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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09/05/13 20:05:27
Name 유유히
Subject (09)우리의 매너를, 우리의 웃음을, 우리의 감동을 제지하는 너희들.
제가 스타크래프트 방송을 처음 접한 건 Itv 게임월드 명승부 베스트를 통해서였습니다. 1998-9년쯤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기술력과 정해지지 않은 게임방송 포맷으로 인해 웃지못할 일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정해진 시간 30분이 지나면 판정승이라 하여 게임아웃후 점수가 높은 쪽이 승리한다던지, 옵저버 맵이 없어 옵저버가 테란으로 게임에 들어가 일꾼을 숨긴 뒤 커맨드센터를 띄워 맵 구석으로 옮긴다던지 하는 일이 일어나던 시절이죠. 게임 진행자들은 옵저버 테란과 선수들이 동맹을 꼭 맺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곤 했습니다만, 어떤 선수는 비전만 맺고 얼라이를 맺지 않아 커맨드센터를 그만 부숴버리는 사태가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당시 최초로 게임방송의 라디오 중계를 경험했답니다. 음향차단시설은 어떻고요? 선수들은 희미하게 들리는 중계를 들으면서 경기해야 했습니다. "저그가 샛길로 러시 들어오는데요!" 친절한 실시간 오퍼레이터가 다음 해야 할 행동을 알려주는 셈이죠.

제대로 돌아가는 건 하나도 없었지만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던 시절. 초대 챔피언인 신주영을 몰락시킨 이기석에 대항하던 게이머들이 속속 나타나던 시절, 커맨드센터로 정찰하던 김대기가 웃음과 감탄을 안겨주고, 메카닉의 황제 김대건과 바이오닉의 황제 임요환, HOT팬이라는 저그 게이머 강도경이 화제가 되던 시절. 외국인 게이머 기욤패트리, 세르게이, 빅터 마틴 등이 속속 입국해 수준급의 플레이를 보여주던 시절...

저는 그 시절만큼 스타크래프트를 재미있게 본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 시절부터 스타크래프트를 보아온, 오래된 팬들이라면 다들 기억하실 겁니다. 일꾼정찰, 혹은 오버로드 정찰로 서로가 서로의 유닛을 처음 발견했을 때, 하던 채팅을 말이죠.

Slayers_'boxer' : hi
[NC]_Yellow : hi

그 인사는 언젠가부터인지는 몰라도 게임 시작전 혹은 일꾼을 미네랄에 나눌 때 치던 "gl(good luck)" 과 게임포기선언인 "gg(good game)"을 치던 만큼이나, 꼭 쳐야 하는 불문율이었습니다. 제 기억에 그 당시에 hi를 치지 않던 게이머는 없었지만, 만약 치지 않았다면 "노매너 게이머"란 소리를 들었을 겁니다.

hi만큼은 아니지만 자주 나오는 채팅이 있었습니다. 상대의 허를 찌르는 플레이에 당했다는 표시인 t.t(일종의 감탄이었죠), 그 외의 칭찬인 nice, good 등이었습니다. 대부분의 게이머들은 상대의 뛰어난 플레이를 칭찬하는 데 전혀 서스럼이 없었습니다. 저는 게임을 하면서 지켜야 할 매너를 그렇게 배워갔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hi 나 t.t는 사라져갔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만... 선수들은 대화 따위에 시간을 할애하는 대신 이기기 위해 눈에 핏발을 세웠죠. 경기중의 채팅은 차츰 보기 힘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다음 듀얼토너먼트 임요환 대 문준희의 경기에서 임요환 선수가 '좁아ㅠㅠ'라는 채팅을 친 이후, 이것이 심리전이며 경기에 영향을 미쳤다는 갑을논박이 넷상을 뜨겁게 달구자, 협회는 드디어 결정을 내립니다.

"gg와 p연타를 제외한 모든 채팅을 금지한다."

제가 아는 한, 경기 중에 상대와의 대화를 금지하는 스포츠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야구 선수들은 루상에 나갔을 때 서스럼없이 주루코치나 수비수와 농담을 주고받습니다. 축구에서도, 농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 스포츠를 볼까요. 태권도, 권투 등 격투기 종목은 서로 가볍게 주먹을 부딪히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합니다. 테니스나 탁구 등의 일대일 구기종목의 경우 경기의 성격상 대화가 어렵지만 대화 자체를 금지하지는 않습니다. 바둑은 수담이라 하여 말을 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말을 한다 해서 몰수패를 당하지는 않습니다. 심리전이라 판단되는 언행(축구의 인종차별 발언 등)은 추후 벌금이나 출장정지 등으로 제재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몰수패를 시키지는 않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플레이를 아낌없이 칭찬하고, 상대가 운이 좋으면 운빨이라고 비난하기보다 운도 실력이라며 축하해 주며, 경기에 졌을 때 짜증과 화를 내기보다 좋은 게임이었다며 상대를 인정하는 것.
우리는 그것을 페어 플레이라고 부릅니다.


협회는, 지금 페어플레이를 막고 있습니다.


박태민 선수는 좋은 빌드를 준비해 왔을 겁니다. 손찬웅 선수 역시 뛰어난 경기운영을 통해, 어쩌면 아이우 행성의 저그 대 프로토스전을 재현하는 엄청난 혈전과, 그 끝에 임요환 대 도진광 패러독스의 반전을 능가하는 전율의 역전승을 일구어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경기는 없어졌습니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협회가 빼앗아 갔거든요.



"박태민 선수가 키보드 조작 중 실수로 채팅창에 a를 입력하였습니다. 다른 의도가 없는 단순한 실수이며 게임진행에 별 무리가 없다고 판단되어 경기 속개를 선언합니다."

이 판정이, 그렇게 불합리하며, 그렇게 어불성설인 판정이란 말입니까.




https://cdn.pgr21.com./zboard4/zboard.php?id=humor&page=1&sn1=on&divpage=10&sn=on&ss=off&sc=off&keyword=유유히&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59353

저는 협회의 만행이 계속된다면 이런 일까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위의 글을 썼었습니다. 웃고 넘길 일이 아닙니다.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곧 스타크래프트 2가 출시되며, 어쩌면 2011년쯤 된다면 그때가 마지막 프로리그가 될지도 모릅니다. 마지막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3:3으로 맞선 팽팽한 상황에서 벌어진 임진록에서, 채팅 실수로 인해 몰수패가 선언된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저는 그때, 이렇게 외치겠습니다.

"우리의 감동을 빼앗아가지 마라!!!"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의 감동입니다. '우리'가 이 판을 이만큼 키웠습니다. 우리가 선수들과 함께 눈물흘렸고, 우리가 선수들과 함께 환호했고, 우리가 웃었으며, 우리가 좌절했고, 우리가 감동했습니다.


결코, 너희들 - 협회가 아닙니다.


hi는 매너였습니다. 센스 넘치는 t.t에 웃기도 했습니다. 베르트랑이 임요환과의 WCG결승전 마지막 경기에서 친 "you're best. gg" 채팅은 우리에게 감동이었습니다.

협회는 우리의 매너와, 웃음과, 감동을 빼앗아 가려 합니다. 아니, 이미 빼앗아 갔습니다.
더 이상 우리의 감동을, 제지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게임 중 채팅에 의한 몰수패를 반대합니다.
* OrBef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09-24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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뎀프시롤
09/05/13 20:08
수정 아이콘
(운영진 수정, 벌점)
09/05/13 20:09
수정 아이콘
협회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그저 궁금할따름입니다.
우리결국했어
09/05/13 20:09
수정 아이콘
추천합니다.
하늘계획
09/05/13 20:09
수정 아이콘
공감합니다.
스타카토
09/05/13 20:10
수정 아이콘
정말 검정리본에 < 근조 E-Sports >까지 게시판에 쓰고싶은 마음입니다.
어찌 이런 일이있을수가 있는지..
E스포츠 역사상 최악의 하루..최악의 심판..최악의 판정입니다.
어쩌면 케스파 규정이 E스포츠를 망하게 하는 주범일지도 모르겠군요..

추천합니다!
있는혼
09/05/13 20:11
수정 아이콘
추천합니다.
09/05/13 20:11
수정 아이콘
e스포츠 협회란 곳은 마치 어떻게 하면 이 판을 좀 더 재미없게 만들 수 있을까를 궁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집단 같습니다..
headstrong
09/05/13 20:12
수정 아이콘
추천합니다.
이제는말과할
09/05/13 20:13
수정 아이콘
아예 클래식하게 백기를 들고 부스에서 나오던지, 흰 손수건을 던지던지
아니면 코치진이 부스에 타올을 던지던지(이건 좀 아니구나)
하는 건 어떨까요?
09/05/13 20:13
수정 아이콘
세르게이vs임요환 대전이 생각나는군요(그때 임요환 선수가 맞는지는 기억이 가물합니다만). 임요환 선수가 멋진 경기력으로 세르게이를 제압하자 세르게이가 so good 을 치고 후에 gg를 선언하였죠. 정일훈 케스터도 so good~을 외쳤고 그때 참 감동했었더랫죠.
Star_ing
09/05/13 20:14
수정 아이콘
그 무엇보다 이번 일로 박태민 선수의 경기력에 나쁜 영향이 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09/05/13 20:15
수정 아이콘
갑자기 생각이 든게.. 걍 모든채팅허용에 영문스타로 하면 안될까요 흐흐
한글로 바뀐후부터 문제가 생긴거 같은데 ..
Kyrie_KNOT
09/05/13 20:16
수정 아이콘
추천합니다.
Who am I?
09/05/13 20:16
수정 아이콘
저...;;;무슨일인지 누가 설명좀..;;지금 막 집에왔는데 이 무슨 사태인가요.; 설마 제가 상상한 그런일이 벌어진 겁니까.;;;;;;설마요 설마.;;
Dementia-
09/05/13 20:17
수정 아이콘
Who am I?님// 불판 위에서부터 쭉 읽어주세요......
있는혼
09/05/13 20:18
수정 아이콘
Who am I?님// 박태민 선수가 a를 입력해서 몰수패 당했습니다.


이유가 더 웃긴게 1경기에서 박태민선수가 gg선언할떄 히읏히읏 연타를 쳐서 주의를 받았는데
그래서 2경기에서 경기도중 한영키 확인하다가 실수로 입력된 a키 때문에 몰수패 당했습니다.
아고니스
09/05/13 20:19
수정 아이콘
몰수패 당하고 머리를 감싸앉고 자리를 떠나지 못하던 박태민 선수의 얼굴이
아직까지 떠나가질 않네요.
다음경기부터 경기력에 영향이나 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안그래도 시들어져 가는데 정말 불에 기름을 들어붓네요.
다크드레곤
09/05/13 20:28
수정 아이콘
저도 오늘 박태민 선수 보고 정말 마음이 아팟습니다..
이제 조금씩 살아나고 있었는데..슬럼프에 빠지지나 말았으면 좋겠네요..

협회는 팬들의 반응을 보고 뭔가 좀 느꼈으면 합니다..
이건 뭐 무대포 정신도 아니고 E-SPORTS 발전에 해만 끼치니..
개념은?
09/05/13 20:30
수정 아이콘
게임 중 채팅에 의한 몰수패를 반대합니다.(2)
쇼타임
09/05/13 20:41
수정 아이콘
축구 등에서 금지하는 발언들은 심리전의 문제가 아니라 스포츠맨쉽에 어긋나는 비열한 언사들이기 때문이죠...가령 야구에서 포수가 상대팀 타자에게 괜히 말을 걸며 심리전을 거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음담패설을 들려주어 집중을 못하게 하는 스킬을 지니신 모 일류 포수도 계시고(....)
PenguinToss
09/05/13 20:46
수정 아이콘
이윤열 선수의 G.O.O.D.G.A.M.E 가 생각나네요.
강민 선수하고 섬맵 (맵 이름 기억이 안나네요) 에서 경기할때
마지막 돌 던지면서 그렇게 챗팅한 기억이 나는데.
그게 그냥 gg 가 아니라서 더 기억이 나는 거 같네요..
키퍼까지마라
09/05/13 20:56
수정 아이콘
PenguinToss님// 강민 선수와의 유 보트 혈전이었죠
NADA: Come on
NADA: you win.
떠오르네요.
Surrender
09/05/13 20:58
수정 아이콘
최연성 선수와 이윤열 선수가 맞붙었던 센게임배 MSL 결승 5차전 경기도 생각나네요.
You Win, GG
gegovski
09/05/13 21:02
수정 아이콘
그것도 생각나네요 누군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스타리그에서 같은 팀원이랑 붙게 되었는데
혈전끝에 거의 밀려서 gg 타임이 다가오자 마우스에 손을 떼고
마지막 gg 대신 이렇게 쳤죠.

"(올라가서) JAL HE"

감동이였습니다 ㅜㅜ
09/05/13 21:10
수정 아이콘
gegovski님// 한빛스타즈 [박경락] 선수와 [박용욱] 선수와의경기 이구요
맵은 기억이맞다면 패러독스일겁니다
저그로 플토를 이기기힘들다 해서 테란으로했던 경기 입니다

===
Surrender님// 최연성 vs 황신 님과의 경기중 나왔던...
you multi?
yes
gg

이내용들이 기억나네요
09/05/13 21:21
수정 아이콘
추게로~
이카루스테란
09/05/13 21:24
수정 아이콘
무개념 케스파!!
09/05/13 21:27
수정 아이콘
"박태민 선수가 키보드 조작 중 실수로 채팅창에 a를 입력하였습니다. 다른 의도가 없는 단순한 실수이며 게임진행에 별 무리가 없다고 판단되어 경기 속개를 선언합니다."

좋은글...잘 읽었습니다.
gegovski
09/05/13 21:30
수정 아이콘
sNiPeR님// 아 감사합니다.
난언제나..
09/05/13 22:16
수정 아이콘
JAL HE... 잊혀지지 않아요.....
The_Mineral
09/05/13 23:02
수정 아이콘
케스파 잊지 않겠다.
[전설]
09/05/14 00:49
수정 아이콘
위에서 언급하신 채팅이 다 기억이 나네요.
그때도 지금도 감동입니다.
협회는 무슨 권리로 우리에게 감동을 빼앗아 가나요?
채팅으로 인한 심리전. 전략 게임에서 심리전은 당연한거 아닌가요?
집에 들어오자마자 박태민 선수의 몰수패 사건을 보고 너무 기분이 상하네요.
그리고 몰수패의 의미를 알고나 있는건가요?
프로리그라고 프로라는 곳에서 몰수패라는것의 의미를요.
귀공자
09/05/14 01:25
수정 아이콘
밑의 글에도 댓글을 달았었지만 지금보니 여기에 다는것이 더 적절할 듯 하군요.

'그 경기들이 단순히 gg로 마무리 되었다면 시간이 흐른 지금쯤에도 여전히 이러한 감동을 줄 수 있었을까요.
이는 팬들에게 아름다운 gg는 몇년이 지난 후에도 그 경기를 되새기며 감동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수단이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석연찮은 제도로 훼손되어가는 아름다운 경기들, 그 감동적인 유종의 미를 지키고 싶습니다.
써빙맨
09/05/14 04:24
수정 아이콘
감동의 글입니다...
추천 날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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