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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6/08/24 21:02:43
Name 윤여광
Subject [yoRR의 토막수필.#25]꿈의 대화.

[BGM]
[Motherland...Instrumental Ver.]
[강철의 연금술사 3기 ED Theme]


  관심 받고 싶다. 주목 받고 싶다. 나는 겉으로는 꽤나 내성적으로 행동하면서 속으로는 은근히 나서고 싶어하는 소심한 녀석이다. 예를 들자면 초등학생 시절 반장 부반장을 뽑으려 후보를 추천하라는 말에 누군가 나를 추천해 주지 않을까 내가 직접 나서긴 많이 창피한데.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아무도 나를 후보로 생각하지 않는다 싶으면 어떨 때는 옆에 앉아 있는 짝에게 슬쩍 네가 나가보지 그래? 하면서 장난스럽게 그 친구를 후보로 추천한다. 그러면 옆에 앉아 있는 내 짝은 그것에 광분(?)하며 맞대응으로 나를 후보로 추천하는 것이다. 짝이야 후보 연설하는 자리에서 저 자식이 시켜서 끌려나왔을 뿐 이런 간단한 말을 남기고 얼굴을 붉히고 자리로 돌아오긴 하지만. 나는 조금 달랐다. 마치 준비라도 하고 있었던 마냥 줄줄 말을 늘어놓는다. 물론 얼토당토 않는 헛소리. 남들이 보기에 저 자식 하고 싶으면 알아서 지원할 것이지 꼭 남의 손 빌려서 나오려 하네 하는 속내 뻔히 보이는 방식으로 말이다. 나는 그런 녀석이다. 사람과 사귀는 방식을 잘 몰랐고 어떻게 유지시켜 나가야 하는지 잘 몰라 그런 유치한 방식으로라도 남들과 가까워지고 싶어했다.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


  아직도 많이 어설프고 힘들긴 마찬가지다. 누군가와 친해진다는 일은. 말로는 낯을 가리지 않는다고 하긴 하지만 분명 생각해보면 내 행동에서는 처음 보는 이에 대한 경계심이 아주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가령 식당에 들어가 앉았을 때 보통이라면 주머속 물건들을 테이블에 올려두기 마련이지만 만일 그 자리에 나와 초면인 사람이 끼어 있다면 절대로 내 개인 소지품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지 않는다. 특히 라이터. 이 놈의 라이터는 집에 들어오면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물건이긴 한데 한 번 나가면 아차 싶으면 주머니 속 아까운 300원을 낭비하기 일쑤다. 혹여나 술이라도 마시러 간다면 그 때는 담배와 라이터는 내 주머니 속에서 절대 나오는 법이 없다. 핸드폰도 마찬가지. 혹여나 전화 통화라도 쓰겠다 빌려달라하면 주기야 하지만 찝찝한 기분은 지울 수가 없다. 핸드폰 요금이 걱정되서가 아니라 내 물건에 남의 손길이 타는 것이 싫어서이다. 내가 남에게 빌려주는 물건이 기계일수록 특히 더더욱 신경이 쓰인다. 손수건이나 안경닦이 이런 류의 물건이야 상관하지 않지만 휴대용 전자 기기의 경우엔 내 손에 다시 돌아오기 까지 절대 옆에서 떨어지지 않고 어떻게 쓰는지 유심히 살펴본다. 그러다 혹여나 상처라도 생길 행동을 하려 하면 바로 나서 이렇게 하시면 되요 하며 친절의 가면을 쓴 소심의 극치를 보여주곤 한다. 왜 이렇게 내 물건에 집착하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인지 내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부담없이 만나서 깔깔대고 놀기 좋은 즉 심하게 빈정대는 말로 하자면 만만한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다. 물론 첫 인상이야 견적이 견적인 만큼 꽤나 무섭다고는 하지만 막상 알고보면 그게 아니더랜다. 참 고마운 애기다. 물론 그 말들이 내가 하는 것처럼 친절의 가면을 쓴 소심의 일종일수도 있지만 친구라고 믿고 있는 사이에 그렇게 까지 한심한 짓거리는 서로들 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적어도 우리는 지금까지의 시간을 그렇게 채워왔으니 빈 말이든 있는 말이든 일단은 믿고 봐야한다고 철썩 같이 생각한다. 단순한 사람이 꽤나 복잡하게 굴으려니 이거 정말 힘들다.


  나는 박자를 잘 맞추질 못한다. 남이 뭐라고 말을 하면 그에 맞는-보통 무난하게들 답하는-대답은 제쳐두고 꼭 있는 그대로 생각을 털어놓아 주변 사람들을 놀래키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자면 한 껏 예쁘게 꾸미고 수업에 들어온 여선생을 보며 반 친구들이 애인 만나러 가는 것 아니냐며 웅성대는 것을 어떻게든 정리해보려 애인은 있지도 않고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과의 약속이 있어 부득이 하게 차림새가 이렇다 설명을 하면

“이거나 그거나. 갈군다고 화내진 마시고요. 화내면 그 두꺼운 화장들 다 벗겨집니다.”

  하는. 어찌보면 귓방맹이 한 대 맞아도 할 말 없는 무례한 발언이긴 하지만 워낙에 당당한 태도에 선생들은 그저 얼굴만 붉히며 수업을 진행하곤 했다. 이 레파토리로 수업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갉아 먹어 보려던 친구들은 나를 꽤 원망스러운 눈치로 쳐다보곤 했다. 보통 그런 시간은 그 뒤로 단 한 번의 잡담없이 종강 종이 울릴때까지 쉬지도 않고 빡빡하게 진도를 나가게 되므로. 그래도 그다지 웃기지도 않는 남의 장단에 맞춰 손을 맞추자니 차라리 내가 하고 싶은 말 한 마디라도 더 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내 심정이었다. 이제 와서는 그런 성질머리도 많이 죽긴 했지만 아직도 옆에서 누가 뭐라면 바로 받아치고 싶어 근질거리는 속내 때문에 힘들다. 나는 여러모로 다루기 힘든 사람이다.


  새벽 5시. 출근길에 아직 물러가지 않은 잠을 깨려 애쓰는 거친 걸음으로 숙소에서 공장까지 5분거리. 그 길에 나는 세 사람을 만난다. 한 사람은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초등학교에서 조기 축구를 위해 축구화를 신은 채 헐레벌떡 달려오는 배 나온 40대 중년. 이 분과는 별로 얘기 해 본적이 없다. 이야기 할 틈이 없다. 나를 본체만체 뛰어가는 그를 붙잡고 무슨 말을 하겠는가. 최소한 공격수인지 수비수인지나 알아야 어떻게 잘 하라고 말이라도 할텐데. 중앙 수비수를 보고 있을지도 모를 그에게 해트 트릭하세요 이럴 수는 없지 않은가. 잘못 들으면 자살골로 해트 트릭이라도 하라는 줄 알지도 모르겠다. 그를 지나쳐 한 블록 지나치면 장사를 마치고 가게 문을 닫는 막걸리집 사장님과 마주친다. 처음엔 그냥 지나치다 토요일에 몇 번 공장 일꾼들이 몰려가 한 잔 하고 나온 뒤로는 인사정도는 하는 사이가 되버렸다. 언제 한 번 더 마시러 갈게요 하면 그 사람은 그저 오시라는 말 뿐이다. 언제나 같은 말 같은 대답. 뭐 나이차도 많이 나기도 하고 서로 이렇다 할 관계도 아니니 친해질 구실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굳어져버린 사이. 막걸리집 사장님은 나에게 그런 사람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게 되는 사람은 폐종이 수거를 위해 리어카를 끌고 힘들게 걸음하시는 노부부. 그 분들이 그 시간대에 항상 우리 가게 앞을 지난다는 것을 알고 난 뒤엔 어떤 때에는 출근 시간에 지각하는 것 보다 그 분들이 먼저 지나치실까 걸음이 빨라지기도 한다.

“어이쿠. 오셨어요? 제가 오늘은 좀 늦었죠.”
“아녀아녀. 자네가 미안할게 뭐여. 어여 들어가 밀가루질 해야지.”

  나는 분명 그 분들께 사과를 하고 있는 것이다. 괜시리 박스 하나라도 들어드리고 싶은 마음에 어쩌다 1-2분이라도 늦게 되면 그 자리에서 바로 무안한 듯 얼굴을 붉히고 서둘러 몸을 놀리는 나였다. 지나쳐 온 두 사람과 같이 아무 상관 하지 않고 지나치면 그만인 사람들이건만 나는 왜인지 그 분들 앞에선 걸음이 멈춘다. 왜?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주변의 사람들을 이런 식으로 정리하곤 한다. 조기 축구를 위해 급하게 뛰어가는 중년처럼 뭐라고 말을 붙이고는 싶지만 어떻게 말을 해야할지 몰라 매번 지나치는 사람. 하지만 언제나 눈길이 가게 되는 사람. 그리고 막걸리집 사장님처럼 뭐라 말 할 것 없이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마주치면서도 아무런 변화 없이 같은 말만 하게 되는 사람. 내가 어떻게 해 볼 사이도 없이 굳어져 버린 관계에 아쉽지만 그렇다고 늦었지만 노력하여 더 가까운 사이가 되보자는 소소한 노력조차 할 생각이 들지 않는 형식적인 관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라만 봐도 손길이 먼저 가게 되는 사람. 나에게 아무런 보답이 돌아오지 않더라도 도움을 주게 되는 것이 더 즐겁게 해주는 사람. 해줄 것이 없다며 미안한 듯 웃는 미소가 너무나 아름다운 사람.


  아직도 사람을 대하는 일이 어려운 내 주변에는 조기축구를 위해 아침을 달리는 중년 같은 이들이 많다. 물론 사장님도 많이 계시고 노부부분들도 계시긴 하지만. 그래서 가슴이 설렌다. 내가 아직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알아갈 수 있는 기회가 남아있는 일이 매일 새롭다. 아직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 조차 가까이 두지 못하는 소인배가 말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닌 듯 하지만 적어도 꿈은 꿀 수 있는 일 아닐까. 꿈만큼은 이 세상에 어떠한 책임도 따르지 않는 나 혼자만이 갖는 유일한 자유. 나는 그것을 마음껏 활용할 작정이다.


  나를 둘러싼 대기권 밖에서 들어오지 못해 어쩔 줄 모르는 수 많은 별들을 매일 바라보며. 나는 매일 내 속내를 좀 더 크게 만들기 위한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물론 진행 속도야 복날 유명한 삼계탕집에 들러 드디어 시원한 국물 한 숫갈을 들기 까지의 시간만큼이나 더디지만. 그래도 항상 노력하며 살고 있다. 어쩌면 내가 이렇게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노력하고 있는 삶을 강조하려는 이유는 마치 반장이 되고 싶어 안절부절 못하다 짝궁에게 장난을 걸며 어떻게든 그것이 되어보려 애쓰던 어린 시절의 우스운 장난같은 일인 듯 하다.


  그런 식으로. 나는 내 주변을 둘러싼 나만의 대기권 밖에 있는 이들에게 나에게 오라며 손짓하고 있는 듯 하다. 꿈에서라도 당신과 이야기 할 수 있기를. 그런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오늘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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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name is J
06/08/24 21:17
수정 아이콘
이런 글을 보면
'친해져 볼까요?'라는 자의식과잉의 반응을 하고 싶어지지요. (너한테 하는 이야기가 아니잖아! 퍼억=)
하지만 흥미위주의 접근은 안하느니만 못한법!(아아 물론 하는 쪽에서는 즐겁지만.)
고로....여전히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인연을 기다리는 로맨티스트-라고 우겨버리는 겝니다! 으하하하=-(으응?)
루크레티아
06/08/24 21:27
수정 아이콘
토막수필 읽어본 것 중에서 가장 공감가네요.
딱 제 모습하고 오버랩이 되면서 말이죠..^^;;

받아 치는거 정말...성격이 그렇다 보니 참 힘들더군요 참기도 하는건...친구들의 여자친구 앞에서도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 꺼내다가 커플이 분위기 싸해지고...그래서 말을 아끼려고 하면 만나러 나가는 자리 자체가 부담스러워지고..저 같이 말을 자기도 모르게 툭툭 던지는 스타일이 살기 참 힘든 세상입니다. 꿈속에서나 마음놓고 말할 수 있을까요. ^^
사랑과우동
06/08/24 21:35
수정 아이콘
재밌네요 흐흐~
06/08/24 22:10
수정 아이콘
Good~
06/08/25 01:54
수정 아이콘
요즘 여광님 글을 자주 볼수 있어서 좋아요 ^^
사탕군
06/08/25 09:13
수정 아이콘
수필이~~~ 수필다워야~~ 수필이지!!!
좋은글 읽고 좋은 생각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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