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5/03/15 06:05:46
Name 계층방정
Link #1 https://brunch.co.kr/@wgmagazine/143
Subject [일반] 소리로 찾아가는 한자 84. 토끼 묘(卯)에서 파생된 한자들

넷째 지지를 나타내는 토끼 묘(卯)의 자원과 파생된 한자들을 살펴보자.

67d180645ad0b.png?imgSeq=47378

왼쪽부터 卯의 갑골문, 금문, 춘추 금문, 진(晉) 문자, 초 문자, 고문, 소전, 진(秦) 예서, 전한 예서, 후한 예서. 출처: 小學堂

《설문해자》에서는 이 글자를 지게문을 뜻하는 집 호(戶)가 서로 마주보는 형태로 보고 문이 열리는 모습으로 풀이했다. “卯는 무릅쓰고 나온다는 뜻이다. 2월에는 만물이 땅을 가르고 나오며, 문이 열리는 모습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2월을 천문(天門)이라 한다.” 이 허신의 풀이를 따라 卯는 문을 본뜬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갑골문과 금문 등 옛 형태는 문과는 달라 보인다. 卯에서 소리를 딴 한자 중에 죽일 류(劉)가 있기 때문에 卯는 희생을 좌우 대칭으로 쪼갠 모습을 나타낸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여럿 있다. 또는 고리를 좌우 대칭으로 진열한 모습이라고 하기도 한다. 옛 자형들은 대부분 갑골문처럼 가운데를 기준으로 좌우 반전 대칭을 보여주지만 초 문자에서는 회전 대칭으로 바뀌기도 한다. 또 옛 형태는 선 가운데에 돌출된 무언가가 있는 꼴을 보여주며, 전한 예서에서 돌출부가 선 위쪽으로 올라가 후한 예서에서 지금의 해서와 거의 비슷한 꼴로 바뀐다.

사가르는 이 한자의 상고음을  /*mˤruʔ/로 추정하고, 흐를 류(流, 상고음 /*r(j)u/)에 의지나 행위자를 나타내는 접두사 m-이 붙어 파생되었다고 보았다. 스미스는 이에서 흘러 비워지다, 쏟아 비워진 상태란 뜻이 나왔고 기운 달이란 뜻까지 이르렀다고 했으며, 한편 희생의 피를 쏟아버린다는 뜻에서 글자가 만들어졌을 것이라 했다.

여러 간지 한자들이 그렇듯이 이 한자도 갑골문에서 이미 넷째 지지나 인명, 지명 등으로 쓰였지만, 그 외에는 죽일 류(劉)나 벨 류(⿰卯刂)와 통해 희생 제물을 쪼갠다는 뜻으로 쓰였다. 이것도 卯의 원래 뜻을 劉와 연관짓는 학설에 힘을 더하고 있다.

卯는 넷째 지지를 나타내는 한자로, 달로는 음력 2월, 시각으로는 십이시의 넷째 시로 오전 5-7시 또는 이십사시의 일곱째 시로 오전 5:30-6:30, 방위로는 정동을 중심으로 한 15° 안의 방향을 나타낸다. 동물로는 토끼가 이 넷째 지지를 상징하지만, 순수한 가차로 보인다. 시각을 보면 막 해가 뜬 아침을 가리키고 있다. 이에서 묘시, 즉 아침에 해장술을 마신다는 뜻으로 묘음(卯飮)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卯(토끼 묘, 묘음(卯飮: 해장술을 마심), 기묘사화(己卯士禍) 등. 어문회 3급)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卯+日(날 일)=昴(별이름 묘): 묘성(昴星: 이십팔수의 열여덟째. 황소자리 플레이아데스 성단에서 가장 밝은 6~7개의 별들로, 주성은 황소자리 에타성. 구요성 중 하나.), 점묘(占昴: 묘성으로 한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던 일) 등. 어문회 2급

卯+木(나무 목)=柳(버들 류): 유화(柳花), 수류(垂柳: 수양버들) 등. 어문회 4급

卯+田(밭 전)=留(머무를 류): 유학(留學), 보류(保留) 등. 어문회 준4급

卯+田(밭 전)=畱(머무를 류): 토류(土畱: 중국 당우 때 만들었다는 흙그릇) 등. 급수 외 한자(留와 동자)

卯+耳(귀 이)=聊(애오라지 료): 요재지이(聊齋志異), 무료(無聊) 등. 어문회 1급

卯+艸(풀 초)=茆(띠 묘|갯버들 류): 어문회 특급

卯+貝(조개 패)=貿(무역할 무): 무역(貿易), 공무(公貿: 조선에서 육의전에 없는 상품을 상인들에게 공물로 받던 일) 등. 어문회 준3급

卯+金(쇠 금)=鉚(쇠 류|땜질할 묘): 인명용 한자

鉚에서 파생된 한자는 다음과 같다.

鉚+刀(칼 도)=劉(죽일/묘금도 류): 유방(劉邦), 유충렬전(劉忠烈傳) 등. 어문회 2급

留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留+木(나무 목)=榴(석류 류): 유탄(榴彈), 석류(石榴) 등. 어문회 준특급

留+木(나무 목)=橊(석류 류): 인명용 한자(榴와 동자)

留+水(물 수)=溜(처마물 류): 유조(溜槽: 빗물을 담는 통), 증류(蒸溜) 등. 어문회 1급

留+玉(구슬 옥)=瑠(유리 류): 유리(瑠璃: 푸른빛의 광물), 약사유리광여래(藥師瑠璃光如來: 부처의 하나) 등. 어문회 준특급

留+疒(병들어기댈 녁)=瘤(혹 류): 유상(瘤狀: 혹처럼 생긴 모양), 정맥류(靜脈瘤) 등. 어문회 1급

留+网(그물 망)=罶(통발 류): 어문회 특급

留+辵(쉬엄쉬엄갈 착)=遛(머무를 류): 두류(逗留/逗遛: 체류) 등. 인명용 한자

留+雨(비 우)=霤(낙숫물 류): 옥류수(玉霤水: 낙숫물), 중류(中霤) 등. 급수 외 한자

留+馬(말 마)=騮(월따말 류): 유마(騮馬: 본래의 털색에 갈기, 꼬리, 네 다리가 검은 말), 오류마(烏騮馬: 온몸의 털빛이 검푸른 말) 등. 급수 외 한자

留+鳥(새 조)=鶹(올빼미 류): 휴류(鵂鶹: 부엉이) 등. 인명용 한자

畱에서 파생된 한자는 다음과 같다.

畱+手(손 수)=㩅(뽑을 추): 급수 외 한자(抽와 동자)

劉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劉+心(마음 심)=懰(근심할/아름다울 류): 어문회 특급

劉+水(물 수)=瀏(맑을 류): 신유(申瀏: 조선 효종 때의 장군으로, 나선정벌에 참여함) 등. 어문회 준특급

㩅에서 파생된 한자는 다음과 같다.

㩅+竹(대 죽)=籒(주문 주): 주문(籒文: 고대 한자 자체 중의 하나. 대전(大篆)이라고도 함.), 고주(古籒) 등. 인명용 한자

67d35262da07c.png?imgSeq=47462

卯에서 파생된 한자들.


67d2013ea52cf.png?imgSeq=47387

왼쪽부터 昴의 소전, 전한 예서, 한나라 도장 문자. 출처: 小學堂

플레이아데스 성단. 사진 가운데 왼쪽이 제일 밝은 구성원 알키오네다.

플레이아데스 성단, 곧 묘성.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별이름 묘(昴)는 중국의 별자리인 이십팔수 중의 하나인 묘성(昴星)을 가리킨다. 서양 천문학으로는 황소자리에 있는 플레이아데스 성단이다. 우리말로는 별들이 자잘하게 모여 있어 좀생이별이라고 하며, 일본어로는 스바루라고 한다. 일본 인명에 간혹 보이는 스바루는 바로 이 묘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설문해자》에서는 "백호 별자리다. 날 일(日)이 뜻을 나타내고 卯가 소리를 나타낸다.”라고 풀이했다. 이십팔수에서는 계절에 따라 별자리를 일곱 개씩 묶어서 청룡, 현무, 백호, 주작의 형상을 이룬다고 보았고 묘성은 가을과 겨울에 보이기에 백호의 모습을 이루는 일곱 별자리 중 가운데(백호의 몸통)이기 때문이다. 이러면 백호를 이루는 나머지 여섯 별자리와 설명이 겹치지 않을까 싶은데, 나머지 여섯 별자리인 규(奎)·루(婁)·위(危)·필(畢)·자(觜)·삼(參)은 다른 뜻이 있어서 《설문해자》에서는 이십팔수의 뜻을 담지 않았다.

점묘(占昴)는 순우리말로는 좀생이보기라 하며, 음력 2월 초순, 특히 2월 6일에 좀생이별, 곧 묘성을 보고 그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풍습이다. 좀생이와 달 사이의 거리를 보고 가까우면 풍년, 멀면 흉년이라고 판단한다. 그 외에도 조선왕조실록에는 별똥별이나 달 등이 묘성에 가까이 다가갔다(침범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다른 천체가 묘성을 범하는 것을 변고의 징조로 보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별똥별이 묘성을 범하면 오랑캐 병사가 일어날 것이라는 식이다.


67d20799e63a8.png?imgSeq=47388

왼쪽부터 柳의 갑골문, 금문, 진(晉) 문자 1, 진(秦) 석고문, 진(晉) 문자 2, 진(秦) 문자, 소전, 진(秦) 예서, 전한 예서, 후한 예서. 출처: 小學堂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1/18/Ch%C3%A2teau_de_Chenonceau_-_jardin_Russell-Page_%2801%29.jpg/450px-Ch%C3%A2teau_de_Chenonceau_-_jardin_Russell-Page_%2801%29.jpg

수양버들.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버들 류(柳)는 《설문해자》에서는 “작은 버드나무[小楊]다. 나무 목(木)이 뜻을 나타내고 닭 유(丣)가 소리를 나타낸다. 丣는 닭 유(酉)의 고문이다.”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옛 형태를 보면 丣가 아니라 卯가 소리를 나타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갑골문에서는 卯가 木 아래에 있고, 진(晉) 문자 2에서는 위에 있지만, 나머지에서는 모두 지금처럼 木 오른쪽에 卯가 온다. 예서에서도 소전이 아닌 그 전의 형태를 계승해 卯를 소리 부분으로 쓰고, 지금의 해서도 그렇다.

위에서 卯의 어원을 설명한 스미스는 이 柳 역시 벡스터-사가르의 상고음 추정 /*([m]ə.)ruʔ/을 근거로 흐를 류(流)에서 파생되었다고 했다. 즉, 물이 아래로 흐르듯이 가지를 아래로 늘어뜨리는 수양버들의 모습에서 착안한 글자가 되는 것이다. 영어에서도 수양버들은 '우는 버들'이라는 뜻의 위핑 윌로(weeping willow)라고 한다. 우리말에서는 수(垂)버들이지만, 중국어에서는 수(垂)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쓴다. 단, 위핑 윌로라는 표현은 시편 137편에서 나오는 바빌로니아 강변의 버드나무에서 울며 노래하는 시인에서 나왔다고도 한다. 수양버들의 학명도 이 시에서 딴 살릭스 바빌로니카(Salix babylonica)다.

柳는 성씨로도 쓰인다. 중국에서는 주나라 때의 동성 제후국 노(魯)나라 공족에서 갈려 나온 집안이다. 곧 노나라 12대 군주 효공(재위 기원전 796-769년)의 아들 자전(子展)의 후손, 전(展)씨의 방계 가문이다. 전씨는 노나라 중기에 전희(展喜)·전획(展獲)·전척(展拓) 삼형제를 두었는데, 이 중 전획이 유하(柳下) 땅을 받았고 시호가 혜(惠)라서 유하혜라고 했다. 이 유하혜의 후손이 柳를 성씨로 쓴 것이다. 유하혜는 공자에게서도 존경을 받은 현인이었고, 그 때문인지 본가인 전(展)씨는 찾아보기가 어려운데 柳씨는 크게 번성했다. 한편 유하혜의 동생 전척은 대도로 유명해, 사실 전척이 아니라 도척(盜拓)으로 알려져 있다.

특이하게도 柳는 복성이 흔한 일본에서도 야나기라는 성씨로 쓰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 柳씨는 창씨개명 때에도 특별히 씨를 새로 만들지 않아도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 이와 관련되어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는데, 당시 일본 내에서도 유명한 친한파로 광화문 철거에 반대한 미술학자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悦)의 이름을 한국식으로 읽으면 영락없는 한국인 이름인 류종열이라 저놈 이름도 그렇고 조선놈 아니냐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67d2c0b6c7f89.png?imgSeq=47427

왼쪽부터 留·畱의 금문 1, 2, 진(晉) 문자, 초 문자, 소전, 진(秦) 예서, 전한 예서, 후한 예서. 출처: 小學堂

머무를 류(留)는 《설문해자》에서는 柳처럼 밭 전(田)이 뜻을 나타내고 닭 유(丣)가 소리를 나타내는 형성자라 했지만, 소전을 제외하면 모두 丣 대신 卯가 소리 부분을 맡고 있다. 금문 2에서는 卯가 田의 왼쪽에 있고 나머지는 모두 지금처럼 卯가 田 위에 있다. 卯가 田 위에 올라가 있기 때문에 공간이 좁아서 예서에서는 卯의 원형을 잘 유지하지 못하고 마치 입 구(口)가 두 개 있는 모양으로 변형되었다. 이런 글자도 컴퓨터에 㽞로 있다. 그러나 해서에서는 卯의 형태를 조금이라도 살려, 오른쪽만 병부 절(卩) 대신 칼 도(刀) 모양으로 바뀌었다. 한편 소전의 형태를 살린 畱도 있는데,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이 두 형태를 구분하고 있다. 畱를 쓰는 낱말은 한 개밖에 없지만.

卯의 자원은 희생 제물을 쪼개 죽이는 것으로 보는 설이 많은데, 留를 설명할 때에는 卯 부분을 농수로로 풀이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스미스가 卯의 어원을 흐르게 하다, 쏟아붓다로 본 것과도 상통한다.


67d2c65b00922.png?imgSeq=47428

왼쪽부터 聊의 소전, 전한 예서, 한나라 도장 문자. 출처: 小學堂

애오라지 료(聊)는 《설문해자》에서는 귀울림이란 뜻으로 풀이하고, 실제로 이런 뜻으로 쓰이기도 했다. 그러나 의지하다, 애오라지 등의 다른 뜻도 있다. 일상에서 이 한자를 쓰는 무료(無聊)에서는 어떤 뜻으로 쓰였을까? 지금은 이 단어를 지루하다는 뜻으로 쓰는데 현대 중국어로도 이런 뜻이 있다. 그러나 고전 한문에서는 의지할 곳이 없다, 또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뜻으로 썼다. 《사기·오왕비열전》에서 “(오왕이) 주살될 것을 두려워해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꾀를 냈을 뿐입니다.”라는 부분이 있는데, 여기에서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가 무료(無聊)의 번역이다. 또는 정신이 공허하고, 근심으로 괴로워한다는 뜻도 있다. 《초사·구사·봉우》에 “마음이 번민하고 뜻이 공허하니”(심번궤혜心煩憒兮, 의무료意無聊)라는 싯구가 있다.

이런 다양한 뜻을 지닌 무료(無聊)라는 낱말에서 聊는 의지한다는 뜻으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중국어로는 의지할 데가 없다, 어찌할 도리가 없다, 지루하다는 뜻으로는 무뢰(無賴)라는 단어가 동의어인데, 여기에서 賴가 의지할 뢰(賴)다.


67d2cbbb4a73f.png?imgSeq=47439

왼쪽부터 貿의 금문, 진(晉) 문자, 소전, 진(秦) 예서, 한 예서. 출처: 小學堂

貿는 《설문해자》에서는 돈을 상징하는 조개 패(貝)가 뜻을 나타내고 닭 유(丣)가 소리를 나타내는 형성자로 풀이했지만, 소전 빼면 모두 소리 부분이 卯다. 세 글자나 이러는 것을 보면 허신이 단단히 착각하고 책을 쓴 모양이다. 貿 역시 貝의 위쪽 공간이 부족해 예서에서는 卯가 口 두 개 처럼 보이고 해서에서는 오른쪽 卩 모양이 刀로 바뀌었다.

이 한자는 역사적인 용어를 제외하면 현대에는 거의 모든 용례를 무역(貿易)이 차지하고, 선진 문헌에서는 단독으로 많이 쓰이나 무역 역시 많이 나온다. 《설문해자》에서도 바꿀 역(易)을 써서 재물을 바꾼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67d2cf3a52be3.png?imgSeq=47440

왼쪽부터 劉의 전한 예서 1, 2, 한나라 도장 문자, 후한 예서 1, 2, 서진 예서 1, 2. 출처: 小學堂

67d2cfc8ce37d.png?imgSeq=47442

왼쪽부터 鎦의 옛 형태, 소전. 출처: 小學堂

67d2d08970698.png?imgSeq=47443

劉의 소전. 출처: 小學堂

죽일/묘금도 류(劉)는 《설문해자》에 안 나온다. 후한 때 쓴 책이기 때문에 황제의 성인 이 한자를 피휘한 것으로 보인다. 대신 글자 조합이 바뀐 鎦가 나오며, 주석에서는 鎦와 劉를 같은 한자로 본다. 그렇다고 劉가 전혀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고, 맑을 류(瀏)를 풀이할 때 소리 부분으로 출현한다. 瀏의 소전에서도 다른 옛 글자에선 卯인 부분을 丣로 쓰고 있는데 이쯤 되면 일일이 지적하기도 지친다. 혹시 丣는 卯의 고문인데 허신이 酉의 고문으로 착각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예서에 나오는 劉를 보면 역시 金 위 공간이 부족해서 口 두 개로 자주 변형된다. 鎦의 옛 형태에서는 金 위쪽의 今과 卯가 융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한나라 도장 문자에서는 卯 밑으로 金과 刀가 다 들어가는 형태도 나온다. 서진 예서 2는 정사 《삼국지》의 사본에서 나오는데, 卯가 서녘 서(西)처럼 변형되어 있다.

劉는 한문 중에도 옛날 한문, 그러니까 《상서》 같은 책에서나마 겨우 용례를 찾아볼 수 있다. 이것도 유방(劉邦)이 세운 한나라가 중국을 지배하면서 劉의 일반적인 쓰임이 아예 없어졌기 때문이리라. 지금 알려져 있는 훈음인 “죽일 류”는 《설문해자》의 鎦의 풀이로, 《상서·반경 상》의 “우리 백성들을 중히 여기고, 다 죽이려 한 것이 아니었거늘”(중아민重我民, 무진류無盡劉)라는 구절에서 이 뜻으로 쓰이고 있다. 또 다른 예로는 《상서·군석》에서 “크게 하늘의 위엄을 펼쳐 그 분의 적들을 다 죽이셨으니”(탄장천위誕將天威, 함류궐적咸劉厥敵)도 있다. 여기 나오는 함류(咸劉)라는 표현은 《일주서·세부해》에도 "상나라 주왕을 이기사” 또는 “상나라 주왕을 죽이사”로 번역되는 함류상주왕(咸劉商紂王)이라는 구절에서 쓰였다. 이 구절의 주석에서는 劉를 이기다, 정복하다[克]로 풀이했지만 죽이다로 보아도 자연스럽다. 얼마 없는 劉의 쓰임을 긁어모아 보면, 도끼, 죽이다, 정복하다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쉬슬러는 죽인다는 뜻이 원시중국티베트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았다.

이런 쓰임을 살펴보면 죽일 류라는 劉의 훈음은 고대에는 당당하고 위엄찬 뉘앙스가 있었지만, 지금은 죽이다라는 말을 하는 게 잔인하다는 느낌을 받아서인지 劉를 卯, 金, 刀로 파자해서 “묘금도 류”라고 많이 부른다.

이 劉가 성씨가 된 연원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하나라 왕 공갑 시절에 어디에선가 나타난 용 두 마리를 키운 유루(劉累)라는 사람에게서 비롯한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주나라의 정왕(재위 기원전 592-544년)이 자기 동생 계자에게 유 땅을 주어 유강공(劉康公)으로 봉한 것에서 비롯한다는 것이다. 이 유씨가 지금처럼 큰 씨족으로 성장하게 된 이유는 유방이 세운 한나라가 중국을 4백여 년간 통치한 것이다.

유방은 초나라 패현 풍읍 출신이지만, 이 지역은 오랫동안 송나라가 다스리다가 송나라가 위·제·초 삼국의 연합 공격으로 멸망하면서 초나라의 지배를 받은 곳이라 초나라에서는 변경 지역이었다. 《한기》나 《한서》 등 한나라 당시의 역사서에서는 이 패현 풍읍이 원래는 위나라 땅이었으며 유방의 집안 역시 원래 위나라 사람이었다고 서술했다. 유방의 후손으로 전한의 학자인 유향은 유방의 조상은 위에서 말한 유루였고, 그 후손들이 진(晉)나라와 진(秦)나라를 오가다가 풍읍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썼다. 이에 따르면 유씨 가문은 전국시대에는 하급 귀족 가문이었으나 진나라의 통일 이후에는 작은 고을의 부농 정도로 몰락했다가, 일도 안 하고 빈둥거리던 셋째 건달이 갑자기 황제가 되어 집안을 중국에서 가장 고귀한 위치로 끌어올린 것이다.

柳씨와 劉씨는 혈통으로 보면 서로 관련이 없지만, 소리로는 둘 다 토끼 묘(卯)에서 파생되었다. 한국 한자음은 같고, 중국 한자음으로도 성조만 다르다. 다만 한국에서는 柳씨는 두음법칙을 무시하고 류씨로 일컫기도 하는데 劉씨는 그런 경우가 드물다.


卯는 파생된 한자들에 흐르게 하다, 쏟아붓다는 뜻을 부여한다.

柳(버들 류)는 木(나무 목)이 뜻을 나타내고 卯가 소리를 나타내며, 卯의 뜻에 따라 가지가 쏟아붓듯 아래로 드리운 버드나무를 뜻한다.

留·畱(머무를 류)는 田(밭 전)이 뜻을 나타내고 卯가 소리를 나타내며, 卯의 뜻에 따라 물의 흐름을 밭으로 쏟아부어 머무르게 하는 것을 뜻한다.

瘤(혹 류)는 疒(병들어기댈 녁)이 뜻을 나타내고 留가 소리를 나타내며, 留의 뜻에 따라 몸의 기운이 한 곳에 쏟아부어져 머물러 혹을 형성하는 것을 뜻한다.

罶(통발 류)는 网(그물 망)이 뜻을 나타내고 留가 소리를 나타내며, 留의 뜻에 따라 물고기를 머무르게 해 잡는 통발을 뜻한다.

聊(애오라지 료)는 耳(귀 이)가 뜻을 나타내고 留가 소리를 나타내며, 留의 뜻에 따라 귀 안에 소리가 머무르는 것, 곧 귀울림을 뜻한다.

遛(머무를 류)는 辵(쉬엄쉬엄갈 착)이 뜻을 나타내고 留가 소리를 나타내며, 留의 뜻에 따라 사람의 움직임을 머무르게 하는 것을 뜻한다.

霤(낙숫물 류)는 雨(비 우)가 뜻을 나타내고 留가 소리를 나타내며, 留의 뜻에 따라 빗물이 뚝뚝 떨어져 바닥에 고이는 것을 뜻한다.

貿(무역할 무)는 貝(조개 패)가 뜻을 나타내고 卯가 소리를 나타내며, 卯의 뜻에 따라 재화를 흐르게 하는 것, 곧 무역하는 것을 뜻한다.

劉(죽일/묘금도 류)는 金(쇠 금)과 刀(칼 도)가 뜻을 나타내고 卯가 소리를 나타내며, 卯의 뜻에 따라 제물을 죽여 피를 흐르게 하는 것을 뜻한다.

瀏(맑을 류)는 水(물 수)가 뜻을 나타내고 劉가 소리를 나타내며, 卯의 뜻에 따라 맑은 물을 흐르게 하는 것을 뜻한다.


이상의 관계를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67d349d408a34.png?imgSeq=47461

卯에서 파생된 한자들의 의미 관계도.


요약

卯는 제물을 반으로 갈라 죽이는 모습, 또는 문을 여는 모습 등으로 풀이되며, 넷째 지지로 가차되었다.

卯에서 昴(별이름 묘)·柳(버들 류)·留(머무를 류)·畱(머무를 류)·聊(애오라지 료)·茆(띠 묘|갯버들 류)·貿(무역할 무)·鉚(쇠 류|땜질할 묘)가 파생되었고, 鉚에서 劉(죽일/묘금도 류)가, 留에서 榴(석류 류)·橊(석류 류)·溜(처마물 류)·瑠(유리 류)·瘤(혹 류)·罶(통발 류)·遛(머무를 류)·霤(낙숫물 류)·騮(월따말 류)·鶹(올빼미 류)가, 畱에서 㩅(뽑을 추)가 파생되었고, 劉에서 懰(근심할/아름다울 류)·瀏(맑을 류)가, 㩅에서 籒(주문 주)가 파생되었다.

卯는 파생된 한자들에 흐르게 하다, 쏟아붓다는 뜻을 부여하고, 留는 머무른다는 뜻을 부여한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닥터페인
+ 25/03/15 10:35
수정 아이콘
학창 시절에, ‘플레이아데스 산개성단(散開星團)’이라고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유명한 성씨가 둘이나 연결된 글자네요.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일반] [공지]자유게시판 운영위원을 상시 모집합니다. jjohny=쿠마 25/02/08 5195 11
공지 [일반] [공지]자유게시판 비상운영체제 안내 [212] jjohny=쿠마 25/02/08 16092 19
공지 [정치] [공지] 정치카테고리 운영 규칙을 변경합니다. [허들 적용 완료] [126] 오호 20/12/30 296095 0
공지 [일반] 자유게시판 글 작성시의 표현 사용에 대해 다시 공지드립니다. [16] empty 19/02/25 352341 10
공지 [일반] [필독] 성인 정보를 포함하는 글에 대한 공지입니다 [51] OrBef 16/05/03 473399 31
공지 [일반] 통합 규정(2019.11.8. 개정) [2] jjohny=쿠마 19/11/08 354488 3
103921 [일반] 소리로 찾아가는 한자 84. 토끼 묘(卯)에서 파생된 한자들 [1] 계층방정498 25/03/15 498 1
103920 [일반] [웹소설] 최근 보는 웹소설들 추천합니다. [2] 헤후1955 25/03/15 1955 6
103919 [일반] [방산] 한화오션이 성공적으로 인도한 미 해군 MRO사업 [13] 어강됴리3871 25/03/14 3871 1
103918 [일반] 백종원과 코스피 상장 [85] 깐부8552 25/03/14 8552 8
103917 [일반] 구글 제미나이 딥리서치 무료 공개!(월 한도 5회) [28] 깃털달린뱀6883 25/03/14 6883 4
103916 [일반] 김의식 목사, 무인텔에서 나왔지만 결정적 증거 없어 [103] lightstone13569 25/03/13 13569 5
103915 [일반] 주식 투자에 대한 몇 가지 생각 [50] 휘군7795 25/03/13 7795 36
103914 [일반] 피해자가 욕을 먹는 세상 [86] 미카18314 25/03/12 18314 16
103913 [일반] 이런저런 이야기 [7] 공기청정기7983 25/03/12 7983 4
103912 [일반] 꿈조차 꾸지 않는 잠. (사소한 개인 이야기) [2] aDayInTheLife6359 25/03/11 6359 8
103911 [일반] 필리핀, 두테르테 전 대통령 체포…ICC 영장 집행 [46] 전기쥐14092 25/03/11 14092 2
103910 [일반] 위대한 수학적 발견(2) [16] 포졸작곡가7644 25/03/11 7644 6
103909 [일반] 정부, '마지막 미수교국' 시리아와 수교 잠정 합의 [23] Davi4ever7173 25/03/11 7173 4
103908 [일반] 소리로 찾아가는 한자 83. 범/동방 인(寅)·끌 인(引)에서 파생된 한자들 [6] 계층방정1972 25/03/11 1972 3
103907 [일반] 행복과 불행은 유전자에서 결정된다? [24] 설탕물5294 25/03/11 5294 10
103906 [일반] 포천 전투기 오폭 사고에 사과한 공군참모총장 [34] Davi4ever8722 25/03/10 8722 4
103905 [일반] 금융결제원 '홈플러스 당좌거래 중지' 공지 [60] 전기쥐10655 25/03/10 10655 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