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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01/08 13:12:57
Name 슈테판
Subject [일반] [설문] 대한 독립운동의 노선은 어떤 노선이 옳았다고 생각하시나요 (수정됨)
공식 기관의 여론조사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재밌자고 하는 설문입니다.

국사 시간에 일제시대 독립운동의 노선들이 다양했다고 배웁니다.

여러분은 어떤 노선이 옳았다고 생각하시나요?

1. 실력양성론

2. 외교독립론

3. 무장투쟁론

* 요청사항 (아래 요청사항은 [참여자 분들의 호의에 기대어 부탁드리는] 요청사항[으로 구속력은 없습]니다).

** 그냥 제가 개인적으로 [재미로 하는 설문으로] 다만 응답자분들의 호의에 기대어 요청을 드리는 것일 뿐입니다.

** 자신이 생각하기에 맞는 노선의 번호와 이름을 먼저 밝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가급적] 장문의 댓글은 그 이후에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 1. 실력양성론. 왜냐하면~
[권고드리지 않는] 예) 역사란 복잡한데 어떻게 하나의 노선으로 선택지를 단일화~

** 1 2 3 을 모두 해야 한다. 와 같은 중복 응답은 [피해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굳이 중복 응답을 원하신다면 1은 몇 %, 2는 몇 %라고 %를 명백히 밝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 사람의 입장이 복잡할 수 있다는 것은 저도 잘 압니다. 그러나 설문조사란 그런 복잡성의 반영을 어느 정도 포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예) 무장투쟁 50% 외교독립 50%

** [선지]를 4 5 등으로 추가해서 응답해 주시는 것은 [집계에 반영하겠습니다].
예) 4. 소비에트와 일체화되어 무장투쟁론
5. 내선일체 자치론

** 위의 요청사항을 반영하지 않은 댓글에 대하여는 [제가 일일이 답변드리거나 집계드리기 어려운 점은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 위와 같이 추가 수정을 드린 경위는 아래의 댓글을 참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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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쥐
25/01/08 13:18
수정 아이콘
무장투쟁을 안했다면 장제스가 그렇게 지원해주지 않았겠죠.
전자수도승
25/01/08 13:19
수정 아이콘
3번 없었으면 장개석도 호응이 없었을 거고 루즈벨트도 독립시키려고 고집부리진 않았을 겁니다
우리보다 일찍 식민지가 됐던 오키나와는 전쟁 끝나고도 한참 뒤에 결국 일본으로 반환됐죠
VictoryFood
25/01/08 13:21
수정 아이콘
이미 본토를 30년 이상 뺏앗긴 상황이라면
실력양성(1)은 불가능하고
무장투쟁(3)은 보급 등의 문제로 지속성이 떨어지기에
외교독립(2)해야 하지만 외교독립은 다른 나라가 우리를 인정해 주지 않죠.
그래서 (2)를 위해서 (3)을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깃털달린뱀
25/01/08 13:22
수정 아이콘
(수정됨) 3이 있어야 1, 2도 가능한겁니다. 3없이 1만 하면 자치령 엔딩이고 2만 하면 티베트 엔딩이에요.
MissNothing
25/01/08 13:23
수정 아이콘
무장투쟁이 맞았죠. 특히나 외교가 말이 안되는 이유가 지금도 그렇지만 강대국이 약소국 사정따위 관심 없다는게 6.25에서도 드러낫고, 아프리카에 국경 선 죽죽 긋는것도 그렇고
무장투쟁을 안했으면 일본의 속국으로 편입됫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잘봐줘야 지금 대만꼴 낫겠죠.
25/01/08 13:25
수정 아이콘
정답이 되는 선례들이 이미 있기 때문에 자명하죠.
3번이 아니면 실효가 없어요.
이른취침
25/01/08 13:27
수정 아이콘
와, 이 민족은 정말 문화가 독특하고 발전됐구나? -> 실패
와, 저 미친놈들 차라리 지들끼리 살라고 하는 게 속 편하겠는데? -> 성공
항정살
25/01/08 13:39
수정 아이콘
3이 없으면 1,2가 성립할수 없습니다.
25/01/08 13:43
수정 아이콘
1은 너무 수동적이죠. 외부적인 패망이 없다면
결과적으로 연성 친일파를 양산할겁니다.

2는 지금 티벳의 현실과 같습니다.

3이 효과적이냐 아니냐의 문제지
무장투쟁은 필연이라고 봅니다. 간혹 김구가
테러리스트 과격분자라서 동조할 수 없다는 의견도
종종 보는데 사후적 결과론적 평가라고 보고
그 시대 상황에는 그런 성향의 지도자가 맞다고봐요
25/01/08 17:16
수정 아이콘
(수정됨) 김구가 테러리스트 과격분자라 동의할수 없다는 의견이 나오는건 독립운동가라도 본인과 같은 성향(우익)이 아니면 누명 씌우고 백색태러로 공격하는게 큽니다. (이건 해방 후 이야기가 아니라 상해시절 이야기입니다) 괜히 미군정 측에서 김구등 광복 당시 임정 인사들을 개인자격으로 입국 시키고 광복 후에 여운형 등 이전 임정에 소속되어 있다 나간 인사들이 임정법통론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인게 아니죠. 좀 독하게 이야기 하자면 국민대표회의 이후의 임시정부 (상해 후반기 및 충칭 임시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로써의 대표성을 상실해서 다수에게 인정 받는 진짜 [입시정부]가 아니라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는 이름을 단 여러 독립단체중 하나인 수준이였습니다.
25/01/08 13:46
수정 아이콘
3
15년째도피중
25/01/08 13:50
수정 아이콘
2와 3이 둘 다 시너지 효과를 발휘합니다. 3만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2도 있어야 합니다.
단 한국 독립운동에서 2가 진정 효과가 있었냐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1,2,3 다 있다고 독립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독립한다고 자립이 되는 것도 아니고요. 알면 알수록 이 나라의 지금 모습은 기적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아. 국뽕은 사절요.
25/01/08 13:52
수정 아이콘
3은 필수이고
2로의 방향성을 우선으로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티아라멘츠
25/01/08 13:53
수정 아이콘
3. 결국 무장투쟁했으니 장제스가 좀 챙겨준거죠
윤봉길 도시락폭탄 의거는 생각보다 큰 사건이더군요
샤한샤
25/01/08 13:58
수정 아이콘
(수정됨) 좀 슬프지만 저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4. 아무래도 상관없다 같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4번 99%에 3번 1%?

대한민국 독립은 조선반도 사람들의 의지나 열망과는 아무 상관없이 일어난 독립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제스가 한국청년에 뿅가서 고집부린게 영향이 있다 없다 이 부분은 저도 맨날 헷갈리긴 하는데
1천만 조선인이 모두 일치단결하여 일본제국에 부역했다고 해서 조선이 독립당하지 않을 수 있었나 생각해보면 역시 아닌 것 같아요.

저는 특히 2번의 역할은 정말 잘 모르겠어요
이게 무슨 FoW 속에 가려진 원시정글이 아니거든요?
서구권 엘리트들은 조선이라는 별도의 문화를 가진 나라가 일본에 병합되어있는 상황이라는것을 다 알고있었는데 ..
LowTemplar
25/01/08 14:08
수정 아이콘
잉 열강의 의지로 자동으로 독립됐다는 것도 좀 지나간 학설 아닌가요..?
3.1운동으로 촉발된 독립 의지 및 임정/무장투쟁 흐름 없었으면 독립국에 포함 안 됐을 수도 있어요.
25/01/08 15:01
수정 아이콘
무장투쟁이나 독립정부 구성 등을 하지 않았다면
주인만 중국이나 러시아로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죠
샤한샤
25/01/08 15:17
수정 아이콘
이미 2차대전 종식 전부터 공산주의 견제 궁리하던 미국이 미치지 않고서야 소련이 먹게 놔뒀을리는 없다고 보구요
중국 역시 말이 안되는게 중국한테 줄만한 아무런 역사적 배경이 없고 식민지들 다 독립시키던 역사적 흐름하고도 안맞아요
25/01/08 15:31
수정 아이콘
전 결과론 빼고보면 현재의 대한민국이
오히려 예외적 상황에 가깝다고 봐서요.
형식적 독립이야 가능할 수도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양국에 종식당했을 가능성이
낮지는 않다고 봅니다.
둥그러미
25/01/08 16:26
수정 아이콘
그렇기 때문에 카이로 회담이 중요하고

그게 없었다면 미국은 일본의 즉각 분할(조선의 독립)보다 당면한 공산주의 남하를 막는게 중요하니까 조선을 일본과 함께 연합군통치에 오랫동안 두는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높죠

분할 독립된 한반도에서 김일성 막기 vs 미군정하에 김일성 막기

후자가 압도적으로 쉬운것 아닙니까

나아가서 기반이 취약한 신생국보다 일본의 휘하에서 공산주의 남하를 막는게 효과적이었겠고
샤한샤
25/01/08 18:07
수정 아이콘
저는 카이로 회담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연합국이 일본의 팔다리를 자른다는 측면에서라도 조선을 분할통치했을 것 같지만요
둥그러미님의 의견도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통합규정
25/01/08 13:58
수정 아이콘
자게에 글이야 자유롭게 쓰는 거지만

되게 집요하고 강제적인 요청사항를 잔뜩 걸어놓고

구속력은 없지만 본인이 원하는 양식에 맞춘 댓글이 아닐 시 무시한다고 대놓고 써놓으신거 보면

조금 의아하네요.

재미있자고 한다고 하셨는데 묘하게 공격적으로 느껴져요. 제 착각일까요?
FastVulture
25/01/08 14:16
수정 아이콘
2222
슈테판
25/01/08 16:57
수정 아이콘
많은 분들이 불쾌함을 느끼셨다면 우선 죄송합니다.

최근에 자게가 시국 관련 글이 많아, 그것도 좋지만, 정치글이 아닌 주제의 글도 보고 싶고, 다른 많은 분들의 의견도 궁금해서 시작했습니다.
제가 설문조사에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기도 하고, 설문조사의 형태를 취한다면 재미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설문조사가, 그 특성상 응답자의 선지가 분명하게 표시되어야, 나중에 보시는 분들도 파악하기 좋고, 집계하는 사람도 집계하기 편리해서, 많은 분들의 호의에 기대어 요청을 드린 것입니다.
집요하다고 느끼셨다면 죄송하지만, 예를 들어 [3. 무장투쟁론] 정도로 간단한 앞머리를 요청드린 것이고, 강제적인 요청사항이라고 하셨지만, 제가 강제할 권한도 없고, 능력도 없음은 더 잘 아실 것입니다.
예를 들어, 처음 달아 주신 댓글부터 이것을 3으로 분류해야 할지, 아니면 1, 2가 다 필요하다는 전제에서 3도 필요하다는 것인지 1, 2, 3으로 분류해야 할지 집계하는 입장에서 헷갈립니다.
길게 의견만 달아 주시면, 그 의견을 어느 선지로 분류해야 할지 집계자인 저의 주관적 판단이 개입된다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그러면 집계를 굳이 왜 하냐고 말씀하실 수 있는데, 설문조사 자체가 집계를 해서 경향을 파악하기 위함이어서요.

또한 아무래도 나는 3개의 선지 중 택일하고 싶지 않다고 하실 분들이 많을 것 같아(그리고 실제로도 많네요) 나름 비중을 지정하는 방법도 권고드렸던 것입니다.

답글을 달거나 집계하기 어렵다는 것은 집계의 기준을 나름대로 말씀드린 것인데, 이 부분도 어쨌든 공격적으로 느끼셨다면 죄송합니다.

불편함을 느끼셨을 분들께는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쵸젠뇽밍
25/01/08 14:00
수정 아이콘
3번은 필수, 2번은 필수까지는 아니지만 해야하는 선택 정도.

역사는 지나온 길 외에는 알 수가 없는 거죠. 외교적 노력에 훨씬 더 에너지를 쏟았다면 분단과 내전을 겪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외교적 노력이 훨씬 적었다면 적화통일 엔딩으로 끝났을 지도 모르고요.

당시 상황에 전세계가 전쟁중이었기 때문에 무장투쟁 없이 뭔가가 이뤄질 가능성은 없었다고 봅니다. 모두가 싸우던 시기니까요. 그런 시기가 아니더라도 무장투쟁이 효율적인데, 시기마저 그러하니 무장투쟁이 기본이 될 수 밖에 없죠.
25/01/08 14:00
수정 아이콘
3번이죠
25/01/08 14:06
수정 아이콘
무장투쟁은 그냥 필수로 깔아야하고 그 다음에 선택인거죠
25/01/08 14:08
수정 아이콘
3번 없는 1,2번은 존재할 수가 없죠
왜냐면 3번없는 1,2번은 외국입장에서 그냥 호구 of 호구이기때문에 무슨 말을 하든 적당히 들어주는 척 하고 말 가능성이 너무 높음...
나스닥3만간다
25/01/08 14:16
수정 아이콘
(수정됨) 굳이 고르자면 무장투쟁이지만 사실 어느 나라든 3개를 다 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는 없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본토대비 피점령지의 사이즈가 더 메인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중국의 티베트와의 결정적인 차이죠.
위에 오키나와 얘기도 있는데 오키나와가 한일병합보다 더 일찍 일본에 점령됐던 거는 오히려 오키나와에게 불리한 요소이고(2차대전과의 관련성이 더 낮음) 대만이랑 한반도가 독립한 거는 2차대전 승전국에 중국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둘 다 청일전쟁의 영향이 있었고(시모노세키 조약으로 대만 할양, 조선에 대한 청의 지배력 부인) 따라서 중국이 여기에 대해 할 말도 있었던 거죠
그리고 오키나와와는 달리 조선에 대한 일제의 야욕이 달성되기까지 청일전쟁 영일동맹 러일전쟁 가쓰라테프트 등 당시 열강 - 훗날의 2차대전 승전국 중 프랑스를 제외한 전부의 대결 혹은 승인을 받았습니다. 그만큼 열강들한테 개겼을 때 뱉어야 하는 (일본입장의) 리스크 올라가는 거죠.
장제스가 처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독립을 주장했던 데 무장투쟁의 영향이 분명히 있었겠지만 한반도 독립은 오키나와랑은 다르고 승전국인 영국이나 프랑스로부터도 대다수 식민지가 독립했던 마당에 패전국 일본에서 한반도 정도 되는 사이즈가 독립 못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네요.. 오히려 소련이나 중국의 지배를 받았으면..
샤한샤
25/01/08 15:18
수정 아이콘
그리고 오키나와는 실질적으로 미국 식민지로 쓸건데 미국이 먹기는 좀 거시기하니까 그냥 어거지로 일본한테 소매넣기 해둔 느낌도 있어서요
적당한 예는 아닌 것 같습니다.
Lord Be Goja
25/01/08 14:26
수정 아이콘
대원군과 고종이 자기권력이나 조선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하려던게 2번이고
결국 누굴 끌여들이건 자체 실력없이는 아무것도 안된다는거만 보여줬죠


1번도 식민환경에서 제대로 육성이 될리가 없고요...
melody1020
25/01/08 14:28
수정 아이콘
실제로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도 이에 대한 논쟁이 많았었죠.
하버드에서 석사, 프린스턴에서 정치학 박사를 딴 이승만은 외교적인 접근을 우선시 했기 때문에, 기존의 무장투쟁 독립군들과 갈등이 심했다고 합니다.
무장 투쟁이 필요하긴 했는데, 각각의 사례들을 살펴보면 너무 말이 안되는 시도들이 많았어요.
1차 세계대전 당시에만 해도 미국과 일본은 동맹국으로써 사이가 좋았는데, 미국 항구에 정박해 있는 일본 전함을 폭파하려고 한다거나 일본과 친밀한 관계를 가진 미국 대사를 암살한다거나 하는 일들은 국제적으로 한국의 독립군들을 고립시키고 테러리스트에 불과한 폭력집단으로 인식하게 만들었거든요.
뭐 그렇다고 해서 딱히 이승만도 외교적인 방법으로 성과를 냈다고 보기도 어렵긴 합니다.
가쓰라 테프트 밀약으로 미국과 일본이 은밀히 각자의 이익을 약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승만의 외교적인 접근 방식도 공허한 외침에 불과했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승만의 방식은 효과가 없었고, 무장투쟁 방식은 주먹구구식에 오히려 역효과까지 낼 정도로 멍청한 방식이었습니다.
재밌는 사실은 무장투쟁에 반대 입장을 가지던 이승만이나 안창호 선생님도 나중에는 외교만으로는 한계를 느껴 무장투쟁을 병행해야 한다고 기조를 바꿨고, 무장투쟁을 주장하던 사람들도 본인들만의 방식에 한계를 느껴 이승만을 상해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를 했죠.
세상 일이라는게 외교독립이 옳다, 무장투쟁이 옳다 이런 식으로 단답형으로 결론이 나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이 그 상황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그 최선들이 모여서 독립이라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고 봐야죠.
율리우스 카이사르
25/01/08 14:29
수정 아이콘
저 제가 무식해서 그런데 실력양성론은 누가 주로 주장한 주장이고 어떤 전략인거여요? 
방구차야
25/01/08 14:36
수정 아이콘
아마 이토히로부미가 내선일체를 반대하며 조선의 자치를 유지하려던걸 안중근 의사의 의거로 인해 합병이 가속되었다는연장선상이 아닌가합니다. 1번은 안중근의사의 의거를 반하는 입장일겁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25/01/08 14:37
수정 아이콘
헷갈리는데, 안중근 의사는 무장투쟁을 대변하는 사람이 아닌건가요? ;;; 제가 너무 뜨문뜨문 알아서.. 그런가.. ;;
Lord Be Goja
25/01/08 14:42
수정 아이콘
그러니까 괜히 무력투쟁하는 바람에 상황이 나빠졌으니 헛짓말고 걍 일제가 제공하는 인프라속에서 민족실력이나 키우는게 맞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25/01/08 14:46
수정 아이콘
아.. 안중근 의사의 안티태제 인거네요.. 다만 안중근 의사가 없었으면 장개석이 한국 챙기는 일도 없었고 재수없으면 나라없는 국민이 되었을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흠.. ... 근데 일제가 제공하는 인프라속에서 민족실력을 키운다는게 말이 되는건가.... ;; (물론 답변주신분께 따지는건 아닙니다. ) 그게 고착화되면 .. ;;; 솔직히 공식적으로 한국어 말살되고 피가 섞이면서 한 50년 더갔으면 ..
전기쥐
25/01/08 14:53
수정 아이콘
한 50년 더 갔으면 한국어가 완전히 잊혀지고 독립 의지도 상실되지 않았을까요.
율리우스 카이사르
25/01/08 14:58
수정 아이콘
네.. 그랬을것같고.... 안그랬다하더라도, 크루드 족과 비슷한 모양이지 않을까 싶어요..
방구차야
25/01/08 16:24
수정 아이콘
저도 잘알지는 못하지만, 당시 세계적으로 식민지 정책을 보면 모든 제국이 합병과 토착민 문화말살을 추구한건 아닙니다. 영국-인도 관계만 보더라도 그렇고 (거리가 너무 떨어져있긴하지만) 사회문화적 합병보다는 자원의 수탈에 치중했고 해당 식민지 민족간에 지배-피지배를 이용하면서 관리한게 대부분이었죠.

이를 조선으로 치환해보면 당시 귀족이었던 사대부와 왕족들을 통한 지배구조를 유지하면서 피지배 민중을 통치할수도 있고
당시에 동학농민운동을 짖밟은 왕족이나 귀족(사대부)계층이 일본의 무력을 빌린것도 사실이고요. 이 체제를 유지하면서 점진적인 민족발전을 꾀할수도 있었다고 보는 시각일겁니다. 그럼에도 일반민중은 계속 수탈당하는 입장이었겠지만요.

결국 이는 필연적으로 민중항쟁에 직면할수 밖에 없고 자연스레 공산주의 혁명이나 종교적 혁명(동학 시즌2나 태평천국같은)으로 발현될수밖에는 없었겠죠. 결국 일제의 압제아래서 조선지배계층을 통한 점진적인 민족발전은 망상이라고 봅니다. 그저 다른 체제로의 급진혁명만이 기다리고 있을뿐이겠죠.
율리우스 카이사르
25/01/08 17:02
수정 아이콘
오.. 충분히 잘 이해가 갔습니다. 정성스런 댓글 감사드립니다.
25/01/08 15:21
수정 아이콘
실력양성운동은 급진개화파부터 이어진거라 보시면 됩니다
소위 꼰 스러운 유교선비들은 위정척사 즉 무장독립투쟁으로 이어지죠
25/01/08 15:36
수정 아이콘
근데 나라 뺏기기 전엔 학교를 만들고 국채보상운동이나 신문이나 한글연구 한국역사서 저술 등 실력양성이 아예 의미없진 않았습니다 다만 문화통치 시기쯤부터 이광수 등 변절자들이 넘쳐나서 그렇죠 뭐…
율리우스 카이사르
25/01/08 15:40
수정 아이콘
아.. 이해했습니다. 실력양성 운동이 의미가 없진 않았겠군요..
15년째도피중
25/01/08 18:21
수정 아이콘
현대 대한민국을 이루는 주요 인력들이 어디서 왔느냐를 따지면 실력양성운동에서 나온 면이 크니까요. 그 계통은 독립협회로부터 출발하고. 보통 학교에서는 그걸 기회주의와 비타협적 민족주의의 분화로 깔끔하게 설명하기는 합니다만... 사실 의도된 심플함이긴 합니다.
교과서는 교과서라 어쩔 수 없는거죠. 그 맹점을 파고 든게 뉴라이트 계열이기도 하고요. 맹점에 대한 공격은 일견 논리적으로 보이지만, 그래놓고는 또 다른 우상을 세워 다른 면을 가리려 한다는게 또 그들의 한계지만. 아니, 애초부터 그 우상을 위해 공격한다고 봐야겠네요. 이제는.
Lord Be Goja
25/01/08 14:31
수정 아이콘
보통 비무력투장으로 쟁취한 예로 인도가 언급되는데
만약에 대영제국이 미친개한테 물려서 국력이 확 쇠퇴하지만 않았다면 택도 없었다고 봅니다.아니면 잘해야 명목상 독립국이고 (경제와 사회적)구조상 속국이겠죠

베트남,알제리등도 마찬가지로 프랑스가 흔들리는 시기에 무력투쟁으로 얻었지 그냥 평화운동했으면 택도 없었을겁니다

요는 식민지유지로 얻는거보다 유지비용이 (정치 사회적으로)너무 많이 든다는걸 본국사람들이 깊게 느끼게 해야가능하다는거죠
25/01/08 14:48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전 세계적으로 봐도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안벌였다면 과얀 독립할수가 있었을까요 물론 그 희생은 당연히 숭고하지만...
율리우스 카이사르
25/01/08 15:00
수정 아이콘
태평양 전쟁을 안벌였다면, 일본은.. 동남아지역 자원을 확보를 못해서 미영프중러 등과 협상을 하면서 종전을 했어야 했을거고.. 그랬으면 아마도 만주일부/한반도는 일본이 차지한채로 2차 대전이 끝났겠죠? 흠..
쵸젠뇽밍
25/01/08 15:01
수정 아이콘
반대로 일본 정도가 한반도를 계속 묶어둘 힘이 있었을까요?
1900년 즈음의 세력구도는 동서양의 기술격차로 인한 기울어짐이 극단적이어서 발생한 거고, 기본 체급은 일본이 한반도에 비해 2배정도 될까말까인데 그 정도 체급차로는 식민지 유지는 못하죠.
샤한샤
25/01/08 15:26
수정 아이콘
에이 이건 절대 아닙니다.
1940년 일본 인구가 적게 잡아도(본토만) 이미 7천3백만만명입니다.
만주국이나 다양한 식민지를 포함하면 좀 더 될텐데 이건 자료 찾기가 힘드네요

당시 조선 인구가 2천2백만 ~ 2천3백만 입니다.
여기서 이미 3배 차이가 나구요

1인당 GDP는 좀 자료가 잘 안나오는데 뭐 식민지 전으로 봐도 최소 두배는 차이났다고 봐도 무방하니까
실제 체급은 적게는 6배 많게는 10배는 차이난다고 봐도 될겁니다.
쵸젠뇽밍
25/01/08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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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즈음의 세력구도는 동서양의 기술격차로 인한 기울어짐이 극단적이어서 발생한 거"
2배 정도 차이에 많이 나도 3배가 안나는데 그 정도로 식민지 유지는 무리죠. 10배는 차이나야 할텐데.
샤한샤
25/01/08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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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죠 세력비 최소치가 3배에요 그 이하로 세력비가 형성될 수가 없어요

일단 인구가 3배 이상 차이나는데 어떻게 국력이 2배 차이가 나요
이미 1인당 생산성같은거는 일본이 1500년대만 가도 한국보다 훨씬 앞서기때문에 단순히 개화 몇년 빨리했다고 생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에요
쵸젠뇽밍
25/01/08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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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먼저 말씀드릴게요. 제 의견 들으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있으시다면 우선 제 말을 이해해주시는데 집중해주시겠습니까?

제가 말한 '체급'은 국력이 아니라 인구수였습니다. '기본 체급'이요. 격투기 기술을 배우고 어쩌고 상관없는 '기본 체급'. '인구'를 말한겁니다. 그리고 그 인구가 2배정도 차인데, 10배는 차이나야합니다. 1900년즈음엔 19세기말 기술유입격차로 인한 경제력차이(당연히 다른 요인도 많이 있습니다)로 가능했지만, 그걸 유지는 못해요. '기본체급(인구)'이 2배정도 차이에 많이 나야 3배정도니까요. 기술로 압도해야하는데, 그러기엔 6,70년대만 되어도 그만큼 안 벌어집니다.

샤한샤님과 의견차이가 발생한 부분은, 샤한샤님은 '기본체급'을 경제력을 바탕으로한 국력이라 보신겁니다. 맞죠? 일단 단어사용이 달랐던 거고요. 샤한샤님도 일본이 계속 식민지를 유지할 수 있을거라고 보지는 않잖아요? 결국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전, 경제력보다는 인구를 바탕으로한 국력이 10배 이상 차이나야 식민지가 유지 가능하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식민지상태가 유지되고 있는 곳들을 봤을 때 10배도 적게 잡은 거고요. 10배가 안 나더라도 식민지를 유지하려면 다른 무언가(보통은 기술력)가 그 차이를 메울만큼 압도적으로 차이나야하는데 그러지 않을 거라고요.

이 정도면 제 댓글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한 것 같습니다. 샤한샤님의 주장이 일본이 추축국이 아니라 연합국이었다면 지금까지 한반도는 일본의 식민영토였을 거라고 생각하시는게 아니라면, 특별히 의견차이가 난다고 생각 안할게요.
샤한샤
25/01/08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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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저는 당연히 어떤 국가의 인구 문화 군사 제도 사상 다양한 역량이 총 결집된것이 체급이라고 생각해요
그 체급 중에서 가장 명시적으로 비교가능한게 경제력차이라고 보구요.
이건 제 독자견해가 아니고 전쟁 이야기 하는 사람들은 원래 다 이렇게 합니다.
인구로만 비교하면 스페인제국이 잉카 처들어간것부터 시작해서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다고 봐요

역량 차이 그까짓거 현대 시대에 오면 무차별하지않냐? 그럴 수도 있기는 한데
당장 이태리만 봐도 시칠리아는 동유럽보다 못사는데 밀라노는 독일 싸대기 때릴정도로 잘살잖아요?
얘네는 한나라가 된지 100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그러는데 이 격차가 쉽게 메꿔지나요

일제 이야기로 돌아가서 ,
일본이 우리나라를 쭉 식민지배했다면 일단 인구비가 3배에서 계속 벌어지면 벌어졌지 좁혀지지 않았을거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생산성으로 대표되는 민족의 역량은 차이가 쉽게 좁혀졌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았을 것 같아요.
조센징 차별 그런거 없는 시칠리아도 1차산업을 못벗어나는데 조선땅에서 포항제철이 생기고 삼성전자 하이닉스가 생겼을까요?
쵸젠뇽밍
25/01/08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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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제가 체급을 남들과 다르게 말한 것 같고요. 전 위에도 말했듯이 격투기 선수가 기술을 익히듯, 플러스되는 다른 요소를 배제하고 인구와 땅 정도가 기본 체급이라 생각해서 말했던 겁니다.

자꾸 의견차이가 발생하는 부분은 제가말하는 '압도적차이'에 대해 기준이 서로 다른 것 같아요. 제가 말한 압도적차이는 님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차이를 말합니다. 기본적으로 식민지를 보유한 국가가 식민지인 국가보다 기술적으로 앞서는 건 당연한 거고요. 그 정도가 아니라 압도적 차이를 말한겁니다. 사실상 현대문명에선 거의 없는 수준의 차이요. 그 정도가 되어야 10배 이내여도 가능하다는 거죠. 그냥 단순히 경제발전수준이 조금 앞섰다 수준으로 식민지배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삼성전자 포스코 같은 곳은 어려웠다고한들 지금 한반도가 경제발전 수준이 북한 정도였다고 해도 일본이 식민지배를 유지할 수 없을 겁니다.

왜 그런 거의 불가능한 차이를 말하냐면, 실제로 식민지배를 한다는 게 거의 불가능해서 말하는 겁니다. 전 세계에 식민지배가 존재하는 곳이 거의 없어요. 그리고 그런 곳은 압도적으로 차이가 납니다.

혹시 일본이 전쟁에서 지지않았다면 여전히 식민지배를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럼 저하고는 생각이 다르고요.
율리우스 카이사르
25/01/08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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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지금도 북한+남한 보다 일본 이 2배 경제규모 되는거 같은데.. ( 쌓인 자산을 생각하면 더 될수도.. ) .. 당시에는 샤한샤님.. 말씀대로 6배에서 10배 .. 그 이상 되지 않았을까요?...
쵸젠뇽밍
25/01/08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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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니까 유지를 못한다고 적었는데요. 2차대전 후 당장 독립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식민지 유지를 못했을 거라고요. 기본 체급 차가 크지 않아서. 왜 자꾸 '당시'라 이야기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압도적' 차이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1900년 즈음엔 서양기술이 들어오는 시차에 의해 그게 가능했지만 6,70년대만 됐어도 안됐을 겁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25/01/08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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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인도같은 ... 식민지가 아니라 합병이었으니까요.. 좀 달랐었지 않을까요? 당시 문학작품들도 보면 걍 일반 장삼이사들은 30년대에 잘 적응하고 살았던거 같더라고요.. .. 뭐 여튼 잘 알겠습니다. .. 뭐 저도 .. 6,70년대에 좀 뭔가 변화가 있어서 독립하지 않았겠냐 싶어요..
샤한샤
25/01/08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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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비 비등한데도 일방적으로 식민지배한 사례는 너무 많아서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식민지 유지를 뭐 영구히 지배하는거로 보시는지 모르겠지만 국력차이 많이 안나도 몇백년간 지배당하는 케이스 너무너무너무너무 많습니다
쵸젠뇽밍
25/01/08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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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댓글에 적었습니다만 추가설명하겠습니다.
1950년 이전의 이야기를 한 게 아닙니다. 그 이후로 지금껏 식민지가 유지되는지를 따져봐야죠.
영국과 프랑스가 승전국이 아니라서 식민지가 다 떨어져 나갔나요.
전 세계대전 이후로는 압도적 차이가 아니고선 식민지 유지가 안될거라고 적은 겁니다. 왜냐면 다 안됐으니까요.
수메르인
25/01/08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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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영제국조차 식민지 유지비용 문제+2차 대전 피해로 식민지들 다 독립시켰습니다. 제국주의 자체가 1920년대 이후론 한계에 다다라 있었다는 쪽이 맞아보입니다.
25/01/08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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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무장투쟁론 
앞선 외교는 타국가의 국익에 영향이 없고 실력양성은 결국 타락해서 친일파로 변절하는 일이 발생해서
수메르인
25/01/08 15:19
수정 아이콘
3을 전제로 깔아야 2가 가능하고 1도 가능합니다. 적어도 당시 대한민국이 독립에 향한 강렬한 의지가 있고 일제를 거부한다는 명확한 의사표명이야말로 무장투쟁 아닙니까? 성공할 수 있느냐 마느냐를 떠나 훗날 독립요구를 위한 명분으로서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승전국들이 보기에 딱히 저항할 의지도 없어보이는 피지배국을 무슨 외교논리로 독립시킬까요.
삼겹살이면됩니다
25/01/08 15:34
수정 아이콘
되게 근질근질한 주제인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질문이 애매합니다.
적어도 시기 정도는 정해주셔야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워낙 격동의 시기라 그때 그때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야 알지만 말입니다.
현대인의 입장에서 과거를 보면 좀 다르겠지만, 그 당시 활동하시던 분들이 일본이 진주만을 때릴 거라고 어떻게 생각하셨겠습니까?
랜슬롯
25/01/08 15:38
수정 아이콘
강대국들이 독립할 의지를 강하게 표명하는 모든 나라들을 도와준건 아닙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구원할 의지도 못보여주는 나라는 대부분 그 도움의 고려 대상조차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따라서 독립을 목표로 한다면 반드시 무장투쟁으로 국제 사회에 한국이란 나라는 독립할 의지가 분명히 있어야 한다 라고 끊임없이 보여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장제스가 한국을 도와준 이유중에 한국인들의 독립운동의 영향이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고.

한반도 당시 정세상 단독으로 12번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태국처럼 외교로 중립을 지켜서 나라를 지킬 수 있는 나라의 위치도 아니였고,
이미 그때와서 근대화를 이룩하는건 불가능에 가까웠을꺼고.

뭐가 어찌됬건 대한민국이 독립을 향한 강한 의지와 열망을 보여주는게 가장 중요했다고 생각합니다.
취급주의
25/01/08 15:45
수정 아이콘
1, 2번은 식민지가 되기 전에 할 일이죠. 식민지가 되고부터는 3번밖에 답이 없습니다.
쵸젠뇽밍
25/01/08 15:51
수정 아이콘
식민지가 된 후로도 3번밖에 답이 없지만, 이전에도 마찬가지죠.
침탈을 막는 방법은 누가 뭐래도 무력으로 막는 거죠.
취급주의
25/01/08 15:55
수정 아이콘
물론 3번은 언제나 필수지요~
왕립해군
25/01/08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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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후 네덜란드 인도네시아 독립전쟁만 봐도 답은 3번이죠. 다만 외교 투트랙은 필요한게 맞습니다
니드호그
25/01/08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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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을 택하겠습니다.
한국의 경우, 3번을 통해 장제스와 연결되어 2번을 실시하여 독립하였으며, 독립한 후 그나마 일제강점기 시절 1번을 통해 준비한 것들을 써먹어서 나라를 꾸려나갔다고 생각합니다.(6.25 때문에 그나마 1번을 통해 준비한 것들이 박살나버렸지만) 3번의 경우도, 계속되는 시도 끝에 상해 임시정부 소속의 이봉창 의사,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성공해서 효과를 볼 수 있었지만, 그 이외의 무장투쟁이 우리나라 독립에 영향을 주었는가 생각하면, 회의적이긴 합니다.
두꺼비
25/01/08 16:06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는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현실적인 독립에 근접했던 인물이 여운형이었다고 생각하고, 여운형의 노선을 굳이 저 세가지 보기에서 고른다면 1번의 비즁이 좀 더 크다는 생각이 들긴 하네요
단지 한국사에서 실력양성론으로 분류되는 인물들 중에 친일로 전향했거나 독립과는 무관한 행보룰 보인 사람들이 워낙 많다 보니 1번이라고 쓰기엔 뭐가 좀 걸립니다 허허
그래도 지금의 티벳/위구르 라던가, 쿠르드, 팔레스타인과 같이 독립투쟁을 벌이는 민족에게 효과적인 독립운동 방법을 제안하라고 하면 2,3번도 의미있지만 실력양성, 교육 등이 중요하다고 할 것 같긴 하네요
25/01/08 16:12
수정 아이콘
실력양성론 하면 생각나는게 민주화운동시절에
나는 길거리에서 시위안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고위직에 올라가 사회를 바꿀거다 라고 했다던
사람들의 후일담입니다.

기존 체제 안에서 교육을 장려하는 건 너무 좋은데
정작 실력을 키우고 기득권에 편입되면
그 사람들은 사실 기존 체제를 바꾸는게
이율배반적이 된다는게 문제죠.
잘해봐야 연성 친일파 정도가 한계일겁니다
두꺼비
25/01/08 17:09
수정 아이콘
(수정됨) 사실 이게 보기 문항에 좀 문제가 있긴 합니다
결이 너무 다른 활동들을 "실력양성론"이라고 퉁치게 되어요

여운형, 주시경, 조만식, 윤동주, 한용운, 유일한처럼 독립에 꾸준한 방향을 가졌고 한민족의 독립의식 고취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나 서로 영역이 너무 다른 분들도 어떻게든 저 보기에 묶으면 실력양성론이 되고
윤치호, 최남선, 김활란, 방응모 같은 친일/변절 인사들도 실력양성론에 묶어버릴 수는 있으니까요

민주화를 놓고 보더라도 동아일보-한겨레신문이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청변-민변 등의 참여가 없는 민주화를 상상조차 하기 힘들지만, 저 카테고리로만 끼워맞추면 실력양성론으로 분류하게 되지 않을까요?
노둣돌
25/01/08 17:01
수정 아이콘
독립운동을 기획한 사람은 김규식입니다.
국제정세를 보는 눈도 가장 밝았고, 여러 언어에 능통한데다가 추진력도 남달랐던 인물이죠.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에 대한 해석 오류가 있었긴 하지만요.
사실 민족자결주의는 신성로마제국의 해체방안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에 그냥 니들이 알아서 독립하라는 선언이었거든요.
그걸 김규식은 독립의지가 있는 민족은 위치가 어디에 있든 모두 독립하도록 지원하겠다는 뜻으로 오해한거죠.
그래서 기미독립선언문도 작성하게 하고 삼일만세운동도 추진했던 것입니다.
더불어 상해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해서 확실한 눈도장을 찍으려 했던 것이지요.
이렇게 출범한 독립운동이 그 당시에는 당연히 효과를 보지 못했으나 훗날 장졔스에게 어필하는 효과를 가져온 것이죠.
두꺼비
25/01/08 18:15
수정 아이콘
(수정됨) 그렇지는 않겠지만 혹시라도 오해가 있으시다면, 저라고 해서 여운형이 최고다 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어려운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패망을 예견하고 국내에서 전국적 조직을 만든 여운형의 활동과
일제 패망과 미국/소련의 군정 수립 사이의 짧은 기간이나마 한반도의 혼란을 막고 행정 조직 비스무리한 것까지 만들어내며 선거까지 준비하던 건준과 조선인민공화국(김일성/북한을 말하는 게 아님 주의)을 볼 때
해방 직후 시점에서 역사를 절단하고 제3자가 보듯이 본다면 당시 한국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받을 만한 사람은 여운형이겠네 하는 식인 것일 뿐이지
다른 독립운동가들의 활동과 여운형을 비교할 생각은 없습니다

농담처럼 변절자들 핑계를 대긴 했지만, 제가 글을 쓰면서도 1번이라고 딱 짚어서 대답을 못하는 게, 종국적으로 1945년의 한국 독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결국 일제의 잘못된 전쟁결정이었으며, 일본이 자멸해서 독립하게 된 이상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다양한 활동 중 어느 것이 한국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해서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찾기 힘들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성야무인
25/01/08 16:10
수정 아이콘
3번이 아니면 답이 없습니다.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독립한 나라들 조차

규모가 크던 작던

식민지배 시절 무장항쟁이 있었고

이 후에 그 영토내의 각기 다른 민족끼리도

서로간의 주도권 차지하기 위해 내전이 있었구요.

평화적만으로는 도저히 답이 안나옵니다.
Bronx Bombers
25/01/08 16:30
수정 아이콘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를 포기한 이유가 식민지를 유지하는 비용이 커져서인데 일단 그 비용을 높이는건 3번 뿐입니다. 1번은 오히려 지배국 입장에서 비용이 낮아지는 방향이고(지배국의 체제에 순응해야 하므로) 당시 일본의 태도로 봤을때는 1번만 지속됐으면 지금까지도 우리는 다 일본인으로 남아있을겁니다. 2번과 3번이 문제인데 2번도 조선의 힘이 워낙 미약해 단독으로는 절대 일본의 지배에서 못 벗어났을 겁니다.

애초에 장제스가 조선을 도와준 것도 무장독립세력의 활동을 보고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힘을 조금이나마 줄이려고(그리고 본인 세력 안에 넣으려고) 한거라서요
안군시대
25/01/08 16:34
수정 아이콘
이건 오히려 일본 정부, 일본인 입장으로 생각을 바꾸어서 생각해보면 좀더 명확해지지 않을까요?

* 다음 중 우리나라(일본)가 한반도를 분리독립 시켜줘야 할 이유로 합당한 것은?
1. 한반도인들이 더 실력이 뛰어나서
2. 한반도인들이 외교를 열심히 해서
3. 한반도인들이 무력투쟁으로 우리를 괴롭게 해서
25/01/08 16:35
수정 아이콘
종합적인 큰 흐름으로 보면 위에서 말씀한것처럼 3번. 세계는 타민족에 대해 무관심했고 우린 일제의 통치를 원하지 않는다는걸 보여주는것 자체가 의미있던 시절이었습니다. 근데 독립운동가 개개인으로 볼때 제일 정신머리 박혀있고 이치에 맞는말 하는걸로 보이는건 아이러니하게도 이승만이에요. 솔직히 독립운동가 개개인들은 알면 알수록 파파괴인 경우도 많고..뭐 사실 그 시절에 독립운동가 한다는것 자체가 평범에서 벗어날수밖에 없는거라 어느정도 이해는 하긴 하지만요.
기적의양
25/01/08 17:10
수정 아이콘
(수정됨)
삭제, 일반탭 정치 댓글(벌점 4점)
25/01/08 17:14
수정 아이콘
어느 것이 우선이다 라는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25/01/08 17:26
수정 아이콘
3만해서는 안되겠지만 무엇을 하든 3은 병행이되어야 가능한거죠. 100이 아닌수준에서 비율이 얼마가 되냐를 가지고 논의를 해야지 3은 필수입니다.
25/01/08 17:41
수정 아이콘
1은 뜬구름 잡는 소리고.. 3을 기반으로 2를 병행하는 게 최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25/01/08 21:26
수정 아이콘
(수정됨) 1945년에 한국이 독립한건 특정 독립운동의 성과 때문에 발생한건 아니긴하죠. 3번 없이 1,2번만하는 세계선, 1번만한 세계선 등 어떤 세계선이어도 사실 일본이 진주만 폭격한 순간 독립은 했을겁니다
틀림과 다름
25/01/08 22:40
수정 아이콘
3번
힘없는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란 말이
떠오릅니다.
김재규장군의결단
25/01/09 03:32
수정 아이콘
‘감사‘를 너무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것에서 오히려 감사하지 않은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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