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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31 16:17
저도 요양병원에 외할머니를 보러갈때마다 들은말이 집에가자 였습니다.
그탓일까요.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가장 기억나는 것도 한가인 아버지로 나온분이 집에가자고 하는 대사입니다. 영화에선 집에모시고 사는걸로 나오지만.. 집에서 서너시간이나 같이 있을까 하는 일반사람들에겐 힘든 일입니다. 저희 어머니도 알았다고 집에가자고 대답하시며 참 많이 우셨더랬죠. 그후 친할아버지는 일안나가시고 꽤 오래 집에서 보살펴드렸지만.. 이런저런 사정상 마지막에는 요양병원에 모셨구요. 그 이런저런 사정을 겪은 어머니는 제게 본인이 치매기운을 보여줄듯하면 최대한 빨리 병원으로 보내버리라고 하시더군요. 전 뭐 그런 말씀을 하시냐고 대꾸는 했지만 후에 차분히 생각해보니 집에서 끝까지 모신다는게 장담할수없는 일이긴 합디다..
16/01/31 16:49
저도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아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사이가 돈독했는데 제가 군대 가기 얼마 전부터 할아버지께서 조금씩 치매 증상이 보이시더니 제가 제대했을 땐 이미 치매 중증이셔서 요양 병원에 계셨습니다. 제대하고 처음으로 병원가서 뵀는데 아무도 못 알아보시던 할아버지께서 할머니가 손자왔다고 했더니 순간적으로 기억이 돌아오셔서 군대갔다더니 제대했냐며 저를 알아보시더군요. 병원에 누워계신 할아버지를 보며 그냥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었습니다. 그렇게 1년 정도를 더 병원에 계시다가 돌아가셨는데 제가 해외에 있을때라 임종도 못 지켜드렸습니다 이 글을 읽으니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 생각이 나는군요. 첫 손자라서 그랬는지 많은 손자들 가운데서도 유독 저를 이뻐해주셨는데 저는 아무것도 해드린게 없는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16/01/31 16:54
저도 어린시절 할아버지와 같이 살았고 치매로 돌아가셔서 그 기분 어느정도 이해합니다.
이쁜치매라고 하나요. 그나마 증상이 심하지 않고 부모님의 집 근처에서 소규모 공장을 운영하셔서 돌아가실때까지 직접 수발이 가능했습니다만... 정말 힘들어요. 진짜 동네에서 30년 동안 살아 동네주민분들하고 잘 알고 지내지 못했으면 대형사고 터질뻔한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치매환자를 요양병원 보내는것에 죄책감 가지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거 아닙니다. 보통 각오 없이는 진짜 못버티죠. 할아버님도 이해하셨을 겁니다. 혹여나 죄책감 가지지 마시길...
16/01/31 17:03
저를 키워주셨던 외할머니께서 작년 겨울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할머니집이 가까웠기에 힘든일이 있거나 배고프면 항상 가서 밥먹고 얘기하고 맥주도 한잔 하고... 그랬는데... 뭐가 그리 급하셨는지 말한마디 못하시고 하루만에 돌아가셨지요.... 평생 자식들한테 한번도 서운한말 못하시는 소녀같은 분이셨는데 이제 보고싶어도 볼수가 없네요... 너무너무 보고싶어요...
16/01/31 17:22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 였던가요.. 김흥수씨가 막내로 나와서 치매걸린 어머니를 모시는....
할머니께서 치매가 오셨는데 끝까지 집에서 모셨었습니다. 어머니께서 고생을 많이 하셨었는데 드라마 보면서 참 감정이입이 많이 되더군요.
16/01/31 17:40
저 평생을 외가나 친가나 돈 백원짜리 하나 받아 본적이 없어요. 외가는 일찍 돌아가셔서 얼굴 본적도 없고
친가 할아버지도 얼굴 본적 없고 할머니라는 분은 저 어릴적 10살 이전에 알콜 중독자 였지요. 알콜 중독자가 그러듯이 유리창 깨기 스킬부터 온갖 횡패와 돈 요구를 하시느라 바빠서 손자소녀 백원 하나 줄 여유가 없었지요. 과자도 물론 이고요. 본인 이익에는 얼마나 영특한지 사춘기 손녀가 대들었다는 이유로 경찰에 나를 잡아가라고 신고까지 하는 센스~ 크 그당시에는 효는 당연한 지상 과제였고 노인들의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심은 인간의 기본 덕목인지라 출동한 경찰관이 나를 보는 표정을 잊을수가 없네요 크크크 결국 벽에 똥칠 할 때까지 사셨는데 치매까지 오셨지요. 차라리 힘 좋을때 알콜 중독자의 모습보다 늙고 기력 없는 애같은 치매 환자의 모습이 훨씬 좋더군요. 오죽하면ㅜㅜ 연민이라도 생기고 저런 인생에 무슨 낙이 있을까 싶은 동정심 마저 생기더군요. 결론은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한 좋은 기억이 단 한조각이라도 있는 분들 부러워요. 나이 들수록 과거를 미화하면서 살아가던데 저한테 단 한조각의 좋은 추억이 있으면 좋겠어요. 그러다보니 조카에게는 아낌없이 퍼주게 되더군요ㅜㅜ
16/01/31 18:16
받은사랑이 없으신데 조카에서 사랑을 아낌없이 주신다니 정말 다행이네요...아즐님이 남은일생 많은 사랑을 받으시면서 사시길 기원합니다...
16/01/31 19:42
감사합니다. 조카는 저랑 다르게 가까운 혈육에게 추억을 받고 좋은 기억을 주고 싶어서 로봇 이런거 행사때 마다 사줍니다.
일본 여행에서도 건담을 제일 먼저 사는ㅜㅜ 저야 그래도 부모님에게 사랑 받았고 받고 있으니 다행인데 요즘 아동 학대 이런 기사보면 살이 떨리더군요. 서연이가 충분한 사랑 받고 사랑주는 사람이라는걸 믿습니다~
16/02/01 02:44
아주 어릴때부터 할머니랑 같이 살고 싶다고 졸라댔었고 매주 편지쓰고 전화드리고 했었어요
대학가서도 계속 편지를 썼었는데 노인학교에서 한글을 배운 할머니께서 써주신 편지를 처음으로 기숙사 우체통에서 꺼냈을 때를 잊지 못해요 한동안 아플 때 많이 부은 제가 오랜만에 할머니를 뵈러 갔었는데 참았던 눈물을 엄청 흘렸었거든요. 다른 사람들한테는 걱정할까봐 함부러 힘들다, 아프다 말도 못하고 울지도 않았었는데.... 다 괜찮다고 안아주시던게 아직도 선명히 기억나는데 몇 년 전에 돌아가셨네요. 병원 입원하신 날 아침에 엄마 아침 식사 가져다주러 들렀는데 자꾸 저를 부르시는데 말을 잘 못하시기에 할머니 지금 피곤해서 그런가보다 이따 점심에 또 올게 좀 더 자요 하고 왔었는데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그 말을 못들은게 아직도 마음에 걸리고 좀 더 잘해드릴걸 해요 너무너무 보고싶네요....
16/02/01 03:08
제 외할머니도 치매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셨습니다.
참 자립심 강하시고 자존감도 높고, 능력있는 분이셨는데, 마지막 몇 년은 지켜보는 가족들 입장에서 너무 힘들더라구요. 치매가 심해지기 전에는 혼자서 사시겠다며 잘 사시다가 몇 번의 수술과 더불어서 치매가 급격히 심해지셨죠, 자식들 모두 나몰라라 하는 사람들도 아니고 효심 깊고 서로 돌아가며 잘 모시다가, 마지막 1년 정도만 요양원에 들어가셨고요. 요양원도 운 좋게 시에서 가장 좋은 곳으로 가셨는데.... 서울 사는 저희야 매일은 못 가는게 당연했지만, 그 동네 사시는 외삼촌들은 거의 매일 가셨던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딱 3일, 주말을 낀 3일을 외삼촌들이 일정이 꼬여서 못 가셨는데 그 사이에 다리 한쪽이 혈관이 막혀서 괴사중이었죠. 외삼촌 중 한분이 주말 후에 다시 가셔서 다리를 만져보니 한 쪽이 너무 차가워서 (의사소통이 이미 불가능한 상황이셔서 표현도 못 하셨구요) 결국, 절단을 하셨습니다. 그 때 참 엄마가 많이 우셨던 게 기억이 나네요. 그 후로도 병원 내 감염 (슈퍼 박테리아라던가요) 등으로 병원에서도 떠밀리는 상태가 되고 여기저기 다니다 돌아가셨는데, 상치르는 내내 3일간 거의 계속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정말 치매는 너무 힘든 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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