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12/03/02 09:55:53
Name happyend
Subject 왜 아이들은 상납의 고리에 빠져든 것일까?
1.

지난 1월, 우리사회는 광기에 가까운 학교폭력과 만났습니다. 그동안 감추고 외면해왔던 것일 뿐이었던 이 치부는 몇몇 아이들이 죽음으로 항거하면서 드러난 것입니다. 정부는 그것이 곧 게임의 영향이라고 발표했고, 대통령마저 게임을 원흉으로 몰아붙였습니다. 모든 현상에는 원인이 있는 법인지라 여기에도 원인이 있을 것이고, 아마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그것이 진정한 원인이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게임에 빠져버린 아이들을 보면서 정부의 대책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신음하는 학교의 생생한 증언들 가운데 놀라운 사건하나가 보도되었습니다. 제주도의 한 중학교에서 2학년 남학생 43명 전원이 상급생에게 금품을 상납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 상납의 고리는 고등학교로 다시 지역사회 폭력조직으로 흘러들어갔다는 것이었지요. 그 액수또한 소위 빵셔틀이라 불리는 빵값이라 치부하기엔 어마어마한 기천만원이었습니다. 농촌의 중학생들이 바친 금액으로는 가히 놀라운 액수였습니다.

며칠 후에 고등학교 동창모임에 나갔던 저는 그 중학교가 제 모교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또 듣게 되었습니다.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예전 제가 다닐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돈되고 세련되어진 건물과 인조잔디가 깔린 운동장을 보면서, 요즘 학생들은 참 좋겠구나,하고 생각했던 저로서는 정말이지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왜 아이들은 상납의 고리에 빠져든 것일까요? 그후로 두달이 되어가지만 저는 이 생각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2.

저희 고향은 제주도에서도 가장 가구소득이 낮은 가난한 동네입니다. 제주도에 화산이 폭발하면서 랜덤으로 뿌려놓아 흔하디 흔한 아름다운 자연관광지 하나 없고, 그렇다고 특산물인 귤이 자랄 수 있는 환경도 못됩니다. 거기에다 찰기 없는 모래땅이라 바람에 날리고 또 날려서 곡식작물은 거의 재배할 수 없는 불모의 땅이었지요. 제가 태어나고 자라고 지금도 부모님이 살고 계신 마을의 이름은 ‘모래동네’일 정도입니다.

이 가난한 마을에 있는 중학교에는 제가 다닐 때만 해도 그래도 북적거렸습니다. 18개 학급에 1000명 가까운 아이들이 다니고 있었으니까요. 명색이 읍소재지에 위치한 이 학교로 아이들은 버스를 타고 혹은 저처럼 30분 넘게 걸어서  몰려들어 왁자지껄 했습니다. 그리고 졸업생들은 아주 상당수가 흔히 말하는 명문대학을 들어갔고, 사법고시를 비롯한 고시합격자가 끊이지 않았고, 심지어 현재 국회의원도 이 학교 출신이며 국내 유명그룹의 임원도 국내 유명대학의 교수도 전부 이 학교가 배출해낸 동문들입니다.

그러던 이 학교가 2학년 남학생 전원을 합쳐봐야 43명으로 쭈그러든 것은 어쩌면 모든 농촌학교의 현실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는 농촌을 볼모로 해서 이뤄졌습니다. 농산물가격으로는 아이하나 키우기 힘들고, 그나마도 투기붐까지 겹치면서 농토를 넓히기도 힘들게 되었습니다.
저희동네까지 불어온 투기바람은 결국 몇몇 나이드신 분들의 가슴에 바람을 불어넣어 난생처음 큰 돈을 손에 쥐게 된 노인들을 다방으로 끌어들였고, 도시에서 밀려난 퇴물 아가씨들의 수완으로도 그돈을 전부 울궈냈습니다. 할아버지들은 그렇게 쪽박을 찼고, 안그래도 억센 제주도 여자의 잔소리와 구박에 달달 볶였습니다.
그리고 마을 땅의 절반 이상이 서울 사람들의 것이 되었고, 그들의 땅을 경작지로 받아 나이드신 분들이 농사를 짓습니다. 다행히 곡식작물이 자라지 않는 저희마을에는 양파,마늘,당근,무 같은 뿌리작물들은 잘 자라서 그덕에 가난한 저도 서울유학생활이 가능했었고요.

하지만 농촌의 현실은 더 이상 풍년이나 흉년과는 무관하게 되었습니다. 몇 년전 농협조합장 선거에 동네 사람이 당선되었을 때 저희 부모님이 이런 얘기를 하셨습니다.
“조합장이 되면 1년이면 집사는데 그래도 **는 양심적인 아이라 2년걸렸다.”

네, 조합장은 선출직이라 임명직과는 다릅니다. 그리고 이것은 고구마줄기처럼 뿌리깊은 우리고향의 현실을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전에 제 사촌동생은 농협시험에서 떨어졌습니다. 성격좋고 사교성좋아 마을에서 신망을 받던 동생은 아마 합격했다면 지역사회에 꽤 공헌을 했을 것입니다.하지만, 결과는 불합격.이유는 단 한가지.....상납의 고리속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가남한 삼촌을 대신해서 후견인 역할을 해오신 저희 아버지께서는 노골적으로 화를 내셨습니다. **만원의 돈을 내놓지 않았다고 불합격시켰다고요.

그 전해에도 그 전전해에도 합격한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아버지의 신경질은 이해가 됩니다. 그들은 (제겐 동네 후배들입니다만) 제주 농협계와 공무원계의 거물집안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그 집안 식구들은 성적과 상관없이 모든 공직에 쉽게 들어갑니다. 읍장도 조합장도 선출직이기 때문에 가능한 고리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후배들은 학창시절 공부를 굉장히 못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거꾸로 1,2등을 다퉜습니다. 그렇지만 업무능력이 특별히 떨어지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공부와 업무능력은 정말 상관이 없어보이긴 합니다. ^^ 따라서 우리가 소위 사람을 뽑는 기준이 정말 온당한 걸까요?)

이렇게 인적네트워크, 제주도 사투리로 소위 ‘괸당’조직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은 상납의 고리속에 들어가지 않는 한 출세도 돈을 버는것도 불가능합니다. 지역농촌사회는 이 고리 속에서 움직입니다. 만일 누군가가 그 고리를 벗어나고 싶다면, 그것은 고향을 떠나야 하는 가혹한 형벌을 각오해야 합니다. 불모의 땅 저희 고향은 가난하기 때문에 이 고리는 더 튼튼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마을을 더 가난으로 내몰았고, 더 피폐하게 만들어갔습니다.


3.

조선시대 최고의 탐관오리의 상징은 조병갑이었습니다. 그에 대해 강준만 교수는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정확한 인용은 아닙니다.제 기억에 의존한...)
“조선시대에는 집안에 한사람이 출세하면 모두 그 우산아래 몰려들어 살아야 했다. 따라서 출세한 그 사람은 집안을 책임져야 했다. 조병갑도 가문을 책임지는 출세한 사람일 뿐이었다. ”

네, 괴물은 갑자기 출현하지 않는 법입니다. 조선사회가 만들어놓은 터전에서 나고자란 것이 조병갑일 뿐이었던 것이지요.

조선시대는 중앙집권적 국가를 표방하였으나 여전히 지역사회는 국가권력의 힘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지역사회를 계몽시켜 청동기시절 고인돌을 중심으로 이뤄졌던 공산주의적 공동체를 꿈꾸며 성리학자들은 향약을 만들었습니다.
성리학의 긴장성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그것은 지역사회의 뿌리깊은 상납고리를 만들기시작했습니다. 그 고리의 정점에선 것은 탐관오리. 그들은 권력의 쪼가리를 손에 쥔 아전과 관노비들을 빨대삼아 백성들을 쥐어짰습니다. 그들의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유향소는 신분사회가 저항받자 시민단체이자 언론기관으로서의 본분따윈 던져버립니다. 자신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상납의 고리속에 스스로 빨려들어가버렸습니다.

더욱 재밌는 것은, 가난했을 때는 지역조직이 더욱 공명정대했었다는 사실입니다. 향약을 만들 당시 조선의 생산력은 매우 낮았습니다. 누군가 남의 것을 탐내면 공멸하는 구조였기 때문이었지요. 농촌의 사회구조는 협동노동없이는 생산력을 높일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선후기,뉴라이트 학자그룹이라고 알려진 이영훈교수쪽의 주장으로는 대동법의 실시이후 상황은 판이해집니다. 엄밀하게 말해 이영훈교수그룹의 주장은 원인과 결과가 뒤집힌 것이라고 봅니다. 임진왜란이후 재건과정에서 농촌은 치수사업과 새로운 농경법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모내기법이라는 농업기술혁신이 가능해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빈부격차를 크게 했을 뿐만 아니라 농촌사회공동체를 파괴했습니다.

흥부와 놀부이야기에서 흥부가 쫓겨난 것은 이때문이었지요. 부자인 놀부는 더 이상 흥부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하루아침에 비정규직으로 전락한 흥부는 다수의 하층그룹을 형성하던 당시사회를 투영하고 있습니다.

대동법은 이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길이었습니다. 상공업을 발달시키는 길만이 그것을 보장하는 것이니까요. 또한 하층민들에겐 감세효과를 부자들에겐 증세효과를 거둬 그것을 국가가 다시 재분배하는 분배의 정의를 실현시킴으로써 급격하게 늘어난 생산력을 사회경쟁력으로 바꾸는 길이었습니다.

그 결과 18세기 조선은 활력이 넘치게 됩니다. 베이비붐이라 일컬어지는 엄청난 속도의 인구증가와 유럽의 두세배에 해당하는 일인당 식량소비량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이영훈 교수그룹이 말한 대동법이 분배에 치우쳐서 성장을 놓쳤다는 말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대동법의 효과는 18세기 조선에 고스란히 드러났으니까요.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렇게 되자 탐관오리들이 판을 치게 됩니다. 다시 말해 먹을게 생긴겁니다. 여기에는 지역사회의 뿌리깊은 권력구조가 한몫했습니다. 지역사회의 양반조직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더욱 단결했습니다. 양반권력은 향교와 유향소를 중심으로 국가권력의 혜택과 비호를 받으며 발령받아 내려온 수령들을 재단했습니다. ‘상소’한장이면 수령의 모가지가 댕강 떨어져나갔습니다.

이 와중에 영악한 관리들은 잘 짜여진 지역의 권력조직을 이용해서 상납의 고리를 만듭니다. 더 이상 지역사회는 공동체의 힘없이는 움직이지 못하는 저열한 생산력시대가 아니었던 것이지요. 농민을 쥐어짜 지역사회에서 튕겨져 나가더라도 대체 인력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달리 흥부가 낳은 자식수가 많은 것이 아니었지요. 그들을 다 먹여살리기 위해선 복종해야 했습니다. 지역사회농민들은 그렇게 순응하고 복종하고 숨을 죽여갔습니다.

그리고 아마 가난한 농민들은 다시 다른 농민을 갈취하고,누군가를 왕따시키는 지독한 폭력속에서 자신들의 불운한 운명에 대한 복수와 분노를 표현했겠지요.


4.

나경원의원의 남편인 김재호 판사가 검사실에 전화를 걸어서 아내를 비방한 사람들을 (무겁게) 처벌해달라는 청탁을 했다고 합니다. 왜 대한민국의 부장검사가 한낱 필부들의 처벌을 청탁해야 했을까요?

그리고 저희 고향의 아직 어린 아이들은 왜 상납의 고리속으로 빠져들어가야 했던 것일까요?

날씨만큼이나 참으로 무겁게 제 마음을 짓누릅니다.

(이이야기에 나오는 저희 고향 이야기는 다소의 추측이 있을 수 있음을 밝힙니다..........법이 무서워요.ㅠ.ㅠ....)


* 信主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2-03-10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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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3/02 10:18
수정 아이콘
누구를 향해, 어디를 향해, 무엇을 향해 싸워야 하는가.
그러나, 이런 폭력의 나선구조를 깨려고 하지않기에.
더욱 절망적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지금은, 남의 고통보다 매력적인 즐거운 환상이 여기저기 널려있고
싸우려 하는 사람을 슬그머니 빼내는 계책이 흔하고
사람 스스로 죽게 만드는 풍조를 만들고 있으니까요..
그냥, 한두명 적당히 그들의 카르텔에 끼워주면
나머지는 알아서 서로 못 죽여 안달일테니
권력을 쥔 필부들은 유사이래 얼마나 즐거운 웃음을 지을지.
12/03/02 10:35
수정 아이콘
권력이라는게 그만큼 달콤한 것이니까요...

돈을 더이상 아쉽지 않을 만큼 벌게 되면 명예를 얻고 싶고(그래서 재벌들이 그렇게 명예박사를 받으러 다니나 봅니다.)
명예를 더이상 아쉽지 않을 만큼 얻게 되면 권력을 얻고 싶고(그래서 그 고매하신 분들이 더러운 정치판에 뛰어드는 거겠죠?)
권력은... 아무리 얻어도 얻어도 아쉬운 법이지요.
PoeticWolf
12/03/02 11:06
수정 아이콘
괴물은 갑자기 출현하지 않는다.... 끄덕입니다.
범죄자, 범법자들을 굉장히 증오하고 살았었는데... 나이가 들다보니 그 위치에서, 그런 환경 속에서, 그런 배움만 얻고 자라다보면 나도 그랬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이 괴물로 변한 것에는 '구조'의 영향이 있지 않을까, 그 구조의 형성에는 나 포함 누구나가 기여를 했으니 그 범죄의 책임에는 나에게도 있지않을까...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이고, 올바르게 사는 건 무엇이며, 떳떳이 산다는 건 무엇일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그래서 그런지.. 글을 더 이어서 읽고 싶은 아쉬움이 듭니다 흐흐;; 감사합니다.
Je ne sais quoi
12/03/02 11:21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다른 때와 달리 좀 씁쓸하네요 ^^;
루크레티아
12/03/02 11:50
수정 아이콘
콩알만한 권력이라도 그것을 쥔 사람들에겐 언제나 불나비 떼가 몰려들기 마련이죠...
12/03/02 13:44
수정 아이콘
기분이 우울했는데 덕분에 조금 풀리네요.

좋은 글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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