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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3/23 01:02:43
Name 눈시
Subject [일반] 일본, 섭정의 역사 (끝)


1598년, 히데요시가 죽고 조선에서 철군한 후, 이에야스의 첫 행보는 히데요시의 중신들을 포섭하는 거였습니다. 히데요시 정권 내에서도 문신과 무신들의 대립이 이미 있었고, 영지를 받을 때의 갈등, 임진왜란에서의 갈등으로 커집니다. 히데요시가 죽자 폭발했죠. 가토 기요마사, 후쿠시마 마사노리, 구로다 나가마사 등은 문 쪽인 이시다 미츠나리, 고니시 유키나가와 대립했고, 결국 미츠나리를 죽이려 합니다. 이에야스가 이걸 중재하면서 양측은 극으로 갈리게 되죠.

1600년, 동북쪽의 우에스기 카게카츠가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명분으로 이에야스는 동쪽으로 병력을 일으켰고, 미츠나리는 모리를 설득해 이에야스를 토벌하려 합니다. 하지만 이걸 예상한 이에야스가 바로 돌아와서 붙게 되니 이것이 바로 세키가하라 전투죠. 일본의 운명을 가른 전투였습니다.

이후 이에야스가 정권을 잡았고 메이지 이후 막부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 2차대전 후 미츠나리에 우호적인 시각들이 나오면서 서군에 우호적인 시각이 많습니다만, 양 쪽 다 서로를 역적이라 하고 다들 히데요리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웁니다. 심정적으론 어땠을지 몰라도 히데요리의 어머니 요도도노도 한 쪽 편을 들지 않았고, 히데요시의 정실인 코다이인(네네)도 중립에 가까웠습니다. (동군인 가토 기요마사, 후쿠시마 마사노리, 구로다 나가마사 다 어릴 때 그녀가 키웠죠)


파란색이 서군, 빨간색이 동군... 하지만 동군 남쪽에서 포위하고 있는 병력 (모리 쪽) 은 싸우지 않았고, 서군 남쪽에 있는 병력은 서군이었다가 동군으로 배반합니다.

전력으로 보면 양측이 거의 대등했고 서군이 좀 더 우세했습니다. 여기에 서군은 미리 산에 학익진을 펼치고 있었구요. 헌데 이에야스는 이 학익진의 중심에 스스로 목을 들이밀어 줍니다. 충분히 유리하다 생각했을 겁니다.

서군의 명목상 대장은 모리 데루모토, 실질적인 총대장은 이시다 미츠나리였습니다. 이렇게 나뉘어 있었고, 모리 가문 안에서도 의견이 갈렸죠. 모리를 보좌하는 깃카와와 고바야카와 가문이 이에야스의 조략에 넘어간 거였습니다. 데루모토 자신도 소극적이라서 오사카 성에 머물렀구요. 가장 많은 병력을 이끈 모리가부터가 이랬죠. 거기에 미츠나리는 서군 내에서도 평판이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시마즈 요시히로, 초소카베 모리치카 등 동군으로 가고 싶었는데 서군에 둘러쌓여 어쩔 수 없이 서군이 된 자들도 있었구요. 싸움에 관해서는 더 안 좋았죠. 히데요시 밑에서 실무를 하던 자였고, 호조 정벌과 임진왜란(행주대첩)에서 그 능력이 부족함을 드러냈습니다. 반면 동군은 이에야스가 직접 나섰고, 다른 자들도 이에야스에 대한 믿음과 미츠나리에 대한 원한으로 똘똘 뭉쳐 있었습니다.

전투 초반, 우키타 히데이에, 고니시 유키나가, 오타니 요시츠구 등은 열심히 싸워 후쿠시마, 구로다군 등을 밀어붙이기도 했지만 소수였을 뿐, 나머지는 다 소극적이었죠. 깃카와군은 도시락 먹는다고 (...) 불참, 시마즈 요시히로는 미츠나리가 자기 무시한다고 안 싸웠죠. 여기에 고바야카와 히데아키의 배신을 시작으로 와키자카 야스하루 등 4명의 무장들도 동군으로 돌아섭니다. 이렇게 전투는 동군의 승리로 끝이 나죠.

+) 이 때 구로다 나가마사의 아버지 구로다 간베에는 규슈에서 서군의 땅을 뺏고 다니다가 동군이 이기자 모두 이에야스에게 바칩니다. 이를 양군이 싸우는 동안 규슈를 잡고 천하를 잡으려 했던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아들 나가마사가 큰 공을 세워서 이에야스가 손 잡아주면서 고마워했다 하니 "니 왼손은 (안 찌르고) 뭐하고 있었냐?"고 타박했다고도 합니다. (...)

서군에 가담한 다이묘들은 너무 멀리 있고 소수로 소극적으로만 참전했던 시마즈를 제외하고 모두 망합니다. 이에야스는 자신의 친족 및 가신들과 자기 편 다이묘들의 영지를 대거 올리면서 정권을 본격적으로 잡게 되죠. 다음 해, 그는 정이대장군이 됩니다. 에도 막부의 탄생이었죠.

이제 흐름은 누구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야스는 갈수록 정권을 굳혀갑니다. 하지만 아직 문제는 남아있었죠. 다음 관백이 될 도요토미 히데요리가 남아 있었다는 겁니다. 관백은 관위상으로 쇼군보다 위, 아직 도요토미의 가신을 내세우는 이에야스였습니다. 그 자신이야 확실한 실권을 쥐었지만 그의 아들이라면? 아직 막부는 불안했습니다. 이에야스는 자신이 죽기 전에 이 일을 마무리짓자 생각했을 겁니다.

1603년, 그는 쇼군직을 아들 히데타다에게 물려주고 오고쇼에 오릅니다. (...) 네, 예상하셨죠? 역시 쇼군 등에 은퇴한 자가 오르는 거였습니다. 실권은 물론 자신이 가지고 있었구요. 그는 천천히 기다립니다. 히데요리가 다 클 때를요.

1605년, 히데요리는 12살이 되어 우대신에 오릅니다. 슬슬 상하를 가릴 때가 되었죠. 이에야스는 자신이 더 높으니 신하의 예를 취하라 했고, 도요토미측에서는 이후 관백으로 이에야스보다 더 높이 오를 것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에야스의 롤모델은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다이묘들을 막부를 중심으로 통제하기 위해 조정의 관직을 받지 말라 명령했습니다. 도요토미측은 우린 관백의 가문이니 막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며 자기 파를 늘리기 위해 관직을 주고 있었죠.

1611년, 새 덴노의 즉위를 기념해 이에야스가 상경합니다. 여기서 히데요리의 상경을 독촉하죠. 당연히 반대했지만 가토 기요마사 등의 노력으로 이뤄집니다. 이렇게 사이가 좋아지나 했지만... 이에야스는 그저 구실만 잡고 있었죠.


도요토미 히데요리. 일본 최고의 입지전적인 인물인 히데요시의 아들은 일본 최고의 세상물정 모르는 금수저가 됩니다. 아이러니하죠. 덩치는 아버지와 달리 컸다고 하는데 이 때문에 히데요시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음모론도 있습니다.

이에야스는 친한 척 하면서 도요토미가의 권위를 세우자는 명목으로 수도권의 각 절이나 신사를 보수하고 세우자고 건의합니다. 도요토미측은 좋다구나 하고 합니다만 여기서 참 많은 돈을 썼죠. 거기에 이에야스가 제대로 억지를 걸게 되니... 호코지라는 절의 종에 새겨진 글을 문제삼은 겁니다.


國家安康, 君臣豊樂 (국가는 안전하고 건강하며 군신은 풍족하고 즐겁다)
저기서 이에야스(家康)를 둘로 잘랐으니 이에야스가 망하길 저주한 것이고 도요토미(豊臣)를 거꾸로 써서 도요토미가 흥하길 기원했다는 것이죠. (후자는 의도한 거라고 합니다만) 나중에 이걸 바꾸지 않고 현대까지 내려오는 걸 보면 정말 억지죠. 하지만 이걸 반대한 다이묘는 없었습니다. 가토 기요마사는 위의 회견 후 죽었고 (이에야스의 독살이라 합니다) 히데요리 편을 들만한 무장들도 나이가 들어 죽어갔습니다. 이에야스는 이 때를 기다린 것이죠.

1614년, 이에야스는 히데요리 토벌을 시도합니다. 20만을 동원한 전쟁이었죠. 히데요리를 돕는 다이묘는 없었고 히데요시가 남긴 재물을 뿌려 낭인들을 고용합니다. 전쟁에 능숙했고, 이에야스에 대한 원한을 가지거나 인생역전을 노린 자들이었죠. 하지만 수뇌부가 전쟁을 모르던 자들이었으니... 이래저래 딴지를 걸려서 원하는 작전을 못 펴게 됩니다. 그래도 이 낭인들의 활약과 오사카성의 막강한 방어력으로 이에야스는 얼마 안 가 화친을 시도합니다. 속셈이야 따로 있었죠. 오사카성의 각종 방어물들을 해체하라는 거였습니다. 화친을 맺을 때 흔히 있는 것이었고, 누구를 인질로 보내는 등 더 심한 조건 대신이었기에 거기에 따르게 되죠. 문제는 보통 땐 이게 형식적이었는데, 도쿠가와측에서 도와준다는 핑계로 아주 확실하게 헐어버리고 해자도 다 메워버립니다. (...) 이러니 도쿠가와군이 물러나자마자 부랴부랴 방어준비를 다시 하게 되었고 낭인들도 더 고용했는데, 이게 또 재침의 좋은 명분이 돼 버립니다.

그렇게 이에야스가 다시 대군을 일으키면서 오사카성의 운명, 도요토미의 운명은 끝이 납니다. 이를 각기 오사카 겨울의 진, 여름의 진이라고 부르죠.  


사나다 유키무라. 사나다 마사유키라는 호족의 아들로 세키가하라 때 이에야스와 맞섰다가 아버지와 함께 유폐됩니다. 이 때 황금 200매와 은 30관을 주고 등용했다고 하죠. 이 때 돌격해서 이에야스를 죽일 뻔하기도 하지만 실패하고 죽습니다. 이 한 방으로 전국시대에 여러 업적을 쌓은 영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인기를 얻습니다. 지금 NHK에서 방영하는 사극도 사나다마루라는 제목으로 그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죠.

이에야스는 도요토미가를 멸망시킨 후 막부 중심의 통치를 확고히 합니다. 이 해를 겐나 엔부라 해서 150여년간 이어진 혼란의 끝이라고 선포했죠. 무가에겐 조정에서 내리는 관직을 절대 못 받게 했고, 일국일성, 각 지역마다 성 하나만을 두게 하고 다른 성을 모두 허물게 하죠. 방어에 좋은 산성 대신 지역의 중심을 맡게 될 평지성 위주로만 쌓게 되구요. 거기에 다이묘간의 결혼도 규제하고 참근교대라 하여 다이묘의 처자식을 에도에 인질로 두게 합니다. 여기에 임진왜란을 통해 끌고 오고 약탈해 온 유학자들과 유학책을 통해 성리학, 특히 퇴계 성리학을 받아들이게 되죠. 주군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친다는 유교식 충성을 퍼뜨린 것이죠. 외부에서 흔들리는 걸 막기 위해 쇄국정치를 폅니다. 선교를 안 하겠다는 네덜란드와만 접촉하죠.

+) 카쿠레키리시탄 얘기할 때 이 사람들이 교회는 안 가고 성당에만 가더라, 몇백년 지나도 그 차이는 알더라... 그렇게 썼었는데 알고보니 예수회(천주교 소속입니다)에서 신교 국가에서 오는 사람들을 탄압했더군요. -_-; 죽이거나 쫓아내려고 하고 정 안 되면 개종이라도 시킬려고 하고... 종교란 건 참 무섭습니다

일본의 주요 지역에는 도쿠가와 친족과 가신들을 다이묘로 보냅니다. 이렇게 전 일본의 1/4을 직접 통치하게 되었죠. 다른 다이묘들 중에서도 여전히 강한 다이묘들이 있긴 했지만 중앙과는 거리가 멀었고, 그들이 맞서기에 막부는 충분히 강해졌습니다. 막부 말기에야 결국 이들 때문에 망하지만요. 이렇게 힘과 성리학이라는 명분을 이용, 에도 막부는 그 어느때보다도 강한 중앙집권을 누립니다. 사무라이들도 갈수록 칼만 찼지 공무원화 됐구요.

+) 이 때 다이묘를 신판 / 후다이 / 도자마로 나눕니다. 신판은 왕족 느낌이고 도자마는 적이었던 다이묘, 후다이는 그 사이죠. 당연히 도자마에 대한 취급은 안 좋았습니다. 막부가 잘 나갈 땐 숨 죽여 살았지만 막부가 약해지면서 결국 이들에게 무너지게 됩니다.

이에야스는 모든 일을 끝냈다는 듯 다음 해에 죽습니다. 히데타다가 2대 쇼군으로 본격적으로 정권을 잡게 되죠. 그리고 아버지를 따라 자신도 오고쇼가 돼서 자식에게 물려주고 실권 휘두르다 갑니다. (...) 그 외에 8대 쇼군도 오고쇼가 됐다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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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스트 사무라이를 완벽하게 고증한 게임이죠 (...)

250여년간 일본을 통치한 에도 막부지만 역시 달은 차면 기우는 법이었습니다. 여러 재해와 무능력한 쇼군 등으로 막부는 차츰 부패해갔죠. 하지만 이런 게 새로운 시대가 오는 걸 의미하진 않습니다. 바뀌어봐야 전국시대의 재래와 새로운 막부의 출현이었겠죠. 하지만 시대는 이전에 볼 수 없던 새로운 것으로 흘러갑니다. 두 가지 덕분에 말이죠. 어느 하나라도 없었다면 막부가 그대로 가거나 새로운 막부의 출현 정도였을 겁니다.

첫째는 성리학을 통해 이원정부형태 자체에 대한 반대가 시작된 거였습니다. 오랜 통치 때문에 막부가 있는 걸 당연하게 (감히 반대도 못 하고) 여기던 것에 의문을 가지게 된 겁니다. 절대적인 충성을 바쳐야 되는데 그럼 왕인 덴노에게 바쳐야죠. 애초에 이게 일본에서 유학이 발전하지 못한 이유겠습니다만, 이게 슬슬 강화됩니다.
그 다음은 1853년에 온 흑선(쿠로후네) 내항 사건이었습니다. 쇄국정치를 펴고 네덜란드에게만 문을 살짝 열어둔 일본이었습니다. 태평양을 통해 아시아로 진출하려는 미국에게 일본의 개항은 필수였죠.


도쿄 앞바다에 미국의 함선이 나타났고, 쇼군이 바뀔 때라서 내년에 얘기하자고 돌려보냅니다. 미국에선 다음해에 수를 더 늘려서 데리고 왔고, 막부는 개항을 결심했죠. 이 때 미일통상조약을 주도한 게 실세였던 이이 나오스케였습니다. 이 사건은 덴노를 받들고 쇄국을 주장한 세력, 존왕양이파에게도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덴노였던 고메이 덴노는 이전에는 할 수 없었던 짓을 합니다. 조정의 허락을 받지 않고 외국과 조약을 맺었다며 막부를 비난하고 미토번에 덴노가 직접 칙령을 내린 것이죠. 도쿠가와 막부 내의 개항반대파의 영향도 있었지만, 일본의 국학파(아예 미토학이라고도 불립니다), 존왕양이의 선구자인 미토번의 영향도 받은 거였습니다. 이이 나오스케는 분노해서 미토번을 중심으로 존왕양이파를 쓸어버립니다. 여기엔 유신지사들의 스승 요시다 쇼인도 포함되었죠. 그리고 그 잔당은 이에 맞서 이이 나오스케를 습격해 죽였구요.

존왕양이파는 갈수록 힘을 얻어갑니다. 막부의 탄압도 받고 괜히 서양세력과 싸우다가 깨지기도 했지만요. 이러다가 존왕만 남기고 양이는 없애버린 게 또 웃기면서도 현실적입니다. (...) 오히려 이들이 서양의 무기와 제도를 더 받아들이게 된 거죠. 애초에 존왕양이는 이들이 명분으로 삼던 사상일 뿐이었습니다. 유신지사들이 이에야스에게 깨졌기에 대대로 원한을 가졌고, 막부에서 통치하기엔 충분히 먼 지역이었던 걸 보면 말이죠. 시마즈가 있는 사츠마(현 가고시마), 모리가 있는 조슈(현 야마구치현), 초소카베가 있던 시코쿠의 도사(현 고치현) 등이었습니다. 반대로 신장의 야망... 아무튼 게임에서 저 다이묘들이 고평가 받는 이유 중에 하나일수도 있습니다.


사카모토 료마. 오다 노부나가와 1~2위를 다투는 일본의 위인입니다. 같은 존왕파면서 사이가 나빴던 사츠마와 조슈를 중재하고 막부에 대정봉환을 주장해 성공한, 그가 없으면 유신도 없었다는 말까지 듣는 사람이죠. 유신 한달 후에 암살당합니다.

막부의 힘으로 이들을 누를 수 없게 된 상황,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사카모토 료마의 주장을 받아들여 대정봉환을 합니다. 그동안 덴노에게 위임받은 권력을 반환하겠다 한 것이죠. 어차피 조정에서 실무를 할 자가 없으니 막부가 조정 안으로 들어가서 다스리겠다는, 도쿠가와가의 실권을 잃지 않겠다는 계산이었습니다. 하지만 존왕은 핑계고 권력을 노린 유신지사들이 이걸 받아들일 리 없었으니... 결국 옛 막부 세력과 신정부간의 전쟁 보신(무진)전쟁이 일어납니다. 여기서 막부측은 홋카이도까지 밀렸고 거기서 에조 [공화국]까지 세웠지만 힘도 없고 서양세력도 그들을 버리면서 항복하게 되죠.

이렇게 시작된 메이지 유신은 일본을 동양 유일의 근대화된 국가이자 제국주의 국가로 이끕니다. 이 막말(막부말기)가 유신지사들이나 그에 맞선 막부의 신선조(신센구미)들의 이야기 등으로 전국시대와 더불어 일본에서 인기를 끄는 소재입니다. NHK에서 매년 하는 대하드라마에서는 이 두 시기를 빼면 거의 없을 정도죠. 하지만 한국에서는 정한론이 시작되는 시기였으니... ㅡ .ㅡa 일본에서도 의외로 패한 쪽인 신선조나 유신지사 중에서 일찍 죽은 료마, 그 안에서 패했던 사이고 다카모리의 인기가 많습니다. 정권을 잡은 유신지사들도 워낙에 막장으로 놀았거든요.


일본의 천황, 덴노는 이렇게 그 어느때보다도 일본에서 우러러 보는 존재가 됩니다. 신국 사상은 메이지 유신부터 갈수록 강해졌고, 국가신토라는 괴물까지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그게 실권을 잡았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우리 서양 친구들이 입헌군주제라는 아주 좋은 제도를 소개해 줬네요? 이 때도 덴노는 전 일본인이 절대적인 충성을 바쳐야 될 대상이고 일본의 상징이었지만, 군림하되 통치는 하지 않는 구름 위의 존재가 될 뿐이었습니다.

+) 덴노라는 명칭이 공식이 된 것도 이 때라 합니다. 그 이전엔 미카도 등 기존에 쓰던 여러 명칭을 섞어서 썼죠. 덴노라는 명칭을 많이 쓰게 된 게 무로마치 막부, 덴노의 권력이 아예 없어진 때고 그게 공식 명칭이 된 게 이 때니... 상징일수록 이름은 더 고귀해야되는 거였죠 뭐

그러면서 이전 역사에 대한 재평가도 잔뜩 진행됐구요. 막부를 연 자들을 모두 역적으로 바꾼 것이죠.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보다 요시츠네가 인기 많고, 아시카가 요시아키보다 쿠스노키 마사시게가 인기 많고, 이에야스보다 히데요시가 인기 많은 큰 이유 중 하나가 될 겁니다. 전자는 정도가 다르지 조정 쪽을 따랐으니까요. 판관편애가 클지 이게 클지는 모르겠네요. 2차대전이 끝난 후에야 천천히 바뀌어서 막부를 연 자들도 다시 인정받아가고 있습니다. 한편 남북조 때의 정통을 북조에서 남조로 바꿉니다. 북조는 막부에서 옹립한 가짜라는 논리였죠. 물론 그 뒤의 덴노들은 어쩔 수 없어서 남조가 북조에 선위했다고 넘어갔구요.

아무튼 이렇게 힘도 없던 조정의 권위를 끌어올리려고 이래저래 노력했네요. 물론 그게 권력을 덴노에게 주겠다는 얘기는 아니었죠.

미국이 전쟁에서 승리하고도 덴노를 없애지 않은 건 실권이 없었다는 것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비판도 받습니다만 상징적인 인물을 죽일 순 없었을테니... 물론 그럼에도 처벌했어야 됐다는 주장과, 실제로는 덴노가 전쟁에 깊이 참가했다는 주장도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아무튼 덴노는 현재에도 일본 내에서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일본의 상징이자 정작 힘은 없는 존재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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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게 길게 얘기했네요. 더 자세히 얘기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정말정말 길어질테니 (...)

이런저런 얘기하면서 글의 주제에서도 많이 벗어났네요. 정리해 봅시다.

- 덴노의 권력이 차츰 실세인 귀족, 특히 외척들에게로 넘어감
- 외척들은 섭정과 관백이라는 정치를 대리할 권한이 있는 관직을 독점, 덴노를 허수아비로 만듦 = 셋칸 정치
- 이에 맞서 덴노들은 아들한테 양위하고 상황, 법황이 돼서 덴노를 허수아비로 만듦 = 인세이
- 황족끼리 싸우고 귀족끼리 싸우고 상황이랑 귀족이랑 싸우고 덴노랑 상황이랑 싸우고... =_=; 이런 가운데서 이들의 무력이 돼 줬던 무사들의 권력이 강해짐 -> 당연히 더 높은 자리를 원하게 됨
- 서로 손을 잡고 배신하는 싸움 끝에 타이라노 키요모리가 무가 출신으로 태정대신이 되는 이변이 일어남
- 미나모토노 요리모토가 겐페이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무가 정권, 막부를 공식적으로 만들게 됨 = 조정 자체가 허수아비가 됨
- 허수아비 싫다고 뎀볐다가 깨지고 더더욱 허수아비가 됨
- 헌데 막부에서도 쇼군 핏줄이 끊겨서 외척인 호조씨가 싯켄(집권)으로 권력을 휘두름. -> 조정을 허수아비로 만든 막부의 쇼군을 허수아비로 만든 호조씨
- 막부가 약해지면서 옛날로 돌아가자면서 고다이고 덴노가 일어남  -> 힘들게 힘들게 막부 타도했지만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다시 허수아비로 만들려고 함
- 싸우다 지고도 포기 안 하고 남쪽으로 도망가 남북조 시대를 만들었지만, 결국 북조가 이기고 더더더욱 허수아비가 됨
- 그래봐야 얼마 못 가서 쇼군은 실세들한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허수아비가 됨 -> 노부나가가 마지막으로 쓰다가 없애버림
- 히데요시는 쇼군 못 된 대신에 관백이 돼서 실세가 되려 함 -> 그래놓고 곧바로 관백 물려주고 태합이 돼서 관백을 허수아비로 만듦
- 이에야스는 쇼군이 되자마자 아들한테 물려주고 오고쇼가 됨. 아들도 따라함
- 유신으로 절대적인 존재가 되었지만 입헌군주제 덕분에 합법적인 허수아비가 됨

-_-a

실세는 어느시대 어느 상황에서든 나옵니다. 하지만 중국이나 조선에선 오래 못 가거나 자기가 왕이 되죠. 반면 일본에서는 왕을 허수아비로 만드는 관직이 대놓고 오래 갔고, 아예 그 조정을 허수아비로 만드는 정부가 오래 갔습니다. 참 특이하죠.

보통 영국이랑 비교하죠. 영국도 왕권이 약했고, 귀족들 중심으로 흘러갔으며 그러면서도 잠깐의 공화정을 빼면 왕정을 유지했으니까요. 대신 왕권을 최대한 줄여서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입헌군주제의 모범을 만들었죠. 외부의 공격에서 많이 안전했기에 중앙집권을 할 기회도 필요성도 적었고, 섬이니 서로 싸우면 다 죽는다는 생각 등이 이유로 꼽힙니다. 섬에서 아무리 강해져봐야 한계가 있고, 중앙집권이 약하니 실세가 돼도 각 세력들간의 합의체 이상을 벗어날 수 없었던 점 등이죠. 중국에서 따끈따끈한 중앙집권에 관한 제도와 사상을 가지고 와 봐야 일본식으로 바뀌었고, 한계를 깨기 위해 자식에게 물려주고 그 위에서 실세가 되는 걸로 계속 이어집니다. 아예 각 가문 단위로도 이게 흔해서 자식이 어려도 당주 자리를 물려주고 말만 은거지 실권을 휘두르는 경우가 참 많았죠. 이런 게 계속 이어지고 이어졌구요. 참 특이한 역사입니다.

뭐 그렇다고 덴노들이 편히 살지도 못 했습니다. 실세의 눈에 밉보이면 갈아치워지거나 죽거나 했죠. 어차피 필요한 건 그 자리에 있는 사람같은 신이 아니라 그 위치 자체였으니까요. 중세 유럽에서의 교황, 중화세계에서의 황제처럼 군주에게 정통성을 주는 역할을 맡긴 했지만 딱 거기까지. 난세가 되면 먹고 사는 걸 걱정해야 될 정도의 상황에 처하기도 했었다 합니다.

하나 더 재밌는 점이 있습니다. 상황이 섭정하는 인세이와 귀족이 맡는 관백 등은 메이지 유신까지 쭉 이어집니다. 실권이 없어도 말이죠. 그리고 덴노를 차지하기 위한 다툼은 실권이 있든 없든 계속 진행됐구요. 서로 파가 갈려서 진 쪽이 실세와 손 잡을 때가 많았고, 이건 실세들이 조정을 허수아비로 만드는 데에도 꽤나 큰 도움을 줬습니다. 이거 참... 허수아비라도 차지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인가 봅니다. 뭐 지금도 마찬가지죠. 둘째가 아들을 낳으면서 태자의 자리가 위태로워졌다고 하잖아요. 당사자들의 생각까진 알 수 없겠지만요.

이래저래 참 많이 썼네요. 그동안 얘기 못 해서 쌓였던 거 풀어놨다고 생각해주세요. ( '-')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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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dpool
16/03/23 01:32
수정 아이콘
시바 료타로의 '세키가하라 전투' 참 열심히 읽은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히데요시의 칠본창 대 이시다 미츠나리
16/03/27 14:11
수정 아이콘
한국에서 아는 미츠나리 이미지는 보통 시바 료타로가 만든 캐릭터죠 '-')
16/03/23 01:57
수정 아이콘
덴노는 신의 자손이니까요 후후후. 문화라고 생각하면 존중해줄수 있는거죠.

재미있는건 노부나가에게 대든 쵸소카베 모토치카도 히데요시에게는 얌전하게 종속했다는거고.. 그로인해 스노우볼이 구르죠..
히데요시에게 가담 -> 큐슈 정벌 -> 장남 전사... -> 그 여파로 병에 들어 사망 -> 4남 모리치카가 가독상속 -> 세키가하라 동군 가담 예정
-> 서군에 길이 막혀 에라 모르겠다 서군가담 크크크 -> 서군 패배 -> 영지는 지킬뻔 했는데 가신이 자기 형을 암살함 ㅠㅠ -> 영지 몰수 ->
낭인때에 오사카 성에 입성하여 토사를 되찾겠소! 무용을 뽐내나 전사 -> 토사는 3중로중 배신한 야마우치 가즈토요에게 돌아감 ->
막부 토사번 -> 야마우치계와 쵸소카베계의 갈등 -> 막말이 되니 막부가 임명한 한슈따위 확 진짜! -> 쵸소카베 계인 사카모토 료마가
주도적으로 나섬 -> 탈번 -> 약간의 뻥튀기는 있었어도 큰 그림을 그린 료마 -> 삿쵸 연합 -> 무진전쟁으로 막부군 박살 -> 대정봉환
-> 막부 유명무실화.... 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스토리가 있습니다 크크크크
16/03/27 14:13
수정 아이콘
존중 정도는 해주면 되니까요 크크.
크크 원한은 언젠가는 갚는다는 걸까요. 참 장대한 스토리예요
하심군
16/03/23 08:20
수정 아이콘
아니 이 분 그냥 가마쿠라막부만 끝내실 줄 알았더니 일본역사를 요약했잖아(...) 이러니 사람들에게 텍스트노예라는 소리를 듣지 쯔쯔(...)
16/03/27 14:14
수정 아이콘
크크크크 마지막까지 다룰려고는 했는데 이렇게 길게 길게 다룰 줄은 몰랐어요 (...);;;;;;;;
16/03/23 08:36
수정 아이콘
잘 보고 갑니다.크크
16/03/27 14:14
수정 아이콘
크크 감사합니다 ^^
구들장군
16/03/26 13:43
수정 아이콘
긴 글들 쓰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잘 배우고 갑니다.
16/03/27 14:15
수정 아이콘
쓰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크크 감사합니다 ^^
검은별
16/04/23 00:05
수정 아이콘
이제야 쭉 다 봤네요. 좋은 일본사 요약이었습니다? 크크크
16/04/24 23:25
수정 아이콘
크크 이렇게까지 갈 줄 몰랐었죠.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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