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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11/01 11:17:17
Name 드러머
Subject [일반] 시를 써 봤습니다

자게에 글쓰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한 달 사이에 생각나는대로 써 보았는데 아직 부족함이 많아요 :)
글쓰기도 살면서 처음이라 시작할 땐 막막하더군요 흐흐
PGR에는 글 잘 쓰시는 분들이 많아 올릴까 말까 고민했습니다만, 일면식 없는 여러분에게 평가 받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아 올려봅니다.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주제는 [외로움][죽음]입니다.
최근 몇 달 동안 개인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웠던 일들이 있었는데, 따로 주제를 정해놓지 않고 손 가는대로 썼더니 이런 시들이 나왔네요.
그 심경이 글로 표현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모쪼록 냉정한 평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D





[외등]

흩날리는 눈의 파편이
어지럽게 흩어집니다

눈을 껌뻑이며

검고 매서운 바람 부는데
아무도 내 아래 설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하나, 둘 떠난 거리
다시
하나, 둘 아스팔트 내음 맡는 소리

그제야 당신이 들어옵니다
내 작은 원 안에
부디 오래 서 있길



[죽기 전에]

잠이 오지 않는다

바닷가에 누워 잠드는 과객에게
파도 소리는 과히 크고 가까웁다

잠이 조금 들다가도 어느 순간
큰 물이 땅에 부닥쳐 허물어지는 소리에
깨는 일이 반복된다

물비린내가 짙어졌다

밀물이 몰려와서 이렇게나 크게 들리는 것이 아닌가
밖을 내다보기도 했지만
바다는 태연히 제자리에서
다만 호흡하듯 흔들리고 있다

잠은 끈질기게 오지 않는다
난 바다를 좋아한다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어버린 건지 납작한 숲이 그립다



[마네킹]

쇼 윈도를 사이로 쳐다보는 마네킹을 보니 왠 걸,
어깃장 부리는 듯한 표정의 검은 코트가 눈에 들어온다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바지를 입지 않았구나
이윽고 나는 주섬주섬 바지를 벗는다
가게를 박차고 들어가 점원에게 바지를 건네 주었다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가게를 나섰다



[죽기 전에 2]

엄지의 사용법은 눈물을 닦는 용도이다
목적이 없는 자유는 한없이 지루하고
머뭇거리며 발을 내딛는 내게
이불 새로 스미듯 퍼지는 냉기가 곤혹스럽다
날 쳐다보지 마라
부감(俯瞰)하는 듯한 눈으로 꼬나보지 마라
내겐 엄지가 하나뿐이니



[석호(潟湖)]

무기질에 살결을 포개어 누우면
아무래도 난 살기 그른 듯 싶다
운반되어온 토사가 가볍게 몸을 짓누르면
그제서야 나는 죽고자 마음 먹게 된다
이윽고 찾아온 슬픔을
석호(潟湖)같이 굳어버린 마음을
한 입 베어 문다
뱃 속 가득 짠 내음이 몰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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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인간
17/11/01 11:34
수정 아이콘
각 시들의 배치 순서도 마음에 들고, 표현이 어딘가 예스러운 맛이 있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평소에 어떤 시들을 즐겨 읽으시는지 궁금합니다.
드러머
17/11/01 12:04
수정 아이콘
부끄러운 것이... 평소 읽은 시집이라고 해봐야 김용택 시인이 엮은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말곤 전혀 없습니다 ㅠㅠ 예스러운 맛이 있다고 하셨는데 정확하게 짚으신 겁니다. 최근 나오는 시집들을 읽어본 적이 없거든요 ^^; 아무래도 본업이 음악 계열에 있다보니, 오히려 노랫말에서 영향을 더 크게 받은 것 같습니다.
17/11/01 11:42
수정 아이콘
습작 좀 해보신 게 아니라 처음 쓴 거면 되게 잘 쓰시는 것 같은데요? 특히 '석호(潟湖)같이 굳어버린 마음을/한 입 베어 문다/뱃 속 가득 짠 내음이 몰려든다' 이 부분은 꽤 인상적입니다. 다만 설명하는 식으로 구성된 부분(예를 들어 '아무도 내 아래 설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난 바다를 좋아한다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어버린 건지 납작한 숲이 그립다'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가게를 나섰다' '그제서야 나는 죽고자 마음 먹게 된다' 등)은 아쉽습니다. 정진하시란 의미에서 추천 하나 꾹.
애패는 엄마
17/11/01 11:48
수정 아이콘
이 평에 동감합니다
드러머
17/11/01 12:08
수정 아이콘
(수정됨) 습작은커녕 제대로 글을 쓰고 배운 적이 없다보니 말씀하신 표현에 있어서 공감하고, 또 부족함을 느낍니다. 아직은 경험치가 낮다보니 좋은 글이 나오지 않는 것 같네요 크크 후한 평가 감사합니다. 틈틈이 책도 많이 읽고 글쓰기 모임도 한 번 만들어 봐야겠습니다.
파니타
17/11/01 11:55
수정 아이콘
오늘 너는 대한민국이었다

온 나라가 너를 기다렸다.
온 나라가 너의 날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온 나라의 눈이
너를 보았다.

온 나라의 눈이
네 하늘이 춤을 보았다.
솟아오르는 지상의 네 불길을 보았다.
흘러온 물
굽이쳐 가는 물을 보았다.
네 쏜살 날려
네 별빛 쏟아졌다.
네 바람찬 벌판으 넋을 보았다.

오늘 너는 태극기였다.
오늘 너는 대한믹국이었다.
대한민국의 동서남북이었다.
아니,
오늘 넌 온누리였고
온누리의 대한민국이었다.
장하다는 말
멋지다는 말
예쁘디 예쁘다는 말 낡았구나
새로운 말을 찾아야겠구나

연아

너는 온 나라의 감동이었구나
온 누리의 감동이구나

어서돌아오라
돌아와
한번 더 손을 흔들어라
한번 더 뜨거운 물으 씨어내라

연아!

-시인 고은


고은 선생님에 비견해도 부족할 게 없는 시라고 생각합니다.
드러머
17/11/01 12:10
수정 아이콘
고은 선생님에 비교해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ㅠㅠ 앞으로 잘 쓰라는 평으로 알고 열심히 써 보겠습니다.
17/11/01 17:20
수정 아이콘
와... 정말 괜찮은데요. 잘 봤습니당.
드러머
17/11/01 17:50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
17/11/01 19:54
수정 아이콘
아주 좋네요. 감사합니다.
드러머
17/11/01 20:21
수정 아이콘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ㅠㅠ
김성수
17/11/01 20:11
수정 아이콘
잘 읽었어요 !
드러머
17/11/01 20:21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 힘이 되네요 크크
오히모히
17/11/03 04:30
수정 아이콘
외등이 아주 좋았습니다 저는
드러머
17/11/03 16:46
수정 아이콘
좋으셨다니 다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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