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3/05/29 15:59:13
Name 온리시청
Subject [잡담] '메모광'이라는 수필을 아시나요?
메모광이란 수필을 아시나요?

제가 중학교 때인가 국어 교과서에서 보았던 수필입니다.

거기에서 작가는 자신이 언젠가부터 메모에 집착하기 시작하여 나중에는 잠시라도 메모를 버리고는 살 수 없는 메모광(狂)이 되어버렸다며 한탄을 하면서 시작하지만 순간적인 생각들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메모를 하고 목욕을 할 때는 메모를 할 수 없어서 너무 안타깝다는 등 결국에는 메모는 내 인생에 있어서 쇠퇴해 가는 기억력을 보좌해주는 아주 중요한 행위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 당시에 이 글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 훌쩍 커버린 지금에 와서는 그 글이 저에게 너무나 많이 와 닿습니다.
교과서 수필 속의 작가처럼 나도 모르게 뭔가에 빠져들고 정신차려보니 그것이 없이는 살 수 없게 되어버린 적이 너무나 많았기에.....

한 때는 오락에 빠져있었던 적이 있었답니다.
제가 고등학교때 전국을 들썩이게 했던 그 유명한 게임......‘스.트.리.트. 파.이.터’
그 치열한 경쟁세계에 빠져들어(그 당시엔 정말 장난이 아니었죠...--;) 시간가는 줄 모르고 오락실에서 죽치고 살았습니다. 나중에는 제가 살던 전주에서는 어디를 가던 거의 지지 않을 정도로 잘했었습니다.(정말로 시내의 유명한 오락실에 한 녀석만 빼고는 거의 다 이겼었죠....언젠가는 90판 넘게 연속으로 이긴 적도 있었다는...-_-v)

그 뒤로는 무협지에도 한번 빠져보고(크흑...우연히 ‘영웅문’을 보지만 않았어도...ㅠ.ㅠ) 농구도 좋아해서 지금도 전주집에는 그 당시 녹화해 두었던 테잎이 수십 개가 남아있습니다. 당시 기아와 고대 팬이었던 관계로 거의 기아와 고대시합 위주였고 NBA도 조던이 첫 번째 복귀한 후부터의 시합도 많이 모았습니다. 시카고 불스가 두 번째 3연패하는 동안의 주옥같은 시합들은 지금도 제 방 책꽂이에 잘 보관되어 있군요..

중학교 때부터 모으던 만화(북두신권, 드래곤볼로 시작했죠.....나중에 ‘터치’가 500원 짜리로 한꺼번에 나왔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가  어느덧 수백 권이 넘어서 아버지가 만화방 차릴거냐고 하시면서 화를 내셔서 많이 처분했지만 지금도 꾸준히 좋은 작품은 모으고 있습니다...
인터넷 시대를 맞아서는 영화수집에 열을 내서 대학원 생활하면서 공부는 안하고 영화만 모은거 같습니다...-_-;

그리고 작년부터 시작된 스타크래프트 ‘보기’.......
직접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고 보는 것만 한다고 이상한 놈이라고 지금도 주위 친구 놈들이 놀리지만 옛날의 무절제한 취미생활의 후유증이 너무 심하다는 것을 알기에 목에 칼이 들어와도 스타를 하지 않겠노라고 맹세한 것은 지켜지고 있지만 보는 것에 중독되어서 지금도 오늘에 있을 MBC Game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지나간 시합들 VOD도 다 모아서 정리해놓고.....직접 녹화해서 동영상 만들어도 보고......

이러한 순간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 했던 일들이 과연 앞으로 내 인생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없더군요...-_-;;;

스트리트 파이터 하려고 야자 빼먹고 도망가다 몇 번 걸려서 혼난 적도 있었고, 무협지에 빠져 있다가 어느 날 반 등수가 10등 이상이 떨어져 담임선생님에게 불려가서 ‘너 집에 무슨 일 있냐?’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었고(나름대로 상위권이었습니다..^^;)...농구는....음....도움이 된 거 같습니다....운동이니까...
만화책 사느라 썼던 돈을 지금 모았으면 자동차를 한 대 살 수 있을 것 같고. 보지도 않으면서 모아만 두었던 영화시디들이 이제는 아주 처치곤란입니다.
저의 이러한 취미들이 없었다면 저의 인생은 지금과 달려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좀더 공부를 열심히 했을 수도 있고 돈을 더 모을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저는 지금도 또 다른 것에 빠져있습니다. 그리고 이 순간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뭔가 다른 것에 몰두하게 될 것입니다.
단지 지금의 나는 그것이 현재 내 위치에서 해야할 일에 피해를 주지 않을 정도로 조절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메모광’속의 작가가 자신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메모는 더욱 필요한 것이라고 자신에게 말하듯이 저도 제 자신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즐거움을 얻기 위해 하는 일에 후회하지 않는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나는 항상 내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 할 것이다.’



ps....논문준비하는데 일이 잘 풀리지도 않고 심난해서 그냥 적다보니 글이 길어졌네요...결론이 좀...-_-a
    지루한 글 읽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__)

ps...그래도 오늘 게임은 봐야하는데...아~~ 졸업이냐 게임이냐 그것이 문제로다~~ㅠ.ㅠ
      지난주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임선수가 이겼으면 오늘은 강민선수 응원하려했는데....
    으~~ 고민이군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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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5/29 16:15
수정 아이콘
온리시청님 지금 빠져있는 또 다른 것이 궁금합니다 ^^ 내가 사랑했던 많은 것들...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비록 나에게 한푼의 경제적 여유를 가져다주기는커녕 수많은사람들의 비웃음과(?) 부모님의 잔소리, 빠듯한 주머니사정을 안겨줬지만 그들이 나에게 선사했던 즐거움, 즐거움이란 단어로는 도저히 표현못할 환희 그것에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메모광이란 수필을 교과서 마지막부분에서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ㅎ_ㅎ 그때는 그 사람이 그것에 쏟는 쓸데없는 열정(?)을 이해하지 못했었죠.
아 그리고 저도 영웅문을 읽었었는데 ^^; 다행히 그 책이 제가 읽은 첫 무협지이자 마지막 무협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중학생신분에 없는 돈 탈탈 털어서 책을 사모으는 저를 보시고는 아버지께서는 그책들을 압수해버리셨습니다 -_- 아직도 그 책들은 아버지서재에 모셔진 채로 있죠 -_- 그때 같이 압수당한 책이 삼국지네요 -_-;;(몇 달동안 두 책만 거의 외우듯이 읽었었죠 -_- 삼국지는 이제 그만봐도 된다는 좀 어이없는 핑계로 압수당헀죠 ^^; )
무언가에 열정을 느낀다는 것 그 자체가 바로 젊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젊음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멋진 에너지입니다 ^^
황명우
03/05/29 16:53
수정 아이콘
상당이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
사랑의사막
03/05/29 17:28
수정 아이콘
러셀이라는 사람이 그랬다지요, 살구(apricot)의 어원을 알고 나서는 더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이런 모든 무용한 지식들이 과일 맛을 더 달콤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쓸 데 없는 짓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들에 빠져 있는 순간이야말로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황홀한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 '황홀한 순간'은 매정한 '경제적 시간'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랑의사막
03/05/29 17:28
수정 아이콘
참, 살구의 어원은 precocious(발육이 빠른, 조숙한)란 말과 동일한 라틴어에서 온 건데, 어원을 잘못 아는 바람에 실수로 a자가 덧붙여져서 그런 거랍니다. ^.^;;
03/05/29 17:29
수정 아이콘
"터치".정말 명작이죠.
불순한 생각이 날 수 있는 제목과는 다르게
정말 순수하고 재미있고, 열정이 담겨있는 감동의 명작입니다.
아다치의 만화는 코믹하기도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슬픈 것 같습니다.
읽다보면 어느새 눈물이 나려고합니다.

글 잘 쓰시네요,~
박지헌
03/05/29 17:43
수정 아이콘
메모광...저도 그 수필기억합니다^^
저희가 중학교 6차교과서 마지막이었는데
그 수필 보면서..'.저러고 꼭 살아야되나?' 라는 생각이 들었었죠^^
멋진 글입니다^^
어떤것을 위해 열정을 쏟는다는것..
결과가 어땟던 정말 행복한일이죠^^
플토매냐
03/05/29 17:55
수정 아이콘
그 메모광이야기는 정말 내 이야기 같고 내가 메모광이 되어야 겠다.생각도 해보고 동질감을 많이 느꼈었던 이야기 였죠.
지금은 잠시 잊고 있었지만 그 메모광을 존경 했더랬습니다.
저도 한번빠지면 정신을 못차리는 성격이라 ....
주위사람들에게서 너무 한가지에 집착하지 말란 지적도 많이 듣습니다.
그렇지만, 안 고쳐져요.
스타가 좋으면 스타만 보고 싶고, 드라마고 코미디고 여행이건 다 외면 하고 싶은걸요. (메모광이 아닌 게시판광이 되었지만 말이죠)
온리시청
03/05/29 19:04
수정 아이콘
[해원님]...영웅문이 처음이자 마지막 무협지라니...엄청난 자제력이 있으시군요....저는 그때 10번을 넘게 보고도 무협의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해서 지금도 '군림천하' 9권을 눈빠지게 기다리고 있답니다....ㅠ.ㅠ

[원삔님]....아다치를 좋아하시는군요....하라 히데노리와 함께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입니다....정말 소설같은 만화들이죠.....^^
물빛노을
03/05/29 22:16
수정 아이콘
아니 박지헌님, 81년생이시면서 6차교과서 마지막이시라뇨ㅡㅡa
전 84년생이지만 6차교육과정이었는데요-_- 86년생부터 7차교육과정입니다;;
아다치 미쯔루...H2, Touch, Rough. 멋진 만화들이죠. 개인적으로 우라사와 나오키와 더불어 가장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03/05/30 00:27
수정 아이콘
^^ 다 아버지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_- 그 압수당한 책들을 보려고 어두컴컴한 아버지 서재에서 쪼그리고 읽어내려가던 기억이 나네요 중학생인 저에게는 만원에 육박하던 영웅문의 가격이 상당히 부담스럽기도 했었죠 그때는 아주 원망스러웠는데 지금은 감사하고 있습니다 ^^; 무협지를 스스로 끊는 것은 그 나이의 저로써는 불가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늘 자기 전에 곽정이 하듯이 저도 내공을 쌓으려고 -_-; 하다가 잠들곤 했었죠 ^^ 그 덕에 집중력이 많이 좋아진 듯 합니다 ^^ 고등학교때까지는 매일매일 연마했었죠 -_-v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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