든요.

때문에, 윤석열 같은 [잔적]이 아니고서는, 검찰이 자기 멋대로 이전처럼 피의자 내지 피고인의 구속기간에 관하여 [관행]이라는 이름 하에 구속기간을 제어하는 것이 여전히 유지되게 생겼습니다. 검찰이 봐 주고 싶은 피의자라면 즉시항고를 포기하고, 힘 없고 빽 없는 사람에게는 즉시항고를 하겠죠. 과연 이것이 타당한지, 저는 의문입니다.

이에 저는, 오늘 [잔적] 윤석열의 파면결정은 환영합니다. 그러나, 법원이 제시한 이런 의문이 묻혀버리지 않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