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5/04/15 12:50:21
Name 글곰
Subject [일반] 대화의 방식 : SRPG와 RTS
제가 좋아하는 게임 장르는 대부분 턴제입니다. 특히 그 옛날 천사의 제국과 삼국지 영걸전에서부터 최근의 XCOM에 이르기까지 SRPG를 좋아합니다. 슬레이 더 스파이어를 필두로 한 덱빌딩 로그라이트 역시 매우 즐겨 합니다. 시드 마이어의 문명 같은 턴제 전략 게임도 좋아하지요. 심지어 스마트폰으로도 랑그릿사 모바일을 플레이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제게 있어 대화란 턴제 게임과 흡사한 느낌입니다. 내 차례가 오면, 이야기를 꺼내고 전개한 후, 상대에게 턴을 넘깁니다. 상대는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고, 다시 제게 턴을 넘깁니다. 자신의 턴일 때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이야기를 하고 상대의 턴일 때는 차분하게 들으면서 다시 제 턴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시간을 들여 생각할 필요가 있을 때는 상대에게 양해를 구한 후 숙고합니다.

반면 아내에게 있어 대화란 RTS입니다. 말 그대로 리얼타임이죠. 이야기 중간에 치고 들어오거나 즉각적인 피드백을 보냅니다. 때로는 주제가 돌변하기도 합니다. 흔히 하는 표현으로 ‘오디오가 비는 시간’을 싫어하고 그 간격을 자신의 말로 채웁니다. 종종 아내와 장모님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저는 복싱의 스파링 장면이 연상됩니다. 끊이지 않는 말이 두 사람 사이를 정신없이 날아다니거든요.

그러다 보니 아내와 대화를 할 때면 종종 곤혹스럽습니다. 아내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저는 일단 들으면서 제 턴이 돌아오기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아내는 턴을 넘길 생각이 없습니다. 오히려 제가 반응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꾸만 이야기를 더 많이 합니다. 그러면 저는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대체 언제부터가 내 턴인지, 언제부터 내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되는지를 알기 어렵습니다. 반면 아내는 저와 이야기하다 보면 벽에다 대고 말하는 기분이 든다고 합니다. 답변이라고는 기껏해야 단답형에 불과하고, 심지어 말이 없을 때도 많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결국 서로 짜증을 내곤 하지요.

당연한 일이지만 어느 한쪽이 옮거나 그른 문제는 아닙니다. 다만 저는 턴제 방식도 괜찮지 않나 싶습니다. 저는 말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지만 막상 말주변은 별로 없거든요. 동어반복이 심한 버릇이 있어서 글을 쓸 때도 퇴고를 꼼꼼하게 하는 편입니다. 그러고도 오타가 잦죠. 그러니만큼 대화에 있어서도 제 턴과 상대의 턴이 구분되고 서로 시간이 보장될 때가 훨씬 더 마음이 편합니다. 예기치 못한 실수도 줄일 수 있고 말입니다. 그게 제 대화의 방식입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시드라
25/04/15 12:52
수정 아이콘
대화는 RTS가 맞다고 보고 턴제는 토론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에서 턴제로 대화하기는 매우 어렵죠
파르티타
25/04/15 12:53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빵pro점쟁이
25/04/15 13:06
수정 아이콘
제 대화 방식은 패턴 파악하기 전에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소울류가 아닐까 싶습니다
근데 패턴을 알아도 머리 회전이 못따라가서 적절히 대처못하고 여전히 처맞습니다
그래서 공격적인 성향인 분들과의 대화는 살아남기 위해 최대한 피하고
그나마 대화가 가능한 조용조용하거나 성격이 차분하신 분들을 선호합니다
+ 25/04/16 08:56
수정 아이콘
그래서 제가 소울류를 싫어하나 봅니다. 패턴 파악은 가능한데, 손이 안 따라가서 결국 맞는 건 똑같거든요.
모르고 맞으나 알고 맞으나 아픈 건 똑같습니다.
메가트롤
25/04/15 13:21
수정 아이콘
크크크크 재밌게 잘 봤습니다 전 RTS 유저입니다
25/04/15 13:28
수정 아이콘
본문에서 RTS 식이라 표현된 방식으로 대화하는 사람은 대체로 경청을 못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좀 그런 편이라 의식하고 있습니다.
+ 25/04/16 08:55
수정 아이콘
꼭 그렇지는 않은 게, 저도 사실 상대 말이 길어지면 경청하는 척하면서 혼자 딴생각을 하곤 합니다. 비밀이지만요.
25/04/15 13:35
수정 아이콘
저는 턴제를 선호합니다.
CanadaGoose
25/04/15 13:42
수정 아이콘
재미있는 글이네요 크크크
불량사용자
25/04/15 14:47
수정 아이콘
잘하시는 방법을 쓰세요. 글로 정리해서 던지는 거죠...크크
+ 25/04/16 08:57
수정 아이콘
"내가 왜 화났는지를 A4 2장 분량으로 정리했으니까 읽어줘."
에어컨
25/04/15 15:14
수정 아이콘
저도 아내처럼 RTS라고 생각은 하지만, APM이 다릅니다 ㅠㅠ 가뜩이나 느린데 전 헛손질도 많아서 아내를 상대하기가 버겁습니다
니드호그
25/04/15 15:20
수정 아이콘
제 경우는 RTS에 가까운 것 같군요.
사실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의 경우, 온전히 대화를 하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 뭔가를 하면서 동시에 대화를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턴제처럼, 각 작고 여유롭게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문 것 같네요. 집안에 있다 하더라도, 방에서 방으로 이동하면서, 뭔가를 만지작 거리면서 이야기를 하는 식이 많지 않나 싶습니다. 그나마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만한 상황은 밥상에서 밥 먹으면서, 아니면 같은 TV를 보고 있는 경우…일까요?
안군시대
25/04/15 15:41
수정 아이콘
저도 RTS스타일이긴 한데, 물량전을 하는 분들을 만나면 버겁습니다.
1z2z3z4z 드래그 어택땅! 드래그 어택땅! 으아아아!
Mephisto
25/04/15 15:43
수정 아이콘
대화는 목적만 가지고 하는게 아닙니다.
대화 자체가 목적이 되기도 합니다.
이걸 이해하셔야 아내분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 25/04/16 08:59
수정 아이콘
새겨둘 만한 말씀이네요.
25/04/15 15:47
수정 아이콘
힝힝 RTS도 사실상 턴제 게임입니다 크크크크
파고들어라
25/04/15 15:58
수정 아이콘
예전에 영어 학원에서 배운거랑 비슷하네요. 언어적 문화 차이에 대해서 배울 때였는데
한국, 일본은 마치 볼링처럼 순서대로 말을 던지고 상대방의 말이 끝나면 자기 말을 꺼내는 반면,
미국, 남미쪽은 마치 농구처럼 상대방 공을 뺏아서 치고 나가는걸 당연하게 여긴다.
그래서 '농구형 대화'에 끼어들기 위해서는 기다리면 안되고 치고 나가야한다...라는 내용인데 비슷한 문화차이를 느끼시는거 같습니다.
+ 25/04/16 09:00
수정 아이콘
호오. 그런 차이도 있나요? 어쩌면 제 아내는 아메리칸 스타일?
인간흑인대머리남캐
25/04/15 16:19
수정 아이콘
사실 RTS나 격겜 같은 실시간 대전 게임도 넓게 보면 결국 턴 종료 버튼 뺏거나 지키는 턴제 게임이긴 하죠 크크
Winter_SkaDi
25/04/15 16:52
수정 아이콘
??? : 아니 지금 턴을 연속으로 썼거든요? 날개 안 접어? 텔 안와? 밀어버린다?
가 머릿속에 재생되는데..
선플러
25/04/15 17:08
수정 아이콘
재미있네요 :)
ComeAgain
25/04/15 18:59
수정 아이콘
저희 아내와 저는 분명 턴제 대화를 하고 있는데... 그 게임이 재기드 얼라이언스, XCOM였던 것이죠.
중간에 인터럽트 걸리는 겁니다. 두둥.
안군시대
25/04/15 22:22
수정 아이콘
감나빗!
주인없는사냥개
25/04/15 23:00
수정 아이콘
외계인 지배자만 없으면 인터럽트는 없단 말입니다 크흑
어느새아재
25/04/15 19:41
수정 아이콘
치트키 치트키가 필요합니다 게임핵이라도...
어느새
25/04/15 19:41
수정 아이콘
음 두가지 다 적절히 쓰는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5/04/15 22:49
수정 아이콘
내 턴을 종료한다를 할 줄 아는 게 어른의 대화법이긴 하죠.
주인없는사냥개
25/04/15 23:00
수정 아이콘
사실 아내분도 나름 턴제일 수 있습니다
대신 반격이 강한거죠. 파이어엠블렘의 매복분노처럼.
리니시아
25/04/15 23:14
수정 아이콘
이제 아내분 입장의 사이오닉 스톰이 담긴 글을 보고싶은데요
이웃집개발자
25/04/16 00:00
수정 아이콘
신기하네요 저도 비슷한생각을 했었어요

전 턴제였는데 나이를 조금 더 먹고나니 RTS화되가는걸 느껴서 좀더 들어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용자마스터
25/04/16 00:02
수정 아이콘
근데 SRPG도 조심을 해야하는게 그냥 진짜 티키타카가 되어 한턴한턴 주고 받는 SRPG면 상관 없는데 가끔가다가 스킬을 써서 턴을 안주는게 있거든요...
네... 제 대화 상대들이 그럽니다.
25/04/16 06:26
수정 아이콘
재미있는 글 잘 봤습니다. 확대해석 해보자면 대화와 언쟁의 차이도 말씀하신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25/04/16 06:49
수정 아이콘
추천!
김태연아
+ 25/04/16 08:33
수정 아이콘
저도 벽소리 듣는입장에서 공감됩니다
그럴수도있어
+ 25/04/16 08:49
수정 아이콘
덕분에 새로운 기준이 생겼어요. 감사합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일반] [공지]자게 운영위 현황 및 정치카테고리 관련 안내 드립니다. [28] jjohny=쿠마 25/03/16 15197 18
공지 [정치] [공지] 정치카테고리 운영 규칙을 변경합니다. [허들 적용 완료] [126] 오호 20/12/30 300386 0
공지 [일반] 자유게시판 글 작성시의 표현 사용에 대해 다시 공지드립니다. [16] empty 19/02/25 354684 10
공지 [일반] 통합 규정(2019.11.8. 개정) [2] jjohny=쿠마 19/11/08 357296 3
104075 [일반] 대화의 방식 : SRPG와 RTS [36] 글곰4927 25/04/15 4927 15
104074 [일반] 조금 다른 아이를 키우는 일상 7 [11] Poe3846 25/04/15 3846 34
104073 [일반] 서울대 교수회가 제시한 "대한민국 교육개혁 제안" [81] EnergyFlow9380 25/04/15 9380 4
104072 [일반] “내 인생은 망했다, 너희는 탈조선해라”…이국종 교수, 작심발언 왜? [340] 궤변14765 25/04/15 14765 24
104071 [일반] 런린이가쓰는 10km 대회 준비&후기 [13] Jane4629 25/04/15 4629 6
104070 [일반] Nothing Happens. [4] aDayInTheLife2955 25/04/14 2955 6
104068 [일반] [역사] IBM이 시작해 도시바가 완성한 저장장치 / 저장장치의 역사 [16] Fig.12980 25/04/14 2980 6
104067 [일반] 현대차의 자율주행 기술은 어느정도 일까요? [74] 또리토스6042 25/04/14 6042 0
104065 [일반] 최근 보는 웹소설들 [33] 비선광6312 25/04/14 6312 3
104064 [일반] 오늘자 시총 10조 코인 먹튀 발생... [56] 롤격발매기원13026 25/04/14 13026 4
104063 [일반] 기억나는 가게 손님들 이야기. [14] 인생의참된맛5822 25/04/13 5822 6
104062 [일반] [웹툰]로판인가? 삼국지인가? '악녀는 두번 산다' 추천 [17] 카랑카5827 25/04/13 5827 1
104061 [일반] 스스로 뒤통수 후리게 하면서도 끊을 수 없는 겨자의 낭만 [3] Poe5247 25/04/13 5247 22
104060 [일반] 남북통일이 앞으로도 영원히 불가능한 이유 [126] 독서상품권9991 25/04/13 9991 2
104059 [일반] 제67회 그래미 어워드 수상자 [10] 김치찌개5498 25/04/13 5498 2
104058 [일반] [서평]《출퇴근의 역사》 - 통근을 향한 낙관과 그 이면 [2] 계층방정3016 25/04/12 3016 5
104057 [일반] 나스닥이 2프로 가까이 오른 어제자 서학개미들 근황 [35] 독서상품권9544 25/04/12 9544 0
104056 [일반] [역사] 한국사 구조론 [27] meson5742 25/04/12 5742 11
104055 [일반] 오사카에서 찍은 사진들 [14] 及時雨5178 25/04/12 5178 1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