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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1/01 00:35:32
Name 트린
Subject [내왜미!] 2화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2)







같은 날 아침.
은실의 가족은 일요일을 맞이해서 항상 보는 아침 프로그램인 "TV동물농장"을 보는 중이었
다. 아버지 정형군이 긴 소파 가장 오른쪽에 몸을 묻고, 차례로 어머니 김연수, 남동생 정혁,
마지막으로 오른쪽에 은실이 앉아 있었다.


“은실아.”


대답 대신 텔레비전 속 성우의 목소리가 자리를 메웠다.


“제보를 받고 급히 출동한 제작진이 대의동 도로공원에서 발견한 것은…… 있다! 정말 있다!”
“은실아. 과자 좀.”
“늑대를 닮은 큰 개, 시베리언 허스키와 말티즈, 검은 고양이와 토끼가 함께 어울려 사이좋게
길을 걷는 상황. 주위 사람들은 물론, 오랫동안 희한한 동물들을 봤던 담당 PD나 동행한 전문
가마저 두 눈을 의심하고. 허허, 그래도 귀엽다. 정말 귀여워.”


연수는 고개를 젓고 가죽 소리를 내면서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향했다.


“은실이 왜 저러지?”
“초가을 소풍 나온 것처럼 구는 동물 친구들은 제작진을 보고 놀란 건지, 아님 주위를 둘러싼
구경꾼들에게 놀랐는지 파란불이 켜지자마자 건너편 길로 무한질주! 빠르다!”


돌아온 연수는 과자 봉지를 뜯고 주먹으로 크게 한 줌 뜬 다음, 다른 손으로는 가져온 우유를
들었다.


“직장에서 무슨 일 있었는지 어제부터 저 모양이에요. 과자는 내가 드리리다. 자, 아.”
“헤헤, 더 좋지. 아앙~.”


형군이 동굴 같은 입을 쩍 벌리자 일차로 뻥튀기에 버터를 바른 고소한 과자가 그곳을 한가득
메웠다. 이어서 고개를 젖히자 알맞은 양의 우유가 입에 들어왔다.


“엄마 나도.”
“넌 핸폰 게임만 열심히 하더니 이럴 땐 먹으려고 드네. 네가 제비 새끼야?”
“짹짹.”


연수는 눈가 주름이 살짝 지도록 웃으며 아들에게도 같은 식으로 과자와 우유를 대접했다. 잠
시 후 은실은 고민과 우울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남동생이 켁켁거리다가 기침을 하면
서 입을 좀 늦게 가렸던 것이다. 반 컵 정도 되는 우유와 둥그런 과자가 분출한 화산에서 터지
는 화산재와 연기처럼 뿜어져 나왔다. 활화산 주위에 사는 주민들의 슬픈 운명이 그러하듯,
은실의 얼굴이 끈적한 잔해에 뒤덮이면서 기분이 즉시 사망했다.


“아, 뭐야!”
“미안, 미안.”
“진짜 이게 뭐야!”


텔레비전 소리를 순간 넘어서서 응접실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의 고함이었다. 은실의 기세에
나머지 식구들이 입을 벌리고 벌떡 일어난 그녀를 쳐다보았다.
남동생이 제일 먼저 반응했다.


“누나, 미안.”
“우리 딸 많이 화났나 보네.”
“얼른 닦을 것 가져다줘.”
“으, 으응.”


혁은 한 번 넘어질 뻔하면서 화장실에서 수건을 가져다 조공 바치는 자세로 공손히 무릎을 꿇
고 그녀에게 바쳤다.
몰린 관심에다 과다하게 정중한 사과로 은실은 뻘쭘해졌다. 간단히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가족들은 텔레비전을 끈 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말했다.


“은실아 이쪽에 앉아 봐.”
“응.”
“진짜 직장서 무슨 일 있었어? 안 좋은 일이야?”


턱도 넓고, 어깨도 떡 벌어지고, 누구보다 남성적으로 생긴 아버지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무래도 직장이 경찰서인지라 걱정돼서 그러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은실은 그것마
저도 문제라고 말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은실의 집안은 만화나 게임에 나올 정도로 말도 안 되게 대단한 집안이었다. 양친 모두 국내
에서는 단 한 명뿐인 희귀한 직업을 가졌을 정도로 엘리트 중 엘리트인 분들이었다. 그런 일
을 하면 스트레스도 장난 아니고, 신경이 날카로워지거나 엘리트 특유의 깔보는 자세로 매사
를 봐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데 절대 그런 일은 없었다. 오히려 너무 소탈하고 따뜻하셨다.
아빠가 말했다.


“너만 괜찮다면 다음 비행 때 뭐 좀 사다주마.”
“그래요. ISS(*국제우주정거장)에서 호두과자 맛있게 잘한다면서요. 그런데 여보, 그거 혹시
노동착취로 만들어지는 거 아녜요?”
“개랑 원숭이에게는 인권이 없으니 괜찮아.”
“그런가. 그래도 왠지 찝찝해요.”
“입에 털이 걸릴 때는 있겠지.”


30분 단위로 일정이 짜여 있는 바쁜 와중에도, 무게 제한이 해외여행에 비해 만 배는 더 까다
로운 일을 하면서도 자신을 생각하는 고마운 마음에 은실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은실은 얼른 머리를 쳐들어 눈을 비비는 척하면서 말했다.


“그냥 새로 잠복하는 데 있어서 피곤해서 그래. 미안해 엄빠, 동생아.”
“그렇구나.”
“거짓말 아니지?”


은실은 밝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뭐하러 거짓말을 해. 나 밥 먹을래. 있다가 점심에도 나가봐야 해.”
“그래? 뭐 먹을래. 간단하게 캐비어라도 먹을래?”
“응, 아무거나.”


아빠만큼 바쁜 엄마가 주방에서 냉장고를 뒤지더니 제비집이나 곰 앞발, 만한전석, 김치 등
간소하게 이것저것 꺼내서 상을 차리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은실은 왠지 모를 힘이 솟았다.
바보 같은 실수로 정체가 드러났어도 어떻게든 부딪히며 범인을 찾아야겠다는 의욕도 함께
생겼다.




*



은실은 차에 오른 뒤 선배 안유성에게 전화해서 미군부대 쪽에 끈이 있냐고 물었다.


“예전에 군납 물품이랑 술 밀수 수사하면서 선이 좀 있는데 왜?”


은실은 미리 궁리한 대로 에스코트로 등록되어 들어가면 머물러야 하는 장소가 제한되어 있
으니 수사가 원활하지 못해서 따로 접촉선을 늘려보고 싶다는 핑계를 댔다.


“하긴 그러겠네. CID(*미 헌병 범죄수사대) 쪽에 말해 놓을게. 어느 초소를 가든 통과하게 말
이야. 쓰는 가명은?”
“정은지요.”
“너무 바뀐 게 없는 이름인데. 헷갈릴 수도 있겠다. 조심해.”
“……네, 충성!”




*



다시 미군부대 용산 개리슨.
모자를 눌러쓴 은실은 자체 터미널 내 휴게실과 맞닿은 간이식당에 앉아 있었다. 한참 점심시
간인데 아무것도 없으면 수상쩍을까 봐 핫도그 한 개와 루트 비어라는 음료수 캔 한 개를 사
서 식탁 위에 놓았다. 놀러온 것처럼 꾸미면서 잠복하려고 들고 온 포켓형 디지털 카메라도
음식 옆에 두었다.
그나저나 참 희한한 분위기에 희한한 물건이 많은 곳이었다. 주위 식탁에는 백인과 흑인들이
각자 동행끼리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것도 희한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머리 위에는
CNN 뉴스와 시간표 안내, 부대 내 자체방송이 번갈아가는 텔레비전까지 있어 외국스러운 분
위기를 더했다. 그러나 밥을 먹는 척하면서도 가장 신기한 것은 자신이 우연찮게 고른 핫도그
에 대한 취급이었다.
국내와 달리 다진 양파와 피클, 각종 소스가 리필이 무제한 가능한 음료수 대 옆에 잔뜩 놓여
있었다. 즉 추가금이나 관리 없이 원하는 만큼 원하는 대로 채워서 먹을 수 있게 마련해 놓은
것이었다. 어지간히 풍요롭지 않으면 하기 힘든 감각이라고 은실은 생각했다.


‘과연 미국이야.’


언제든지 양익과 그 패거리가 나오면 사진을 찍으려는 준비를 하면서도 은실의 관심은 핫도
그로 쏠렸다. 그녀는 가지고 있는 블로그에 핫도그에 관한 포스팅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있다가 피자를 사서 찍어도 재밌을 것 같아. 과자 중에 돼지 껍질을 튀겨 만든 과자도 있다
고 했는데 그것도 할까?’


곰손에 막눈이어서 패션이나 코스메틱 관련 포스팅을 잘 못 하는 만큼 입장객을 늘리려면
요새 뜨는 유행인 음식 사진 포스팅을 하는 게 옳아 보였다.
은실은 가벼운 죄책감을 느끼며 디지털 카메라를 켰다. 처음엔 몰카 찍듯 얼른 찍고 확인했
는데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시.”


이번에는 찍을 때 확실히 찍자 싶어 자동 모드를 해제하고 이것저것 만졌다. 마침 음식을 찍
는 전용 모드도 있었다. 카메라가 조명까지 터뜨리며 주인의 희망을 달성하려 들었다.
한참 그러자니 등 뒤에서 묵직하게 느껴지는 목소리의 여자가 으허허허 웃으면서 물었다.


“Why?"


은실은 깜짝 놀라면서 뒤돌아보았다. 이십대? 아님 삼십대로 보이는 흑인 여성이었다. 사람
좋게 보이는 뚱뚱한 그 여자는 웃음을 멈추지 않고 식당 바깥으로 걸어갔다. 처음 보는 사람
에게도 서슴없이 말을 걸고 웃는 것을 보니 과연 미국인은 미국인이다 싶었다.
그런데 왜라니?
은실은 그녀가 우리나라에 핫도그가 없어서, 신기해서 찍는 것이라고 오해한 게 아니길 바
랐다. 그런 오해라면 너무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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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4/01/01 00:36
수정 아이콘
소설 봐주시는 분들 100배로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추천해 주는 분들은 1000배로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은 1만 배로 받으세요~!
알피지
14/01/01 08:09
수정 아이콘
저는 11100배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
찬공기
14/01/02 04:33
수정 아이콘
호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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