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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1/08 11:27:33
Name 선비욜롱
Subject [일반] 『1차대전 프랑스군史』 졸전으로 알려진 니벨 공세의 의외성.

[가장 짧은 임기를 자랑하는 프랑스군 총사령관 로베르 니벨]

1917년, 프랑스군 총사령관 조제프 조프르(Joseph Joffre)의 실각 이후 총사령관을 역임하게된 로베르 니벨(Robert Nivelle)은 모두에게 단기의 승리를 약속하며 1914년부터 시작된 연합군의 공세의 향연속에 또 하나의 공세를 준비했습니다.

유능한 군사령관이었던 니벨은 뛰어난 포병운용술로 유명했습니다. 프랑스를 넘어 세계의 운명을 뒤흔든 1914년의 1차 마른 전투에서 니벨은 제45사단의 포병부대를 일사분란하게 지휘해 알렉산더 폰 클루크(Alexander von Kluck)가 이끄는 제1군의 공세를 일시적으로 물리쳤습니다.1 1916년, 제2군 사령관으로 승진한 니벨은 포병과 보병의 정교한 합공이 매우 중요한 이동탄막사격 전술을 유연하게 적용해 역공을 펼쳐 독일군을 물리치고 수개월간 지속된 베르됭 전투를 종결시켰습니다.2 그후 니벨은 이동탄막사격 전술에서 서부전선의 해답을 찾았다고 자부하며 이번 공세만큼은 옛날과 다를 것을 정치인들에게 역설했습니다.3 3년의 끝이 없는 소모전에 지친 프랑스와 영국의 병사들은 니벨이 퍼뜨린 마지막 희망을 부여잡고 다시 한번 독일의 침략군과 맞서기 위해 참호속으로 몸을 내던졌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10만명이 넘는 사상자를 남긴 실패에 불과했습니다. 4월 16일, 연합군의 공세가 48시간만에 독일군의 방어선을 말아올리지 못하면 공세를 중단하리라 대담하게 장담했던 니벨의 약속과 달리 프랑스군은 1차 방어선만 수월하게 뚫고 2차 방어선에서 고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시적으로 뚫린 방어선을 독일군은 곧바로 증원해 프랑스군을 막아세웠고 계획대로 투입된 프랑스의 예비대는 돌파를 실패한 일선에 뒤엉켜 병참에 큰 혼란을 주었습니다.4 갑작스럽게 늘어난 사상자들을 예상하지 못한 프랑스군의 의료체계는 붕괴했습니다. 특히 니벨이 맹신했던 포격전술은 언덕이 많은 주공지역에 적합하지 않았으며 안좋은 날씨와 끈질긴 독일군의 저항이 겹쳐 1차 공세는 4월 20일에 중단되었고, 2차 공세는 제대로 실행하기도 전에 니벨이 정치적 논란에 휘말려 중단되었습니다.

최종적으로 프랑스군의 마지막 희망을 쥐어짠 니벨 공세(Nivelle Offensive) -혹은 2차 엔 전투(Second Battle of Aisne)- 는 서부 전선을 돌파하는데 실패했습니다.4


[니벨 공세에 투입된 생샤몽(St. Chamont) 탱크]

니벨 공세의 실패는 이전의 실패와 차원이 다른 여파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5월 15일의 니벨의 해임과 필리프 페텡(Philippe Petain)의 취임으로 대중은 패전을 확신했으며 그 유명한 프랑스군 항명사태가 곧 뒤따라왔습니다.5 이런 우중충한 분위기속에 동부의 러시아 혁명의 소식이 들려왔으며, 레닌의 볼셰비키 정부와 독일 정부의 화평으로 동부전선마저 사라진데다가 알프스 전선의 이탈리아군은 10월에 펼쳐진 카포레토 전투에서 대패해 1차 마른 전투 이래로 곧줄 공세를 임해왔던 연합군은 1917년을 기점으로 역으로 수세에 몰렸습니다. 로베르 니벨은 졸장의 오명을 부여받음과 동시에 그가 주도한 니벨 공세는 대실패로 낙인찍혔습니다.

그러나 니벨 공세는 엄청난 정치적 여파에 불구하고도 순전히 군사적인 면에서 임팔작전같은 처참한 졸전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Aisne Front 1917-Guignicourt.jpg
[니벨 공세/2차 엔 전투의 지도]

험한 지형과 안좋은 날씨에 불구하고 프랑스 병사들은 2차 엔 전투에서 매우 잘 싸웠습니다. 독일군은 소지한 45개의 예비사단을 25일간의 전투에서 모두 투입한데다가 독일의 공식 기록에 따르면 독일군은 163,000명의 사상자의 피해를 입은데다가 37,000명이 실종되었습니다.6 이 실종된 병력은 프랑스군이 붙잡은 독일군 포로로 추측됩니다. 의료체계는 수많은 사상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붕괴했지만 니벨 공세의 사상자수는 1915-16년의 공세들에 비해 비율상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투입된 탱크들은 크게 활약하지 못했지만 운용법에 있어서 상당히 좋은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영국의 수상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David Lloyd George)는 파리의회에서 꾸준한 공세의 중요성을 피력하면서 니벨 공세를 변호했습니다.

["만약에 우리(연합군)이 약 5사단의 전투인원으로 추산되는 445,000명의 포로, 몇몇 중포를 포함한 450개의 화기, 800정의 기관총, 70 평방 마일의 영토를 상실한데다가 36개의 예비사단을 전투에 투입해야했다면 자네들은 느낌이 어땠을 것같은가?"

"What would our feelings be if we (the Allies) had lost 445,000 prisoners, that is to say practically 5 divisions of fighting men, 450 guns, including some of the heaviest calibre, about 800 machine-guns, had had 36 reserve divions put into action, and had lost 70 square miles of territory?"]
-『The French Army and the First World War』 by. Elizabeth Greenhalgh pg. 197-198

게다가 니벨의 지휘권은 전임자 조프르와 후임자 페탱에 비해 엄청난 제약속에 전투를 지휘해야했습니다. 니벨은 총사령관이 되고자 피력한 적이 없었으며 조프르가 니벨을 추천한 것은 니벨의 충성심과 미숙함을 빌미로 실각 이후에도 지휘부에 영향력을 어느 정도 유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니벨은 총 3명의 전쟁부 장관과 합동해야했습니다. 첫째로 만난 루시엥 라카즈(Lucien Lacaze)는 허수아비에 불과했으며, 둘째인 위베르 리요태(Hubert Lyautey)는 애초에 니벨을 탐탁해하지 않았고, 셋째로 만난 폴 펭르베(Paul Painleve)는 적극적으로 간섭했습니다. 영국의 로이드 조지의 경우에는 더글라스 헤이그(Douglas Haig)를 고삐잡기 위한 도구로 니벨을 사용해 헤이그와 상의하지도 않고 영국군의 지휘권을 니벨에게 내준 것은 이런 분쟁의 연장선에 있었습니다. 애초에 지휘부내 정치싸움에서 조프르의 패로써 기용된데다가 전체적으로도 니벨은 조프르보다 훨씬 더 심한 정치인들의 간섭속에 지휘해야 했습니다.


[페탱과 니벨]

특히 니벨이 고전했던 점은 녹록지 않았던 휘하 지휘관들의 견제와 뒷담화였습니다. 예를 들자면 군사령관 조제프 미셸러(Joseph Micheler)는 상원의장 앙토냉 듀보(Antonin Dubost)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지휘부에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페탱은 이들중 가장 심했는데, 5월 6일 전시내각 회의 직후 에두아르 드 카스텔노(Edouard de Castelnau)와 함께 지휘부로 이동하며 니벨을 호되게 비난했습니다. 

["지나친 자부심으로 인해 앞을 가리지 못하고 있는데다가 지적으로 부족함(을 꼬집어서 니벨을 비난했다)"

"(Petain reproached Nivelle for the) pride that was blinding him and for certain intellectual failings"]
-『The French Army and the First World War』 by. Elizabeth Greenhalgh pg. 198

그외에도 페탱은 니벨이 지금껏 소규모 작전밖에 시행하지 못해 전체적 상황에 대한 적절한 통찰을 이루어내지 못할테고 전투에 대한 "치명적인 구상"(fatal conception)과 유연하지 못한 사고가 겹쳐 독일군이 갑자기 후퇴할 시에 나타날 새로운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할 것이다 예견했습니다. 니벨 공세의 실패는 페탱의 고찰이 맞았음을 증명하지만 페탱이 멋대로 이러한 발언하는 것자체가 한명의 지휘관 휘하로 뭉치지 못하고 상당히 혼란스러웠던 프랑스 지휘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7

그러나 이러한 점은 니벨이 기획한 제2차 엔 전투가 흔히 알려진대로 처참한 졸전이 아닌데다가 타 프랑스 총사령관들에 비해 더 어려운 상황에서 지휘했음을 보여주지 당시 니벨이 보여준 무능한 모습에 대한 변호가 되지 못합니다.


[전술가로써 유능했던 로베르 니벨]

니벨은 상황이 전혀 녹록하지 않은데다가 오히려 조프르보다 더 취약한 지휘권을 보유했음에도 니벨은 이전과 색다른 기동과 기습을 약속하며 지나친 자신감에 멋대로 24-48시간 이후 돌파를 성취하지 못하면 곧바로 공세를 멈추겠다고 기약했습니다. 이는 2차 엔 전투가 뜻대로 풀리지 않자 니벨이 3년간의 힘겨운 총력전을 끝내기를 염원했던 사람들에게 크디큰 배신으로 다가와 더욱 실망해 몇몇 프랑스 사병들은 지휘부의 명령을 거역하는 항명사태로 번졌습니다.

안좋은 날씨와 지형에 대해서도 니벨은 베르됭 전투의 승리를 근거로 들어서 눈따위는 전혀 승리에 지장을 주지 않으리라 장담했습니다. 그러나 니벨이 12월에 역공을 펼쳤던 것에 비해 니벨 공세는 4월에 시행되었습니다. 가을직후의 12월의 눈보다 기나긴 겨울을 거쳐간 4월의 눈이 훨씬 더 큰 지장을 주는건 자명한 일이였으며 안좋은 날씨는 프랑스군에게 족쇄가 되었습니다.

약속된 기습효과에 대해서도 니벨은 놀라울 정도로 자각없이 준비중인 공세에 대해 떠벌려 파리와 런던에서는 니벨의 공세는 대표적인 화두로 떠오를 지경이었습니다. 게다가 본래 2월에 펼쳐질 예정이었던 공세를 2개월이나 지연하는 덕에 독일군은 충분한 시간을 들여 예견된 공세에 대해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프랑스 장병중 한명의 신체에서 작전명령이 소실된 사태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좋게 말해 대범한, 나쁘게 말하면 멍청한 모습을 거듭 보여줬습니다.

게다가 조프르에 비해 정치적 역량이 심히 후달렸던 니벨은 강력한 카리스마로 전초에 (전적으로 조프르의 책임으로 볼 수 있는) 충격적인 패전에 불구하고 168명의 지휘관들을 해임시키고 이후에도 프랑스군을 수월하게 지휘한 조프르와 달리 휘하 지휘관들에게 끌려다닐 뿐 제대로된 지휘권을 수립하지 못했습니다. 지휘권에 워낙 제약이 많아서 불리한 점을 고려해야겠지만 로이드 조지의 계략에 무방비된 상태로 이용당한 점은 쉽게 변호하기 어렵습니다.8


["LE GENERAL NIVELLE, NIVELEUR"
끌어올린다는 뜻의 niveler(영어로 to level)과 니벨의 이름을 합친 일종의 말장난입니다.
참호에 틀어박힌 독일군을 "끌어올린다는" 의미로 한때 대단했던 니벨에 대한 희망을 옅볼 수 있습니다.]


결론을 내리자면, 로베르 니벨은 졸장이 아니며 그가 지휘한 니벨 공세(혹은 2차 엔 전투)는 단순한 졸전이 아니였습니다. 니벨은 페탱이 언급했듯이 그전까지 소규모 작전을 위주로 지휘했으며 제2군 사령관으로 베르됭 전투 말기에 역공을 성사했듯이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닌 오히려 이러한 소규모 작전에 강점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사임하더라도 어느정도 지휘부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었던 조프르의 흉계와 공격적인 지휘관을 선호했던 레몽 푸앵카레(Raymond Poincare)의 뜻이 맞아 본의 아니게 프랑스군 총사령관이 된 시점부터 니벨의 커리어는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느정도 니벨을 가이드하며 허수아비로 세워놓고 막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던 조프르는 정치인들에 의해 미국으로 "파견"나가 쫓겨났고 프랑스군이 연합군 최대의 육군을 자랑하는 덕에 사실상 연합군 총사령관직이였던 프랑스군 총사령관은 니벨이 익숙했던 것보다 훨씬 더 고도의 정치력을 요했습니다.

여러 제약과 정치인들과 휘하 지휘관들의 견제가 난무하던 상황에서 정상적인 방법으로 지휘가 불가능했던 니벨은 무모하게 무조건의 승리를 약속하며 전의를 이끌어냈지만 2차 엔 전투라는 도박이 실패로 끝나자 니벨이 내뱉었던 48시간드립등은 오히려 칼로 돌아와 그의 몰락에 일조했습니다. 처참한 졸전은 아니였지만 전쟁에 지친 대중과 사병들은 1915-16년에나 행하던 공세와 색다른 승전을 원했습니다. 니벨의 여러 미사어구와 대담한 장담들이 공세에 대한 기대를 한껏 이끌어낸만큼 어느 누구에게 불평할 수 있는 점이 아닙니다.

니벨은 2차 엔 전투의 실패 직후 북아프리카로 좌천당해 1918년에 제10군 사령관으로 복직하고 2차 마른 전투에서 큰 활약을 보임으로 악명을 청산한 동료 샤를 망쟁(Charles Mangin)과 달리 1919년의 개선행진에조차 참여하지 못한채로 쓸쓸히 잊혀져갔습니다. 총사령관으로는 부적절했지만 1917년 시점의 프랑스군 총사령관직이 독이든 성배나 마찬가지였다는 점과 전술가로는 상당히 유능했던 니벨이였던만큼 그의 뻘짓을 모두 고려하더라도 니벨이란 이름과 니벨 공세는 패전의 상징으로 전락한 상황은 안타깝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
1. 『The First World War』 by. John Keegan pg. 117
2. 『The Great War: 1914-1918』 by. Cyril Falls pg. 193-194
3. 『The French Army and the First World War』  by. Elizabeth Greenhalgh pg. 176-177
4. War of Attrition: Fighting the First World War  by. William Philpott pg. 265
5. 『The French Army...』 pg.207
6. 『The French Army...』 pg. 197
7. 『The French Army...』 pg. 197-198
8. 『The French Army...』 pg. 198-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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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고나
16/01/08 20:33
수정 아이콘
그런데 아무리 변호를 한다 쳐도 본문에도 있는 몰상식의 수준을 넘어선 작전보안과 독일군이 미리 대비를 한 게 뻔히 보이는 지점으로 그대로 공격한 부분은 졸장 소리 나오기 충분하다고 봅다
선비욜롱
16/01/09 00:10
수정 아이콘
정보보안에 대한 무심함은 니벨의 가장 큰 오점으로 비난받아도 할말이 없는 부분이긴 하나 전쟁에 대한 지지도가 역대 최악인 상태에서 니벨의 과장과 떠벌림은 지지도를 최대한 높이려는 몸부림에 가깝습니다. 애초에 니벨의 논리는 독일군이 대응을 하더라도 이동연막타격 전술이라는 해답을 활용한다면 필승이라 믿었던지라 정보에 대해 무심했던 바이기도 하죠. 사실 이런 변호도 졸장스럽긴한데(...) 니벨이 아주 틀리지 않았던게 니벨 공세는 공자와 방자가 여러 악재에 불구하고 1:1을 찍었고 로이드 조지가 말했듯이 나름의 성과가 존재했다는 점입니다.

총사령관으로는 무능할지언정 지휘하는데 여러 악재가 있었고 뛰어난 전술가였던데다가 지휘부내 정치싸움에 휩쓸린 감이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바라고 해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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