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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09/28 16:30:58
Name swear
Subject [일반] 군대에서 말라리아 걸렸던 기억
그때가 2005년 여름이었으니 벌써 14년 전의 일이네요.

당시 저는 보직이 취사병이었고 상병을 달고 분대장이었습니다.
제대가 2006년 1월이었으니 6~7개월 정도 남은 시점이었죠.

마지막 유격훈련이라고 작년에 못했던 훈련도 좀 받아보라는 취사반장의 말을 가볍게 씹고
밥이나 열심히 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하고 열심히 밥을 짓고 있었는데..

전년 훈련과 다르게 그 유격훈련을 받았던 곳에서 유난히 좀 징그럽거나 큰 벌레들도 많고 그랬습니다.
산기슭이다 보니 당연히 아디다스 모기들도 많이 설쳐대기도 했구요.

하지만 뭐 그 외 별다른 일은 없었고 무사히 훈련을 마치고 복귀를 했는데 한 2주 정도 지났을 무렵에
처음 고열이 발생했습니다.

당시엔 그냥 감기려니 하고 생각했는데 이게 내가 느끼기에 너무 체온이 높다 싶어서 의무반에 가서 체온을 재보니
38~39도가 나오더라구요.

의무병도 온도가 생각보다 높은거 같다고 하긴 했는데 그냥 해열제랑 감기약만 처방을 받았습니다.

그 뒤에 한 번 더 열이 올라서 의무반에 방문을 했을때도 해열제만 처방을 받았구요.

그렇게 한 일주일 정도 시간이 흐르고 휴가를 나가게 됐는데 첫 날은 멀쩡했습니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식사도 하고 저녁엔 친구들 만나고 술도 한 잔 하구요.

그런데 둘째날 부모님 차를 타고 근교 드라이브를 하고 집에 도착하려는데 몸이 제 말을 듣지 않고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더라구요.

부모님도 놀래서 얘가 왜 이러나 하는데 저는 막 몸은 떨리는데 머리에 열은 나고 진짜 미치겠더군요.

당시에 2층집에 살았는데 2층은 부모님이 살고 1층은 세를 줬었는데 차에서 내리자마자 진짜 미친놈처럼 달려가서
팬티만 제외하고 옷을 다 벗고 수돗가에서 미친듯이 물을 끼얹었습니다.

부모님이 그 모습을 보고 제정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 같다고 느꼈다는데 저는 진짜 그 상황에서 몸을 안 식히면 죽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게 문제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러고 그 날 저녁 대학병원 응급실에 입원해서 누워서 여러가지 체크를 받는데 순간적으로 몸이 41도까지 올라가니까 이게
진짜 눈앞이 노래지고 머리가 익는다고 해야하나 하여튼 희한한 느낌이더군요.

그렇게 누워서 해열제랑 링거를 한참을 맡고 있는데 담당의사분이 오셔서 말라리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내가 지금 열이 심해서 헛소리를 듣는건가 했습니다.
아니..21세기에 말라리아라니..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싶어서 다시 한 번 물어봤지만 돌아온 대답은 역시나
말라리아였습니다.

아니..분명히 군대에서 말라리아 예방약이라고 한 알씩 주는거 열심히 먹고 했는데 대체 말라리아가 왜 걸리는건가 이해가 안되서
군대에서 열심히 말라리아 예방약이라고 주는것도 먹었다라고 했지만 의사 선생님은 그걸 먹고도 걸릴 수가 있다는 답변을 받아서
저를 한 번 더 당황시켰고 그때서야 저는 내가 말라리아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건 의사 선생님 말로 우리나라 말라리아는 그리 위험한 병도 아니고 약 먹고 푹쉬면 괜찮아진다는게 유일한 위안이었구요.


병원에선 따로 조치해줄건 없다고 해서 약을 처방받고 퇴원해서 다음날이 휴가 복귀날이었는데 군대에 부모님이 전화를 해서 사정을 모두
말했고 저는 휴가 복귀일이 4일이나 지나서 복귀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복귀하자 주변에선 말라리아약 꼬박꼬박 먹은거 맞냐? 는 질문이 쇄도했고 저는 다 먹었다 그리고 먹어도 걸릴 수 있다는 말을 의사
선생님이 해줬다고 하자 다들 그럼 이걸 대체 왜 먹는거지라는 어처구니 없다는 반응이었습니다.


뭐..이 부분은 제가 의료계 종사자도 아니고 100% 먹어도 걸린다 이런건 아니고 어쨌든 저는 먹어도 걸렸었고, 의사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
하셨서 그렇게만 알고 있습니다.


하여튼 저는 군대를 늦게 복귀한 댓가로 병장휴가가 4일이 짤렸고, 따로 뭐 치료비라던가 보상받은건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내 잘못도 아닌데 이게 맞나 싶긴 한데 군대에서 따져봤자 뭐..어차피 내 말 들어주지도 않았을텐데 잘한건가 싶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렇게 군대에서 생전 처음 보는 질병을 걸려보고 제대하고 나서는 저도 남들처럼 군대에선 절대 다치지 말고 건강하게 제대해라 그리고 군대를 안 갈 수 있으면 모든 합법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가지 말라는 군대 부정론자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구요.





아..말라리아에 걸려서 이게 장점이라고 해야하나 모르겠는데 체질이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그 전엔 겨울에 엄청 추위를 타고 여름엔 더위를 안 타는 체질이었는데 말라리아 걸리고 나서 제대 후에는 추위를 안 타고 더위를 타는 체질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이젠 겨울에 어지간히 춥더라도 발이 떨어져 나갈 거 같지는 않아서 좋기는 한데...여름에 또 땀이 너무 많이 나니까 이건 이거 나름대로 좀 피곤하긴 하네요...예전엔 땀이 잘 안 나는게 좋긴 했는데 말이죠.


이상 오늘도 군대에서 어떤 사람이 다쳤다는 뉴스를 보다 씁쓸한 마음과 함께 예전 기억이 떠올라서 한 번 끄적거려 봤습니다. 역시 군대는 몸 건강히 제대하는게 최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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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28 16:39
수정 아이콘
이게 전방 의무대급에서 바로바로 진단이 안되는 질병이죠. 고열의 원인은 다양해서...
교육이라고 6주내지 8주 받은 의무병들이 뭘 알겠습니까. 그냥 고열이 나면 상급으로 바로 보내는게 좋은데 그것도 바로 조치 되지도 않고요.
적절한 조치만 하면은 큰 위험없이 나을수 있는 질병이라 그나마 다행이랄까요
홍승식
19/09/28 17:46
수정 아이콘
전장에서 주로 걸리는 데 전방에서는 진단이 잘 안 된다니 아이러니 하네요.
19/09/28 17:49
수정 아이콘
음 제가 있던 시절은 꽤 오래전이라... 몇해전에 진단 키트가 시판 된걸로 아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연대급 의무대에서 혈액 진단이 가능한데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키트가 없으면 혈액검사가 필요한걸로 알아가지고
꿈트리
19/09/28 16:43
수정 아이콘
고생하셨네요. 아프리카 말라리아같은거는 걸리면 20kg 이상씩 빠지기도 합니다. 한국은 순한맛이긴 하죠.
오호츠크해
19/09/28 16:44
수정 아이콘
군대 다녀오고 든 생각은 합법적인 방법이라면 무슨수를 써서라도 안가는게 첫째고 군대에서 뭘하든 간에 안다치고 오는게 두째죠. 그 외엔 아무것도 의미 없습니다.
스타슈터
19/09/28 16:53
수정 아이콘
군대에서 발목을 다치고 1년넘게 후유증이 호전되지를 않아서 의무대를 다시 갔는데, 군의관이 하는말이 이정도 통증 없이 군생활하는 사람 없다면서 전역하면 나을거라고 하더라고요. 더 자세히 진단받고 싶다고 했더니 그래봤자 달라지는 거 없다고 늘 주는 정형외과약 1주치 주면서 돌아가라고 하더군요.

물론 전역한 지금도 후유증은 남아있네요. 전역하고 병원 가보니 이건 병을 키운거라고 하더라고요. 의무대는 진짜 믿을곳이 못됩니다...
19/09/28 17:07
수정 아이콘
저는 그나마 운이 좋은 케이스이긴 한데 확실히 군대 있을때도 주변에 병 키워서 제대한 사람들 보면 믿을게 못 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19/09/29 10:56
수정 아이콘
태권도 단 따야한다고 부소대장이 제 다리 강제로 찢어서 고관절 인대 일부가 끊어졌죠. 방사통이 있어서 아득바득 우겨서 군대 내에 mri까지 찍었는데 못찾더라고요. 결국 mri에서도 안나오는데 거짓말하는거 아니냐는 말에 억울해서 휴가쓰고 3차병원 mri찍으니 인대 일부가 손상됐다고 하더라고요. 이거 영향인지 운동하다 같은 방향 근육 파열 지대로 됐고요.
Proactive
19/09/28 17:00
수정 아이콘
(수정됨) 어쩌면 운이 좋으신 케이스이실수 있겠네요. 휴가 4일은 잘렸지만 싸제병원에서 조치받으셨으니까요
예방약이란게 면역력 강화를 위해 그 균을 소량 투여하는 건데 자가면역력이 조금 올라갔다고 해도 완전 그 병으로부터 막아주는건 아니에요.
19/09/28 17:06
수정 아이콘
저도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에 휴가가 아니였다면 아마 계속 해열제만 처방받다 병을 키우지 않았을까 싶어서요..한국형 말라리아가 그다지 무서운 병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말이죠..
네잎클로버MD
19/09/28 17:32
수정 아이콘
말라리아 예방은 말씀하신 백신과 달라서..
화학적 예방요법이라고 해서 말라리아의 치료제를 지속적으로 일정농도 이상으로 유지시키는 치료입니다.
근데, 약 잘 먹어도 꼭 걸리는 환자들이 있더라구요.
군에서 이쪽에 관심이 많아서 약제 복용 방법, 약제 선택 이런 부분에 노력을 많이 기울였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 매년 꼭 몇 명씩 걸려서 옵니다...
Proactive
19/09/28 20:42
수정 아이콘
오 그렇군요 부끄럽네요 그렇지만 100프로는 어디에도 없겠죠
19/09/28 17:31
수정 아이콘
예방약으로 확실한 예방이 되는 게 아니라서...
말라리아가 사람 몸으로 들어오면 처음에 간세포에 감염되었다가, 성숙한 후에 혈액으로 들어가서 적혈구를 감염시켜 병이 발생하는 데 예방약의 경우에는 혈액에 있을 때 작용하거든요.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간세포에 잠복하기 전에 예방약으로 처리되어야 하지만, 드물게 간세포에 잠복하는 데 성공하는 말라리아 원충이 있으면, 약의 효과로 혈액으로 나오지 못한 상태로 유지되다가 겨울 무렵에서야 약의 효과가 체내에서 사라지면서 그제서야 간에서 나온 애들이 병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거든요.
배고픈유학생
19/09/28 18:22
수정 아이콘
와 그래도 다행이네요. 민간병원 갔다오셔서.
19/09/28 19:08
수정 아이콘
네..다행히 타이밍이 진짜 잘 맞아서..그때가 마침 휴가라서..
곰그릇
19/09/28 19:04
수정 아이콘
파주 쪽에서 군생활하셨나보네요
19/09/28 19:07
수정 아이콘
양주에서 군생활 했습니다. 훈련 나갔던 곳까진 기억이 잘 안나구요..
아이셔 
19/09/28 19:40
수정 아이콘
군 장병 폐렴관련 청원 및 말라리아에 대해서 종종 글을 올려주셨던 여왕의 심복님 생각이 나네요.
이호철
19/09/28 19:48
수정 아이콘
저도 철원에서 전역 후 말라리아 걸렸었습니다.
여의도 성모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받았었지요.
몽키.D.루피
19/09/28 20:15
수정 아이콘
군대에서는 조금이라도 아프면 눈치보지말고 드러눕는게 진리입니다. 제가 군대 있을땐 평상시에 멀쩡한 놈들 허리 좀 아프다고 작업 근무 다 빠지는게 꼴보기 싫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걔네들이 현명했던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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