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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6/08/08 20:38:10 |
Name |
퉤퉤우엑우엑 |
Subject |
[소설] 殲 - 2.자극 (刺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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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을 때, 하얀 천장이 보였다.
내 몸은 침대에 누워있다. 눈을 돌려 바라본 나의 몸에 덮인 이불과, 매트가 하얗다는 것을 보았다.
구태여 불편하게 엎드리지 않아도 배게는 하얀색일 것이라고 단정지었다.
학교에서 쓰러졌던 기억은 난다.
그렇다면, 여기는 양호실이려나. 내 집이라고 생각할 순 없는 건, 그 지저분한 내 방의 천장이 하얀색이라는 것은 말도 안되니까. 어째서 노란빛을 띄는 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은 아마 위에 사는 집의 잘못이라고 여겼다. 내가 청소를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게다가 이 침대도 꽤 깨끗했기 때문에──물론 내가 누웠으니 이젠 예외더라도──양호실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내 다리쪽에는 칸막이가 있어 높이 달린 시계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머리 뒤에는 운동장을 향하는 창문이 있다. 창틀은 아직 10월인데도 차가워서, 손을 살짝 데었다가 진저리를 치며 황급히 치워버렸다.
무심코 몸을 조금 일으켜 운동장 쪽을 보았다. 넓다고 하기는 무리인 운동장이지만, 그렇다고 학생 수도 얼마 되지 않는 고등학교에선 넓은 쪽에 속한다. 내가 발이 넓은 것인지 운동장에 있는 대부분이 낯익다고 느껴졌다.
어쩌면 지금까지 많이 보아 온 장면이기 때문에 낯익다고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운동장에는 꽤 큰 체구로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게 힘들어 보이는 사람도 있고, 작은 키로 잘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다. 내가 눈을 돌린 순간 누군가가 공에 얼굴을 맞아 쓰러졌는데, 제대로 보지 못해서 아쉽다고 생각했다. 중학교 때라면 운동장에서 종종 싸움이 일어나기에 볼 거리가 많지만 요즈음엔 어지간해선 싸우지 않아서 조금 심심하다고 느꼈는데, 오늘은 그것이 한가롭게 누워 있는 상태라 한층 더했다.
운동장에 별로 볼 일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왼쪽에서 성준이가 내가 알지 못하는 친구와 같이 지나가고 있...
"으...!"
찌릿, 하고, 두통이 일었다.
"으아...!"
일으켰던 몸을 다시 침대에 눕혔다.
두통은 계속 이어졌다. 몸을 눕히고 얼마 동안 진정하자, 조금은 가라앉은 듯 했지만 여전히 참기는 힘들었다.
침대에 눕자 다시 하얀 천장이 보였다. 왠지 눈을 뜨고 있으면 두통이 생기는 것 같다고 생각해서, 눈을 감고는 어두운 시계에 잠겼다.
뭐, 조금은 더 가라앉은 것 같기도 하다. 크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편하게 옆으로 돌아 누웠다.
그 때, 노크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어디 있는지는 칸막이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가 들어오긴 한 듯 발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많이 들었던 목소리.
"저...이초한. 어디 있어요?"
...태일의 목소리. 나이대에 비교하자면 적당한 목소리지만, 그렇다고 썩 낭랑하다고 표현하긴 힘든 목소리다.
지금은 피곤해. 저런 걸 상대할 수 있을만한 몸상태가 아냐.
아니지. 그래도 설마 아픈 사람한테 그런 짓을 할까. 아냐. 저 놈은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순간, 내 안에 있는 육감이 지금은 그런 걸로 고민하기 보다는 몸을 먼저 지키라고 소리쳤다.
"선배, 저 왔어요."
너무 늦었다.
내가 나 자신을 책망하며 후회했지만, 너무 늦었다. 저것을 이겨내야 겠지.
"왜 갑자기 쓰러진 거에요? 아침에 너무 일찍 일어나서 그런건가?"
"몰라. 갑자기 그냥 머리가 아팠─"
이상하다. 어느샌가, 두통이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뭐, 사람은 누구나 이유없이 두통이란 걸 느낄때도 있으니까. 너무 크게 평가하는 것도 문제가 있겠지.
"갑자기 머리가 아픈 것만으로 쓰러진다고 생각해요? 전 그런적은 없는데."
"그냥 그랬어. 나도 왜 그런지는 전혀 모르지."
"지금은 별로 아프지 않은 거죠?"
"아, 어. 어느샌가 나아버려서 이렇게 너하고도 말을 하고 있잖아?"
태일도 자비가 있는지, 그 후의 대화는 무미건조했다고 생각된다. 태일을 상대로도 정상적인 회화가 됐다는 것에 큰 의의를 부여한다면 전혀 무미건조하지 않았겠지만, 큰 주제없이 주절대기만 했던 건 사실이다.
나에게 금기시 되어 있는 학업성적에 관한 얘기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사소한 것으로 대화했던 것 같다.
그다지 신경쓰며 했던 대화도 아니니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내용도 없다. 굳이 뽑자면 태일에게 종족을 물어봤던 것 정도일까.
"그런데 이렇게 오래 있어도 되는거야? 지금 몇신데?"
"지금 점심시간이에요. 그러니까 운동장이 저렇게 꽉 찼잖아요."
무심코 또 다시 운동장 쪽을 바라보았다. 이번엔 두통은 없다. 비례하는지, 운동장에도 사람은 별로 있지 않다.
다시 태일의 얼굴을 보았다. 이젠 사소한 일들마저도 꺼낼 얘기가 없어 가만히 있었다. 그쪽에서도 딱히 할 말은 없어보였다.
"그 목걸이. 하고 다니면 안되는 거 아니냐?"
자주 보는 것이지만 무언가 적응이 되지 않는 그의 목걸이를 보고, 사소한 주제가 생겼구나하고 기뻐하며 실없이 중얼거렸다.
이런 것에 기뻐하는 나는 무엇일까.
"예. 하고 다니면 안돼요."
그건 자신의 나이를 말하는 것 같이 너무도 당당해서, 순간 말문이 막혔다.
태일이 말하며 꺼낸 목걸이는 중앙에 연한빛의 푸른색을 띈 작은 보석이 있고, 그 주변을 도금처리한 틀로 맞춰놓은 듯 했다. 양호실에도 선생님은 있기 마련이라서, 급하게 다시 숨겨야했지만.
"그래도 셔츠에 대충 숨기면 아무도 모르는걸요."
"아아, 그래. 내가 말하지만 않는다면 그렇겠지."
내가 말하자, 태일의 얼굴이 약간 찡그려졌다.
그 때, 두번째 노크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이어서 들리고 안으로 들어오는 발소리 역시 이어졌다.
둘 다 신경쓰지 않고 있을 때, 조금 전에 태일이 했던 말이 또 들렸다. 좀 더 굵은 목소리긴 하지만.
"이초한 어디 있나요."
...버릇도 조금 더 없는 말투이기도 하고.
태일이 나에게 누구냐고 속삭이며 다가오자, 난 그저 그런 사람이 있다고만 말해주었다. 저런 중저음의 목소리가 흔치 않긴 하지만, 내 주변인들 중에는 흔한 목소리여서 정확히는 누군지 알지 못했다. 후보로 떠오르는 사람이 몇명 있긴 했다.
잠시 뒤에 칸막이 옆으로 또 한명의 사람이 나타났다. 진호.
"어이, 꾀병!"
운동장에 있던 사람이었던지 약간의 열기가 느껴진다. 아니, 이 자식은 그렇게 뛰어다니는 체질은 아니었는데.
내 몸의 육감은 다시 한번 소리쳤다. 그런 것에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을 지키라고. 처음 온 사람이나 지금 온 사람이나 별 차이는 없다. 날 피곤하게 만드는 건 마찬가지니까, 병문안에는 반기고 싶지 않는 사람들이겠지.
"꾀병이라니. 난 정말 쓰러진거야."
"응, 그랬겠지."
그래도 후배라는 녀석은 아프단 이유로 많이 자제하고 있는데, 저 놈은 인정사정없다.
조금은 구원을 요청하는 마음으로 태일을 쳐다보았다.
"......!?"
그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굳어있다기 보다는, 화가 난 표정으로 누군가를 노려보는 것 같다.
방금 찾아온 새로운 불청객을 노려보고 있는 그 표정에선 살기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야, 너 왜 그래? 내 병이라도 옮은거냐?"
"아..."
이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 원래 표정으로 돌아왔다. 순식간에 안색이 변하는 것을 보고는 새삼 놀라버렸다.
"아니에요. 그냥..."
"그냥...?"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 시간이 늦었네. 이만 가볼께요."
누가 봐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모습은, 평소의 태일과는 너무 달라 오히려 날 당황시켰다.
진호가 아무리 놀랍게 생겼다지만 저럴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며 언제 한번 진지하게 이유를 묻겠다고 다짐했다.
"나도 그만 가봐야 겠다."
"넌 5분이라도 있는 게 예의라는 생각은 전혀 안해봤냐?"
"넌 나한테 예의라는 게 어울린다는 생각은 해봤나 보지?"
...진호의 말이, 너무나도 지당한 정론이어서 반박할 수가 없다. 그러는 사이 태일은 이미 칸막이를 넘어가 보이지 않았다.
진호 역시 말을 끝내자마자 매몰차게 뒤를 돌아서서 가버렸기 때문에(애초에 별 기대는 안했지만) 이제 내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피곤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는 것이 나에겐 무리였던가.
한숨 잤다가 일어나면 대충 수업은 다 끝나가는 시간이겠지.
그러고보면, '그만 누워있고 수업하러 가야지' 라는 생각도 하지 않은 내가 이상하다고 해야하나.
많은 생각들을 접고 아무 생각없이 누워서 눈을 감았다.
"왜 여기에 있는겁니까? 당신이 있을 곳이 아니잖아요!"
"......"
"아니, 우선적으로 어떻게 여기 있는겁니까!?"
밖이 시끄러워.
다른 곳으로 걸어가며 말하고 있는지, 소리는 점점 작아진다.
"그거야 네가 상관할 바 아니잖아?"
"아니요. 상관할 바 있어요. 전..."
더 이상은 들리지 않는다. 소리가 작아지기도 했고, 잠에 빠져들고 있기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걷는다.
두통은 많이 가라 앉았지만, 기분이 영 좋지 않아 머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야자는 빼먹었다.
이대로 집에 가서 쉬다보면 두통도 나아지고 기분도 좋아지겠지.
아픈 것 때문에 학교 생활에 문제가 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니까, 오늘만 이러고 말거야.
현관에 도착하자 가방에서 열쇠를 꺼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언제쯤 이런 귀찮은 생활을 청산할지 궁시렁댔다. 보지도 않고 손만 뒤로 뻗어서 열쇠를 꺼내고는 현관 문을 열었다.
세면도 대충 하고 저녁도 대충 차려 먹고는, 넓지 않은 거실(실은 집 전체나 다름없는) 에 누웠다.
두통은 충분히 견딜만 하다. 사실, 양호실에 누워서 어느샌가 두통이 나아진 뒤로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문득, 꿈 생각이 났다.
1주일 전부터인가, 이런 악몽이 '시작된' 것이.
모든 시야는 초록색으로 가득 차있고, 그들은 마치,
뭐랄까.
사람이라면 죽어야만 하는 모습을 하고 살아있는 그들을, 뭐라고 해야하는거지.
그러고보면, 그들이 살아있다고 정해진 건 아냐.
살아있지 않다면?
살아있지 않다는 것도 정해진 것은 아니겠지만, 만약 그게 살아있지 않다고 전제를 둔다면 그것은 쉽게 생각할 수 있겠지.
혼(魂), 일까. 보통 귀신이나 유령이라고들 하던. 혼이라는 것이 검은빛의 초록색이라고는 확정할 수 없고, 아직 그들에 대해서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 생김새는 역시...
"윽...!"
아주 강한 두통이 밀려왔다.
역시 그 꿈을 떠올리는 게 아니었어.
그런 복잡한 생각을 하면 두통이 더 심해지는 걸까.
두통이 심해지면서, 속이 답답해졌다. 한심하게도, 그 꿈과 비슷하다고 생각해 버렸다.
이대로 집에 있는 건 그리 좋은 일이 아니라고 느꼈다. 단지 기분이 그렇게 느꼈다.
뭔가, 밖에 나가야만 할 것 같아...
딸깍.
현관문을 열고, 아파트의 복도를 따라 걸어서 계단으로 내려갔다.
집안에 있던 것보단 두통도 많이 가라앉았다. 아니, 두통에 적응한 걸까. 그러는 사이에 몸은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아파트 출구로 나와서 그저 걸었다.
마땅히 갈 곳은 없어서 쉴 만한 장소를 생각했다.
이 동네에서 쉴 만한 곳이라면, 공원 뿐이려나.
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에서부터 산책로가 펼쳐져 있다.
중앙에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분수대가 있고, 그 주변에는 풀숲과 벤치들이 있다.
벤치에 앉아서 쉬는 편이 좋겠지. 지금까지, 생각하기보다 몸이 움직이는 것이 빨랐다고 느껴졌다.
때 이른 낙엽들을 걷어내고 벤치에 앉았다. 내 뒤엔 꽤 큰 풀숲이 있다.
심호흡을 하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은 몇개 없지만 맑지 않은 건 아니다.
분수대 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 뒤돌아 보았지만, 남자 둘이서 싸우고 있는 듯 둘이 마주서서 서로 노려보고만 있다.
아직 가로등은 켜지지 않아서 잘 보이지 않는다. 조금 있으면 불이 들어오고 확연히 볼 수는 있겠지.
다시 하늘을 보고 한숨을 한번 쉬었다. 두통은 어느 정도 가라앉았고, 정신을 차리자 거의 무의식적으로 이 곳에 왔다는 것에 놀랐다.
이성적으로, 그 꿈 생각을 하면 두통이 생겨 버리는 거라고 결론지었다. 아직은 조금 이를지 모른다. 학교에서 쓰러진 것도, 그 꿈 따위를 생각하진 않았던 일이었다. 하지만 그냥 마음이 그런 식으로 믿어서, 그렇다고 생각을 했다.
뒤에선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는 것이 들렸다.
"정말...인가요?"
"그렇다고. 그러니까 이제 여기서는 내버려둬줘. 그게 약속이잖아?"
"......"
악취미긴 하지만, 싸움구경이라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지 나도 모르게 그 말소리에 집중하고 있다.
그래봐야 웅얼거림으로 대충 알아낼 뿐이지만 내용은 어느 정도 들렸다.
그들의 회화 내용은 깨나 내 관심을 끌게 만들어서, 다시 뒤를 돌아 보았다. 약속?
뒤를 돌아보자, 왼쪽에는 코트를 입은 남자의 실루엣이, 오른쪽에는 중절모를 눌러 쓴 큰 체격의 남자의 실루엣이 보였다.
"...아니요."
"뭐?"
"전, 그럴 수 없습니다."
뭐가 어떻게 된지는 모르겠지만 한 녀석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는건가.
───철컥.
어? 무슨...소리지?
"제 직분일 뿐이에요."
왼쪽에 있는 사람이 말하며, 오른손에 들고 있는 무언가를 상대 쪽으로 들이밀었다.
잘 보이지는 않는다. 빨리 가로등 불이 들어와야 해. 너무 작은 것이어서 실루엣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건가."
"..."
잠시 동안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그 전에 내가 해야 할 일이 생겼어."
"뭐...라구요?"
순간, 그들의 동작이 빨라졌다.
그리고 그 때, 가로등에 불이 들어왔다.
어떤 자의 왼손에 있는 물건은,
총.
그리고, 그들의 동작이 빨라진 이유는,
한명이, 나에게 돌진하고 있다. 총을 들지 않은 남자가 모자를 집어 던지고 나에게 돌진했다.
돌진하고 있다기 보단, 이미 그는 돌진하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지금은 내 앞에서,
나이프를,
내 복부로,
깊이,
찔러 넣으려...
뒤에서 나머지 한명의 모습이 보였다.
낯이 익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다. 그 표정은 증오에 가득 찬, 말할 수 없는 분노에 찬 표정.
낯이 익어서,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누군지 생각하기 보다 내 기억이 끊어지는 것이 빨랐다.
「기억이 끊어진다」를, 「죽음」으로 봐도 될까.
내 안의 목소리가 그것을 부정하며 소리치고 있는 것 같다. 죽는다는 것의 부정인지, 내 말이 틀렸다는 것의 부정인지.
내가 마지막으로 본 건,
겨우 몇미터.
하지만 아득히 멀어보이던 곳의,
목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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