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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13 11:55
정종이라는 묘호를 늦게 받은 결론만 알고 있었지 이런 과정은 전혀 몰랐습니다. 소소한 수수께끼 하나가 풀린 느낌이네요. 잘 봤습니다.
21/06/13 12:03
전 이거 얼마 전에 알고 좀 많이 놀랐어요. 허수아비였다지만 폐위된 왕도 아니고 문제가 있지도 않았는데 묘호가 없다가 나중에 추존 된 거라니. 단종 노산군이야 유명한 이야긴데 정종은 그런 줄 상상도 못했습니다.
21/06/13 12:44
세종이 고려 어전을 훼손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왕권에 엄청 신경썼죠. 모 영화에서처럼 왕 노릇 똑바로 하라고 중이 설쳤으면 스/님으로 바꿔줬을겁니다 크크
21/06/13 12:47
숙종이 조선 후기 얼마 안되는 적장자 정통성이 있던 왕이라 선대에 비틀어진걸 뜯어고치는게 가능한 강력한 왕권을 가진 왕중에 한명이었기 때문에 저게 가능했다고 봐야합니다.
물론 그 강력한 왕권을 가지고 환국정치를 하다가 결국 조선 말 세도정치가 들어오는 계기를 마련하지만요.
21/06/13 12:57
(수정됨) 바꿔서 말하면, 숙종이 그만큼 절대권력을 갖추고도 딱히 할 게 없던 조선의 심심한 상황도 저런거 고치는거에 한 몫 했을거라고 추측합니다.
보통 왕이 절대권력을 갖추면 일단 그 파워를 밖으로 투사하게 마련인데... 숙종때 쯤 되면 태종/세종처럼 어디 정벌 갈만한데도 마땅치 않고, (북방은 명때와 달리 중원과 만주의 지배자가 동일, 일본은 통일상태) 그렇다고 뭐 조선이 경제 활성화해서 돈벌이를 할 만한 문화도 아니고 (명나라 멸망 이후에 더욱 교조화된 성리학자들) 삼번의 난 때 숙종이 북벌 되냐고 실록에서 언급되는 거 보면 나름 신났을텐데 오삼계가 일찍 죽는 바람에 그것도 흐지부지.. 그렇게 할 일이 없으니 그 넘치는 똥파워로 맨날 신하나 갈구고 윗대 어르신들 고치고 그랬겠지요 =_=...
21/06/13 13:09
저때는 이방원도 아직 살아있던 시기라서 아버지와 아들이 짝짜꿍해서
야 내가 니 삼촌이랑 친하긴 했어도 삼촌이 무슨 왕이냐 바지사장이지 크크크 아이구 아버지 그럼요 크크크 한거죠.
21/06/13 13:20
왕자의난 이후 이방원이 실질적 왕이였으니 당연히 태종묘호를 무늬만 왕인 바지사장 정종한테 줄리가요..
정종은 동생말 잘들어서 왕도 해보고 평생 대우받다 잘살고 갔죠..
21/06/13 13:32
그쵸 애초에 정종은 왕에 욕심도 없었고 그걸 알고
시켜준걸테니 세상 복잡한건 다 아빠랑 동생이 알아서 지지고 볶고 중간에서 아빠 위로좀 해주고 동생 눈치좀 보면서 놀러다님됨 개꿀..
21/06/13 16:00
아버지인 이성계가 장군이던 시절에는 전장을 나가 공을 세우기도 했고... 권력엔 큰 욕심없고...
정말 딱 쾌남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무장으로서는 최고의 성향.
21/06/13 13:28
왕권 확립을 위한 거기도 했거니와, 정종 본인이나 그 후손들을 생각할 때에도 뒷말 없게 정리하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합니다. 서슬 퍼렇던 왕자의 난이 재현되지 않게끔 말입니다. 물론 세종 본인의 아들이 그 비슷한 일을 할 거라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겠지만요.
21/06/13 13:52
뭔가 신성모독 느낌이어서 자애롭고 신하들을 설득하는 이미지가 강한데,
몇 가지 일화를 보면 그 아버지의 그 아들답게 한 성깔 하신듯 했습니다. 아버지가 보낼 놈들 다 보내버려서 딱히 손봐줄 놈들도 없었고...
21/06/13 14:17
우리가 세종을 성군으로 느끼게 만든게 태종이죠.
어짜피 나는 이미 피맛을 봤으니 피는 내가 뿌리마. 너는 내가 만들어 놓은 것을 완성시켜라! 그게 니 인생이다. 충녕입장에서는 어떤의미에서 인생이 죽을 맛이었을 지도... 세종이 한성깔 하시죠. 고기를 좋아하시는 것부터... 솔직히 그아버지에 그아들인.... (양녕만 봐도.... 충녕은 양녕의 순한맛일뿐. ) 솔직히 어진도 마음에 안듭니다. 원래는 저리 순한 타입이 아닐텐데...
21/06/13 14:23
말년의 세종을 보면 성깔하는 건 확실하고요. 다만 신하들 의견도 최대한 수렴하긴 했습니다. 실제로 의견을 굽히고 들어간 적도 많고 설득을 하려 노력한 것도 사실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세종이 아버지에 대한 기록이 궁금해 실록을 들여다보는 것을 신하들과 논쟁하다가 포기한 것도 있고, 도둑질 3번을 하면 사형을 해야하냐 말아야하나에 대한 토론을 보면 현대 시각으로 봐도 흥미롭기 그지없죠. 결국 세종이 뜻을 굽히고 신하들 의견을 수렴해 사형을 허용하게 했고요.
21/06/13 14:21
사실 정종은 본인이 왕에 욕심도 없었고 그냥 태조 분노가 가라앉을때까지 임시로 이방원 자리 맡아두는 정도였는지라 크크 게다가 상왕으로 오르고 나선 본인이 더 편하게 놀러다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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