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PGR에 가입한 지 햇수로 14년이 되어가는 한 아재 회원입니다.

글은 거의 쓰지 않고, 눈팅과 댓글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그런 사람입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 이곳에 머무는 건 물론 스타크래프트 팬의 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PGR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와 양질의 글에 여전히 빠져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구요.

스스로는 유게 70%, 자게 30%의 일반적인(?) PGR 라이프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최근 PGR의 분위기는 예전같지 않다는 생각에 몇자 적어보려고 합니다.



이야기를 쓰기 전에 스스로 짚어봐야 할 것은 그동안 제가 느껴온 PGR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하는 점입니다.
자유게시판에 한정해 생각해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전문적인 양질의 정보글 및 연재글들
2. 첨예한 논쟁거리를 대하는 논거와 논리가 정리된 의견들
3. 철저한 토론과 논쟁(이라고 쓰고 존대말 속에 숨긴 감정적인 디스)이 떠오르는데요.

이것들을 관통하는 기본 베이스는 '예의' 였다고 생각합니다.
덕분에 일부에서 '선비' 소리까지 듣지만 이런 PGR식 '예의'의 근간에는 '자정작용' 과 '상호존중'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기에 PGR의 글쓰기 버튼은 여전히 무겁다는 걸 잘 알지만,
반대로 PGR의 댓글은 점점 가벼워지지 않나 싶네요.


이런 문제가 심각하게 드러나는 몇몇 주제를 짚어보자면
진영논리에 빠져버린 정치적 편향성과 이젠 버스터콜이 돼버린 유명인 비방 같은게 떠오릅니다.

PGR의 전통적인 핫 토픽(이라고 쓰고 누군가는 팝콘이라고 읽는)이라면
'동성애', '기독교', '여당', '한의학', '여성문제' 등등이 있습니다.  최근이라면 '박유천' 이나 '김성근'정도가 되겠네요.

그런데 이상한 건 저렇게 늘어만 놨을 뿐인데 PGR의 댓글 여론의 추이는 이미 보이는 듯 합니다.
몇몇의 분이 소수의견을 내실 거고, 그 밑에는 한 두줄의 비아냥 혹은 수없는 리플의 향연이 펼쳐지겠죠.
저도 최근 몇몇 댓글을 달다가 의도치 않게 장판파를 시전하는 모양새를 보이게 됐었는데요.
제 개인적 성향과 무관하게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자가 되고, 김성근의 실더, 류현진의 빠가 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PGR은 몇몇 인터넷 커뮤니티 중 하나일 뿐이고, 인터넷 여론의 큰 흐름에 따라 좌지우지되곤 했지만,
이 곳이 다른 곳과 달랐던 건, 자신의 논거를 갖추고 꾸준히 소수의견을 펼치는 회원분들이 있었고,
그런 분들이 소수라고 하더라도 비추 버튼을 먹고 내려가거나, 다수의 여론에 의해 일방적으로 몰리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최근의 몇몇 댓글을 보면 소위 여론재판, 다수에 의한 비방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는 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 이제 위에 제가 한 PGR의 정체성이란 말을 다시 적어보려고 합니다.
솔직해집시다. PGR의 정체성은 비교적 야당 성향이고, 남성 편향적이고, 지성인으로 보이고 싶은 젊은 사람들이 주 계층입니다.
그렇기에 꼰대들이 싫고, 여당이 꼴보기 싫으며, 페미니즘도 왠지 싫으며, 특정인을 조리돌림 하는게 여전히 재밌지만,
그런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기 전에, 반대편의 의견도 경청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제가 꿈꾸는 PGR은 딱히 이상적인 사이트는 아닙니다.
다만, 새누리당 지지자도 편하게 지지글을 올릴수 있고, '명리학' 같은 글도 단순히 비과학이라고 냉소받지 않고,
기독교를 믿는 분들도 불편해하지 않으며, 소수의 의견도 무조건적으로 비하당하지 않는 그런 곳입니다.

끝으로 몇년전 유행하던 댓글을 적으면서 끝마치려 합니다.

'존중입니다. 취향해주시죠'



p.s 위에서 말한 소수의견은 소위 '어그로' 회원에 대한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