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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3/25 17:54:59
Name 지하생활자
File #1 image.jpeg (38.9 KB), Download : 58
Subject [일반] 응급실#2


# 응급실 밖이 어수선 하다. 중한 환자가 온 것이 분명하다. 이번에는 어떤 환자일까 하는 생각과 함께 문 밖으로 나가본다. 동남아 사람 같은 여자가 침대에서 옆으로 누워서 고통스럽게 토악질을 하고 있었다. 119에서 DI(drug intoxication)라고 이야기를 하며 병을 가져다준다. 이 락스 반통을 술과 섞어 마셨다고 한다. 전형적으로 DI 환자들은 예후가 좋지 않다. 우울증 같은 정신과적 질환을 가진 경우가 많아 이번에 회복시켜 보내면 다음에 또 시도해서 다시 응급실로 오는 등 재발이 흔하다.
 눈물흘리며 구역질을 하고 있는 환자에게 병을 보여주며 '이거 마신거 맞아요?' 라고 물어보니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말은 안한다. '얼마나 마셨어요?' 하니 'a cup of glass'라고 한다. 필리핀 사람이구나, 한국말을 못하는구나. 되도 않는 영어로 떠듬떠듬 물어본다.
'why did you drink it?' 
'I want to die'
'is tihs your first try?'
'.....'
 너무 아파해서 더 이상 물어보아도 대답을 잘 하지 못한다. 보호자는 60대로 보이는 시아버지이고 집에서 발견하여 119에 신고하였다고 한다. 환자의 기저질환과 감정 상태를 물으려고 하는데 너무나 퉁명스럽게 자기는 모르겠다는 말을 반복한다. 일단 컴퓨터로 돌아와 알아낸 사실만 입력을 한다. 그러던 도중 스테이션에서 누군가 버럭 화를 내는 소리가 들린다. 뒤를 돌아보니 환자의 시아버지다.
'퇴원시켜 달라니깐!'
'지금 퇴원하면 위 천공이 생겨 생명이 위험할 수 있어요, 더 지켜보아야 합니다'
'위에 빵꾸가 뚤리던 쟤가 살던 죽던 내 상관할 바 아니니 퇴원시켜달라고!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야! 쟤 치료비 부담 못해!'

대체 저 환자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어 저런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일까. DI 환자들이 오면 대개는 정신과로 콜이 찍히고, 상태가 안정되면 정신과 선생님들이 내려와 환자와 면담을 한다. 정신과 면담 차트가 떠 있길래 들어가 보았다. 
 '3x세 필리핀 여환, 국제 결혼하여 한국에서 살던 도중 배우자가 유흥업체를 운영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다툼이 잦아졌음. 금일 배우자와 다투며 구타당한 후 락스 반통과 술 한 컵을 섞어 마시며 자살 시도 함. (...후략)'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떠날 때 본인에게 이러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까? 머나먼 타국에서 믿고 같이 살아가기로 약속한 사람에게는 구타당하고, 그 사람의 가족은 증오로 본인을 대할 때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도 언젠가 타이 마사지를 받으러 간 적이 있었다. 그곳의 사장은 한국인이었지만 우리를 마사지 해 준 사람들은 한국말을 하지 못하는 동남아 여성들이었다. 타국의 언어를 하며 마사지 하는 모습을 보며 그 사람들에게서 고통스럽게 토악질을 하던 필리핀 여성이 겹쳐보였다. 그들도 말하지 못하는 슬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을까.   

# 야간 근무를 시작한 뒤 8시간이 지났고 응급실 시계가 3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여느때 보다 오늘은 더 평온한 날이다. 
'이대로만 아무 사고 나지 않고 오늘 하루 지나갔으면..' 생각하던 도중 응급실문이 열리면서 119 침대 두대가 밀고 들어온다. 그 중 한 침대는 CPR 룸으로 들어갔고 나머지 한대는 초진 구역에 배치된다. 동료 인턴에게 병력청취를 맞기고 CPR룸으로 들어가보니 중년 여성의 머리에 감긴 붕대 사이로 빨간 피가 똑똑 떨어지고있다. 팔다리는 축 늘어져 있고 통증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언제든지 심장이 멎어 CPR이 나도 이상할 것 없는 모양새다. 머리쪽으로 가 보니 이미 기도삽관이 되어있었고 앰부백 아래로 초점 없는 눈이 반쯤 열려있다. 눈에 펜라이트를 비추어 보니 동공이 반응하지 않는다. pupil 2mm fixed, brain stem이 일을 못하고 있는것이 분명하다. 붕대를 잠시 열어 보니 15cm 두피 열상 아래로 하얀 두개골이 보인다. 
 '어쩐지 오늘 아무 일 없이 잠잠하더니....' 앰부 백을 짜는 던트 선생님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린다. 
'어떻게 된거래요?' 
'바로 병원 앞 사거리에서 사고났데. 정면 충돌이고 이 아줌마는 차 밖으로 튕겨나가 발견되었어. 다른 충돌 차량 운전자는 밖에 있는 베드에 있어' 
 환자가 의식이 없어 확인할 수 없지만, 안전벨트를 안했음이 분명하다. 음주운전일 수도 있겠다. 어느쪽이 실수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와중에 NS(신경외과) 던트 선생님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신경외과는 일주일 24시간 내내 저 선생님이 응급실로 내려와 환자를 본다. 잠이 얼굴에 가득 묻어있는 얼굴로 환자를 쓱 보고 몇가지를 물어본다.
 '어렵겠네. 그래도 자가호흡은 있으니 타 과 evaluation하고 우리과로 입원시켜요' 
 기본적인 영상 검사를 위해 시티와 엑스레이를 찍으러 간다. 시티를 찍을 때에는 방사선 때문에 모두들 차단막 밖에 있는 방에 있지만 누군가는 환자 옆에서 앰부를 짜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보통 인턴의 일이다. 다른 사람이 다 나가고 커다란 방에 거대한 도넛같이 생긴 시티 기계와 나와 반쯤 죽어가는 아줌마만 남았다. 촬영이 시작되면 납복 사이로 방사선이 들어와 내 장기들을 관통할 것이다. 연간 7번이었던가? 권장하는 시티 촬영의 최대 횟수가. 오늘 하나를 썼구나. 
 기본적인 검사를 마치고 환자는 ventilator(인공호흡기계)를 앰부 백 대신 연결하고 나의 임무는 끝이났다. 돌아와서 동료 인턴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보았다. 

'저기에 누워있는 22살 애 차랑 정면 충돌했데. 둘다 의식이 멀쩡하지 않아 정확한 사고 기전은 모르고, 둘다 안전벨트는 안했는데 쟤는 갈비뼈 몇개 나갔고 고관절 탈구 된 것 외에 바이탈에 이상은 없고, 술 한병 마셧다는데 더 마신 것 같아, 횡설수설하더라고. 아줌마 신원은 아직도 파악하지 못하고있데. 지갑이 없어도 자동차 번호판으로 알아낼 수 있지 않나? 경찰이 왜 못찾고있지?' 
 '근데 쟤 시티 찍어보니 cavity 보인다는데? TB(결핵)일 수 있데, 완전 말랐자나. 아.. 나 병력 청취하느라 얼굴 바로 앞에서 말했는데 어떻게하지?' 
 우리 모두 뒤늦게 N95를 착용한다.

 곧 OS(정형외과) 선생님이 내려와서 티스타 고관절 정복(탈구 맞추는 행위)하러 가자고 한다. 음주운전한 그 환자다. 고관절 탈구는 통증이 심하기 때문에 재우고 정복을 시작한다. 정맥 라인으로 약물이 들어간 후 5초 이내로 의식이 없어지는 것을 보면 아직도 신비롭다. 
 베드에 가서 보니 아직 고등학생의 모습을 벗지 못한 소년이다. 키와 덩치 모두 왜소하고 귀걸이도 하고 있으며 머리는 나름 신경쓴 것 같다. 좀 놀았을 것 같은 외양이다. 그 옆에는 엄마로 추정되는 보호자가 부끄러움인지 걱정인지 잘 판단되지 않는 상기된 얼굴로 말 없이 환자를 지켜보고 있다. 약을 주입 후 환자 의식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후 정복을 시작한다. 외상성 탈구라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너무 안들어간다. 두 건장한 남자가 오분 정도 땀을 뻘뻘 흘리며 골반과 다리를 잡고 당기고 있는데 환자가 점점 의식이 돌아오고 고통에 몸부림 치며 소리를 지른다.
'야! 아프다고! 야! 하지마! 아 xx 아프다고!'
 순간 인터넷에서 본 한 사진이 떠올랐다. 수술방 테이블 위에는 총에 맞은 것 처럼 보이는 KKK단원이 누워있고 흑인 의사와 간호사가 긴장된 표정으로 지혈하며 수술을 준비하던 사진이다. 
 


 이번에는 약물을 한 앰플을 정맥주사 하고 다시 한번 정복을 시작한다. 땀을 뻘뻘 흘리며 정복을 하던 도중, 환자의 바지가 따뜻하게 젖어오는 것이 느껴진다. 약에 취해 잠이 들었어도 통증은 느끼나보다. 
'에이.....' 하며 재빠르게 장갑 착용하고 다시 정복한다.
그래도 잘 되지 않는다. 정형외과 선생님은 조금 이따가 다른 이년차 선생님과 같이 한번 더 해보겠다고 하신다.  가운과 장갑을 정리하고 가려는 와중에 경찰관 5명 정도가 환자 주변으로 온다.
'환자분 사고 당시 음주측정기를 입에 대 보았는데 빨간불이 들어왔어요. 그러면 어떻게 되었든 술이 입에 있었다는 거거든요? 지금 환자가 불어서 음주측정할 상태는 아닌 것 같고, 그럼 채혈해야 하는데 채혈해도 될까요?' 
'아니요'
'왜죠?'
'잘못될 수 있잖아요'
 
 여기까지만 듣고 나는 베드 옆에서 나와 다른 경찰관에게 가서 물어보았다. 
 '강제로 채혈하면 안되요? 아니면 병원에서 피검사 나갈때 한번에 돌리면 되는데 꼭 동의를 얻어야해요?' 
'끝까지 거부할 경우에 영장 받아서 강제 채혈할 수 있지만 먼저 동의를 받아야합니다..'

 나는 의사다. 의사는 환자가 치료를 요구했을 경우 거부할 수 없으며 어떤 환자라던 최선의 치료를 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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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25 17:58
수정 아이콘
인턴 선생님 수고하십니다.
혹시 응급의학과를 지망하게 되신다면 저런 상황을 1주일에 몇 번은 보시게 될 겁니다 (...)
첫 사연을 보니 어제도 외국인 노동자 퇴원시켜 달라던 업주랑 한바탕 했던 것이 생각나네요
저 역시 저년차 시절 주취자들이 너무나도 싫었습니다.
마스크는 꼭 쓰시길. N95까진 아니더라도 surgical/dental mask 정도 쓰시고 universal precaution만 잘 지키셔도 됩니다.
채혈을 비롯한 법적 개입에 대해서는, 반드시 레지던트나 교수님과 상담하세요. 그게 N95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거든요.

(혹시 이미 던트나 전문의가 되셨다면 이런 말이 다 의미가 없겠지만 뭐 그래도 힘내시라고 위로 드립니다...)
Artificial
16/03/25 18:10
수정 아이콘
아이디로 찾아서 전편도 읽고 왔습니다.
좋은 글, 깊은 경험 공유 감사합니다.
16/03/25 18:59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추천하고 갑니다.
아살모
16/03/25 19:02
수정 아이콘
담담하면서도 절절하게 다가오는 글이네요.
의사분들은 세상의 모든 인생군상을 다 겪으시는듯합니다.
무당벌레
16/03/25 20:10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추천하고 갑니다.(2)
16/03/25 20:51
수정 아이콘
바이탈 관련 내용은 항상 절절하게 하는 것 같아요
카우카우파이넌스
16/03/25 22:56
수정 아이콘
음주운전죄는 음주수치가 엄격한 증명방법에 의하여 입증되야 하는데
특히 환자가 병원으로 실려온 상황에서 이뤄진 강제채혈에 관해서 최근 법원이 위법수집증거로 판단해버리는 경우가 많아서
수사과정에서 환자의 동의를 받거나, 압수수색검증영장 또는 감정처분허가장을 받는 등의 절차를 엄격하게 준수할 필요성이 높아졌습니다.
기껏 채혈을 했는데 그 과정이 위법하다고 평가되면 그에 기초한 감정결과도 전부 위법수집증거가 되버리기 때문에
결국 피고인의 음주수치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는 결론이 불가피하므로, 음주운전을 무죄라고 처리해야 하니까요.
16/03/26 00:34
수정 아이콘
첫번째 글, 두번째 글 모두 잘 읽었습니다.
첫번째 사연은 참.. 뭐라 말하기 어렵고 안타깝습니다 진짜.

저도 얼마전에 어깨가 탈구되서 응급실 갔었는데 주사맞고 스르르 흐려지다가 바로 잘보이더라구요. 혼자가서 시간이 얼마나 된지도 모르고 감이 없어서 마취가 안된것같다고 간호사님께 이야기하니 이미 다 뼈를 맞췄다고... 마취주사가 이런거구나 하고 엄청 신기해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연필깎이
16/03/26 01:23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네잎클로버MD
16/03/26 11:33
수정 아이콘
인턴선생 글 잘 썼네요:)
인턴으로 응급실 돌 때 기억이 아련하네요.
레지던트로 응급실은 또 다른 느낌일테니 그때도 좋은 글 부탁합니다.

근데 ct 찍을 때 납복 안입었어요?;;
아케미
16/03/26 20:25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Pathetique
16/03/27 00:14
수정 아이콘
추석 연휴.. 변비 환자분들이 명절을 맞아 과식하여 finger enema(똥이 항문 근처에서 너무 딱딱하게 굳어 손가락으로 파내는 것) 만 4명을 했던 그 날의 기억이 아스라히 지나갑니다... 나중에는 나름 부드러운 똥이 만져지는 순간의 카타르시스가 있더군요... 어느 선까진 제가 파드리고 나머지는 환자분이 알아서 내보내십니다... 이게 기가 막힌게 딱딱한 부분을 다 제거하고 나면 환자분들이 먼저 아시더군요. "선생님! 이제 제가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모든 번뇌가 사라지셨는지 다른 환자들 때문에 뛰어다니는 저를 억지로 붙잡고 "선생님! 감사합니다!"라고 해주셨던 아주머니 분이 기억납니다. 살면서 그토록 고마워하는 눈빛을 받아 본 적이 없었어요. 물론 인턴으로 응급실 다시 돌라면 절대 안합니다. 선생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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