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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03/20 11:09:51
Name happyend
Subject [일반] 인생
인생

위화 소설 <인생>이 픽션이라면 이 이야기는 논픽션입니다. 그러나 소설 <인생>에서 제목만 빌려온 것은 아닙니다. 이야기의 가독성을 위해서 ‘습니다’체가 아니라 ‘했다’체 인점 양해바랍니다. 사투리는 모두 표준어나 서울말로 바꿨습니다.

1. 101번 버스 속 어느 인생

제주동쪽 작은 마을이 고향인 나는 공항에서 내리면 처음엔 201번 버스를 이용했다. 이 버스는 공항에서 서귀포까지 무려 150개가 넘는 정류장을 거치는 완행버스이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만해도 직행버스가 있었다. 그러나 제주도 다른 곳 못지않게 농촌인구가 줄었고, 승용차가 보급되면서 직행버스도 운행을 하지 않게 되었다. 완행버스는 장거리-라고 해봐야,제주에서는 50킬로미터 내외이긴하지만-방문객을 위한 버스가 아니라, 읍내를 생활권으로 하는 학생과 노인들을 위한 교통수단이었다. 노인들이 시내로 가는 이유는 큰병원에 가는 경우뿐인데 그런경우는 엠블런스나 자식들의 승용차를 탄다.

재작년에 제주에 101번버스가 다니기 시작했다. 이 버스는 공항에서 서귀포까지 201번 버스의 1/10 정도의 정류장에서만 정차하는 직행버스이다. 이 버스가 생긴 이유는 갑자기 시골에 인구가 많아져서도 아니고, 생활권이 넓어져서도 아니다. 오로지 외지인 방문객들을 위한 버스였다.
나 또한 외지인이나 마찬가지라 이 버스를 이용한다. 버스 기사는 개그콘서트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영어와 중국어로 관광객들에게 버스에 대해 소개하고 안전벨트를 맬 것을 주문한다. 공항에서 버스에 오른 외지인들은 그 순간부터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하루는 공항에 도착한 뒤 어느 70대 여자분이 버스기사를 향해 엄지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유어멘트 베리 익스프레시브.원더풀”

동쪽 마을에서 공항으로 갈 때도 101번버스를 이용한다. 대부분은 관광객들이고, 그들은 공항으로 가는 승객들이다. 그래서 공항까지 오르는 사람은 있어도 내리는 사람은 거의 없고, 흔히 시골버스에서 보이는 두가지 풍경, 노인이 보따리부터 올리고 힘들게 올라온다거나 아는 사람을 버스에서 만나 수다를 떤다거나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모두 조용히 창밖 풍경을 보거나 여행지에서의 일들을 회상하고 있다.

함덕에서 101번 버스에 제주의 노인이 탔다. 노인이라기엔 매우 젊게 보이는 60대 후반의 여인이었다.
-제주대학병원 갈 수 있어요?
버스기사는 매우 친절하고 유쾌한 남자였다.
-물론입니다. 동광양에서 버스를 갈아타시면 됩니다.
여인은 운전사 뒷자리에 어긋나게 앉았고, 오랜만에 제주사람을 만나 반가운 버스기사는 말을 붙였다. 버스기사의 목소리도 여인의 목소리도 경쾌했고, 듣기 좋았다. 일상적인 대화가 오간 뒤에 여인이 말했다.
-요즘은 귤을 따러 다니는데 재미붙였어요.
-귤 따시는군요.
-네. 돈은 충분히 있어요. 그냥 재미로 다녀요. 당근도 캐러 나가긴 하지만 귤따는게 제일 편하고 재밌어요.
-그렇죠. 귤은 서서 따고, 당근은 앉아서 캐니까요.
-당근캐는 것도 재밌어요. 나가면 사람들하고 말을 할 수 있으니까요.
-혼자사시나봐요.
-네. 몇 년전에 남편이 당뇨로 세상을 떠났거든요.
-자식은요?
-아들하나 딸하나. 아들은 탑동에서 호텔에서 일했어요. 하루는 아침에 집에 오더니 ‘엄마, 밥좀 주세요.’하는 거에요. 그래서, 오냐,내 아들.하고 밥을 차려주었더니 맛있게 먹고 나가더라고요. 아들은 밤근무를 마친 뒤라 졸렸나봐요. ‘실컷 잠이나 자야겠어요.’ 하면서요. 그날은 몹시 더운날이었는데, 점심때 넘어서 경찰에서 전화가 왔어요. 내아들이 차에서 에어콘을 켜고 자다가 죽었다고 하더라고요. 서른네살에 장가도 못가보고 죽었어요. 남편도 그 뒤로 세상을 떠났어요

여인의 말은 담담하고 낭랑했다. 버스기사는 잠시 뜸을 들였다. 아까보다는 훨씬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손주보는 재미로 사셔야겠네요.
-딸은 부산에 시집 갔어요. 정말 금슬이 좋은 부부에요. 그래서 결혼하자마자 애를 가졌죠. 그런데 그만 딸이 임신 3개월만에 넘어져 유산을 했는데 다시는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해요. 내가 아기들만 보면 눈이 튀어나올정도로 좋아요. 귀여워서요. 그런데 손주를 한번도 안아보지 못했어요.

버스기사는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여인도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버스안의 승객들은 사투리를 알아들었을까? 기분탓인지 몰라도 분위기가 무거웠다.
이윽고 버스는 동광양에 도착했다. 여인은 내렸고, 버스기사는 직접 내려서까지 제주대학병원으로 가는 버스정류장을 알려주었다.

101번 버스는 아직도 외지인들만 태우고 다닌다.


2. 104살 노인의 인생

부모님이 편찮으셔서 고향에 드나들 일이 많아진 나는 향토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런데 외지인이 점점 많아지고 노인들은 하나둘 세상을 떠나다 보니, 옛시절을 증언해주실 분들이 점점 사라져갔다. 그러다가 어떤 사건의 증언자가 살아계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렵게 연락처를 구해서 찾아갔다.

노인은 104세였고, 하반신을 쓰지 못해 누워계셨다. 눈도 더 이상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놀라울만치 기억력은 좋았고, 논리적이었다.

간단하게 필요한 취재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노인이 내 손을 붙잡았다.
-조금만 더 있다가 가.
-외롭지예?
-응.

순간 울컥해져서 눌러앉았다. 밖에서 볼 때 집은 깨끗하고 넓었지만 방안은 정리정돈이 안되어있었고 소변주머니를 비롯해 악취가 풍겼고, 비교적 젊은 아들내외가 돌봐주고 있었지만 둘다 장애인이라고 했는데, 자세히 보니 정신지체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초등학생인 손자가 하교를 했는지 옆방에서 엄마와 종알대고 있었다.

노인은 내가 A마을 출신이란 사실을 매우 반가워했다. 우리마을은 지도에도 어지간하면 나오지 않는 아주 조그만 마을이다. 우리마을 출신을 만나는 것은 제주안에서도 드물다. 그런데 노인이 내가 그 마을 출신이란 사실만으로 점점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노인은 일제 때 일본에서 공부하고 해방후에 돌아왔다. 일제 강점기 때엔 아버지와 고모가 돈을 보태서 마을에 학교를 세워줄 정도로 교육열이 높은 집에서 태어난 노인의 꿈은 교사였다. 정말로 교사가 되고 싶었다.

해방 후, 제주도는 소용돌이에 빠졌다. 1947년 3.1절 집회에서 경찰의 발포로 6명이 죽고 6명이 부상당하는 이른바 ‘3.1 발포사건’이 일어난 뒤로 경찰과 주민간의 충돌은 심했다. 노인의 사는 마을도 그랬다.

노인의 사는 마을은 일제때에 농민운동, 음악운동, 해녀항쟁참여와 같은 청년운동이 끊임없이 벌어진 곳이었다. 마을은 가난해서 소금도 구워팔았다. 제주는 어디나 콩농사가 잘되었지만, 이 마을만은 콩농사가 안되었다. 습하고 짠 흙이 콩의 발육을 막았다. 그래서 된장을 담아먹을 수 없어서 어간장을 담아먹었다고 한다. 제주에서 유일하게 논농사가 되는 곳이기도 했고, 그러다보니 마을사람들의 협동심이 남달랐고, 청년들의 의협심도 남달랐다.

3.1발포사건 이후 좌익청년들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면서 청년단체를 불법으로 만들자 이 문제를 의논하려고 마을 청년들이 모였다. 노인은 교사가 될 생각이었으므로 일체의 마을활동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일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날의 일이 노인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갈줄은 꿈에도 몰랐다.

청년들은 아이들을 보초로 세워놓고 회의를 했지만 순찰나온 경찰은 오히려 이걸 수상하게 여기고 집회장소를 급습했다. 딸랑 세명으로 백여명의 장정들 앞에 나선 기백은 놀라왔지만 청년들의 혈기 또한 무시무시했다.
‘우리가 죄지은것도 없는데 왜 단속이냐?’
이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경찰관은 위협을 느껴 바닷가로 도망치다 잡혔다. 흥분한 청년들에게 오히려 붙들리어 포박당한 경찰은 목숨은 건져돌아갔지만 일은 그후부터였다.
서북청년단으로 구성된 경찰부대가 마을을 뒤져 청년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청년들은 친척집에 숨었다가 잡히고, 배를 타고 밀항하려다 잡히고 순식간에 백여명이 잡혀 40여명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일부는 밀항하고, 일부는 산으로 도망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있었던 청년들은 목숨을 건지기 위해 우익청년으로 전향했다. 그 중 한명이 임가였다.

1년 후 4.3이 터진 후 산사람(무장대)과 토벌대간의 살육전이 시작되었다. 노인의 마을은 그 사건의 영향으로 마을 자위대인 민보단의 활동이 활발했고, 민보단장 선거를 둘러싼 암투 끝에 임가가 단장자리에 올랐다. 임가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마을 청년들을 토벌대에 넘기기 시작했다.

산사람들은 그걸 그냥 넘길리 없었다. 어느날 밤, 마을을 급습하여 경비를 서는 청년들을 잡아갔다. 그중에 노인도 있었다.
노인은 마을 청년 모두가 민보단에 가입해서 마을 경계를 서는 일에 차출되었는데, 하필 노인이 경계를 서는 날 산사람들이 내려온 것이다. 그때가 1948년 11월. 아직 제주에는 추위가 닥치지 않은 때였다.

노인은 어느 오름으로 끌려갔다. 같이 끌려온 동네 청년들은 모두 살해당했다. 그런데 산사람 행동대장이 바로 노인의 학교동창이자 우리마을 사람이었다. 행동대장은 노인을 살려주었다. 그것이 아마 내게 마음을 열고 자신의 얘기를 해준 이유였을 것이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지만 산으로 갈수도 집으로 갈수도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노인은 여기저기를 떠돌기 시작했다.

토벌대의 학살은 제주도 전체에서 잔인하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산사람들은 이에 대한 응징을 한다면서 읍내의 지서를 습격했고, 마을을 불태웠다.

그러나 그것은 피의 보복을 불러왔다. 이튿날부터 인근 마을 사람들이 보복학살을 당하기 시작했다. 그때 노인의 가족도 학살당했다. 임가는 노인을 무장대에 가담하기 위해 산에 올랐다고 고발했고, 노인의 가족들을 모조리 끌고나왔다. 나이든 부모, 한두번 들으면 아무리 긴 불경이라도 줄줄 암송했을만큼 똑똑했던 고모, 그리고 어린 아들과 아내까지. 임가의 손가락이 그들을 가리켰고, 토벌대는 단한번의 망설임도 없이 총을 쏘았다.

산에서 산을 옮겨다니다보면 도피자들도 만나고 학교동창이 이끄는 행동대도 만났다. 그들로부터 이소식을 들은 날은 창자가 끊어지도록 울었다. 그러나 산으로도 집으로도 갈 수 없는채 추운 겨울을 떠돌았다.

1949년으로 접어들자 토벌도 잠잠해졌다. 노인은 집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맡기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당시 토벌대는 마을을 빙 둘러 성담을 높이 쌓았다. 제주에는 널린게 돌이고, 밭담도 돌로 되었으니 마을 사람들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전부 성담쌓기에 동원했다. 노인의 집은 바로 그 성담아래에 있었다.

집에는 형님가족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집에 들어간지 한시간도 못되어 노인은 체포되었다.
-살기위해 그런거야. 나라도 그랬을거야. 원망하지 않아.
노인은 자신을 밀고한 형수에 대해 조금의 원망도 가져본적이 없었다고 했다.

작년 11월에 붙잡혀갈 때 입고 있던 옷 그대로 입은 채로 읍내 지서에 갇혔다가 다시 시내 농업학교 운동장에 설치된 임시수용소에 갇혔다. 그곳에서 재판을 받고 곧 풀려나올때까지도 그 옷 그대로 입은 채였다.

마을에 돌아온 뒤 노인은 곧 보도연맹에 가입해서 간부가 되었다. 사무실은 성산포경찰서앞에 있었다. 성산포경찰서장은 만나면 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함부로 나다니지 마시오.
성산포에는 서북청년단이 머무르면서 수많은 학살과 만행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서 예비검속이 벌어졌고, 그로인해 제주에서 천여명이 쥐도새도 모르게 수장당하거나 총살되었다. 예비검속은 법적인 근거도 없었지만, 한강다리를 끊고 부산까지 도망가는 이승만은 자신의 뒤에서 좌익들이 일어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질까봐 보도연맹 가입자들을 쥐도새도 모르게 죽였다. 이사건은 제주에서는 ‘예비검속자 학살사건’이라고 하고, 육지에서는 ‘보도연맹사건’이라고 한다. 수십만명이 학살당한 이 사건은 이승만이 철저히 감췄다. 이 학살의 진행자였던 이들이 바로 5.16쿠테타의 주역들이다. 그래서 일부에선 예비검속사건이 드러날까 두려워 쿠테타를 벌였다고도 한다.

노인도 예비검속자로서 처벌대상이었다. 그러나 성산포경찰서장은 이 명령을 거부했다.
‘부당하므로 이행하지 않는다.’
서장의 이름은 문형순이었고, 이북출신으로 구성된 제주도 경찰간부들 중에서 유일한 독립운동가 출신이었다. 나머지는 전부 친일경찰간부 혹은 만주군 장교출신이었다.

노인은 다시한번 목숨을 구했다. 그리고 곧바로 군대에 자원입대했다. 나이가 많아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었지만 당시 제주도 청년들 모두가 그랬듯이 세탁하고 싶었다. 빨갱이가 아니란 것을 보여줄 길은 그것뿐이었다.

제주도 해병대, 제주도 출신 군인들은 귀신도 때려잡을만큼 열심히 싸웠다. 노인도 그랬다. 게다가 인텔리였기에 곧 사무직으로 발령받았다. 그에겐 카빈총이 지급되었다.

휴가를 나올때에도 총기를 휴대할수 있었다. 맨먼저 고향에 도착한 날. 자신을 보고 당황하던 임가를 향해 총구를 겨누는 꿈을 수없이 꾸다 귀대했다.

전쟁이 끊나고 돌아온 노인은 바라고 바라던 교사가 되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5.16쿠테타가 일어났고, 정보기관 형사들이 끊임없이 학교로 찾아왔다.
-굶어죽을지언정 마음편히 살고 싶었어.
노인은 학교를 그만두고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무일푼에서 시작, 농협이사까지 지낼정도로 성공했다. 다시 결혼해서 늦게 아이들을 낳았는데 막내를 제외하곤 다 성공했다. 못난자식효도한다고, 고향에서 노인을 돌보는 것은 장애를 가진 막내였다. 그러나 노인은 외로웠다. 막내부부는 노인과 지적인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노인은 우리마을 출신 강순경을 그 아들의 결혼식 때 만났다. 강순경은 그시절에 늘 이렇게 윽박질렀다.
-어이. 내가 지켜보고 있어.조심해.
강순경은 일제때부터 악질순사였고, 4.3때는 같은 동네사람들을 학살했다. 이후 4.3이 마무리된 후 동료경찰은 자살했고, 강순경은 도망쳤다가 몰래 들어와 마을 끝에 숨어지냈다. 그 아들이 농협에 운전기사로 취직했고, 노인이 결혼식에 농협이사자격으로 찾아가보니 강순경이 웃으며 말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껄껄껄.
노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노인은 아직도 잠을 못이뤄서 수면제를 먹는다고 했다.
-눈만 감으면 아버지,어머니,고모,처와 어린 자식이 떠올라. 너무 고통스러워. 나 때문에 죽은거잖아.

노인은 실명을 밝히길 두려워했다. 이제는 성담의 흔적도 없고, 제주도도 변했다. 하지만 여전히 고통받는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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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20 11:34
수정 아이콘
흠 무거운 글이라 댓글 남기기가 쉽지 않네요.
제주도의 그날의 기억은 언제쯤 제대로 치유가 될까요?
happyend
19/03/20 14:08
수정 아이콘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가 <터미널>입니다.
영화에 나오는 아주 인상적인 대사를 소개합니다.

"혹시 크루아상이 전쟁중에 루마니아에서 만들어진 거 아세요?"
"말해봐요."
"1742년에 터키가 부쿠레시티를 침공했을때,밤을 틈타 공격한거죠. 그때 동네 빵집 제빵사가.....미안해요"
"그래서,제빵사가?"
"아뇨,됐어요. 바보같은 이야기에요."
"아니,제발요."
"아,아니에요.미안해요 빅터.누가 이런것에 관심을 두겠어요.정작 루마니아 사람들도 관심이 없을텐데..."
아멜리아(제타존스 분)의 이말에 빅터 나보스키(톰행크스분)가 대답합니다.
"제가요,제가 관심이 있습니다.그것이 역사에요.진짜 이야기죠"

기억해준다는 것만으로도 치유의 하나일거라고 생각합니다.
요미우리 신문은 20세기 가장 놀라운 사건이 제주 4.3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전쟁도 아닌데 가장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더욱 놀랍게도 한국인들이 거의 그사실을 모른다기 때문이라고요.
요즘은 제주 사람들이 기억투쟁이란걸 한다고 합니다. 기억....제주인들에게 아픈 기억이겠지만, 정작 제주사람인 저조차 거부했던 기억...그게 더 아픈 거 아닐까 싶네요.
여튼 반갑습니다.
19/03/20 14:10
수정 아이콘
넵 저도 기억하겠습니다.
첸 스톰스타우트
19/03/20 11:40
수정 아이콘
순식간에 다 읽었습니다

댓글 남기고는 싶은데 뭐라고 해야할지 잘 모르겠네요

여튼 좋은 글 감사합니다
happyend
19/03/20 14:08
수정 아이콘
고맙습니다.
19/03/20 12:31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가슴이 먹먹하네요
happyend
19/03/20 14:08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19/03/20 13:33
수정 아이콘
너무 오래간만입니다. 반갑긴 한데 글이 참 슬프네요.....
happyend
19/03/20 14:09
수정 아이콘
그러네요. 너무 오래간만인것도 그렇고....반가운것도 그렇고 참 슬픈것도....여튼 반갑습니다.
19/03/20 14:01
수정 아이콘
이념이 사람을 집어먹는 광기의 시대 한복판에 제가 있었다면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요. 아마 평생 가도 모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랜만에 잠들지 않는 남도를 부르러 가봐야겠습니다.
happyend
19/03/20 14:10
수정 아이콘
광기.....사람이 얼마나 잔인해질수 있는지....한국인은 정말 잔인하지 않은 민족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역사를 보면, 그렇거든요. 그러나 제주도에서 벌어진 일을 보면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19/03/20 14:15
수정 아이콘
최근 들은 방송중에서 르완다의 학살에 대해서 들은적이 있는데 일주일동안 대략 80만의 사람들이 학살되었다고 합니다.
근데 거기 살고있는 한국인이 이야기 하길 르완다 사람들이 참 착하고 순박하다고 합니다.
민족 이런거와 관계없이 사람들은 언제나 광기로 잔인해질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가 아닌가 합니다.
19/03/20 14:01
수정 아이콘
위화 인생 띵작...
happyend
19/03/20 14:12
수정 아이콘
막상...<인생>이란 제목으로 써보고 나니...새삼 위화가 얼마나 대단한지 느껴지네요. 위화의 <인생>은 훨씬더 따스한 작품인데....픽션과 논픽션의 차이를 넘어....위화에 대한 위화감만 느낍니다.허허허허
오'쇼바
19/03/20 15:40
수정 아이콘
부기영화 액트오브킬링이 생각나네요... 진짜 놀라운 영화에 명작리뷰....
happyend
19/03/23 10:22
수정 아이콘
오.영화 흥미롭네요.
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19/03/20 21:42
수정 아이콘
각색해서 단막극으로 만들어도 되겠어요.
잘 읽었습니다
happyend
19/03/23 10:26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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