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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21/03/18 19:23:23
Name 아타락시아1
Subject 평생 나를 잊어도, 내 얼굴조차 까먹어도 좋다.
  나랑 1년을 지내고 해어지는 순간 내 얼굴조차 잊어도 좋다. 그저 앞으로 행복한 일만 많았으면 좋겠어. 작년 우리 반 친구들한테 들었던 감정입니다. 참 바보같이 임용을 늦게 봤어요. 선생님을 하는게 무서웠거든요.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군대로 도망갔다가 그래도 시험은 봐야하기에 공익을 하면서 시험준비를 했고 다행히도 합격을해서 작년부터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고있어요. 남들 앞에서 말하는게 무서웠던 저는 수업하는 것도 너무나 두려웠는데 그러기엔 너무나 많은 수업을 해야하더군요.

  지금도 똑같이 선생님이란 일을 하는 것은 제게 하루하루 견뎌내는 느낌입니다. 나 같은 사람이 우리 반 친구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나? 학교에서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있을 수는 없을까? 오늘 수업한 게 너무 어려웠나? 결국은 또 나 혼자만 이야기 하다가 수업 종이 쳤구나. 등등등 정말 많은 고민과 자괴감을 견뎌내야합니다. 그래서 매번 출근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하고 준비한 수업을 훑고 혼자 시뮬레이션을 해봐요. 모르면 열심히라도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진짜 대학 다닐때 놀지 말고 공부를 할 걸 그랬어요. 그러면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알려줄 수 있었을텐데 아쉬움이 남거든요.  

  저는 항상 우리반 아이들을 친구라고 부릅니다. 물론 ~~친구라고 부르지는 않고 마치 유튜버가 구독자들 호칭 정한 것 처럼 저는 학생들을 친구라고 호칭합니다. 그래서 작년에 원격수업 촬영할 때 '4학년 친구들 안녕하세요~ 오늘은 선택의 문제가 왜 일어날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해 선생님과 같이 공부해볼까요?' 와 같은 멘트로 촬영을 시작하고 다른 반 4학년 친구들은 항상 저를 보면 "4학년 친구들 안녕하세요~"를 따라하곤 했었던 추억이 떠오르네요. 그런 친구들이 들어올 때 부터 어두운 표정이면 걱정이 됩니다. 반대로 제가 조금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서 웃거나 제 수업을 듣고 뭔가 알겠어! 하는 표정을 지을때면, 심지어 제가 찍었던 원격수업의 내용을 줄줄 읊으면서 질문을 해올때면 너무나도 행복해서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렇지만 친구들은 꼭 선생님을 좋아하지만은 않죠. 사실 좋아하지만 참 투덜대는게 많답니다. 4학년은 왜 하필 3층이에요? 교장선생님에게 이야기해서 1층으로 옮겨요. 급식 너무 맛 없어요. 수업 너무 길어요. 수업 재미 없어요 등등등 마치 제가 엄마한테 짜증냈던 것 처럼 아이들도 똑같이 저에게 저런 불만을 이야기 하더라고요. 그래도 어머니가 '우리 집이 여기인걸 어떡하니~ 착한 아들이 이해해줄까?'라고 했던 것 처럼 저도 '우리 친구들이 1,2,3학년 동생들보다 형, 누나, 오빠, 언니니까 조금 양보해줄 수 있을까요?'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냥 조용히해' 라면서 일축할 수도있지만 어떻게 그러겠어요.

  이 감정은 마치 짝사랑같은거라서 어쩔 수가 없거든요. 감히 '가만히 있어! 어디서 말대꾸야!' 같은 말이 입 밖으로 나가질 못해요. 아직까진 화를 내더라도 '필요에 따라 연출하여' 내는거지 진짜로 너무나 화가나서 친구들에게 표출하게 되지는 않는거 같아요. 작년 스승의 날이었던가요 동학년 선생님의 제자가 교대에 합격해서 다닌다고 찾아왔던 기억이 났어요. '선생님의 모습이 너무 떠올라서 저도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라는 말을 하더군요. 솔직히 선생님에게 저거보다 더 좋은 말은 없습니다. 그러자 다른 선생님들도 1년에 한 명이라도 자기를 저렇게 기억해주는 제자가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할 때 저도 모르게 마음 속에서 흘러 나왔던 말이 글의 제목입니다.

  '평생 나를 잊어도, 나중에 얼굴과 이름조차 까먹어도 좋다.'

  저 하나 기억하는게 뭐 중요하겠습니까. 앞으로 더 좋은 선생님 만나고, 더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너무 감성적인, 감정적인 글이었나요? 의식의 흐름대로 쓰다보니 글이 너무 난잡해서 죄송합니다. 어제 제 댓글을 보니 너무나 감정이 앞섰던 거 같아요. 그래서 사실관계도 무시한채로 댓글을 막 달았더라고요. 다시 한 번 정말 부끄러워서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가지 현안들과 생각들이 있으실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 작년에 ebs 틀어놓았던 선생님 보면 진짜... 욕 먹어도 할 말 없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싫어하진 않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교직에는 저보다도 훨씬 훌륭하고 책임감이 강해서 제가 배우러 쫓아다녀야하는 선배님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전적으로 믿고 맡겨달라는 이야기는 솔직히 못드리겠지만 그래도 의심이 앞서고 싫어하지는 않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긴 글이었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PGR에 이렇게 선배님들이 많이 계신 줄 몰랐습니다. 존경합니다.

* 손금불산입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3-06-30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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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18 19:45
수정 아이콘
아무래도 야만의 교정에서 상처 입은 채 자란 분들이 저 포함 많이 있는듯 합니다. 돌이켜 보면 분명 좋았던 기억도 많은데 당시의 야만성에 매몰돼 간혹, 아니 영영 잊어 버린 것 같습니다.
다크템플러
21/03/18 20:00
수정 아이콘
https://cdn.pgr21.com./recommend/2468

예전에 참 인상깊게 읽은글인데 비슷한 감성이네요 흐흐
2021반드시합격
21/03/18 20:06
수정 아이콘
저세상 미친 필력이 담긴 글이네요 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읽었습니다.
좋은 글 소개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떠나보내는 데 익숙한 직업이 좋은 직업일 수는 없어.] ㅠㅠ
2021반드시합격
21/03/18 20:02
수정 아이콘
(수정됨)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저도
초-중-고 거치면서 열 분 넘는 담임 샘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스승의 날에만)연락 드리는 건
초등학교 4학년 때의 담임선생님 한 분 뿐입니다.
당시에는 분명 젊디젊은 청춘의 미남쌤이셨는데
어느새 제 모교에서 교장선생님 하고 계시더군요. 허허허

에피소드가 워낙 많은데 하나만 꼽자면,

어느 날, 아이들이 기억 안 나는 뭔가 사고를 쳤고
흔히들 생각하시는 그
다들 눈 감고 손 들어, 포함 뭐 이것저것 했는데
끝끝내 범인이 안 나왔습니다.
그러자 샘은 아이들 다 책상 위로 올라가라 그러고
손 들고 벌 서게 했어요. 어찌 보면 흔한 광경이죠.

그때 한 친구가, 정말 용감한 친구가
'선생님, 질문할 게 있습니다.' 라더군요.
샘 왈 '뭔데?' (샘 아직 빡쳐 있으셔서 목소리 안 좋았음 크크)
근데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저는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벌을 서야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라는 겁니다.

그때 저는 '?!?!'싶어
눈까지 번쩍 떴다가 황급히 다시 감았는데요,
잠깐의 침묵 후에 선생님은
니 말이 맞다며 모두 다 손을 내리게 한 후
놀랍게도 아이들에게 사과를 하셨습니다.
구체적인 워딩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메시지는 분명했습니다.
당신이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그러고는 집에 가기 전 종례 시간에
한 번 더 사과를 하셨습니다.

나중에 학급 문집에서도 편지글로 또 사과를 하셨더군요.

제가 저보다 어른인 분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받아 본 건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때 한 번 뿐으로 기억합니다.

잊을 수 없는 장면이고, 얼굴도 까먹지 않습니다 크크크
쌤은 본인의 그 사과를 기억하실랑가 모르것지만
제게는 평생 참스승의 본받을 모습으로 남아있을 겁니다.

아타락시아1님의 말씀 한 마디, 행동 하나도
맡고 계셨던, 맡고 계신, 맡으실 반의 어느 친구에게는
평생의 배울 점으로 간직되리라 생각합니다 :)

선생님, 힘내세요.
Sardaukar
21/03/18 20:17
수정 아이콘
좀 다른 얘긴데 제발 잊어줬으면 하는 애들도 많습니다
두부두부
21/03/18 20:18
수정 아이콘
전 중3 때 담임이 좋았습니다.
왜 좋았냐면.. 저 때만 해도 학교에서 소풍을 갈 때.. 선생님들은 그 어린 학생들 앞에서 매번 술을 드셨어요.
그것도 학부모가 준비한 음식을 드시면서..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처구니 없는 장면인데.. 매년 그래왔으니 그 땐 비정상이라고 생각치 못했어요
그런데 중3 때 담임은.. 학부모가 억지로 준비한 음식과 술을 마다하고 본인 스스로 게임을 준비해와서 저희와 놀아주었어요.
정말 센세이션 했어요.. 그땐 마냥 그 시간이 즐겁기만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렇게 튀는 행동을 한 본인은 다른 선생님들께 얼마나 눈총을 받았을까
엄청 용기낸 것이고.. 그게 신념이었구나 라고..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선생님~ 전 아직도 그때 무슨 게임 했는지도 생각이 납니다. 정말 감사했어요.
소풍 때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이고 어떤 기억을 공유해야하는지 처음 알려주셨어요.. 감사합니다.
21/03/18 20:46
수정 아이콘
원래 세상에 옳고 그름은 없죠. 직업 그 자체로는 욕 먹어 마땅한 것도 없고 칭찬받음이 당연한 것도 없습니다.

본디 모든게 가치중립적이며 각 개인의 경험에 따라 호오가 정해질 뿐입니다.

따라서 누가 초등교사를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욕한다고 아타락시아님이 상처받을 필요도 없고 누가 초등교사를 존경한다고 아타락시아님이 자랑스러워할 일도 아니죠. 그 사람의 "초등교사"는 당신이 아니니까요.

물론 저도 이 간단한 생각을 잘 지키진 못합니다. 흐흐..
유료도로당
21/03/18 21:58
수정 아이콘
혹시 13차 글쓰기 이벤트 주제가 '선생님'인가요? 크크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혜정은준아빠
21/03/18 22:39
수정 아이콘
저도 제 인생에 큰 영향을 주신 스승님이 있습니다!!! 물론 좋은 방향으로요!!! 아이들이 초등학생인 학부모로써 PGR 회원이신 선생임 모두 힘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21/03/19 07:41
수정 아이콘
매일 지나치는 작은, 살짝만 뛰어도 3초면 건널 수 있는 횡단보도가 있습니다. 신호등을 기다리며 지켜봤을 때, 초록불을 기다리는 사람은 근 3개월 간 본 적이 없습니다.
누군들 배웠을 수밖에 없는 소양일 텐데, 각자의 사정이 있겠지만 안타깝고 씁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서 빨간불에 멈춰서는 사람을 발견한 것 같아 괜히 혼자 감동이고 행복하네요.
그러니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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