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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14 16:48
성경에 보면 강력한 카리스마로 공동체를 이끄는 지도자들이 좀 있어요. 그 중에서도 모범적인 지도자로 꼽히는 모세나 다윗과 같은 지도자들을 예로 들어, 한 교회 전체의 지도자인 목사나, 그 정도는 아니라도 교회의 각 부서의 지도자들에게 모세나 다윗에게 이스라엘이 바친 충성과 같은 충성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 같습니다. 모세에게 대항한 고라 등은 땅이 갈라져서 빠지는 형벌을 신에게 받은 것으로 나오고,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가 홀로 신과 독대한다고 불평하니 미리암이 문둥병에 걸렸죠. 목사가 인간적인 결함이 있을지언정 목사도 모세와 같은 존재이므로 모세를 적으로 돌린 고라, 모세를 원망한 아론, 미리암이 신의 벌을 받은 것처럼 목사에게 대항하거나 목사를 헐뜯는 사람도 신의 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일단 저도 그런 견해를 가진 신자들을 최대한 이해하고자 합니다만, 저는 이런 견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단순히 고라, 아론, 미리암이 '목자를 섬기지 않았기 때문'에 벌을 받았다고 보지 않고, 신의 뜻을 어겼기 때문에 벌을 받았다고 봅니다. '권위에 순종하라'는 성경 가르침이 있지만, 그렇다고 잘못된 가르침조차 목사의 권위를 내세워 정당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21/09/14 16:57
그 충성심의 발로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궁금하네요.
내가 믿고있는 하느님과 소통할수 있게 해주어서? 그런 장소나 자유를(믿을수있는) 제공해주어서? 모세처럼 애굽의 백성들을 이끌고 탈출하여 땅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수 있게 해주어서? 믿고 싶은것을 믿는것은 자유이긴 하지만 상식적인 선에서 벗어나는 것을 단지 자기가 모시는 목자가 주장한다고 완전히 신뢰한다는 것이 저는 이해되지 않지만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상식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21/09/14 17:02
목사는 사람이 세운 권위가 아니고, 신이 세운 권위라고 생각하니까요. 성경 말씀대로는 사실 모든 권위는 신이 세운 권위인 건 맞지만, 저는 그렇다고 그들이 하는 모든 것에 신의 권위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 것 같더군요.
그리고 기독교의 신의 가르침이 꼭 '상식'인 것도 아니니까, 어떤 경우에는 비상식적인 가르침이 '상식을 뛰어넘으라는 신의 명령'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21/09/14 21:13
신약으로서 유대교로부터 분리되고
칼뱅,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카톨릭의 성직자 권위로 부터 자유로와진 개신교 목사가 무려 구약의 한구절을 인용하여 목사는 모셔진다라는 주장을한다면 그거야 말로 혹세무민이요 자기모순의 완성이라 생각합니다
21/09/14 16:55
모태신앙이긴 했습니다만 지금은 무교에 가까운데, 대학시절에는 그래도 다니긴 했었습니다. 목사가 목사 말에 순종하라고 설교하는 걸 못 참고 나왔어요. 그 이후로도 친구들 보러 가긴 했지만 제가 반골인건지 그 말을 듣자마자 니가 뭔데요 생각이 들더라고요.
21/09/14 17:06
그렇다고 가르치는 직분에 대한 권위를 완전히 부정하는 건 아니니까요.
목사가 만약 삼위일체, 오직 성경, 예수에 의해서만 구원과 같은 신교의 핵심 교리에서 이상한 소리를 하는데도 버텨낼 신자는 거의 없을 겁니다. 그러나 목사가 그것만 충실하게 가르친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모든 것에서까지 신의 권위가 부여되는 것이지요.
21/09/14 17:07
종교는 원래 없고 유신론자고 절, 교회, 성당 다 맛은 봤는데
구교, 신교 모두 신 앞에선 평등한 어린양이고 믿음만 있으면 장소는 아무 문제가 없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대형 교회는 참 희한하게 변질되어서 목사가 하나님과 동일 반열에 오른 사람들이 많고, 그 목사를 믿는 사람이 상당히 많죠 면죄부 시대의 카톨릭과 현대 한국의 대형 교회와 차이점이 뭔지를 전혀 모르겠습니다
21/09/14 17:08
제3자야 이성적으로 접근하게 되지만 당사자들에게는 그런 부분들을 받아들이라고 하기 쉽지 않죠. 모시던지 욕을 하던지 남에게 피해 안주면 크게 문제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21/09/14 17:14
그런데 이 글은 글쓴이분께서 그냥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목사를 비판한 글을 보고 먼저 그 목사를 섬기는 신자가 반응한 게 발단이죠. 이런 사람들의 요구를 수용하다 보면 목사에 대한 외부인의 비판조차도 봉쇄됩니다.
21/09/14 17:22
스스로 판단을 못하고 누군가를 섬겨야 하는 사람이죠. 종교, 가족, 정치인, 심지어 연예인도 있죠
남한테 피해를 안준다면 그냥 불쌍한 사람들인데 문제는 이상한 사람을 섬겨서 주변에 피해를 주고 다니죠
21/09/14 17:29
음 원래 뭐 조용기 이분은 본인이 선지자라고 하는 이단이지 않나요? 정상적인 기독교는 목자를 그정도로 모시진 않아요. 제가 알기로는 말이죠.
21/09/14 17:36
이단이 커져서 천문학적 돈이 오가고 대통령 까지 장로로 만들 수준이면 이단이라고 부르고 무시하기엔 급이 너무 커졌죠
애초에 모든 종교가 사이비로 시작해서 점점 세를 키우고 시간이 지나면 메이저가 되긴 합니다만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좀...
21/09/14 17:38
정통 교회 입장에서 사이비 뿐만 아니라 이단도 멀리하는걸로 알고 있었는데 꼭 그렇지는 않은가 보네요 @_@
이 부분은 단어 선택에 따라서 의미가 너무 미묘해서 말조심 해야겠습니다
21/09/14 17:54
제가 알기로는 조용기 목사는 '방언 못 받으면 구원 못 받는다'라고 해서 이단이 될 뻔했고, 이 말을 철회해서 이단 혐의를 벗었습니다. (조용기 목사가 스스로 선지자를 일컬었는지 확인은 못 했지만) 스스로 '선지자'라고 일컫는다고 해도 딱히 이단이라고 할 문제는 아닙니다. 자칭 예수, 자칭 성령 이 정도는 해야 이단이 됩니다.
21/09/14 17:42
목사를 존경하고 목사를 따를수는 있습니다.
모신다는 표현도 뭐 딱히 회사에서 회장님을 모시는 회사원들과 다를 바 없구요. 근데 그러한 행동을 관련 1도 없는 사람에게 성질 부리거나 설득을 하려한다? 황건적과 다를게 뭡니까... 손절 잘 하셨습니다.
21/09/14 17:59
희안하게 저는 제대로된 목사님들만 만났었나 봅니다!
봉사도 열심히 하시고 잘되라 기도도 해주시고 아이들과도 잘 놀아주시던 목사님들! 제게는 목사님들은 존경의 대상이지 숭배의 대상은 이닙니다! 그래도 '모신다'는 표현은 그럴수도 있지 싶어요! 윗분을 모신다는 표현과 같은 의미에서요.
21/09/14 18:09
많은 영어 단어가 성경에서 유래했는데요. 그 중에는 "카리스마"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처음 쓴 말입니다. 성령에게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은혜를 말합니다. 바울에게 성령은 '교회' 또는 '신앙 공동체'를 만드는 것에 중요한 요소였기에, 이를 다시 해석하자면, 기독교 신자라면 한번쯤은 들어보셨을, '기독교인이라면 세상 다른 사람보다 구별되는 것, 선한 행동을 하고 올바른 것을 구하는 것'의 연장선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시대에는 아직 교회가 크게 발달하지 못하여, ('원시 기독교 공동체'라는 표현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신악성경 뒷부분을 구성하는, 바울의 서간(=쉬운말로, 편지)에서도 바울은 각 교회에 편지를 쓸때 그 신앙의 우두머리를 찾지 않습니다. 각 평신도 개개인의 이름을 부르며 칭찬하고 책망할 뿐입니다 (요즘 세상에는 아무래도 이러긴 힘들겠죠). 그런데 이렇게 개개인의 성령과 그 성령이 가져온 사람의 변화를 뜻하는 카리스마가, 후대에 막스 베버라는 사회학자에 의해서, 다른 의미로 쓰이게 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통솔력, 범접불가한 분위기'등으로요. 관료제를 열심히 연구하던 막스 베버는, 서류와 권한이 아니라, 그냥 '인간' 그 자체로 존중을 받고, 일을 진행시키는 카리스마라는 개념에, 자신의 연구분야이던 관료제만큼이나 큰 흥미를 보였고 많은 내용을 남겼습니다. 관료제는 사람이 죽어도, 그 제도와 절차만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거꾸로 카리스마는 오직 그 사람이 살아서만 유지되고 죽으면 흩어집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카리스마 넘치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들의 시체는 모두 어떤 아우라도 내뿜는 것에 실패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다보면 목회자에게서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순간이 오실겁니다. 그것이 바울이 말한 카리스마인지, 베버의 카리스마인지 우리는 구분해야합니다. 우리가 더 나은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내면을 자극하는 말입니까, 아니면 어느 한 필멸자가 자신이 아니면 안된다고 주장하는 권위입니까? 기독교는, 그리고 그 중에서 특히 개신교는, 자신의 내면으로 신을 영접해서 구원을 받는 종교입니다. 이건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습니다. 혹여나, 만나야하는 하나님의 자리에, 예수님의 자리에, 성령의 자리에, 다른 사람이 버티고 서서 '나를 통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는 것은 다른 종교일지는 몰라도, 적어도 개신교는 아닙니다.
21/09/14 22:02
고향의 비교적 크지 않은 교회를 오래 출석한 입장에서 관찰했을 때는, 목회자의 의도가 신앙을 유지하기 위한 공동체를 관리하기보다는 공동체의 유지 그 자체에 치중되기 쉽다고 느꼈습니다. 일단 공동체에 발을 들인 사람이 어떻게 신앙이 성숙하도록 도움을 줄까보다는 공동체 자체의 매력으로 일단 붙들어 놓는 게 더 우선인 것 같아요.
여기서 공동체가 몸집이 커지고 개인의 개별 구성원으로서의 의미가 희미해지면 그냥 지자체나 회사와 크게 다를 게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목회자 개인이나 공동체 그 자체가 결속의 수단이 되는... 결국 목회자가 중심을 잡고 구성원들을 독려하지 않으면 목회자는 지자체장이나 사장님과 별 다를 바 없는 위치와 역할만 하게 된다는 건데, ...어렵네요. 이 방향을 흐트러뜨리지 않는다는 것이 보통의 개인이 감당할 만한 일인가요? 아니 애초에 공동체 구성원들이 그걸 다 떠넘기고 나몰라라 하고 있는 상황이 이상한 것 아닐까요? 매주 이 사람들은 왜 모일까요? 그냥 매 주 그래왔으니까. 머리아픈 건 목사님이 설교시간에 말씀해 주시겠지. 나 먹고 살기도 바쁜데.
21/09/15 18:48
사도 바울 역시, 말씀해주신 내용에 대한 고민이 깊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리 '자신의 몸이 성전이다'라는 개념이 있다고 해도, 그걸 강조하면 결국 혼자서 알아서 신을 섬기거나, 그냥 아무 교회나 그때 그때 가면 그만이라는 결론이 도출하는데, 그건 말도 안되는 것이지요. 결국 성경에 대한 전문성이 있어서, 올바르고 깊은 말씀을 전해줄 수 있는 목회자와 신도들이 모여서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야하는데, 그러면 그 공동체가 좋으면, 이게 과연 말씀하신 것처럼, 말씀이 좋은건지, 그 사람들이 좋은건지... 재밌는 사실은, '신앙공동체'라는 개념조차도 바울이 만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구약신경 뒷부분의 바울의 편지들은 일종의 '평가보고서'였지요. 그렇다면 바울이 제시하는 이 비전이란 무엇일까요? 바로 '신앙(의)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같은 것을 믿는 사람들끼리 서로 도와주고 서로의 믿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만든 곳이며, 그런 환경 속에서 서로의 신앙을 더 깊게 해주고 싹트게 해주는 것이 이 공동체의 목적이자 기능이라는 것이지요. 만약 어떤 곳에서 자라는 것이 신에 대한 신앙이 아니라면, 어쩌면 성 바오로께서는 천국에서라도 펜대를 드실지도 모르겠습니다.
21/09/15 10:29
은사주의/신비주의 계열에서, 바울이 말한 카리스마를 베버가 말한 카리스마로 연결시키는 능력이 아주 탁월하죠. 개인이 성령을 통해 받은 은혜를 개인의 통솔력으로 전환하고, 두 가지를 아예 뒤섞어버려서 구분할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
제가 아래쪽 글에서 댓글로도 썼지만, https://cdn.pgr21.com./freedom/93356#4371760 조용기 목사가 언젠가 꿈에 천사가 찾아와서 ['추울 때도 피하고 더울 때도 피하고 봄철에 꽃피는 날 3월 16일에 별세할 것']이라고 알려줬다고 설교시간에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별세하는 연도는 말하지 않겠따고) 조용기 목사는 단순히 죽는 날짜를 예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걸 교리화해서 새로운 가르침을 설파하죠. [성도의 과거와 현재, 미래, 죽는 날까지 전부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더라] 하는 식으로... 성도들은 그런 얼토당토 않은 내용을 듣고 박수로 화답합니다. 이 쯤 되면, 조용기 목사의 체험과 예언에 대한 리스펙트인지, 조용기 목사의 가르침이나 권위에 대한 리스펙트인지, 그런 체험과 가르침을 주신 하나님에 대한 리스펙트인지 구분이 안되죠.
21/09/15 18:38
흐흐흐... 신사도운동, 오순절주의! 하면서 성토하는 댓글을 써보려다가 보다 일반론적인 이야기로 참아봤더니 바로 말씀해주시는군요. 크크크
저같은 현대인이야, '성령', '은사' 같은 말을 그냥, '착하게 살라고 하십니다'라고 해석하고 싶지만, 당장 성경책을 피면, 성령의 불이 내려와서 이방인과 말이 통하게 되었느니, 병을 고쳤냐니 하는게 진짜 '은사'의 내용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당장 이 순간에도, 말씀하신 은사주의적 주장으로 '봐봐라, 은사는 지금 시대에도 실존한다'라고 접근하는게 오히려, 더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고는 저도 생각을 해봅니다. 당장 가톨릭에서도 '성인'은 보편교회에 내부에서 인정해주지 않습니까? 그런데, 보편교회가 아닌, 정말 교회가 교회끼리는 (또 다른 분들 들으면 큰일날 말씀이지만) '경쟁자'인 개신교단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은사의 카리스마 역시, 우리 교회의 것, 그리고 교회가 살아있지 않으니, 교회의 목회자님의 것이 되는게 참 유리한 여건에 있습니다. 거기에 개인적인 간증과 소통을 중요시하는 개신교의 특성까지 더해지다보니, 어쩌면 이게 '개신교의 필연적인 형태'가 아닌가도 꺼림직해지고요. 베버가 괜히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책을 쓰게 된게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1/09/14 20:49
조용기가 만든 대학교 출신입니다.
일년에 한번정도 와서 행사하는데 조용기 행차하실 때 레드카펫 깔고 양옆으로 한복입은 아줌마들 우르르서서 모시고 들어갈 때 아 여긴 제대로 사이비구나 했네요. 뭐 기독교 신자도 아니면서 점수 때문에 그 학교를 갈 수 밖에 없던 저를 탓해야겠지만 참 거시기 했던 기억들이네요.
21/09/15 00:14
모태신앙이고, 본문에 언급된 교회의 등록 성도이기도 합니다.
글쓴분의 선배님의 글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내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에 대한 개인적인 존경을 표하거나, 예우를 다하는 것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지만 '모신다'라는 표현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우상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죠. 만약 선배님이 '모신다'라는 표현을 '존경한다' '따른다' '제자다' 라는 표현의 대체어로 사용한 것이라면 이해는 되지만, 그럼에도 부적절한 표현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네요. 제가 순복음교회 성도라고 말하면, 조용기 목사 일가의 부정부패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왜 하필 그 교회를 다니느냐는 공격을 수차례 받아 왔습니다. 그런 비판 속에서도 그 교회를 다니는 것은 이 교회가 '조용기의 교회'가 아니라 '내 교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자정 작용이 일어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구요. 조용기 목사의 일대기에 대해선 명과 암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부분에 대해 평가할 부분이 있겠지만, 소천한 날까지 그 잣대를 대고 싶진 않네요. 아무쪼록 영면을 기원합니다.
21/09/15 10:15
사실 이렇게 교회 안에서 고군분투하시는 분들의 역할이 중요하죠.
저도 잘 알려진 대형교회 출신인데, 떠난 지는 오래됐지만 가족들은 여전히 잘 다니고 있고 저 스스로도 막연한 향수? 내지는 소속감 같은 걸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방향으로 잘 나아갔으면 좋겠어요. 아마 안에서 꾸준히 노력하는 청년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겉에서 보기에는 긍정적인 시그널이 안 보여서 참 아쉽습니다. 그런 노력들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경우가 참 드물더라고요. 대부분은 노력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그 교회를 떠나게 되죠. 다만, 떠날 때 떠나더라도 그 때까지지의 노력이 헛된 것은 아닐 겁니다. 반대로, 떠나지 않고 계속 남아 있는다고 하면 그런 결정도 의미 있다고 생각하고요.
21/09/15 21:59
고군분투라고까지 할 정도는 아니지만 높이 평가해주시니 몸 둘바를 모르겠네요. 감사합니다. 일단 하는 데까진 해보려고 합니다.
코로나 이후 교회의 모습은 많이 달라질 거라 생각합니다. 집단으로서의 교회보다는 신앙인으로서의 개인이 도마 위에 오르는 일이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광훈씨와 그를 따르는 이들의 행태에 대해선 너무 부끄럽고, 참담합니다. 순복음교회도 대한민국의 성장기와 함께 빨리 성장했는데, 그 성장의 바탕에는 '기복신앙'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죠. 그 기복신앙을 벗고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 헌신이 밑바탕이 되는 교회가 되길 바랄 뿐이죠.
21/09/15 01:36
그냥 모시다라는 말이 존경의 대상인 분을 대하는 태도면 문제는 없죠.
그 범주를 넘어서는게 거부감을 일으키는 것. 조용기목사의 소천을 들으면서 12년인가 사망한 문선명이 저는 자꾸 생각나네요. 그래서 검색해봤더니 선화예고가 통일교재단꺼라는!!
21/09/15 16:26
제가 제일 이해가 안가는게 하나님이나 예수님을 믿는 건 이해가 가지만 목사를 믿는것...
물론 종교적으로가 아니라 인간적인 교류가 있는거까지는 이해하겠는데.. 무슨 신앙의 대상처럼 집에 목사 사진을 크게 걸어둔거 보고 놀랐던 적이 있습다..
21/09/15 19:32
확실한 것은 그런사람들은 성경을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사람 같네요 성경에도 그런 행동 하지 말라고 되어 있는데...
그리고 이명박 정권 이전에 여의도 순복음 교회를 기독교 협회에서 사이비 종교로 괜히 구분한게 아니었죠
21/09/15 22:06
순복음교회의 이단 논쟁은 80년대에 강했습니다. 당시 국내 신학 주류에서는 오순절 성령운동 계열에 대한 이단 논쟁이 있었죠. 방언이나 치유 등 성령 세례에 대한 신학적 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했었거든요.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기존 교단을 위협했던 것도 한 몫을 했구요. 뭐 순복음교회의 교단인 기독교 하나님의성회가 매머드급으로 성장해서인지, 아니면 신학적 근거가 마련되서인지 모르겠지만 90년대 넘어서는 이단 논쟁이 종결된 것(찾아보니 1994년으로 나오네요)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 이전까지 사이비로 구분했었다는 사실을 바로 잡고자 댓글을 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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