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7/08/01 15:49:05
Name 로랑보두앵
File #1 curious_benjamin.jpg (84.4 KB), Download : 61
Subject [일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안녕하세요.

<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라는 영화 보셨나요? 영어 원제는 <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  입니다.

위의 브레드 피트의 젊은 모습을 CG로 만들어내어 화제가 됐었던 영화이기도 한데요, 그러고보니, 벌써, 한 9년전인가요, 그당시 한참 썸타던 여자인 친 와 이 영화를 보고난 후 설렘반 흥분 반으로 피지알에 영화 후기를 썼던 기억이 납니다. 그뒤로 잘 만나고, 잘 헤어지고, 결혼한다고 소식들었던 게 제작년인 것 같네요. 그 아이가 그립다기보다도, 뭔가 이 지나간 시간들을 피지알과 함께한 느낌? 이 들어서 기분이 묘하기도 하고 좋네요. 그러고보니 그때도 위와 같은 이미지를 올렸었네요 ^^

이 글은 지나간 인연 이야기도, 영화 리뷰도 아니구요(스포 걱정은 크게 안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요새 불현듯 드는 생각들과 감정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큰 맥락은, 브레드피트가 거의 죽기 직전의 노인으로 태어나고, 시간이 흐를 수록 젊어지는, 한마디로 나이를 거꾸로 먹는 설정의 영화입니다. 설정 자체가 저는 굉장히 신선하다고 생각했었는데요, 그와 별개로 영화자체는 훈훈함과 밝음으로 꽉 차있는 매우 따뜻한 영화입니다.

브레드피트와 브레드피트가 어릴적부터 짝사랑하던 동내 여자아이의, 젊어져가며 그리고 늙어져가며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는 이야기가 주된 내용인데요, 영화가 중반을 지나며 그 둘의 시간이 겹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침내 그들의 시간이 비슷해 지며, 가장 열렬히 사랑할 수 있는 아름다운 시간이 되었지만, 곧 그 시간은 영원히 멀어지게 되는 길로 들어서게 되기에, 영화 전반에 있어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장면으로 기억합니다.

많이 뜬금없지만, 저는 요새 저와 제 부모님이 바로 그 골든타임에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30대 초반의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나이입니다. 부모님은 작년에 두 분 모두 환갑을 치루시고, 사회전선에서 물러나실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반대로 저는 공부가 길어져, 이제 곧 사회전선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지요. 얼마전 결혼기념일을 맞이해서 부모님은 여행도 다녀오시고, 다행히도 정정하십니다. 곧 손주도 보시게 될 것 같고, 자식들 딱히 돈 들어갈 일은 없고, 힘들고 치열했던 시기는 지나, 조금은 편안히 즐길 것 즐기시며 지내실 수 있는 시간으로 접어드신 것 같습니다.

어렸을 적 부터, 부모님은 그저 '어른' 이라는 존재로 제 평생 존재해 왔던 것 같습니다. 저는 반대로 '아이' 였구요. 제가 20대 후반을 거쳐 30대가 되면서, 빠르게 저는 아이에서 어른이 되고, 뭐랄까. 어른이 됨에 가속이 붙는 느낌이 듭니다. 반대로 그동안 느리고, 천천히 어른의 시간으로만 계시던 부모님은 곧 어른 넘어의 또 다른 시간으로 넘어갈 준비를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지금. 지금 이 시간이 저와 제 부모님에게 있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어른'으로서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정말 아름답지만 너무 짧아 슬픈 그 골든 타임인 것 같습니다.

저는 인생을 여러 번 살아보지 않아, 뭐가 맞고 틀린지 모르지만, 이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을 것 같은 그냥 그런 느낌이 듭니다. 네. 효도해야지요. 근데 길지 않은 시간이기에 벌써부터 안타깝고, 괜히 울적해진다기 보다도, 그냥, 아 이게 '산다' 라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너무 바쁘고 정신없고, 그저 힘들고 하다가도, 그냥 갑자기 문득 이런 생각들이 스치울 때마다, 이렇게 조금씩, 하나하나 느끼면서 알아나가는 거구나. 그래 이렇게 시간은 흘러가는 거구나...

학교다닐 때 강의 도중에 교수님께서 갑자기 '자네는 인생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라는 엄청난 질문을 하셨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저는 너무 당황해서 아무생각 없이 '인생은 정답이 없는 것 같습니다' 라고 했고, 교수님께서는 '내 생각에는 인생은 자기가 행한 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과정의 연속인 것 같다' 라고 말씀하셨었습니다. 사실, 제가 평소 생각하던 인생이란 무엇인가의 답과 일치해서 굉장히 놀랐던 기억이 있는데요, 그냥 그렇게 후회없이 행하고, 그것의 결과에 온전히 책임 질 수 있는, 그런 시간을 저는 계속 걸었으면 좋겠습니다.

글이 참 두서없고 정신없네요. 흐흐흐. 매번 피지알에 글을 쓸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피지알이 있어 참 다행이고 고맙습니다. 9년전 그때나 지금이나, 피지알이기에, 이렇게 제 생각과 감정들을 공유하고 기억 한편에 모아 둘 수 있습니다. 다들 좋은 하루 되세요^^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지옥염소
17/08/01 16:01
수정 아이콘
저보다 2-3살 어리신 거 같은데, 글을 읽고보니 묘하게 공감이 많이 되네요.
부모님과 더욱 좋은 시간 많이 보내시길 빌어요^^ 그리고 저는 좋은 시간 = 특별한 시간 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하루하루의 평범한 일상들이 지나고 보면 다 좋은 시간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Luv (sic)
17/08/01 16:11
수정 아이콘
저랑 비슷한 생각이라 공감이 많이 되네요. 오늘은 스연게에 있는 부산이 2032년 올림픽을 유치하려 한다는 글을 보고 '잠깐 2032년이면 엄마 나이가 어떻게 되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새삼 현재의 시간이 참 소중하다는걸 느끼게 되더라구요. 오늘 하루도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일들로 가득 채워나가시길 빕니다! ^^
17/08/01 16:18
수정 아이콘
좋은 글이네요 . 제가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입니다.
AeonBlast
17/08/01 16:31
수정 아이콘
본문과 상관없는 댓글이지만 원작소설은 그닼이였어요...
신용운
17/08/01 19:03
수정 아이콘
원작소설은 거의 블랙코미디에 가깝죠..
나른한오후
17/08/01 16:50
수정 아이콘
좋은글 감사합니다!
낭만없는 마법사
17/08/01 16:57
수정 아이콘
여러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인생의 순간 순간이 아름답고 빛나지 않을지언정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건 그 순간 순간이 우리가 내색은 안할지라도 소중하기에라고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정말 인생을 흙탕물 튀기면서 보내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저도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닌지 생각도 해보고요. 다들 앞으로도 좋은 시간 보내시길
17/08/02 02:10
수정 아이콘
로랑보두앵님 덕분에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네요.
감사합니다.
지니팅커벨여행
17/08/02 07:30
수정 아이콘
최근(?)에 본 몇 안 되는 영화 중 하나네요.
저도 감명깊게 봤습니다.
골든타임이 지나면 영원한 이별로 간다... 참 멋지면서도 슬픈 말이네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73144 [일반] “하루아침에 내 가게가 사라졌어요” [14] 유리한12477 17/08/02 12477 0
73143 [일반] 17년전 군대 시절 과외하던 이야기 [64] 아하스페르츠10939 17/08/02 10939 37
73142 [일반] 알쓸신잡과 미토콘드리아 [10] 모모스201311174 17/08/02 11174 11
73141 [일반] 2011년도 "MB 대정전"이 노무현 탓이라는 논리는 궤변중에 궤변! [116] 마빠이12759 17/08/02 12759 19
73140 [일반] 부실비리의 종합선물세트인 서남대 폐교를 둘러싸고 말이 많네요 [53] 군디츠마라12537 17/08/02 12537 1
73139 [일반] 이용주 의원 “특혜취업 의혹, 여기서 끝내자” [46] galaxy10910 17/08/02 10910 3
73138 [일반] 이해의 밥상 [9] Eternity5389 17/08/02 5389 30
73137 [일반] 임대소득(불로소득)과 관련해서 생각해본 간단한 정책 [62] 파란무테7878 17/08/02 7878 0
73136 [일반] 이번 부동산 정책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이유. [102] 김블쏜11936 17/08/02 11936 0
73135 [일반] 北 미사일, 10분 차이로 여객기 충돌 모면 (내용추가) [34] 홍승식10063 17/08/02 10063 5
73134 [일반] [토막글] 유럽 역사 속 실존했던 얀데레 [5] aurelius7177 17/08/02 7177 4
73133 [일반]  "공관병에게 전자팔찌 채워 호출벨..노예였다" [72] 태랑ap11311 17/08/02 11311 6
73132 [일반] 유게 수련회 글을 보고 생각난 알바 경험담 [19] CoMbI COLa7265 17/08/02 7265 1
73131 [일반] 자유한국당 혁신선언문 전문 [83] 어리버리8908 17/08/02 8908 0
73130 [일반] [뉴스 모음] 걸어다니는 종합병원 임종석 비서실장 외 [30] The xian11618 17/08/02 11618 51
73129 [일반] 여자친구 새 앨범 발매기념? 이어폰 추천드립니다. [31] 우리은하7270 17/08/02 7270 3
73128 [일반] (감상평:스포포함) 덩케르크 vs 군함도 : 음악적인 측면에서 [26] 부대찌개5340 17/08/02 5340 0
73127 [일반] 아시아 슈퍼 그리드 [31] 나성범8435 17/08/01 8435 2
73126 [일반] 안철수의 당대표 출마설이 루머가 아니게 되고 있네요. [142] 어리버리14600 17/08/01 14600 6
73125 [일반] 네이마르는 바르셀로나를 떠나야 한다! [36] 또리민7350 17/08/01 7350 4
73124 [일반] 초지능 AI에 대한 오해와 진실... [22] Neanderthal9844 17/08/01 9844 6
73123 [일반] 홍준표 대표님께서는 휴가때도 공부를 하시는군요. [53] 닭장군11091 17/08/01 11091 0
73122 [일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9] 로랑보두앵6286 17/08/01 6286 23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