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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10/16 20:40:54
Name 글자밥 청춘
Subject [일반] 아버지와 나의 인식
요새 공안정국이다 뭐다 하지만, 사실 젊은 사람들(저를 포함한)은 대부분 지금이 민주국가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마음대로 사람 잡아다가 코렁탕먹인다거나, 판사님 판사님 하는것도 반쯤은 농이 섞여있죠.
물론 나머지 반이 약간 불안감이 있다는 점을 무시할수는 없겠지만요.

엊그제 아버지와 지방을 다녀왔습니다. 일가 어르신들을 뵙는데, 대체로 연배가 박정희 - 전두환 시절을 20-30대에 보내신 분들입니다. 연세들이 꽤 되시죠. 아버지도 그정도 연배시고요. 어르신들께서 요새의 쟁점들, 노동개혁이나 국정교과서, 자유무역 같은 이야기부터 대체로 새누리당에 비판적인 의견들로 말씀을 많이 나누시더군요. 그래서 젊은 친구들도 그런거에 문제의식이 많다, 거리에 나가서 시위도 하고 대자보도 붙이고 인터넷에 비판적인 의견들도 공유하고 기사도 쓴다 그랬더니 아버지를 포함한 많은 어르신들이 너는 그러지 말라고 하시는겁니다.

저는 그게 약간 당황스럽기도하고, 에이 요즘 같은 세상에는 그정도는 괜찮아요라고 웃었는데 그렇지 않다고 하시는겁니다. 예전처럼은 아니도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면서.. 뭐랄까.. 현실인식의 차이? 옛날에도 그렇게 에이 괜찮다 하다 잡혀간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고요. 근데 실제로 주변에 그런식(?)으로 잡혀가는 시대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요새는 이래도 별로 겁도 안먹는다. 사람들이 신경도 잘 안쓴다. 그래서 그냥 하게 냅두는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나눈 듯 합니다. 그런데도 서울 올라올때까지 그런거(?) 하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문득 그런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는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민주주의가 아닌적이 없었습니다. 박정희와 전두환시절에도 명목적으로는 민주정을 계속 이야기했으니까요. 한국식 민주주의라거나, 발전을 위해서 잠시 민주주의를 참아야 한다거나.. 발전이 되면 민주주의도 되는거라거나 뭐 그런 교육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알다시피 지금보다 그때는 더 무서웠죠. 유명한 민청학련 사건이라거나.. '넥타이공장' 같은 이야기. 장티푸스에 걸린 사람을 빨갱이라고 잡아가던 도시전설.. 그리고 그 시대를 실제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인식이란. 현재 대통령이 박정희 정부를 지지했던 분들의 워너비였다면, 그때가 공포였던 사람들에게 지금의 대통령은 미운 대상도 되지만 무서운 대상도 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생각해보면 그렇습니다. 제게 민주정은 꽤 당연한 것입니다. 거리에 나가서 시위를 하는것도 당연한 권리고 대자보를 붙이거나 인터넷에 비판적인 글을 다는 것 모드 별 문제 없는 일이었어요. 간혹 잡혀가는 친구들도 있고 강경진압도 있고 조사받는 친구들도 있지만 그래도 듣던 식의 방식은 아니거든요. 훨씬 세련된 방식으로 관련법을 통해 막는거라 반민주적이라면 반민주적인데 합법 불법을 따지면 대충 반쯤 섞여서 위협이 가해지고 잡아가고 결과적으로는 합법적으로 위협이 진행됩니다만.. 그래도 요령껏 할 만하긴해요. 이것도 비민주적이라면 비민주적이긴 일이긴하죠. 최장집 선생님은 그래서 자기 책에서 한국 민주주의가 민주화 이후에 되려 질적으로 저하됐다고 하는게 예전에는 더 많은 가치를 '민주적' 가치로 통합할 수 있었다면 지금은 오히려 민주적인 가치가 포섭할 수 있는 개념들이 더 많이 줄어들어서 많은 것들이 부자유스럽고 저항하기 어려운 상태로 변했다는 부분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민주정은 당연한 거죠. 그런데 이전 시대를 살아온 어르신들에게 민주정이란 글자가 아닌 실제로 피를 잡아먹고 자라난 체제라는 점입니다. 위정자를 상대로 민주주의를 외쳤던 많은 사람들이 죽어난 다음에야 민주정이 조금씩 조금씩 확대된 것을 보면서 운 좋게 살아남았다는 것이죠. 혹은 몸을 잘 숙이셨던 것일수도 있고요. 특히 아버지의 고향은 전라도다 보니 광주도 완전히 남의 이야기는 아니었을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니 문민정부 이후 완전히 벗어났다고 생각한 과거의 편린이 다시 위정자로서 기능하니 일반적인 상식보다는 조금 더 조심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하시는 것 같기는 합니다. 이게 인식의 중요한 차이점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겪었던 사람과 겪지않은 사람의 차이? 물론 그렇다고 정말 어르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런시대라고 하기에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뽑힌 대통령과 당이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전히 한국의 현대사는 많은 사람에게 하나의 '현재'이지 '역사'가 아니라는것과..
공포의 시대를 지나온 사람들에게 권력이나 정부란 언제든 위협적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불안이 한켠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
약간의 비민주적 상황들에도 불안할 수밖에 없게되는 과거의 편린이 참 뿌리깊다는게..
그랬습니다. 가능하다면 그 시절의 공포가 누군가에게는 레드컴플렉스로 적극적인 공포에 대한 순응을 통해 공포와 일체화 되는, 공포가 자기편이라는 위안으로 기능했다면, 누군가에게는 공포가 명백한 위협으로 남아 아직도 그 시절이 언제든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더 자세히 연구하는 분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네요. 2015년이 모두에게 같은 식으로 느껴지는건 아니라는 점을 느꼈던 며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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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구조
15/10/16 20:52
수정 아이콘
근데 그 분들도 노무현 정부 때는 시위했다고 코렁탕의 의미로써 '잡혀'갈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셨을텐데 조금 씁쓸하군요.
글자밥 청춘
15/10/16 21:02
수정 아이콘
사실 그때도 FTA 관련 시위나 노점상 시위 같은거 잘못하면 강경진압당하고 그랬던건 마찬가지긴 해요. 근데 막 농민들끼리 시위하시고 그래도 끝까지 가신 분은 없다는 얘기도 있고..(유죄판결까지 가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는 말도 있는데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15/10/16 21:38
수정 아이콘
본문처럼 현재 기성세대분들이 비공식적으로 가장 많이 하시는 말이, '문제가 보여도 너는 나서지 말라'는 겁니다.
'너 아니어도 행동할 사람은 차고 넘쳤다. 괜히 나서서 모난돌이 정맞게끔 하지 마라.' 는 말이 어떤 뜻인지 너무 잘 알기에, 그분들의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과거의 삶이 있기에.. 참 괜히 심경만 복잡해지더군요.
'모두가 문제를 외면하면 문제가 해결되는가.' 에 대해 이야기를 했더니, '그건 정치하는 사람들이 할 일이지 정치와는 1%도 관계가 없고 영향력도 갖지 못한 니가 행동한다고 달라질것도 없을것이며, 달라진다고 해도 너의 삶이 망가진다. 또한 너 뿐만 아니고 너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삶까지 망가진다.' 는 경고 아닌 경고를 들었었습니다. 이게 얼마나 현대 사회의 정의가 죽었는지에 대해 뼈저리게 느껴지는 말인지 깊숙히 느껴지더군요..
테바트론
15/10/17 14:30
수정 아이콘
너 뿐만 아니고 너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삶까지 망가진다...요즘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말이네요.
-안군-
15/10/17 14:28
수정 아이콘
저희 아버지는 기독교 청년단체 임원으로 유신반대 성명을 냈다가 빨간줄이 가서, 50이 넘으실때까지 금융활동을 못하는 불이익을 받으셨죠.
이런 분이 느끼는 정서와 지금의 젊은이들이 느끼는 정서는 당연히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을 수 밖에요.
게다가 그런 힘든 일을 당하고 나서 생긴 트라우마 때문인지, 요즈음 말씀하시는건 오히려 극우화(?)가 되신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어쩌면 그 당시 민주화투쟁을 하시던 분들이 지금 새누리당에 들어가 변절자 노릇을 하는것도 같은 이치겠죠.
15/10/18 11:43
수정 아이콘
쉽게 말씀드리자면 피해자가 가지는 피의자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입니다. 그분들은 그런 범죄자가 피의자가 되었지만 결국 풀려나고 떵떵거리며 사는걸 봐오신 분들이에요.
젊은 사람들이 범하는 가장 큰 오류가 나이든 사람들보다 자신이 더 똑똑하다 여기는 착각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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