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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03/30 08:10:23
Name 식별
Subject [일반] 식인과 마녀사냥에 대한 동화 (수정됨)


50-aspetti_di_vita_quotidiana,_veglia,Taccuino_Sanitatis,_Ca.jpg 식인과 마녀사냥에 대한 동화




  19세기 이전 전근대 유럽의 농민들은 혹독한 겨울밤을 나기 위해 난롯가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은 까마득한 옛날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땅의 노래들이었다. 농민들의 심성을 드러내는 이 이야기들은 극도로 잔혹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1537px-Die_Gartenlaube_(1898)_b_0381.jpg 식인과 마녀사냥에 대한 동화


 

  그런데, 사실 이 잔혹한 이야기들의 뼈대 자체는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하다. '빨간 모자'나 '헨젤과 그레텔'이 바로 그런 이야기에서 비롯된 동화들인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를 중심으로 유럽 농민들이 지녔던 마음의 세계를 한 번 들여다 볼 것이다.

 

 

Grimm.jpg 식인과 마녀사냥에 대한 동화


 

  우리가 알고있는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의 기원은 야코프 그림과 그의 동생 빌헬름 그림이 헤센 지역의 이야기들을 수집하던 18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10년의 출판하기 전 원고에서부터 1850년의 여섯 번째 판본에 이르기까지 동화의 내용은 계속해서 수정되는데, 그 과정에서 헨젤과 그레텔 남매를 버릴 것을 적극적으로 주장한 나무꾼의 아내가 아이들의 친모에서 계모로 바뀌는 등 기독교적인 요소들이 추가되며 그 분량이 거의 두 배 가량으로 늘어났다.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를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Hosemann-4.jpg 식인과 마녀사냥에 대한 동화


 

가난한 부모가 아이들을 숲 속에 버린다. 
아이들은 먹을 것을 찾다가 마녀에게 사로잡힌다. 
마녀는 아이들을 잡아먹기 위해 먼저 살을 찌우려고 한다. 
아이들은 기지를 발휘해 마녀를 무찌르고 금은보화를 챙겨 집으로 돌아간다. 

 

 Blunderbore.png 식인과 마녀사냥에 대한 동화


  헨젤과 그레텔의 이러한 줄거리는 기본적으로 '아이들과 식인귀(Ogre)'라는 제목을 가진 이야기 유형 327A (ATU 327A)에 속한다. 이 이야기 유형에서 '적'은 식인귀, 거인, 마녀, 악마 등 여러 형태로 나타나며 때로는 사악한 계모로부터 학대받는 아이들이 도망치는 이야기 유형 450 (ATU 450)과 결합하기도 한다. 이러한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는 궁극적으로 14세기 이후 중세 후기 시대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림 형제는 이전 세대의 이야기인 닌닐로와 네넬라(Nennillo and Nennella, 1634, ATU 450), 샤를 페로의 '작은 엄지(le petit Poucet, 1697)', 그리고 신데렐라가 식인귀를 불태우고 마녀의 머리를 자르는 충격적인 내용으로도 유명한 마담 돌누아의 피네트 센드론(1698, ATU 510A) 등의 이야기들을 추가적으로 참조했다. 피네트 센드론의 신데렐라(피네트) 또한 집에 돌아오기 위해 잿가루로 흔적을 남기거나 식인귀를 화덕으로 밀어넣는 등 기지를 발휘한다. 


 
Antoine_Clouzier_-_Le_Petit_Poucet_(Charles_Perrault,_Barbin,_1697).png 식인과 마녀사냥에 대한 동화


 

  헨젤과 그레텔의 프랑스 농민판이라고 할 수 있는 '작은 엄지(le petit Poucet)'는 프랑스 동화의 아버지격인 샤를 페로가 17세기 말에 말끔하게 손질하기 훨씬 이전부터, 서로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프랑스 전역의 농민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파되어 수십여 가지의 서로 유사한 버전이 존재했다. 프랑스의 농민들은 저녁에 난롯가에 모여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는 야회(Veillée)에서 몸짓과 손짓을 하며 이러한 민담들을 남겼다.

 

023684.jpg 식인과 마녀사냥에 대한 동화


 

  헨젤과 그레텔이 '과자로 된 집'이나 '유혹하는 아름다운 새'처럼 환상적이고 기괴한 풍경을 가진 것과 달리, 이런 프랑스식 '작은 엄지' 민담들은 현실적이고도 해학적인 성격을 지닌다. 프랑스 어린아이들은 마녀를 만나는 대신 바이올린을 켜거나 코를 골며 자는 등 지극히 인간적인 식인귀를 만나고, 마찬가지로 식인귀의 집은 과자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묘사면에서 여느 평범한 부르주아 가정과 별반 다를 바 없다. 헨젤과 그레텔이 마녀를 불구덩이 속으로 집어넣는 것과 달리, 프랑스 아이들은 식인귀가 그의 자식들을 (때로는 식인귀의 선량한 아내를) 대신 죽이게끔 유도한다. 

 

 

헨젤과 그레텔의 진실?

 

519qfnsCllL._SX335_BO1,204,203,200_.jpg 식인과 마녀사냥에 대한 동화


  1963년, 독일의 만화가 한스 트랙슬러는 자신의 저서 '헨젤과 그레텔의 진실 (Die Wahrheit über Hänsel und Gretel)'에서 게오르그 오세그라는 교사가 헨젤과 그레텔이 실존했다는 역사적 증거를 발견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헨젤과 그레텔은 각각 17세기에 살았던 제빵사 한스 메츨러(Hans Metzler)와 그의 여동생 그레테 메츨러(Grete Metzler)였고, 남매는 카타리나(Katharina)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의 요리 레시피를 훔치기 위해 그녀를 마녀로 고발한 뒤 그녀의 은신처에서 교살했다. 남매는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은 채 승승장구했고, 이 안타까운 사연의 이야기는 알음알음 당대인들에 의해 동화로 각색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져내려오게 되었다.


  얼핏보면 진짜같은 이 책은 논픽션의 형식을 빌린 소설로서 당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인기를 끌며 순진한 사람들을 속여넘기고 있다. 그러나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는 그 기원이 무려 14-16세기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만큼, 모티브가 된 특정한 역사적 인물을 지목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가 형성된 시기의 역사책을 들춰보는 것으로, 헨젤과 그레텔이 누구냐 하는 질문에 다른 형태로 답할 수는 있다. 그 페이지 속에서는 수없이 많은 나무꾼의 아이들이 버려지거나 잡아먹히고, 수없이 많은 여자들이 마녀로 몰려 화형주에 내걸리는 광경이 펼쳐진다.
 

 

기근과 전쟁, 그리고 마녀사냥

 

 

14세기 대기근

 

 

 

1457px-Pieter_Brueghel_the_Younger_-_The_Triumph_of_Death_-_ca_1608.jpg 식인과 마녀사냥에 대한 동화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의 기원이 14세기에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1315년에서 1317년까지 지속되었던 끔찍한 대기근은 유럽 전역을 강타하여 중세 성기의 평화로운 시기를 끝장냈다. 가축의 팔 할이 돌림병으로 죽었고, 곡식의 가격은 세 배로 올랐다. 출생 시 평균 수명은 이전 세기에는 35세였으나 대기근 시절에는 30세를 채 넘기지 못했고, 흑사병마저 돌았던 14세기 중반 무렵에는 겨우 17세에 불과하였다. 

 

 

Blake_Hell_33_Ugolino.jpg 식인과 마녀사냥에 대한 동화


 

  사람들은 나무껍질을 벗겨먹었고, 풀뿌리를 캐먹었다. 일국의 임금님들마저 먹을 것이 없어 제대로된 대접을 받지 못했고, 부모가 자식을 잡아먹었다는 소문이 횡행했으며, 감옥에 갇힌 죄수들은 서로를 잡아먹었다.

 

  대기근 동안 인구의 10~20퍼센트 가량이 하늘로 사라져버렸고, 헨젤과 그레텔은 정체를 묻는 마녀의 질문에 "바람, 바람, 하늘의 아이"라고 답한다. 아이들은 언제 어디서나 낯선 '식인귀'들에게 잡아먹힐 위험이 있었다. 특히나 '거인'이나 '오우거'처럼 혈색이 좋은 자들을 경계해야 했을 것이다.

 

Les_Très_Riches_Heures_du_duc_de_Berry_octobre_detail.jpg 식인과 마녀사냥에 대한 동화


 

  이후의 몇 세기 동안 이러한 광경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농경사회의 식량생산량은 토지에 매여있었고, 토지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온난한 기후 등으로 인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 인구는 기후 변화가 생기면 다시 원상태로 비참하게 복구되길 반복했던 것이다. 

 

 

  주기적인 대기근이라는 맬서스 덫은 근대 이전 농민들의 삶을 장기지속적으로 규정했고, '동화'의 질긴 자체적 생명력이 여기에 따라붙었다. 어떤 동화는 부모가 아이들로 하여금 구걸케하고, 어떤 동화에서는 부모가 아예 제 자식들을 악마에게 팔아버리는데, 이러한 동화들은 서로 동떨어져있는 장소와 시간대에서 공통적으로 채집되곤 했기에 19세기 이후의 '다소 보기좋게 다듬어진' 그림 형제의 동화들이 사실 무시무시한 역사적 진실을 암시하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는 것이다.

 

 

30년 전쟁과 마녀사냥

 

  헨젤과 그레텔의 '적'이 마녀로 등장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전근대 유럽의 기근과 아동 유기, 식인과 마녀사냥은 전부 맞물려서 동시에 벌어진 현상이었다. 기근이 벌어지면 부모는 자식들을 버리거나 잡아먹는 일이 종종 발생했고, 교회 당국은 그들을 악마 숭배자로 기소했다. 악마 숭배자들의 대부분은 여성, 즉 '마녀'로 여겨졌다. 헨젤과 그레텔을 버리자고 적극적으로 주장한 것이 계모(판본에 따라 친모)였던 것과 마녀를 불태우고 집에 돌아온 것과 동시에 계모도 이야기에서 퇴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농민들의 세계에서 어떤 어머니는 종종 마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1400px-Peter_Snayers_-_The_siege_of_Armentières_with_a_rainbow.jpg 식인과 마녀사냥에 대한 동화


 

  농민들의 입장에서 흉작으로 인한 참극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전쟁이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정치사에 따르면, 역사는 계속된 혼란과 변화의 연속처럼 보인다. 물론 근대 이전 농민의 세계도 끊임없는 기근과 반란, 그리고 종교적 충돌로 점철되어있는 혼란과 변화의 연속이라 할 수도 있으나, 해뜨면 새벽같이 나가서 해떨어질 때까지 뼈빠져라 일하다가 곧바로 잠에 드는 일상은 유라시아 서쪽 끝부터 동쪽 끝에 이르기까지 모든 농경사회의 농민들 사이에서 변하지 않는 만고불변의 진리였으며, 농민들은 자신의 운명이 그들 스스로가 아니라 하늘에 맡겨져 있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깨닫고 있었다. 

 

 

  다시말해, 농민들의 세계는 비록 그 내부는 그들 사이의 지난한 생존투쟁으로 점철되어있었으나, 대부분의 시기에는 외부로는 분출하지 못한 채 고요하게 멈춰있는 듯 보였다. 그들은 그저 허리를 굽히고 하루 종일 일했다. 따라서 그런 변함없는 농민들의 입장에서 하늘의 변덕으로 인한 기근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저 멀리 '수도'의 귀족들이 벌이는 정치놀음의 결과가 자신들에게 직접적으로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이었다. 1618년에서 1648년 사이에 중부 유럽에서 벌어진 30년 전쟁은 하늘이 아닌 귀족들이 고요한 농민의 세계를 뒤흔든 가장 거대한 시도였다. 

 

1491px-Vrancx_Soldiers_Plundering.jpg 식인과 마녀사냥에 대한 동화


  왕과 귀족들의 군대는 보급을 위해 현지를 약탈하는 과정이 필수적이었다. 쥐 떼가 모든 것을 먹어치우며 기승을 부렸고, 늑대들이 도시로 몰려왔으며, 멧돼지들이 밭을 헤집어 놓았다. 독일 전역의 정치 행정적 붕괴는 농민들에게서 토지를 앗아가 그들을 불만 넘치는 유랑민, 밀수꾼, 노상강도로 개조시켰고, 오스트리아, 바이에른, 브란덴부르크 곳곳에서 대대적인 반란이 벌어졌다.

 

 

  이 끔찍한 사태의 원인이 하늘이 아니라 사람에 있다면, 농민들은 누군가가 반드시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시 당국과 귀족들, 그리고 종교 당국도 이러한 농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원인을 찾아야만 했고, '인간의 죄악에 대한 신의 징벌'이라는 결론을 내렸으며, 곧 마녀 재판이 시작됐다.

 

BERMANN(1880)_p0884_Die_einzige_Hexenverbrennung_zu_Wien.jpg 식인과 마녀사냥에 대한 동화


 

  마녀 재판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독일 전역으로 확산되었는데, 전쟁 기간 동안 밤베르크 시 하나에서만 일천여 명이 고문된 뒤 마녀로 몰려 처형당했고, 뷔르츠부르크 주교구에서는 한 해에만 마녀 300여 명이, 아이히슈테트에서도 1629년 한 해에 274명이 죽었다.

 

 

  마녀사냥은 여성들의 만혼과 단산 문제와도 얽혀있었을 것이다. 산아 제한이나 피임 개념이 결여돼 있던 농민들은 궁핍한 상황에서 더 적은 자식들만을 부양하기 위해 늦게 결혼했고, 여성들은 대체로 20대 중후반의 나이에 결혼하여 40세 즈음에 단산하였다. 종교개혁으로 인해 수녀원에서 쫓겨난 나이든 수녀들, 경제적 궁핍으로 인해 나이가 찼음에도 결혼하지 못한 여자들로 인한 재정적 부담을 가장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편이 바로 '마녀' 혐의였던 것이다. 

 

  독일에서의 마녀사냥은 농촌 여성 몇몇에서부터 시작하여 점차 도시 중심부로 확산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마녀로 지목된 이들이 고문을 당하며 다른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야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마녀사냥을 집행하는 유력자의 입김이나 농민들의 질투가 들어가기 시작하면, 마녀혐의는 남편이나 자식없이 홀로 부유하게 살아가는 과부들을 향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굶주리는 세상에서 저 홀로 배부른 사람은 누구나 마녀가 될 수 있었다.

 
Wickiana3.jpg 식인과 마녀사냥에 대한 동화


 

  따라서 '과자로 된 집에서 사는 마녀가 아이들을 잡아먹는다'는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의 핵심요소는, 굶주림과 유기, 그리고 식인과 마녀사냥이 하나로 엉켜 뗄 수 없는 덩어리였다는 역사적 진실을 암시한다. 

 

 

 

 계모와의 갈등과 유기

 

600px-Antoine_Le_Nain_(attributed_to)_-_Peasant_Children,_c.1630–1640.jpg 식인과 마녀사냥에 대한 동화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의 주인공은 가난한 집안의 어린아이들이다. 그리고 모든 어른들은 한 때 어린아이였다. 중근세기의 유럽 농민들도 한 때는 어린아이였을 것이다. 따라서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를 학대당하거나 유기당한 어린아이들의 시선에서 해석해볼 수도 있다.

 

  교회는 돌이 되기 전의 아이와 부모가 함께 자는 것을 금지했는데, 이는 어린아이가 부모와 함께 잔 뒤 세상을 뜨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는 단순한 사고였을 것이고, 또 다른 경우에는 사고를 빙자한 고의였을 것이다. 

 
Edgar_Bundy_-_Peasant_children_with_donkeys_and_geese_(1885).jpg 식인과 마녀사냥에 대한 동화


  열 살이 되기 이전에 농민 아이들 중 절반이 세상을 등졌다. 살아남은 아이들은 걸을 수 있을 때부터 부모의 일손을 도와야만 했고, 곧장 전근대 농민 세계의 비정한 생존투쟁에 내몰렸다. 이 때의 어린아이들은 오늘날과 같이 성인과 구별되는 특별한 존재로 여겨지지 않았다. 

 

  전근대 농민들에게 있어서 아동 학대나 유기가 얼마나 만연했는지는 쉽사리 추정해볼 수 없다. 그러나 오늘날에 비하면 훨씬 흔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는 피임 수단의 부족, 만성적인 영양실조 등으로 인해 부모가 '원치 않았던 아이'를 부양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동 유기에 대한 이야기는 게르만족과 켈트족의 구전 설화에서 이야기의 전환점으로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곤 한다.

 

  이런 원치 않는 아이들은 대개 교회 앞이나 마을 광장의 특정한 장소, 그리고 헨젤과 그레텔의 경우처럼 숲에 유기되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들이 유기될 때, 때로는 먼 훗날 알아 볼 수 있도록 특정한 표식이 남겨지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헨젤과 그레텔의 이야기에서 이것은 (비록 소용없게되지만) 흰 조약돌들로 나타난다. 

 

  더욱이 '원했던 아이'가 원치 않아지는 경우도 있을 수 있었다. 출산 도중이나 직후에 산욕열로 산모가 사망하는 경우가 흔했던 전근대에, 계모는 종종 자신의 친자식들에게 상속분이 돌아갈 수 있게끔 전처와의 자식들과 경쟁 관계에 돌입해야만 했을 것이다. 태어난 아이들의 2할 가량은 친모가 아닌 계모 밑에서 컸고, 이복형제들은 얼마 되지도 않는 상속분을 두고 서로 치열하게 다툴 운명이 점지되어 있었다. 

 

Hansel_and_Gretel_and_other_stories_-_color_plate_at_page_206.jpg 식인과 마녀사냥에 대한 동화


 

 

  계모와의 갈등이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이야기는 이야기 유형 720("어머니 나를 죽이시고, 아버지 나를 잡수시네")의 '노간주나무'다. 이 이야기에서 계모는 전처의 자식을 처치한 뒤 스프에 넣어 아이의 친부인 남편에게 몰래 먹인다. 계모의 자식인 여자아이는 의붓오빠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고 그 뼈를 수습해 노간주나무 아래에 묻는다. 노간주나무 아래에서 등장한 아름다운 새는 자신의 억울한 죽음을 노래하다 아버지와 여동생에게 선물을 떨어뜨린다. (계모는 돌절구를 맞고 죽는다.)

 

 

Household_stories_Bros_Grimm_(L_&_W_Crane)_plate_facing_p186.png 식인과 마녀사냥에 대한 동화
키윗, 키윗, 키윗 (Kywitt, kywitt,  kywitt) 나는 울었네.
오 이 몸은 얼마나 아름다운 새인가!

 

  어쩌면 이 이야기는 자신의 어린시절을 잃어버린 어느 농민에 의해 즐겨 불리워졌을 지도 모른다. 그는 분명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며 언젠가 그리운 집에 금의환향하여 아버지와 여동생에게 선물을 주는 꿈을 꿨을 것이다. (그 꿈 속에 계모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농민의 자식인 어린아이들은 잠자리에 들기 전 이러한 이야기를 부모로부터 반복적으로 들으며 따뜻한 가정 내에서 머물 수 있는 자신들이 얼마나 행운인지에 대하여 끊임없이 되새겼을지도 모른다. 
 

 

 

(끝)

 

 

* 유튜브에 이미 업로드한 영상의 대본이니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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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3/30 09:41
수정 아이콘
재미있네요. 혹시 너튜부에서는 뭘로 검색하면 올리신 것이나올까요?

—> 찾았습니다. 
지탄다 에루
25/03/30 10:52
수정 아이콘
너무 재미있네요 잘 읽었습니다!
25/03/30 18:59
수정 아이콘
이런글 너무좋네요
또 다른글 부탁드립니다
아 저도 유튭에서 찾았습니다
제목 그대로..
25/03/31 09:01
수정 아이콘
정말 인류는 우울한 시대를 거쳐왔네요.
돌고래호텔
25/03/31 09:22
수정 아이콘
재밌었습니다
시드라
25/03/31 13:36
수정 아이콘
잘 봤습니다!

유튜브 있으신 줄은 몰랐네요 나중에 보러가겠습니다 흐흐
25/04/01 04:37
수정 아이콘
재미있어요! 유튜브도 찾아가보겠습니다.
틀림과 다름
25/04/01 10:11
수정 아이콘
이러니
왜란종결자 소설에서
은동의 말에 이무기가 반박못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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