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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21 19:41
뭐, 저럴만도 한게 당시 동로마랑 불가리아의 원한은 깊고도 깊어서... 불가리아에서도 동로마 병력 학살한 다음에 황제 두개골로 술잔 만들고 그랬었죠.
21/07/21 20:10
바실리우스는 막상 정복한 다음에는 관대하게 통치했죠. 세금도 현물납부하게 유지해주고, 오흐리드 총대주교좌도 대주교좌로만 낮췄지 그대로 독립성 유지해주고, 기존 지배층도 인정하고...
21/07/21 20:16
바실리오스 2세가 말씀하신대로 안배를 잘 해봐서 동로마의 불가리아 지배가 그 뒤로 200년 가까이 갔죠.
나중에 불가리아가 반란 터져서 독립해나간 것도 사실 그 시초는 정체성이 아니라 무거운 세금 때문이었고요.
21/07/21 20:01
3년 뒤에 로마는 불가리아를 정복했고, 맹인들을 부양해야 할 사람들이 모두 자국 신민이 되었죠.
근데 전쟁 끝나고 정산해보니 병력이 오히려 늘었네요. 오잉?
21/07/21 23:56
저건 호사가들 이야기고, 실제로는 포로/잔존불가리아군 모두 자국군으로 편입하고 봉급도 로마군 체계에 맞춰서 줬습니다. 덕분에 병력이 오히려 늘었지요.
21/07/22 00:33
일단 장님으로 만들었다는 기록이 요안니스 스킬리치스의 저서(historia)에 기인하는데, 스킬리치스가 클리디온 전투로부터 근접한 11세기 말의 사람이며, 로마제국의 관료로 근무했던 점(정확히는 민사 법정의 판사)에 비추어보면 출처의 신빙성은 제법 높다고 볼 수 있고, 단순히 호사가의 말로 치부하긴 어렵습니다.
물론 포로의 숫자나, 장님 비율 등에 대해서는 과장되었다고 볼 소지가 있고, 전쟁 후 불가리아의 인력을 테마로 편입한 것도 사실이긴 합니다만...
21/07/22 00:38
일부 그룹에 대한 보복성 처벌이 있었을 공산은 충분하지만 이후 대 불가리아정책, 불가리아 인들의 반응을 볼 때 불가리아 야전군 전원의 눈알뽑기로 진행 되었을 공산은 너무 낮은 것 같습니다. 아시겠지만 전근대 사가들 자체가 엄밀한 기록보다는 내러티브를 중시하며 아예 숫자 관련으로 들어가면 어디까지 믿어야되나 너무 의심스러우니까요. 또한 불가록토누스라는 별명 자체가 당대에는 없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21/07/22 00:47
맞는 말씀이십니다. 스킬리치스의 기록대로 가혹한 포로 처벌이 이루어졌다고 보기에는 불가리아는 굉장히 손쉽게 로마의 지배 하에 편입되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일부 포로들에 대한 가혹한 조치(눈 뽑기)는 있었지만, 그게 사후에(또는 의도적으로) 포로 전체에 대한 조치로 과장되었을 개연성이 높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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