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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1/11/27 20:36:00
Name 눈시BBver.2
Subject 광개토 - (3) 남정. 그리고 임나일본부

지들끼리 전쟁놀이하던 소국들에게 고구려의 5만 대군은 어떤 느낌이었을지 느끼면서 얘기해보죠.

이전 편에서 보셨듯이 광개토대왕의 원정은 참 순조롭고 간단합니다. ( '-') 이건 뭐 소설을 쓸 거면 박진감 넘치게 써야지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주인공이 다 때려부수면 뭐가 재밌겠습니까? 그래서 현대의 매체들은 그에게 시련을 주려고 이런저런 역사왜곡들을 갖다붙이는 거죠.

논란이 될 부분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건 이게 어느 지역이냐 이게 그 때 어땠냐 등 지루하고 길고 긴 답도 제대로 안 나오는 것들이 대부분이죠. 때문에 전 이런 모든 것들을 대충 이렇다는 걸로 넘겼습니다. ( ..); 길게 써 봐야 어렵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제가 이해도가 너무 낮거든요. -_-;

이번 편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네요. 과정을 간단히 얘기하면서 여기서 나오게 된 거대한 떡밥, 임나일본부를 최대한 얘기해 보겠습니다.

1. 신라 구원전
399년, 신라는 큰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백제와 가야, 왜의 연합이 공격해 오게 된 것이죠. 정작 삼국사기에는 이런 기록이 없습니다. 광개토대왕과 내물왕 어디에도요. 나오는 건 "내구마가 슬프게 울다"라는 의미심장한 대목이죠.

삼국사기와 광개토대왕릉비의 광개토대왕에 대한 서술에는 지향점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내물-실성 이사금 대에는 실성 자신도 그렇고 복호 등을 고구려에 볼모로 보내는 등 고구려에 복속됐다는 느낌이 살짝 드러나죠. 하지만 광개토대왕 대의 기록에는 싸운 대상은 그저 백제와 후연 뿐입니다. 특히 후연과의 싸움을 강조하죠.

반면 광개토대왕릉비에는 후연에 대한 언급은 없다시피합니다. 백제와 신라, 동부여와의 싸움을 최대한 강조하죠.

이런 점에서 이 때 신라를 공격한 주체가 백제였는지도 참 애매합니다. 광개토대왕릉비의 주적은 어디까지나 왜, 그리고 가야였죠. 정작 아신왕은 그 일이 있은지 3년 후에 신라를 공격하죠. 399년 8월에 고구려 공격을 위해 병력을 모았다 하는데... 이 때 정말 막장 상황이 벌어집니다. 백성들이 징발을 피해 신라로 도망쳤다는 거죠. -_-; 백제의 피해가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왜로도 갔다는군요. 백제의 쇠퇴는 왜에만 좋았죠.

때문에 백제는 왜에 더 기대기 시작했습니다. 아예 태자를 보내면서 가까워졌죠. 신라는 부산 북쪽으로 주로 경상북도 쪽을 영토로 하고 있었고, 가야의 여러 나라(제국)들은 경상남도부터 전라남도까지 퍼져 있으면서 일본-중국과의 무역으로 성장한 모양입니다. 김해-부산 등지에 있던 금관가야는 쇠퇴 중이었고 창원 등지에 있던 안야국이 성장하고 있었죠. 부산에서든 거제도에서든 일본까지는 쉽게 갈 수 있는 곳, 거기다 신라는 이 시기 왜에 계속 시달리고 있었죠.

신라는 이미 3세기부터 가야와 계속 전쟁을 벌이고 있었고, 그게 4세기 들어 더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었죠. 이런 가야-왜 연합과의 전쟁, 여기에 백제가 끼어듭니다. 고구려에게 톡톡히 당한 이후 신라로 눈을 돌리게 된 거죠. 이 때 신라는 이미 고구려의 영향권 내에 들어가 있었으니 그 팔을 확실히 잘라둬야 했거든요.

이게 현재까지 제가 파악하고 있는 고구려의 신라 구원전의 배경입니다.

399년, 이런 상황에서 신라는 고구려에 구원을 청합니다. 광개토대왕은 1년을 기다리라는 말을 했고, 이듬해 보병과 기병 총합 5만명의 원군을 보내죠.


그저 작은 모임들에 불과했던 이들에게 5만이라는 병력은 재앙, 혹은 치트키였죠. =_=... 고구려군은 임나가야의 종발성까지 추격해서 왜인들을 몰살시킵니다. 이후 가야의 세력은 크게 줄어들고, 신라는 고구려와 완전히 복속되었으며, 동시에 고구려를 통해 성장하게 됐죠. 이후에도 백제나 가야, 왜는 신라를 계속 치지만 신라는 계속 성장, 가야를 압박할 무렵이 되면 왜의 침략도 없어지다시피하게 됩니다. 통일신라 이후에는 오히려 신라에서 해적질을 해서 신라구라 불렸죠. 한편 가야는 왜와 연결돼 있던 해안가의 나라들이 모두 쇠퇴하고 내륙의 대가야가 성장하게 됩니다.

자. 이런 부분까지가 광개토대왕의 남정이었습니다.

2. 임나일본부설

고대사에서 한일 사이에 가장 큰 이슈가 됐던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는 대략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역시 일본서기의 기록, 여기서 일본의 신공왕후는 320년부터 562년까지 임나, 즉 가야 지방을 점령하고 통치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광개토대왕비문, "신묘년에 왜가 바다를 건너와 백제와 신라, 임나를 격파하고 신민으로 삼았다"는 부분입니다. 다만 여기서는 백잔000라 이렇게 돼 있어서 어떻게 해석해야 되느냐가 많이 들어갑니다. 여기서 빠진 게 임나, 신이라고 하는 거죠. 이 때문에 많은 상상력이 동원되지만, 일단 제가 보기엔 저 해석이 가장 맞아 보입니다.

셋째는 전남 지방에서 발견된 전방후원군 무덤이었죠. 이게 일본에서 발견되거든요.

이외에도 일본이 남조의 국가에 백제, 신라 임나의 왕이라는 칭호를 인정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 발견된 양직공도에도 신라가 한(韓)에 속하기도 하고 왜에 속하기도 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애초에 가야가 왜와 관련돼 있다는 걸 부정할 순 없습니다. 가야가 강할 때 왜의 침략도 많았고, 신라에 먹혀가자 왜의 공격도 없어졌거든요. 백제의 힘을 빌었겠지만 왜가 단독으로 중국에 책봉을 요청한 것, 신라가 왜의 침략에 계속 시달린 것들을 보면 왜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최소한 군사적으로는 강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신라 초기 기록에 나오는 호공이나 석탈해도 왜에서 건너온 것으로 추정되기도 하구요.

왜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들이 영향력을 넓히고 있었고, 가야의 나라들은 잘게 쪼개져 있었죠. 이런 상황에서 백제와 신라에 맞서 가야가 왜에 기대는 것 역시 굳이 부정할 필요는 없구요. 일본은 도래인들이 한반도에서 건너 왔다는 것을 부정하고, 우리는 일본에 준 것만 강조하지만 중요한 건 그 정도로 한반도 남부와 일본의 연계가 컸다는 것이거든요.

자, 급한 약속이 있으니 여기서 글을 끊겠습니다. 아무튼 이런 면에서 임나일본부는 굳이 부정할 필요............










가 당연히 있죠. -_- 여자도 없는데 약속은 개뿔.

무슨 똑같은 것처럼 나오는 저 세 가지 주요 근거, 하지만 알고 보면 저언혀 다릅니다.

일본서기의 신공왕후 때 나오는 신라 정복은 판타지 그 자체입니다. 무슨 한 번도 안 가 본 곳을 예지력으로 알게 돼서 가니까 신라에서는 바다가 넘쳐서 도성을 뒤덮었고, 무서워서 신라가 알아서 항복했다느니 이런 식입니다. 임나의 멸망 과정도 참 흉악한 신라가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는 것처럼 나오죠. 이것까지는 그러려니 하겠습니다만...

광개토대왕릉비의 해당 부분은 일본서기와 크게 다릅니다. 왜가 신라, 백제를 점령한 건 신묘년, 광개토대왕이 즉위했을 때예요. 거기다 그 앞에 나오는 건 이거예요. "백제와 신라는 대대로 고구려에 복속돼 있었다"는 것, 신라야 그렇다 치죠. 백제가 고구려의 신하였던가요? 오히려 백제에 쭉 삥 뜯기고 살았죠. 시작부터 강한 정치적 목적으로 왜곡돼 있는 겁니다. 일본서기의 임나일본부가 쭉 이어진 거라면 광개토대왕릉비의 임나일본부는 뜬금없이 광개토대왕이 왕에 오르니까 "바다를 건너서" 잠깐 먹은 겁니다. 왜? 광개토대왕이 왜에 항복해 고구려를 배반 때린 백제를 혼내 주고 고구려 말 잘 들은 신라를 구원하기 위해서요. 이런 앞 배경을 생각하면 이런 해석이 전혀 이상할 게 없습니다. 실제 광개토대왕릉비에는 이전 편에 다룬 백제와의 티격태격이 없습니다. 할아버지의 복수도 없고 그냥 "속국" 백제가 왜에 붙어먹으니까 혼내준 것일 뿐이죠. (이런 왜곡 때문에 395년 요동 정벌설이 부정되는 거구요)

전남의 무덤 문제도 마찬가집니다. 일단 전남 쪽에서 일본보다 시대가 앞선 게 나타나면서 (그것도 한 세기나) 일본은 큰 충격을 먹게 됩니다. (...) 그런데 그 전에 애초에 일본서기나 광개토대왕릉비에서 강조한 쪽은 전남이 아니라 경남과 경북, 가야와 신라 쪽이었어요.

왜가 중국에서 받았다는 책봉도 마찬가지죠. 근초고왕은 거기에 낙랑이라는 칭호를 받았고 나중에 신라가 크니까 신라도 받습니다. 이런 건 어디까지나 자칭일 뿐입니다. 왜에서 원했던 것은 "백제 신라 임나"의 왕이었는데, 여기서 백제가 빠집니다. 백제는 쭉 남조랑 교류하고 있었으니까요. 반면 신라는 고구려를 통해 북조와 외교하고 있었죠. 남조에서는 백제는 자기들이 아는 나라니까 구라라 생각하고 상관 없는 신라와 임나만 책봉해 준 겁니다. 거기다 책봉된 관직은 백제가 두 단계나 높았고, 이후 고구려의 장수왕은 백제보다 두 단계 높았습니다.

이렇게 백제와 신라는 부정됩니다. -_-a 다만 남은 건 임나인데... 위에서 말했듯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닙니다. 가야 전체는 아니더라도 한두 나라가 백제와 신라에 맞서 일본에 기댔을 가능성은 충분하고, 혹은 전남에서 경남에 이르기까지의 소국 중에서 일본으로 간 도래인들과 같은 세력이 있었을 만도 하고, 반대로 일본에서 소국 한두개쯤 점령했을 수도 있죠.

그런데 이걸 또 정치체라고 판단하기 또 그런 게 -_-; 일본서기의 구라가 너무 심하다는 거죠. 아니 욕심이 너무 심했어요. 얘네는 임나는 물론 백제, 신라, 고구려까지 자기들에게 조공 바친 속국이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그게 멸망한 이후까지라는 거죠. orz 이 때문에 학문적 반박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인 반박용으로 북한에서 분국설이 나옵니다. 멸망한 이후에도 조공을 바쳤다는 것, 거기다 그 조공 바친 해가 약속이나 한 듯이 똑같다는 것을 통해 한반도의 국가들이 일본 내에 분국을 만들었고, 걔네한테서 받은 조공이라는 거죠. 일본의 학계를 데꿀멍 시키는 이론이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임나 뿐 아니라 고구려, 백제, 신라를 가지고 거짓말 한 게 뻔히 드러난 상황에서 임나 자체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거죠. 역사는 한 나라의 자존심, 그런데도 공식적으로 임나일본부를 폐기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말이 안 됐던 겁니다. -_-;

현재 임나일본부 자체는 폐기된 상황이고, 대신 많은 학설들이 난립하고 있습니다. 많이 들어보셨을 한반도 남부에 왜라는 다른 세력이 있었다는 것, 가야 지방에 일본과 같은 왜의 세력이 따로 있었다는 것, 그냥 무역 기지, 외교 기지, 백제의 용병 기지 이런 거요.

전남에서 가야까지 이르는 소국들에 대해서는 아직도 연구가 부족합니다. 사료가 부족하고, 일본서기나 삼국사기에서는 왜곡돼 있죠. 그저 고고학 발굴로 이런 나라나 세력이 있었다는 것 정도를 알아낼 수 있을 뿐이죠. 임나일본부식으로 왜가 주도했을 수도 있고, 반대로 가야나 전남 지방의 강국이 왜와의 관계를 주도했을 수도 있습니다. 서로간에 많은 억측이 들어가지만, 양국의 자존심 문제 때문에 툭 터 놓고 얘기하기가 너무 힘들죠. 사실상 가야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던 것이 바로 이 임나일본부설 때문이거든요. -_-;

어쨌든 왜가 생각보다 강했고, 초기 신라가 왜에 조공을 바칠 만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약했다는 생각은 듭니다. 어쨌든 아무것도 단정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그 형태는 임나일본부 같은 식이 될 수 없죠.

그리고 이 임나일본부설 때문에 큰 오해가 있는데, 일본서기의 가치는 충분합니다. 어쨌든 백제와 가야에 대해서 가장 많이 적혀 있는 게 이거죠. 삼국사기에 간략하게 돼 있는 게 정말 자세히 적혀 있기도 하고, 다른 내용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런 면에서 그 가치는 충분하며, 솔직히 없어서 울며 겨자먹기로 참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일본서기를 복어로 취급하죠. 다루기가 정말 까다로워서요. 삼국사기도 초기 기록에서 이런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서기를 부정하면서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을 부정하는 게 식민사학의 잔재라는 말은 이중논리죠.

3. 한반도의 패자로
이후 곧바로 연과의 긴 전쟁이 시작되지만, 이렇게 된 거 한반도의 상황을 다 끝내죠.

광개토대왕 이전 백제와 고구려의 상황에 대해 두 가지 말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곡창지대를 다 차지하고 있었으니 땅은 차이가 나도 할 만 했다와, 애초에 체급이 너무 차이가 났다는 겁니다.

당시 한반도 최고의 요충지는 낙랑군이 있던 평양 일대, 근초고왕이 낙랑을 책봉 받았듯 고구려와 백제는 이 곳을 차지하려고 정말 계속 싸워댔죠. 문제는 이 때의 백제의 국력이 어느 정도였냐는 것입니다. 당시 고구려는 압록강부터 옥저, 부여, 낙랑군 등을 먹고 요동을 찔러대고 있었습니다. 반면 백제가 마한 지방을 "안 먹은 것이냐" "못 먹은 것이냐"에 따라 상황은 크게 달라집니다.

안 먹은 것이라면 마한이 확실히 복속돼 있었고 이게 백제의 국력에 포함됐다는 의미겠죠. 이렇게 본다면 고구려와도 할 만 합니다. 다만 중앙집권이 너무 약하기에 불안요소가 크죠. 일단 전 아직까지는 신라도 백제의 영향권 내에 들었을 정도, 즉 한반도의 맹주가 백제였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반면 남쪽을 못 먹은 거라면? 백제는 그저 영토 확장을 북쪽으로 먼저 잡은 게 됩니다. 밀리던 고구려의 모습을 보면 이해가 가기도 하구요. 백제가 고구려에 밀리면서 전남 쪽이 아닌 왜와 손을 잡았다는 것을 보면 더 이상해지죠. 결국 이런 관점에서는 고구려가 전선이 여러개라서 문제였을 뿐 백제는 애초에 고구려에 상대가 안 됐다고 볼 수 있는 거죠. 백제가 전남 쪽을 확실히 차지한 건 한참 후인 무령왕 때였습니다. 이 전남지역의 마한 소국들에 대한 연구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뭐 이 정도로 정리하고... 여러 차례에 걸친 백제 공격과 400년의 남정을 통해 백제와 가야라는 한반도 중남부의 강대국들은 모두 무릎을 끓었고, 신라는 완전히 복속됐습니다. 호우명 그릇 같은 게 그 근거로 쓰이죠. 이후 진흥왕이 태왕 칭호를 받는 걸로 고구려왕의 호칭이 태왕이었고 신라도 그걸 이어받았다는 것의 근거로 쓰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 왜 광개토대왕이 완전히 점령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문제는 이 단편(!)을 마치면서 얘기하겠습니다.


아신왕은 이런 상황에서도 악착같이 나라를 되살립니다. 그리고 고구려에 복수를 꾀하죠. 403년에 신라를 일단 공격했고, 404년에는 수륙합공으로 요동의 석성과 대방군까지 진격했지만 광개토대왕이 직접 와서 물리칩니다. 한창 후연과의 전쟁 중인 상황을 노린 거였습니다만... 이 때문에 열 받은 건지 부상을 입었는지 405년에 죽게 됩니다. 뭐 이런 부분을 보면 400년의 신라 공격도 백제에서 계획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참 나쁘지 않은 왕이었던 것 같은데 상대를 정말 잘 못 만난 케이스죠.

아신왕이 죽자 일본에 있던 전지왕이 급히 귀국해 즉위했으며, 이후 백제는 죽어 지내다가 개로왕 때 다시 재기해 고구려를 공격하려 합니다. 하지만....................... 이건 나중에 다시 얘기하죠.

어쨌든 안심할 순 없지만 한반도에서의 반항은 끝났습니다. 이제 숙적 후연과의 대결이 남았죠. 다음 편에서 계속하겠습니다. _-)/~

-------------------------------

후연이랑 싸우는 것까지 갈랬는데 할 말이 참 많군요. -_-a 에궁.

다음 편 쓴 다음에 요서경략설을 외전으로 다뤄보겠습니다. 저 나름의 결론을 내렸으니까요. 그리고 안타까운 얘깁니다만... 제 판단으로 백제의 요서경략설은 임나일본부설보다 신빙성이 낮습니다.

광개토대왕이 5만이나 보낸 걸 보면 왜의 병력이 강했던 것 아니냐... 는 말이 있던데 글쎄요. 앞뒤 상황을 보면 그냥 한반도 남부에서의 상황을 한 방에 끝내려고 무력 시위용이 더 강했던 것 같은 생각도 드네요.
* OrBef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11-28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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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1/27 21:11
수정 아이콘
압도적인 전력을 과시해 적이 대항할 생각조차 못하게 하는 것도 좋은 전술이니까요.

...가끔 그러다가 나라 기둥뿌리가 뽑히는 대참사가 일어나긴 하지만 -_-;;
아틸라
11/11/27 22:28
수정 아이콘
BGM이 후덜덜 하네요 -_-;;
저기 흙먼지를 날리며 달려오는 고구려군을 본 연합군의 심정일까요.. 크크크

5만이라는 수의 군대는
진짜 군마 5만필에 신궁을 탑재한 5만 개마무사 집단보다는
2만여 기병에 그 이상의 보급+지원+기타부대의 수를 합한 규모이지 않을까요?
물론 신라와 연합군의 대치가 장기화 된 상황에서
두둥!하고 나타난 수만의 기병만 해도 압도적인 전장지배력을 보여주었겠지만죠.

임나일본부는...
일본의 고대 한반도와 관련된 컴플렉스가 드러난 사례중 하나인지라.. 그리 집착하는거겠죠(칠지도 같이말이죠..)
이전글에서도 마찬가지고
사료가 부족하다는 것은 역사를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요 뉴뉴..
11/11/27 22:50
수정 아이콘
4세기말 5세기초 일본은 야마토 정권 초기해당 되는 시대로 야마토정권의 세력 범위는 기나이(畿內)즉 지금의 나라, 교토,오사카에 해당되는 지역입니다. 그 이외에 지역은 야마토정권에 형식상 복속되어있지만 사실상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큐슈지역은 일본문명의 발상지이며 야마토정권을 능가하는 세력을 가지고 있었죠. 이당시 일본은 야마토정권 대 큐슈와의 대결이라고 볼수있죠.
그런데 큐슈는 당시 신라하고 밀접한 관계를 맺고있습니다. 야마토는 또한 가야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있고요. 즉 신라와 야마토정권은 서로 적대적 관계에 있었죠 야마토가 일본 통일을 할려면 신라의 힘을 약화 시켜야합니다. 그래서 가야와 연합해서 신라를 자주침략을 하죠. 그중 큰것이 위에서 말한것 이고요. 그 이후에는 6세기에 큐슈를 복속시킬때까지 끊임없이 침략을 하고요
당시 신라와 일본과의 관계를 잘보여주는 설화가 있는데 박제상설화 입니다. 눌지왕 동생이 각각 고구려와 왜에게 볼모를 보냈는데 박제상이 고구려와 왜에 있던 눌지왕동생을 구하고 왜에서 죽고 박재상을 기다리는 부인은 돌이 되어벼렸다 라는 설화인데요 이 설화만 보더라도 신라는 일본에게 볼모를 보낼정도로 많이 약했죠
그 후 신라는 나제동맹으로 고구려의 복속에 벗어나서 독자적인세력을 구축하여 힘을 키웠고 반대로 큐슈와연합하여 야마토정권과 전쟁을 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2년간 전쟁에서 527년에 큐슈가 지면서 야마토정권이 일본을 통일하게되죠

임나일본부가 전혀 근거가 없다고는 할수 없죠
국가형성이 신라 가야보다 늦다고 해서 힘이 약하다고 할수는 없는것이니까요
당시 일본이 한반도 남쪽에서 경상도 일대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던것은 사실입니다.
긍정하기도 그렇지만 부정하기도 그런것이 임나일본부설이죠
그냥 일본서기가 뻥튀기 해논것이라고 생각됩니다.
Je ne sais quoi
11/11/27 23:36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한중일 3국의 얽힌 역사가 풀리려면 정말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네요. 정치적인 이유로 불가능할지도 모르겠구요 -_-;
달리자달리자
11/11/28 00:05
수정 아이콘
잘읽었습니다. 추천!추천!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역사중에 제일 재미있게 느끼는 시대가 백제 근초고왕이 고국원왕 죽이는 순간부터, 진흥왕이 백제 뒷통수 후려까고 한강유역 먹고, 신라와 당나라가 서로 속고 속아주고 속이는 과정 까지라고 생각해서,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다음글도 기대하겠습니다.!!
11/11/28 02:17
수정 아이콘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백제와 일본의 관계는 일본이 형이고 백제가 아우같은....그런 관계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셨는데 워낙 지나가는 말이어서 근거까지 여쭤보질 못했네요. 제게는 페르마의 정리같은......

신라나 가야보다 왜가 국력이 더 셌을 가능성이야 당연히 있지요. 백제보다 강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은 합니다. 내부에서 일단 적도 거의 없고, 신라나 백제에서 볼모(??)를 보내기는 해도 반대의 경우는 드물지 않았나요... [m]
나이트해머
11/11/28 09:17
수정 아이콘
국가형성 자체는 늦었지만 왜의 덩치가 생각보다 많이 크지요. 한반도 남부 일대 전체와 인구가 맞먹던 걸로 여겨지던가.
거기다 바다라는 절대적인 지형적 방어조건까지 딸려 있고, 한반도 남부 국가들 입장에선 살살 달래서 끌어들일 대상인 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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