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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4/05 07:24:26
Name 필리온
Subject [LOL] 응원팀을 계속 응원하고 싶다.

한번쯤 쓰고 싶었던 글인데 게시판도 좀 식혀볼 겸 써봅니다~

1.
나는 삼성 라이온즈의 팬이다.
왜 삼성의 팬이냐고? 잘 모르겠다. 하지만 보통 잘 모르시지 않나.
굳이 따져보면 어릴 때부터 아버지 손에 이끌려 야구장을 다닌 세뇌 효과 같기도 하고.
아니면 신인 시절부터 지켜봐온, 지금은 은퇴한 양준혁과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는 이승엽, 부활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배영수.. 등등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말하다 보니, 몇몇 선수들을 좋아하게 되면서 보너스로 애증이 생겨버린 다른 모든 삼성 선수들 때문 같기도 하고.



2.
LOL을 "보는" 유저가 된 계기는, 같은 입장인 분들이 제법 있겠지만 인벤대회 결승전이다.
당시 LOL의 팀들의 수준을 정확히 몰랐지만, "카페 올스타" 팀이 잘할 것 같진 않았다. 이름만 들어도 뭔가 급조된 느낌이 풀풀 풍기는 게... 4강전인 ACE와 MIG의 대결이 사실상 결승전이라고 소개될 정도였으니 세간의 평가도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모두의 예상대로 Locodoco is dominating! 2:0으로 게임은 흘러갔고, 그렇게 끝날 줄 알았다.
뭔가 심심하군, 롤은 역시 보는 게 아니라 하는 거지.. 하고 생각할 때쯤 시작된 3경기.
3경기는 이전 경기보다 더 절망적이었다.

픽을 지금 보면... 아름답다. 미드 잔나, 서폿 소라카, 정글 마이, 탑 트린다미어, 원딜 애쉬. 당시 기준에도 썩 노말한 픽은 아니었다. 결국 이 조합이 승리를 가져오긴 했지만.
어쨌든 초반부터 카페팀은 고생한다. 탑을 맡은 트린다미어, 비닐캣은 매라와 로코의 라인 스왑으로 거의 10분 가까이 cs 0을 벗어나지 못한다.
지금은 흔한 광경이지만 당시에는 보기 힘든, 5분만에 2차 타워까지 밀린 탑 라인.
결과가 불보듯 뻔하다고 모두들 생각했다. 나도 그랬고.
디나이를 당하던 트린다미어가 재접속을 시도하자 해설진이 비닐캣 선수의 탈주로 인한 방송 사고를 우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기가 정말 묘하게 흘러가면서 정글을 맡은 웹툰, 마이 선수의 미칠 듯한 백도어와 결국 어찌어찌 성장한 트린다미어의 힘, 그리고 퀸 애쉬 조합의 서포트를 받은 잭선장의 캐리!
결국 카페팀은 지독하게 힘들었던 3경기를 역전해낸다.
대부분의 반응은 그나마 한 경기라도 잡아서 다행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나도 그랬고.

그러나 문제의 4경기.
역시나 초반 상황은 카페팀이 불리하게 흘러갔다. 하지만 잭선장의 애쉬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명장면을 여러 차례 만들어내면서, 경기는 제대로 비벼진다.
개인적으로 당시 MIG는 이 경기를 잡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중간중간 잭선장의 애쉬와 로코의 트리스타나의 1:1 대결 등 이벤트도 가득했던, 정말 지금껏 본 LOL 경기 중에 가장 재미있었던 경기 중 하나다.
마지막 클템의 스카너가 소라카를 물면서 경기를 마무리짓는 듯 하지만, 로코도코가 넥서스를 부수러 간 사이 수풀에 잠복한 카페팀이 4:4 전투를 대승으로 이끌며 정말 짜릿한 역전을 거둔다.
아직도 기억나는 해설의 절규, "이쪽은 로코도코가 없지만, 이쪽은 잭선장이 있거든요!"

그리고 마지막 5경기.
3, 4경기가 카페팀의 분발로 인한 역전승이라면, 5경기는 그냥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잭선장 캐리". 정말 귀신같이 적의 위치를 예측해서 궁극기를 날리는 애쉬의 신기에 힘입어, 멘탈이 약간 나간 듯한 MIG에게 결국 카페팀은 3:2 역전승을 거둔다.
돌이켜보면 이때부터 나는 LOL을 "하는" 것보다 "보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4.
3, 4, 5경기 모두 인상적이었던 건 역시 애쉬의 활약이었다. 스타에서 저그 유저였기 때문에 홍진호 선수의 팬이 되었다면, 롤에서는 원딜 유저, 팀원들의 충고를 거부하고 팬댄을 먼저 가는 베인충으로 활동하던 나는 잭선장의 팬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블레이즈의 팬이 되었고, 레퍼드, 앰비션, 러스트보이, 헬리오스.... 도 덩달아 보너스로 좋아해주게 되었다.
레퍼드가 팀을 탈퇴할 때 잠깐 충격이 있었지만, 다시 들어온 플레임이 롤도 잘 하고 얼굴도 잘생기고... 다시 애정을 쌓을 시간이 충분했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호흡이 지독히 맞지 않았다고 고백한 봇듀오는 결국 갈라섰고, 블레이즈를 응원하게 된 이유인 캡틴잭은 진에어 스텔스로 이적했다.
언제나 스포츠 팀을 응원할 때 생기는 딜레마가 있다. 특히 팀원이 소수인 스포츠일수록.
"내가 좋아하는 선수가 팀을 옮기면, 나도 응원팀을 옮겨야 하나?"
이번에는 그렇진 않은 것 같다. 그러기엔 블레이즈에 너무 정이 들어버렸다.
하지만 스텔스가 경기할 때도 마음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소드가 경기할 때도, 조금...) 뭔가 응원팀이 쪼개진 기분인데, 내 팬심도 같이 쪼개지는 그런 느낌이 있어서 좀 그렇다.



5.
와이프님은 프로스트의 팬이다.
와이프님이 나와 같이, 처음 본 경기는 프로스트와 CLG EU의 결승전이었다.
당시 프로스트도 공교롭게 CLG EU와의 경기에서 2:0의 벼랑까지 몰린다. 와이프님은 이 경기를 회고할 때, 뻘뻘 땀을 흘리는, 창백한 안색의 샤이를 항상 떠올린다.
당시 가장 잘 나가던 프로스트에 들어온 뒤, 자신의 입지를 아직 굳히지 못하고 노심초사하던 샤이. 마치 레드에게 두 번이나 당하고 탄식의 망치를 두 개나 사던 플레임의 그런 한 때와도 같은 샤이.
하지만 결국 샤이는 3경기 이후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고, 프로스트는 CLG EU를 3:2로 역전해낸다. 와이프에게 이 경기는 각인되었고, 그 이후 프로스트를 응원하는 원동력이 되어줬다.
하지만 프로스트 또한 그 후 많은,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빠른별과 클템, 그리고 그렇게 "너만 잘하면!" 와이프님의 애증의 대상이던 건웅도 팀을 나가고, 이제 새 얼굴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6.
와이프가 요즘 들어 롤챔스를 보다가, 종종 하는 말이 있다.
프로스트 리빌딩 그럭저럭 잘 된 것 같긴 한데, 뭔가 좀 그렇다고. 샤이와 매라까지 만약 팀을 나가면, 프로스트를 응원하기는 애매해질 것 같다고.
당연한 일이고, 프로스트 팬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그렇게 되면 허전하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스트 팬들은 어떻게 보면 차라리 배부른 입장이라는 게 참 또 그렇다.
다른 팀 팬들은 이미 많이 겪었던 아픔인데 말이다.

성적을 내야 하는 E스포츠 프로팀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게임은 너무 빨리 바뀌니까.
이미 스타에서 많이 겪어 봤기 때문에, 이제는 좀 익숙하기도 하다. 스타 시절에도 비슷한 글을 쓴 기억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런 갈망은 언제나 존재한다.
팀을 응원하는 도중, 그 팀을 계속 응원하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이유를 만들어줬으면 하는 바람.
내가 고등학생일 때 데뷔한 이승엽을 아직도 경기장에서 보고 응원할 수 있는 것처럼, 그런 선수들이 여기에도 많이 있었으면,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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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4/05 07:59
수정 아이콘
잠시만요... 와이프께서 프로스트 팬이라구요??? 이게 무슨 겜게에서의 염장글입니까??? 부럽셉습...ㅠㅠ
제 마눌은 또 게임보나... 또 게임하나... 가 일상이신데요. ㅠㅠ
고구마줄기무��
14/04/05 08:12
수정 아이콘
제 와이프는 딱히 팬심은 없는거 같은데 SKK 안티입니다.
덕분에 KTA가 SKK 잡은 경기 5번정도는 같이 봤네요. 크크크
키리안
14/04/05 08:14
수정 아이콘
사실 CJ양팀의 경우는 다른팀보다는 상황이 훨씬 좋죠.
나름대로 신구의 조화가 이뤄지고 있으니까요.

아마 아내분께서도 지금의 프로스트는 낯설겠지만, 한두시즌 치뤄가는 모습을 보고 나머지 멤버들에게도 애정을 갖게되실거에요.
그리고 자연스레 원로급인 샤이와 매라가 팀을 떠나는 날에는 원로가 될 선수들을 응원하시겠죠.
가타부타 말도 많은 프로스트의 리빌딩이지만, 역시나 모든 구단중에 가장 팬들을 배려한 리빌딩이기도 하죠.
롤링스타
14/04/05 08:54
수정 아이콘
전 다데의 팬이라 삼성 오존을 좋아하기 시작했는데 임프마타댄디옴므루퍼도 좋아져서 그냥 계속 응원 중입니다. 물론 지금은 삼성 블루도 같이 좋아합니다.
하하맨
14/04/05 09:48
수정 아이콘
전 항상 강팀들의 팬이었는데...최근엔 팀 상관없이 특이한 픽이나 재밌는 게임하는 쪽을 응원하는...
엔하위키
14/04/05 10:17
수정 아이콘
계속된 리빌딩의 파도에서도 기량을 유지해서 팀에 계속 남아준 샤이와 매라에게 정말이지 고마울 뿐입니다. ㅠ
14/04/05 11:20
수정 아이콘
저는 인비때부터 롤을 봤는데 그 당시에는 mig frost, 그 중에서도 로코의 팬이었습니다. 그런데 스프링 준우승하고 로코가 팀을 나가니 도저히 응원을 할 수 없더군요. 하핫. 지금 생각하면 되게 우습기도 한데 그 당시엔 처음 겪는 선수의 탈퇴이다 보니 충격이 심했어요. 게다가 성적이 안나와서 리빌딩을 한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죠.

그렇게 1년을 응원팀 없이 살다가 지금은 로코와 비슷한 임프를 만나 즐겁게 오존을 응원하고 있지만 그 때의 기억 때문일까요, 시간이 지나 임프와 마타가 나가고 나면 어떻게 될까를 종종 생각하곤 합니다. 그런 날이 와도 최대한 충격이 덜하도록 시뮬레이션을 해본다는 느낌일까나요. 그렇게 생각해보니 그 날이 와도 저는 계속 삼성 오존을 좋아할 것 같아요. 2년 전과는 달리 그런 것에 면역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오존 또한 지금의 성숙해진 CJ frost와 마찬가지로 팬들을 배려하는 리빌딩을 해줄꺼라 믿고 있으니까요.
Legend0fProToss
14/04/05 14:27
수정 아이콘
카페팀 경기를 못본거 빼곤 거의 똑같으시네요...
사실 팀에서 제일 좋아하는순으로 블레이즈를 나가서
응원하는데 좀 허전하네요
14/04/05 16:03
수정 아이콘
프로스트는 선수가 바뀐 것도 바뀐 거지만 클템 나가면서부터 예전의 팀컬러가 없어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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