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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3/09 13:48:30
Name 글자밥청춘
Subject [일반] 논쟁과 입장에 관하여
1. 논쟁에 관하여

[지식, 감각, 교양과 같은 것들은 하나의 정신적 자산이다. 이러한 정신적 자산의 획득에는 개인의 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환경적 요인들이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모두가 다 당신처럼 정신적 자산을 획득하기에 유리한 환경과 조건에 놓여있지 않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는 하나의 큰 '사회적 혜택'이고, 누군가와 논쟁을 함에 있어 꼭 인지해야 하는 요소다. 내가 받은 사회적 혜택을 인식하고, 늘 겸손해야 하며,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대화야 논쟁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인터넷의 논쟁이 현실의 토론보다 피곤한 이유 중 하나는 구성원이 토론의 전제를 합의하지 않고 산발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에 있습니다. 한 쟁점안에 다른 다양한 논점들을 꺼내면서 내용이 빠르게 확산되고 축소되죠. 그 과정에서 서로 논지가 뒤틀리고 서로 논지 이상의 것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당연하죠. 답답하니까... 감정적으로 열이 받을 수 밖에요. 인터넷의 토론은 대체로 용어에 대한 합의가 부족하고, 구성원의 지식과 교양수준이 일정 집단으로 구성되어있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위 글은 한창 핫했던 메갈리안의 혐오의 미러링이라는 전략에 대한 한 트위터리안의 글입니다. 그는 페미니즘 운동에 참여하는 활동가이자 남성이었기 때문에, 메갈리안의 혐오를 받으면서도 페미니즘 운동에 지속적인 참여를 해야했죠. 그는 한쪽에서는 꼴페미로, 한쪽에서는 씹치남으로 불리면서도 메갈리안의 미러링이 어떤 사회적 맥락에서, 어떤 젠더의 경계에서 발화하는 것인지를 이해할 만한 '혜택'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성별이 그저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동지적 관계에서 배제되는 경험을 하는 것은 유쾌하지 않은 일이었죠. 요즘같은 세상에 인권운동이니 사회운동가니 하면서, 남들에게서 비아냥 당하고 사회적으로 모자란 취급하고 돈 못벌고 가난하고 눈총당하고 그래도 함께 인생 던져서 뭐 하나 조금이라도 세상을 바꿔보자는 꿈과 동료가 없으면 이 짓 못해먹는거잖아요. 누가 알아준다고. 역사속에서 죽어가더라도 세상을 바꾸는데 조금의 도움이 되겠다던 사명감 따위보다 옆에서 같이 싸워주는 동료 하나 못 버려서 계속 가는게 이 판인데. 성별이 다르다고 때때로 동지와 동지 바깥을 넘나들어야 하는 그의 기분은 어땠을까요? 그래서 그는 이야기 합니다. 자신처럼 미러링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교육, 사회적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 아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미러링을 구사하는게 과연 효과가 있는 것이냐고. 폭력으로 계몽을 일깨우는 것은 과연 얼마나...


우리는 모든 논쟁이 벌어질 때 몇 가지를 마음에 담아야 합니다. 상대가 나와 다른 지식과 감성, 사회적 교양을 받아온 사람이라는 것. 상대가 나와 언어의 용례를 다르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상대와 내가 이 글만으로는 판단이 불가능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것. 저도 이게 안되는 일이 많았고 여전히 어렵습니다만 그래도 그래야 합니다. 정말 많은 키보드 워리어들을 이를 무시하죠. 그 사람의 손가락으로 두들긴 한 줄에 그 사람의 모든 정체성이 담겨있다고 믿고, 그 사람이 내가 하는 말을 온전히 이해할 거라고 기대합니다. 지독히도 오만한 방식이고, 지독히도 편협한 방식이죠. 이런 사람들이 있는 한 모든 논쟁은 소모적으로 빠르게 변해가기 마련입니다. 요 며칠처럼요.


논쟁의 태도를 예의바르게 하는 것은 단순히 기분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한 쟁점에 대해 공통된 규칙으로 정리된 언어와, 어느정도 합의된 수준의 논쟁을 구사해야 다름을 인정할 수 있고, 혹은 합의점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예의바름은 거기까지 효율적으로 가기위한 하나의 방편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지적 혜택을 갖고 각자의 근거를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며 상대의 지적 환경이 어떨지에 대해 고려하지 않습니다. 이 곳에는 박사학위를 딴 사람도, 고교 중퇴자도 있을텐데 그 둘이 동일한 언어로 같은 사고를 하며 동등한 논쟁의 층위를 유지하는것은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논쟁은 '지식의 격차'를 확인하는 게 아니라, 지식의 격차를 좁혀나가는 과정에서 새로움을 얻어갈만한 가치를 찾아내야만 소모한 시간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각자가 가진 비대칭적 '정신적 자산'을 고려합시다. 설득은 그 시점의 일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니까요.


그런면에서 피지알의 논쟁에 자주 등장하시는 분들은 위 이야기에 유의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문장 한 구절 한 구절 뜯어서 비판하고, 주제를 해체시켜 접근하고, 하나하나 논점을 따로 잡아서 자의적으로 싸우는 것이 너무 빈번하게 일어나니까요.


2. 입장에 대하여


[페미니스트로서 자기 명명하고 호칭을 부여받는 것은 앞으로 자기 자신의 삶과 언행에 대하여 더 무겁게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완벽한 인간이 되겠다는 의미가 아니고, 덜 비겁한 인간이 되겠다는 의미다.]


친한 지인이 보내준 구절입니다. 어떤 분의 페북에서 본 글귀라고 하더군요.


요즘은 '입장'을 갖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대같습니다. 합리적이지 않다는거죠. 합리적이라는건 이치에 밝다기 보다는 이해에 밝아야 하는건데, 입장을 정한다는 행위는 합리를 거절하는 행위일수도 있으니까요. 나는 이 관점으로, 이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겠다는것.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페미니스트로서 명명하는 것은 성 평등 인권을 주장하고 성별에 대한 억압적 기제들에 맞서며 나 자신이 억압적으로 움직이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언입니다. 하지만 남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합리적인건 여성을 호혜적으로 대우하는 것이지 성별에 대한 억압적 기제를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닐 사람들이 많을겁니다. 합리적이라는건 그런거죠. 입장 없이 자신의 이해에 맞춰서 움직이는 사람.


저는 입장을 가진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저 또한 제 자신의 입장을 세우죠. 저는 20세기에 멸종한 마르크스주의자이며, 정치 경제적으로 매우 좌편향적인 사람입니다. 저는 페미니스트이고 싶어하지만 차마 한남충 성향을 완전히 버려내지는 못했으며, 이성을 중심으로 행동하고 사고하려 노력합니다. 저는 저를 이런 입장으로 두는 것을 기뻐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정말 그럴까요? 저는 마르크스주의자이지만 자본주의의 혜택을 한 껏 누리고 삽니다. 노조를 응원하며 삼성핸드폰을 사서 쓰죠. 페미니스트이고 싶지만 어떤 부분에서 남성우월적 사고를 전부 버렸다고 장담하지도 못합니다. 이성으로 사고하려 노력한다는건, 이성적이지 않을때가 훨씬 많기 때문이겠죠.


입장을 세운다는 것은, 입장을 세우지 않은 사람들에게 공격받기 좋습니다. 입장은 일종의 완결성이거든요. 니가 만약 그런 사람이라면, 넌 완전하고 철저하게 그렇게 행동해야만해. 흠결없는 사람만이 입장을 가질수 있다는 시선들은 아주 일상화 되어있고 일반화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비판들이 아주 냉소적이면서도 직관적으로 잘 소비되는게 입장을 세우지 않는 시대의 대중들이죠.


예전에 (꽤 지난 이야깁니다) 유명한 트위터리안분이 여성과 성폭력 피해자에 대해 말실수를 했다가 크게 조리돌림을 당했습니다. 그가 페미니스트라고 본인의 입장을 정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외적으로는 진보적이고, 성평등적인 사람으로 여겨져 있었죠. 때는 이때다 싶어서 많은 사람들이 공격을 했고, 그는 그 공격들에 당황하면서도 차분히 자기반성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진심깊게 사과하고 자숙을 이야기했으며 말을 조심하고, 자신의 입장을 견지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며 이번의 일을 통해 다시금 자신의 입장에 대한 조심성을 갖겠다고 하였죠. 입장을 세우는 이의 올바른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정의내리는 것은, 그 틀에 맞춰서 자신 역시 규제하고자 하는 의지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그러하듯, 아무리 대단한 의기와 사상으로 뭉치더라도 완전히 그 틀에 맞춰서 인간이 살아가는게 쉬울까요? 아주 극소수가 아니라면 그럴 수 없을겁니다. 어쩌면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자체가 환상일지도 모르죠. 과거 공산권 국가에서 자행되던 끊임없는 사상교육과 자아비판이 그런 사람들을 만들어냈나요? 오히려 그 과정에서 비틀어진 사상과 자의식에 의해 좋은 사상의 입장들조차 안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 경우가 많았죠. 우리가 기대하고, 감시하는 시선과는 다르게 '입장'을 세운 사람역시 결국 이중적이고, 많은 잘못을 저지른다는 것입니다. 그건 지극히도 정상이라는거에요.


다만 입장을 정한 사람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자신의 주장과 행동이나 언행이 일치하지 못했을때, 소위 배신을 했을 때 취해야 할 태도의 지향점은 존재합니다. 그것은 다시 입장으로 되돌아가려는 노력이죠. 삼성전자 스마트폰을 쓰는 나지만, 삼성전자 노조활동을 홍보하고. 시장경제의 혜택을 받고 살지만, 학우들과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 대해서 이야기 하며 다른 관점을 갖자고 설득하고. 여성의 성적 대상화나 상품화에 흥분하지만, 여성에 대한 편견과 사회의 차별적 맥락들에 저항하는 것에 동의하고. 입장을 세운 사람은 정말 피곤하게도 끊임없이 그 입장의 자리로 돌아오려 노력해야만 합니다. 이 돌아옴의 노력이 없다면 그것은 입장을 가졌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죠. 잘못을 저지른 채로 반복하는 사람과, 그걸 조금이라도 줄이려 '일부러' 자신을 몰아세우는 사람. 저는 그래서 입장을 가진사람이 입장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입장이 없는 사람들이 합리성과, '인간은 원래' 와, '솔직히 말해서'를 등장시키며 입장을 세우려 노력하는 사람에 대해 잔인하리만치 차갑고 빡빡한 시선으로 흠결을 찾아내는 것을 싫어합니다. 입장을 세운다는 것은 완전해지는 것이 아니거든요. 이것이 자기합리화의 기제가 되지 말아야 한다고 끊임없이 반성하고 돌아가는것, 그것이 입장을 세우고 사는 사람의 삶의 태도입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이 입장을 세우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정의주의자야, 나는 진보주의자야. 나는 보수주의자야. 나는 자유주의자야. 나는 자유지상주의자야. 나는 마르크스주의자야. 나는 페미니스트야. 나는 환경운동가야. 나는 베지테리언이야. 나는. 각자의 입장을 세우고 그 입장을 옹호하고 비판하는 지식과 철학적 사유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많은 사람들과 교류했으면 좋겠습니다. 각자의 불완전성과 각자의 잘못들에 어느정도의 너그러움을 갖고, 다만 자신의 잘못에서 돌아오는 용기를 항상 갖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입장이 서로를 상처입히고 적대시할지라도, 나의 입장을 지키고 나의 입장에 대해 공부하고, 나의 입장과 상대의 입장에 대해 대화할 수 있고. 때로는 그럼으로 인해 바뀔수도 있는 것이 지식의 혜택을 가장 크게 받고 살아가는 지금의 인류가 누릴 수 있는 지적인 성숙이 아닐까요? 여러분, 입장을 세우고 삽시다. 그건 완전히 잘못없이 사는 삶이 아니라 끊임없이 저지르는 잘못들에게서 스스로를 고쳐나갈 수 있는 용기에 도움을 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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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로그김
16/03/09 14:00
수정 아이콘
그런 장점도 있군요.
저는 사람이 스스로를 규정한다는 것에 다소 부정적이었던게,
스스로를 규정짓는 이의 편협함만을 보고 고개를 절래절래 젓곤 했는데, 생각이 달라지는 계기가 됩니다.


그러면 저는 어떤 입장을 세우고 사는가... 를 생각해보면,
특정한 무슨무슨 주의라고 거창하게 붙일건 없고..
'학식과 이론으로 무장한 자가 현상을 왜곡하는 것에 분노하는' 것이 주 입장인 듯 합니다.

9:1로 존재하는 것을 5:5로 만든다던가,
현실적인 양적/질적 차이를 원론적으로는 다를 바 없다는 말로 청자를 기만하는 행위에 분노하는..
그런 의심 많은 사람... 제3자의 직관적 이해를 왜곡하는 시도를 불의라고 여기는 사람.. 정도의 입장이라면 입장인 듯 합니다.
글자밥청춘
16/03/09 14:02
수정 아이콘
좋은 입장 아닌가요 리얼리스트시네요!
켈로그김
16/03/09 14:04
수정 아이콘
대부분의 분노는 자신의 무지했던 시절을 향해있기도 하죠 ㅡㅡ;
사악군
16/03/09 15:09
수정 아이콘
입장을 세운 사람이 본문처럼 잘못을 했을 때 '입장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입장도 없는 것들이 나를 비난하느냐'는 식의 대응을 하는 것을 많이 목격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사실 본문의 '입장을 세운 사람'은 밖에서 보는 입장을 세운 사람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입장을 세운 사람은 스스로에게 입장을 세우는 것이며,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알릴 필요는 사실 없습니다.
우리가 보는 '입장을 세운 사람'들은 우리에게 자신이 입장을 세웠다고 선언하여 그것을 우리가 목격한 사람들인거죠.

저도 저 자신을 평가하고 지향하는 틀이 있습니다만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굳이 알리고 싶진 않습니다.
금연을 하면 금연을 하는 것이지, 나 금연한다 라고 떠들 필요는 없는 것이거든요.
나 금연한다 라는 선언이 실제 나의 금연에 도움이 될 수도 있긴 하겠습니다만..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도움에 불과하다고 봐서요.
사과씨
16/03/09 15:19
수정 아이콘
아 금연한다는 선언은 금연에 도움이 됩니다. 저도 그래서 끊었거든요! 크크
하지만 가치관의 틀을 타인에게 선언하거나 자가 규정을 하는게 필요없다는 입장은 저도 동의합니다.
켈로그김
16/03/09 15:30
수정 아이콘
저는 그 '입장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이라는게 하나로 통칭되어 잘된 노력/부질없는 노력 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사악군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는건 아니고요;)
분야나 위치에 따라 그 입장 자체가 허술한 토대 위에 서 있는 경우라면, 아무리 입장으로 돌아갈 노력을 열심히 한 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반대로, 의미가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요.

저는 사람이 어떠한 입장. 정체성을 갖고 있느냐는 그 본인의 성장이나 발전에 도움이 될 일종의 동력으로서는 가치가 있을지언정
입장으로 돌아간다는 방향성 자체는 가치중립적. 그러니까 그 자체가 장점/단점이 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사람은 자신의 입장에 충실하고 솔직하되, 동시에 얽메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그 것이 진정 자신만의 입장을 명확하게, 튼실하게 만드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입장으로 돌아가기 보다는, 입장을 커스터마이징한다? 이런 느낌으로..


입장을 천명한 이들에 대한 편견? 내지는 선입관? 을 버릴 계기가 된 글임에는 틀림이 없고,
제가 오역한 것일 수도 있지만, "입장을 갖는다는 것은 일종의 정신적 동력을 갖는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군. 그리하야 자신의 입장에 충실한 시간을 보낸 사람들은 어쨌든 그 충실한 시간과 경험만큼의 지식/지혜를 갖출 수 있겠군" 정도로 해석했네용.
16/03/09 14:16
수정 아이콘
헐? 아래의 논쟁을 보신 뒤에 바로 휘갈겨(?) 쓰신 글일 텐데, 미리 준비하지 않고도 이 정도의 글을 막 써내려가실 수 있는 그 능력이 부럽습니다.

찬사는 이정도로 하고,

언제서부턴가 저 스스로가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지지한다는 말을 거의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근데 그 이유가 본문과 일맥상통하면서도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어떤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려면 그 입장에 합치되는 삶을 살려는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해야하는데, 저는 그 어떤 이데올로기를 기준으로 보아도 그에 합당한 노력을 저언혀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저 개인과 가족, 친한 친구들에게는 자유지상주의자가 아니고서는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지만, 샌더스 캠프에 기부금을 내고, 그러면서도 상당수 샌더스 지지자들에 대해서는 악담을 퍼붓고, 동물 보호소에서 일하지만 스테이크는 없어서 못 먹고, 이공계 지망 여학생들에게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주면서 정작 자기 아내 커리어는 전혀 도와주지 못하고, 기타 등등등! 전혀 일관성이 없더란 말이죠.

근데 저 모든 것을 최소한의 수준으로라도 일관성을 가지고 이끌어가고 싶은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았는데, 그 결론이 '에라 그딴건 진지한 분들이나 하시라고 하고 나는 그냥 주변에 피해만 주지 말고 내 마음 가는 대로 살련다.' 더군요. 그러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능.

하지만 글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피지알뽕에 취한다~!!
글자밥청춘
16/03/09 14:29
수정 아이콘
피해만 주지 말자도 대단한 입장아닌가요 엄청 어려운건데..
대장님너무과민하시네요
16/03/09 15:14
수정 아이콘
음 그래서 마음가는대로 사티레브님을 탈퇴시키셨군요.
도로시-Mk2
16/03/09 15:36
수정 아이콘
크크크크크크크

솔직히 웃었습니다.... 미안합니다.
주인없는사냥개
16/03/09 15:44
수정 아이콘
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

이렇게 깊은 일침은 처음보는데요... 이쯤되면 침이 아니라 창 수준.
김퐁퐁
16/03/09 15:55
수정 아이콘
사실 저도 웃음을 참기 힘들긴한데, 조금 무례하지 않나 싶어요.
당사자분이 확인하시기전에 수정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6/03/09 15:59
수정 아이콘
흠 저도 웃긴 했는데 저격글이라고 보이기도 하고 애매하네요.
그래도 운영진분을 디스하는 댓글이라 참 웃프다 해야 할지요.
인간사료
16/03/09 16:27
수정 아이콘
몸쪽 꽉 찬 직구.. 그 사건은 누가 잘못했는지 너무 뻔하기 때문에 웃프네요.
별로 문제될만한 댓글은 아닌것 같습니다.
피노키오의코
16/03/09 16:27
수정 아이콘
정말 피지알 운영진은 아무나 못할 노릇이란 생각이 듭니다.
피노키오의코
16/03/09 16:40
수정 아이콘
좋은 글에 어깨가 무거워졌다 좋은 댓글에 다시금 가벼워지네요.
대장님너무과민하시네요
16/03/09 16:41
수정 아이콘
천군이니?
피노키오의코
16/03/09 16:44
수정 아이콘
아니아니.
16/03/09 23:05
수정 아이콘
크크크 세련된 대응이시네요.
cottonstone
16/03/09 14:24
수정 아이콘
어머 머시쪙.
시노부
16/03/09 14:26
수정 아이콘
베스트는 너와 내가 다름을 존중하고 인정해주시는거죠. 그러한 환경속에서 다양성이 생기는게 좋지않을까 하고 생각해본적이 있습니다.
현실은 [그래 니 생각도 알겠다. 너의 그런 점을 난 존중하지만 그래도 일단 내 생각이 무조건 맞고 너는 틀렸다] 가 되버립니다.
다시 한번 반성해봅니다 ㅠ_-
열역학제2법칙
16/03/09 14:31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애패는 엄마
16/03/09 14:38
수정 아이콘
잘봤습니다. 동감합니다.
Sydney_Coleman
16/03/09 14:42
수정 아이콘
다만 스스로에 대한 깊은 고찰 없이는 입장, 주의을 세우는 것도 성급한 노릇일 수 있겠지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퐁퐁퐁퐁
16/03/09 14:43
수정 아이콘
좋은 글이네요. [입장을 정한 사람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자신의 주장과 행동이나 언행이 일치하지 못했을때, 소위 배신을 했을 때 취해야 할 태도의 지향점은 존재합니다. 그것은 다시 입장으로 되돌아가려는 노력]이라는 부분이 특히 와닿네요. 얼마 전 본당 신부님이 고해하러 갔을 때,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합니다. 했던 실수를 하고 또 하지요. 하지만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려고 진심으로 반성하고 노력한다면, 언젠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겁니다.' 라고 하셨던 이야기가 생각나기도 하고요.
그런 면에서 저도 정말 못하는 거긴 하지만, 누군가 실수를 저지르고 반성했을 때, 그 사람을 매도하지 않고 받아줄 수 있는 포용력이 중요한 것 같아요. 낙인 찍지 말고요.
발라모굴리스
16/03/09 14:52
수정 아이콘
와 너무 좋은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절름발이이리
16/03/09 14:52
수정 아이콘
저는 평화주의자입니다.
후따크
16/03/09 14:55
수정 아이콘
논란을 생산적인 논의로 이어주시는 좋은 글이네요. 잘 보았습니다. 각자가 가진 비대칭적 '정신적 자산'에 대한 고려는 저도 자꾸 놓치는 부분입니다. 제 입장을 설득시키고자 조급함이 앞서는 경우가 종종 있네요.
16/03/09 14:59
수정 아이콘
제가 피지알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바보미
16/03/09 15:05
수정 아이콘
글이 정말 좋네요. 감사합니다. 추천합니다.
저글링아빠
16/03/09 15:11
수정 아이콘
"~주의자"라는 말이 너무나 선명해서 덧글들에서 규정짓는다는 단정적인 인상으로 연결되는 듯 합니다.
저는 조금 완화시켜서 삶의 지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자 정도로 읽고 싶네요.
훌륭한 사람은 지금까지 많은 것을 성취한 사람이 아니라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매일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키배를 포함하여 어떤 형태의 타인과의 교류들 역시 그러한 과정이었으면 합니다.

사이다같은 글 감사합니다.
사과씨
16/03/09 15:15
수정 아이콘
저는 사실 무슨 무슨 주의자라고 자가 규정하는 부류의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굉장히 혐오하는 유형의 사람입니다. 왜 그런고 하니
1. 본인 스스로 규정한 사상이나 생각의 체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가 떨어진다.
2. 본인의 정체성으로 규정한 생각의 틀과 매우 상이한 일상 행동을 보여준다. (좌파 지식인이라는 사람이 데이트 폭력을 행한다거나 애국보수주의자라면서 친일이력을 옹호한다거나..)
3. 본인의 생각의 틀을 자가 규정하는 것을 자신과 코드가 다른 사람과의 선전포고 쯤으로 오해하는 경향을 보인다.

본인의 입장을 명확히 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가치관의 외연을 확대하기 위한 좋은 움직임이겠죠.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당당하게 스스로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사람들이 글쓴 분이 의도하신 부류의 사람보다 제가 위에 적은 것과 같은 소아병 환자나 얼치기 교조주의자나 이기적인 욕망을 지적 허영이라는 악세사리로 위장하는 유형의 사람이 넷상이든 오프라인이든 훨씬 많은 게 현실이고 현실이었던 것 같습니다.

본인이 주장하는 가치나 사상에 엿먹이고 싶지 않다면 아무런 무게감이나 책임감 없이 자신을 규정하는 짓은 절대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른팔에서 흑염룡이 날뛰는 어린 소년들이라면야 뭐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나이 먹을만큼 먹고 배울만큼 배운 사람들은 본인들이 내뱉는 말에 얼마나 큰 의무가 따르는 지 좀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봐요.

그리고 이런 무슨 무슨 이즘이니 무슨 무슨 주의니 하는 철학, 가치관들이 다른 생각의 틀을 깔아뭉게거나 말살시키는 시대는 이미 종언을 고한 지 오래라고 보는데 그 가치관의 사도를 자처하는 인터넷의 투사들은 왜이리 자신과 다른 생각을 깔아뭉게고 무시하고 모멸하면서 못이겨서 안달인지 모르겠어요. 읽은 책들이 아까운 것 같습니다. (제대로 읽기는 한 걸까요?)
주인없는사냥개
16/03/09 15:46
수정 아이콘
저와 굉장히 비슷하네요. 저도 자칭 페미니스트라는 사람들이 마초이즘에 가장 가까운 행태를 부리는 걸 너무나도 많이 목격한지라, 대외적으로 자신의 사상이나, -주의같은걸 드러내고 다니는 사람들을 굉장히 비신뢰하게 되었습니다.
도로시-Mk2
16/03/09 15:52
수정 아이콘
공감합니다.

저도 그래서 좀 전에 댓글로

'저는 무슨 무슨 주의자, 주의자 입니다' 라고 [ 한창 댓글 달려다가 바로 취소 했습니다 ]


우리가 당당하게 자신이 '무슨 주의자' 라고 선언하려면 그 개념에 대해서 그만큼 정확히 알아야 하고,

자신에 대한 철저한 성찰이 선행 되어야 하는데 보통 그렇지 못하거든요.

님 말씀대로 무게감, 책임감이 있어야겠네요... 얕은 지식과 성찰로 함부로 자신을 규정하는 착각을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피아노
16/03/09 17:08
수정 아이콘
저도 동감합니다.
일종의 허언증 수준..
무식론자
16/03/10 10:26
수정 아이콘
공감합니다.
나는 xx론자다 하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사람 못 봤어요.
....써놓고보니 이거 셀프디스네
이치죠 호타루
16/03/09 15:15
수정 아이콘
추천합니다.
반복문
16/03/09 15:18
수정 아이콘
김치남,씹치남은 괜찮은대 한남충 이라는 단어가 기분나쁘게 생각되는거 보면
언제생각해도 벌레라는 단어가 참묘하네요
Anthony Martial
16/03/09 15:38
수정 아이콘
저는 입장을 가지고 있지만 밖으로는
절대 내뱉지 않는 스타일입니다
대외적으로는 절대중립 양비론 컨셉이죠

본문에서 말씀하신 입장에 대한 책임을 지기 싫어서요

그렇지만 쓰신 내용에 비추어 보면
저는 입장이 없는 사람이 아니네요
중립주의자였어요.
지금뭐하고있니
16/03/09 15:53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글링아빠님이 제가 하고 싶은 뉘앙스의 말을 이미 하셨지만..제 말을 하자면... 2번째 내용에서 얘기되는 입장 개념이 조금은 다른 느낌이 있습니다. 일부는 ~주의자 같은 입장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어떤 이슈에서 발화자가 점하는 위치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전자의 의미 범위가 좁으니 후자는 당연히 포함되겠습니다만)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그 어떤 부분 (특히 입장을 갖는 것의 장점을 말하는 부분)에서는 굳이 '~주의자'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도 '발화자의 책임있는 위치'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 맥락에서 보면, 전자의 입장에서 '합리'를 비판합니다만, 후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합리'라는 문제접근법 자체가 문제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의자라고 스스로를 명명한다고 해서 굳이 책임이 늘어나지는 않습니다. ~주의자라고 해도 그 내부에서 당사자의 위치는 무수히 다양하기에 - 당장 제일 간단해 보이는 베지테리언마저 십여가지에 가깝게 입장이 나뉩니다 - 애초에 책임을 안 지려는 사람은 그런 맥락과 무관히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나는 나의 의견과 위치에 책임을 진다'는 사고가 책임을 늘리죠.(이런 의미에서라면 '입장'이란 표현이 맞는데, 이 입장은 앞의 '~주의자'라는 입장과는 다른 거 같거든요) 저는 그런 점에서 사람들이 ~입장을 가지기 보다는 말과 위치에 책임을 지니길 바랍니다. 그 책임이란 고교 일반사회 시간에 배웠던 것 그대롭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주장이 틀렸다고 판단될 때까지 이성적으로 주장하며, 틀림이 판단/확인될 때는 옳음을 추구하는 것이 올바른 사회적 시민의 자세이다.
jjohny=쿠마
16/03/09 16:06
수정 아이콘
2016년 3월 현재 제 머리 속을 가장 많이 채우고 있는 '입장'이 뭔가를 생각해보니 다음과 같네요.

기독교
성소수자인권
성차별/여성혐오 반대

이 중에 나는 OO이다 라며 스스로 떳떳하게 정체화하는 것은 '기독교인' 밖에 없습니다. 저는 성소수자인권운동가도 아니며, 페미니스트로 자신을 규정해도 되는지 역시 자신이 없습니다. 요즘 더 많이 접하고 고민하게 되는 이슈는 오히려 뒤의 2개인데, 그 둘보다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을 규정하기가 쉬운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보니...

... 요즘은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이 딱히 무언가를 책임져야 하는 이름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전광훈 목사, 소강석 목사 같은 사람들도 기독교를 대표한다며 떵떵거리는데, 나 하나 기독교인이라고 한다고 뭐 그리 달라지겠나 싶어서... (...)

----------------------------------------

글자밥 청춘님이 느끼시는 괴리와 비슷한 괴리 때문에 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 등으로 규정하기를 주저하고 있지만, 사실 그러한 괴리는 이미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규정하는 분들도 어느 정도는 가지고 계시겠죠. (자조였는지 농담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정희진 씨도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도 들었고...) 가부장제 남성중심/이성애중심주의 사회에서 평생을 살아온 영향이란 건 아무리 씻어내도 잘 씻어지지 않으니까요.

역시 자신을 OO주의자로 규정하는 데에서 멈춰버리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마스터충달
16/03/09 16:09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두고 두고 읽어도 좋은 글이네요. 추천을 하나 밖에 못 주는 게 이렇게 아쉽게 느껴지긴 또 첨이네요 ㅠ,ㅠ
16/03/09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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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그래서 전 PGRist 입니다!
아무무
16/03/09 17:24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세상의빛
16/03/10 10:07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16/03/10 10:08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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