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결혼 전에도 결혼 후에도 계속 아파트에서 살았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20대 중반 처음 살았던 아파트는 꼭대기층이었다. 두 번째 아파트는 9층, 세 번째는 3층이다. 결혼하고 원룸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12층이었다. 2년 후, 잠시 빌라 3층에서 살다가 아파트 4층으로 이사해서 4년간 살았다. 아예 지역을 옮겨 조금은 오래된 아파트 9층에서 1년 넘게 살았고, 작년 봄부터 신축 아파트 14층에 살고 있다.
빌라에서 살던 시절 아들이 태어났다. 아들의 기억 속 첫 집은 4살 때부터 살기 시작한 4층 아파트다. 첫 사회생활인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해서 기억에 남나 보다. 지역을 옮긴 구축 아파트에서 초등학생이 되었다. 열 살 미만의 사내아이는 집안에서 얼마나 뛸까? 아들보다 두 살 많은 조카는 활동량이 엄청나다. 그래서 그 집은 1층만 살고 있다. 우리 아들은? 그리 활동적이지 않다. 닌텐도하거나 유튜브 보고 책 보는 것을 좋아한다. 집 안에서 뛰는 일은 거의 없다. 9층 살던 시절 아랫집과 자주 인사했다. 이사 첫날 혹시 우리 집에서 시끄러우면 말해 달라며 음료수를 전달했다. 아랫집은 초등학교를 다니는 삼남매를 키우고 있었다. 게다가 멍멍이까지. 인사하러 갔다가 왠지모르게 마음이 편해졌다. 우리 윗집은 노부부께서 사셨는데, 주말만 되면 유치원생 손녀가 놀러 와서 콩콩거렸다.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죄송하다 하시는데, 사실 손녀가 뛰는 소리에 거슬렸던 적은 없다. 그 정도는 사람 사는 소리지. 문제는 아랫집 멍멍이였다. 집에 사람이 없으면 멍멍이가 하루종일 짖었다. 코로나 걸려서 며칠 누워있다가 깜짝 놀랐다. 저렇게 짖다가 탈진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저녁에 사람이 들어오면 조용하니 그 역시도 크게 거슬리지 않았다.
위에 적은 대로 작년 봄 신축아파트로 이사왔다. 우리의 생활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아랫집에서 가끔 연락이 오는 것 빼고. 처음에는 시끄럽다며 경비실을 통해 연락이 왔다. 너무 죄송해서 다음날 작은 선물을 사들고 가족이 찾아가 사과했다. 조심하겠고, 바닥재를 더 깔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리고 또 소음이 나면 직접 연락을 달라 우리가 바로 시정하겠다고 했다. 다음 주 바로 놀이방 매트를 더 사서 거실을 다 덮었다. 한 달 정도 지났나? 저녁 먹기 전, 마리오 파티를 신나게 했다. 연락이 왔다. 축구 경기장 소리가 난다며. 아이고, 오바했구나. 바로 사과하고 그 이후로 게임 할 때 소리를 크게 내지 않으려 조심한다. 추석 때 조카네가 놀러 왔다. 활동량이 많다는 바로 그 조카다. 안그래도 많은 활동량에 1층에서만 살아서 걸을 때 조심해야 한다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리 조심시켜도 1분을 넘지 못한다. 역시나 연락이 왔다. 할 말이 있나 무조건 사과다. 죄송하다, 명절이라 조카가 왔다. 하루만 봐달라. 겨울이 되었다. 친한 가족이 놀러 왔다. 아들이 둘이다. 신신당부했다. 뛰면 안된다, 걸을 때 조심해야 한다. 우리 아들까지 아이 셋을 소파에 앉히고 닌텐도를 TV 연결해서 게임만 시켰다. 소파에서 내려오지 못하게 했다. 어른들은 거실 바닥에 앉아서 담소를 나눴다. 인터폰이 울렸다. 경비실인가? 전화를 받아보니 아랫집이다. 화가 많이 났다. 한 시간을 넘게 참았다고 한다. 순간 뇌정지가 왔다. 도대체 무슨 소리지? 아이들이 소파에서 뛰었나? 일단 사과했다. 인터폰을 끊자 모두가 황당함을 표했다. 두 달 정도 지난 오늘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내가 아들과 소파에서 장난치다가 아들이 소파를 내려와 자기 방으로 뛰었다. 순간 뛰지 말라고 소리쳤지만 이미 늦었다. 제발 조용해 달라고 요청한다.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아랫집은 직접 조용해 달라고 요청하기 미안하니 앞으로 경비실에 전화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아파트가 잘못 지어졌나? 우리의 생활습관이 문제가 많은가? 아랫집 분들이 예민한가? 그러다 문득 내 감정이 느껴졌다. 미안함과 억울함이다. 일단 우리 가족이 불편하게 했다는 점은 미안하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불편함을 호소할 정도로 시끄럽게 한 것 같지는 않다.(추석 때 제외. 아. 추석 때도 조카가 미친 듯이 뛰어다닌 건 아니다. 조용히 시키려고 게임기를 쥐여줬다.) 두 개의 감정이 계속 오간다. 하지만 억울함을 호소할 수는 없다. 왜냐? 초등학교 저학년 아들을 둔 가정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우리 아들의 활동량이 적다, 애가 순하다 말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오랜 기간 친분을 쌓은 사이야 잘 알고 있지만. 어찌 됐건 우리는 가해자다. 억울하다. 억울해. 20년 정도 아파트 생활하며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다.
나는 남자이고 90년대에 학창시절을, 2000년대에 20대를 보냈다. 2010년대에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결혼을 했다. 벌써 40대 후반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특정 집단으로 일반화 된 평가를 받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인터넷이 우리 삶에 적용되며 처음 일반화 된 세력이 초딩과 김여사가 아닐까? 모든 초등학생과 여성 운전자를 싸잡아 비난과 놀림거리로 만든 용어. 예전 어떤 어르신은 소나타 타는 놈들은 운전이 험하다 하신적 있다. 농담인 줄 알고 웃었더니 진지하게 욕설을 섞어가며 다시 말하셔서 놀랬던 적이 있다. 한번 다른 사람에게 일반화 프레임이 씌면 벗어나기 어렵다. 다시 나를 돌아봐도 나는 남자이고 특정 시대에 일반화 된 프레임으로 씌인 세대가 아니다. 이런 내가 처음으로 아랫집을 힘겹게 하는 초등학생 자녀를 둔 가정이라는 프레임 안에 들어왔다. 억울하다. 나는 가정교육을 형편없이 시키는 사람이 아니다. 내 아들은 콩콩 거리는 아이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사과해야 한다. 우리가족은 배려심이 많은 가정이다. 우리 부부는 같은 회사에서 근무해서 회사의 모두가 우리를 다 안다. 하지만 아랫집에 사과해야 한다. 정말 조심조심, 티비소리도 낮추고, 아이에게 슬리퍼 신기고 거실 바닥은 놀이방 매트로 깔려있지만 그 어떤 노력도 인정받지 못한다. 내가 봐도 초등학생 자녀를 둔 아빠가 층간소움을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는 말을 믿지 못할 것 같다. 아랫집에서 내리는 시끄럽다는 평가가 모든 것을 수포로 만든다. 억울하다. 억울해. 이 억울함을 어찌 풀어야 할꼬. 글 쓰다보니 더 억울하다. 분명 어떤 사람은 이 글 쓴 사람이 잘못 했으니 아랫집에서 지적하는 것이라 말할 것 같다. 어찌 아냐고? 내가 그런 생각 할 것 같다. 그래서 더 억울하다. 나 조차도 우리 가족을 일반화 하고 있다.
아이를 재운 늦은 시간 부부가 이야기 나눴다. 이사를 가야 하나, 층간소음 매트를 온 집에 시공해야 하나. 답은 안나오고 한숨만 나온다. 왜 하필 옆 단지 아파트에 필로티가 매물로 나왔나? 게다가 1층도. 생각이 많아지는 토요일 밤이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