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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8/11 01:35:48
Name 이치죠 호타루
Subject [일반] 바르바로사 작전 (2) - 북부 집단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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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dn.pgr21.com./?b=8&n=66761 1941년까지의 소련 - 독소전쟁 초기 이들이 대패한 이유
https://cdn.pgr21.com./?b=8&n=66854 바르바로사 작전 (1) - 작전 수립 과정



북부 집단군에 관한 이야기를 찾는 것은 (아무리 독일측 자료가 넘쳐난다고 해도) 기실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이라고는 합니다만, 중부 집단군이나 남부 집단군보다 적의 저항이라던지 양측의 병력 규모가 상대적으로 덜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대규모의 전투가 벌어진 기록은 개괄서에는 잘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이죠. 예컨대 "전쟁이 발발했다 → 독일군이 기습했다 → ?????? → 레닌그라드 도달". 이런 식입니다. 중간과정이 싹 빠진 게죠. 쾨니히스베르크(現 러시아 칼리닌그라드)부터 레닌그라드(現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직선거리만 800 km 가까이 됩니다. 그 사이에 "아무런 일도 없었다" 혹은 "특기할 만한 일이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는 건 문자 그대로 어불성설이죠. 그래서 그런지 영문 위키피디아는 물론이고 독일어나 러시아 어의 위키피디아도 (그놈의 언어로 인한 접근성 문제가 제일 크긴 합니다만) 뭔가 속시원하게, 모든 것을 일목요연하게 쫙 보여주지는 못한다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애초에 규모 자체가 집단군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북부 집단군의 목표였던 레닌그라드는 독일로서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목표였습니다. 아무리 듣보 신세를 면치 못한다고 해도 북부 집단군의 중요성이 제로인 건 아니란 말이죠.

오늘은 1941년 6월 22일부터 1941년 7월 초까지, 바르바로사 작전 초기 첫 보름간 동안 북부 집단군의 움직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공격측이 독일군이었던 만큼 초점은 독일군을 따라갑니다. 원래는 바르바로사 작전 종료일까지 죄다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글이 어째 또 밑도끝도없이 길어지는 게 탈린 전투니 레닌그라드 공방전 개시니 하는 건 다음 글로 미뤄야겠더군요. 어째 일이 점점 커지네요... 하하...;



작전개시 당일의 전투서열

독일군 북부 집단군 (Heeresgruppe Nord) : 집단군 총사령관 빌헬름 리터 폰 레프 원수
 제18야전군 : 사령관 게오로그 폰 퀴흘러 상급대장(4성 장군에 상응)
  야전군 직속 1개 보병사단, 예하 3개 군단(6개 보병사단)
 제4기갑집단군 : 사령관 에리히 회프너 상급대장
  제41기갑군단 : 사령관 게오르그 한스 라인하르트 기갑대장(3성 장군에 상응)
   예하 1개 보병사단, 1개 차량화보병사단, 2개 기갑사단 : 6기갑사단 사령관 빌헬름 리터 폰 토마 중장(2성 장군에 상응)
  제56기갑군단 : 사령관 에리히 폰 만슈타인 보병대장
   예하 1개 보병사단, 1개 차량화보병사단, 1개 기갑사단, 1개 SS기갑사단(토텐코프) : SS사단 사령관 테오도어 아이케 SS기갑대장
 제16야전군 : 사령관 에른스트 부슈 상급대장
  예하 3개 군단(7개 보병사단), 1개 예비 보병사단
 예비 2개 군단(4개 보병사단, 1개 SS 경찰사단), 3개 후방 지원사단
 항공지원 : 제1항공군 (사령관 알프레드 켈러 상급대장)

소련군 북서 전선군(Северо-Западный фронт) : 전선군 총사령관 표도르 이소도로비치 쿠즈네초프 상장(3성 장군에 상응)
 제8군 : 사령관 표토르 페트로비치 소벤니코프 중장(2성 장군에 상응)
  예하 2개 소총군단(5개 소총사단), 1개 기계화군단(1개 차량화소총사단, 2개 전차사단)
 제27군 : 사령관 니콜라이 에라스토비치 베르자린 중장
  예하 2개 소총군단(4개 소총사단), 직속 2개 소총사단
 제11군 : 사령관 V. I. 모로소프 중장
  예하 2개 소총군단(5개 소총사단), 1개 기계화군단(1개 차량화소총사단, 2개 전차사단), 직속 3개 소총사단
 항공지원 : 직속 1개 공수사단, 6개 항공사단

독일군의 전투서열은 그나마 좀 알아볼 만한데, 소련군 전투 서열은 그야말로... 어휴. 심지어 독일어 위키피디아와 영문 위키피디아의 서술이 엇갈리고(이 글에서는 독일어 위키피디아 쪽의 자료를 따랐습니다), 러시아 어 위키피디아는 아예 군단 이하 사단의 당시 현황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분류한 문서가 없습니다. 대략적인 느낌은 이렇다- 정도로 알아두시면 되겠네요.

소련 측에는 북서 전선군 북쪽으로 북부 전선군이 있기는 했습니다만, 이들은 겨울전쟁(소련-핀란드 전쟁)에 이은 계속전쟁(핀란드가 독일과 동맹을 맺고 참전합니다)으로 인해서 핀란드군에게 발목이 제대로 묶여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 좁은 북서 지역에서만 양측 합계 50개가 넘는 엄청난 수의 사단들이 대격돌을 벌였는데요, 주 무대는 발트 해 연안의 3국인 에스토니아 - 라트비아 - 리투아니아였습니다. 단, 현재 국경선을 놓고 보면 리투아니아의 남동부는 중부 집단군 담당이었는데, 전쟁 직전에는 빌노(Wilno)라는 이름으로 폴란드 아래 있었습니다(실은 이건 폴란드가 리투아니아 독립 과정에서 뒤통수를 때린 것었습니다만).

굵은 글씨로 표시해 두었는데, 2차 세계대전을 통틀어 최고의 명장 중 한 명인 에리히 폰 만슈타인이 바로 이 때 북부 집단군에 있었습니다.



라세이니아이 전투 (Battle of Raseiniai)

남부 리투아니아에서 벌어진 이 전투는 독소전쟁에서 가장 결판이 먼저 난 전차전입니다. 그리고 초장부터 상당 규모로 벌어진 전차전이기도 했죠(단, 순수 전차 대 전차라기보다는 전차 + 항공 vs 전차 쪽에 가깝기는 하네요). 의외로 소련군이 그리 굼뜨진 않았던 건지, 아니면 바르바로사 작전 개시 전날에 스탈린이 경계명령을 내린 게 먹힌 건지 하여간 기습당한 것치고는 소련군의 움직임이 빠르기는 했습니다. 용케도 당일 오전에 반격명령이 개시된 거죠. 프랑스군은 명령 하달하는 데만 하루는 걸렸는데...

늘 이야기하지만 북부 집단군에게 있어서 최종 목표는 레닌그라드였는데, 이 레닌그라드까지 진군하기 위해서는 두 번의 도하작전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첫 번째 강은 현 러시아 칼리닌그라드 주(당시 쾨니히스베르크, 즉 동프로이센)와 리투아니아 사이에 흐르는 강인 네만 강(Neman)이었고, 두 번째 강은 라트비아를 가로지르는 드비나 강(Dvina, 現 다우가바, Daugava)이었죠. 도하 작전이라는 것은 늘 골치아픈 일입니다. 실제로 서부 전선에서 스당 돌파시도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진 것들 중 하나가 이 도하 문제였는데, 동부 전선이라고 강 위를 걸을 수 있는 건 아닐 테니 문제는 어느 정도 똑같은 셈이었죠.

그래서 다리를 파괴/사수하는 게 지엽적인 항공작전에서 키포인트가 되고는 했는데... 독일군이 시작부터 대규모 항공군을 띄운 것도 띄운 겁니다만 특히 비행장을 집중적으로 노리고 타격한 탓에, 전 전선에서 소련군은 6월 22일 오전에만 무려 1,200대의 항공기를 잃어야 했습니다(《독소전쟁사》, 데이비드 글랜츠, p. 79). 때문에 전쟁 초기 며칠간 제공권을 잃은 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그러다 보니 첫 도하는 어이없을 정도로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특히나 경악스러운 것은 폰 만슈타인의 진격 속도였는데, 단 하루 만에 무려 70 km를 진군해 버립니다. 적의 저항이 없는 것도 아니었는데도 말이죠. 이에 대해서는 후술.

그러나 소련군이 아무리 전쟁 준비 상황 자체가 눈 뜨고 못 봐줄 상태였다고 해도, 눈 뜨고 당하고만 있을 소련군은 또 아니었습니다. 북서 전선군의 사령관이었던 쿠즈네초프는 제3기계화군단(제11군 소속)과 제12기계화군단(제8군 소속)을 뒤로 물리면서 독일의 제4기갑군단을 상대로 적의 옆구리를 치는 계획을 구상했고, 그 반격지점으로 선택되어 집결하던 곳이 바로 라세이니아이였던 것이죠.

이 전투가 벌어진 당일이 아니기는 했습니다만, 1941년 6월 22일 개전 직전의 독일 북부 집단군과 소련 북서 전선군의 기갑 전력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독일군
 제41기갑군단
  제1기갑사단 예하 145대 (2호 전차 43대, 3호 전차 71대, 4호 전차 20대, 지휘차량 11대)
  제6기갑사단 예하 258대 (2호 전차 53대, 3호 전차 167대, 4호 전차 30대, 지휘차량 15대)
 제56기갑군단
  제8기갑사단 예하 212대 (2호 전차 49대, 체코산 38(t) 118대, 4호 전차 30대, 지휘차량 15대)

소련군
 제12기계화군단
  제23전차사단 예하 381대 (이 중 T-26 362대)
  제28전차사단 예하 314대 (이 중 BT 236대, T-26 69대)
  제202차량화소총사단 예하 105대 (이 중 T-26 66대)
 제3기계화군단
  제2전차사단 예하 252대 (이 중 KV-1 32대, KV-2 19대, T-28 27대, BT-7 116대, T-26 19대)
  제5전차사단 예하 268대 (T-34 50대, T-28 30대, BT-7 170대, T-26 18대)
  제84차량화소총사단 예하 149대 (BT-7 145대, T-26 4대)

물론 전선의 규모가 규모였던지라 이 많은 전차들이 죄다 뒤얽힌 건 아니지만, 상당수의 전차들이 라세이니아이 인근에 집결되어 있었습니다. 독일의 제6기갑사단과 소련의 제12기계화군단이 얽혔는데, 전술의 미비도 미비지만 결정적으로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당한 탓에 개활지의 소련군 전차는 융커스 사의 Ju 88 중폭격기의 아주 쉬운 먹이감이 될 뿐이었죠. 이 때문에 전투 당시 전력차는 세 배 가까이 났는데도 불구하고(독일군 245대 / 소련군 749대) 독일군의 손실은 경미했고, 외려 소련 전차사단의 전력의 90% 이상이 날아가는 - 손실만 704대 - 대참사가 벌어졌습니다. 기갑 전력차가 크기는 했는데, 독일군은 최전선에 있던 전력은 꽤나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던 터라(《제2차 세계대전 : 탐욕의 끝, 사상 최대의 전쟁》) 그 점은 그렇게까지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도로 위의 괴물

다만... 완전히 소련군이 눈 뜨고 '개박살'이 났던 건 아니었던 게, 바로 여기에서 그 유명한 KV-2 쇼크의 한 장면이 나오거든요. 여기서는 《German Tactics on the Eastern Front》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도록 합시다. 책이 좀 오래 되기는 했군요...;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은 2013년도 개정판인데, 이거 초판이 미 육군소장 오를란도 와드(Orlando Ward)가 1953년...;;;에 쓴 책이라는군요. 그러니 대략적인 흐름이 이랬다 정도로 생각하시는 게 좋을 것 같기는 합니다. 저는 상세하게 이야기를 풀겠지만.

네만 강의 지류인 드비사 강(Dubysa)이라고 있는데, 이 강을 건너기 위해 제6기갑사단이 진군하고 있었습니다만, 웬 KV-2 한 대가 가는 길목에 대고 대놓고 탁 막아버린 거죠. 하필이면 이게 교량 방면으로 향하는 유일한 보급선이었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러시아는 프랑스나 독일과는 달리 사회 기반 시설, 소위 말하는 인프라가 그야말로 형편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우회로 같은 생각을 하기가 어려웠던 거죠. 우회 생각을 안 한 건 아닌데, 이게 죄다 진창으로 빠져버린 터라... 한 번 진창에 빠진 병력은 뭐 말할 것도 없이 인근에 있던 소련군의 먹잇감이 될 뿐이었죠.

게다가 당시 독일의 인근 사령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아무래도 인지하지 못한 것 같은데, 그 다음날 12대의 보급트럭을 보내려고 시도하다가 이 단 한 대의 KV-2에게 죄다 박살나고 맙니다. 이에 일이 점점 심각해지자 다음날 독일군은 5.0 cm 대전차포를 동원하는데, 제법 위장도 잘 하고 사격 거리도 600 야드(약 550 m)였던데다가 명중까지 했는데도, 아 글쎄 이 KV-2가 터질 생각을 안 하는 겁니다. 외려 여덟 발이나 쐈기 때문에 결국 위치가 노출되어서 76 mm 포에 얻어맞고 문자 그대로 "조용해졌죠". 그러자 독일의 입장에서 그야말로 전장의 신이라 할 만했던 8.8 cm 대공포, 일명 아흐트아흐트까지 동원되었지만 이들조차도 KV-2를 박살내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야말로 빡칠 대로 빡치기도 했고 선봉대의 보급물자가 다 떨어져 가던 판이라 절박했던 독일군은 공병 중 지원자를 받아서 아예 KV 전차에 폭발물을 붙이고 튀는 작전까지 동원했지만, 이것마저도 실패합니다. 이도 저도 방법이 없자 결국 항공동원을 요청하지만 하필이면 공군은 이 때 무진장 바빴던 터라 이런 곳에 전력을 나눌 여유 따위는 없었고, 짜증이 날 대로 난 독일군은 전차 몇 대를 미끼로 던져주면서 그 틈에 8.8 cm 아흐트아흐트가 전차 뒤편으로 우회해서 사격하는 방법을 쓰기로 했습니다. 이 방법은 결국 먹히긴 먹혔습니다만, 다섯 발을 쐈는데 죄다 명중하고 KV가 크게 박살나긴 했지만 불이 붙지는 않았다는 게 더욱 황당할 노릇이었죠.

나중에 독일군이 잠잠해진 전차에 다가가서 상태를 살펴보니, 공병부대의 거의 반쯤 자살돌격성 폭탄 설치 및 발포의 결과는 단지 포탑과 궤도가 약간의 손상을 입은 것뿐이었고, 그 수많은 포들 중에서 전차의 장갑을 뚫어낸 것은 아흐트아흐트 단 두 발이였습니다. 그나마도 조용해졌다 싶어서 다가갔더니 여전히 포탑이 살아 있던 터라 이게 회전하기 시작하니까 황급히 구멍 뚫린 곳으로 수류탄을 던져 내부 승무원을 폭사시키고서야 마침내 잠잠해졌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이틀. 그러니까, 단 한 대의 KV-2 전차가 독일군의 도하 및 보급을 무려 이틀이나 늦춘 것이죠. 이걸 《모에! 전차학교》 제3권에서는 한 컷으로 정리하기를...

"아 그게, KV-II, 진짜로 딴딴한 녀석이라." - 힐데가르트 카일



드비나 강을 둘러싸고

그러나 아무리 KV 쇼크가 터졌기로소니 한 대의 전차로 진군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게다가 독일 항공군의 대공습으로 90%의 기갑 전력이 날아가자 제아무리 KV를 다수 보유한 소련군이라도 후퇴할 수밖에 없었죠. 앞서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만 독일군이 레닌그라드로 가기 위해서는 두 강을 건너야 한다고 했고, 첫 번째 강은 이미 돌파당했으니 소련군 입장에서는 두 번째 강(드비나 강)에서 반격을 기도해야 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소련군은 제8군은 리가 방면으로, 제11군은 빌뉴스 방면으로 군을 물리면서 북서 전선군 소속 제27군 및 스타브카(Stavka, 소련군 최고사령부. 이거 약자가 아닙니다. STAVKA로 쓰면 안 된다는 이야기죠) 소속 제22군과 조우, 반격을 기도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스타브카 직속으로 편성된 제21기계화군단을 보내서 나름대로 독일 전차들을 상대하고자 했죠.

아 근데... 6월 26일에 강에 먼저 도달한 것은 어처구니없게도 폰 만슈타인이 지휘하던 제56기갑군단이었습니다. 더구나 이게 무슨 뭐 어디 캅카스 정상에 깃발 꽂았다던지 모스크바 첨탑을 쌍안경으로 구경했다던지 하는 설레발 수준이 아니라, 그야말로 완벽하게 다리를 장악해버리고 나머지 독일군의 도하를 기다리느라 진격을 멈춘 것이었다는 게 문제였죠. 어중이떠중이 수준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제대로 된 사단에 제대로 된 일격을 제대로 얻어맞은 격이었던 거죠. 이 때문에 도하를 저지하면서 최대한 지연전을 펼치겠다는 스타브카의 계획은 삽시간에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이게, 쾨니히스베르크(現 칼리닌그라드) 쪽의 現 러시아 - 리투아니아 국경부터 드비나 강까지 직선거리만 280 km 가량이 되고, 실제 사단이 이동한 거리는 대략 320 km 정도라는데(이게 출처가 불분명하긴 합니다) 어쨌든 적게 잡아도 하루에 최소 70 km는 이동한 격이거든요. 말이 70 km지, 아무리 기갑군단이라고 해도 어디 이들이 전차로만 움직인다고 장땡입니까? 기름 넣어야지, 보급 넣어야지, 만나는 적들 상대해 가면서 앞으로 헤쳐나가야지, 소련의 인프라는 엉망이지... 하루에 70 km(그나마 이것도 최소한으로 잡은 것)라는 이동거리는 고대에 비해 크게 복잡해진 현대의 군에 있어서는 정말 어려운 것이거든요. 그걸 하루도 아니고 무려 나흘 동안이나 진격 속도를 유지한 겁니다. 어이가 없다 못해 턱이 빠질 수준이죠. 하긴, 그러고 보니 폰 만슈타인의 자서전 제8장이 바로 이 시기의 자신을 다루고 있는데, 챕터 제목이 아주 볼만합니다... "Panzer Drive".

여하간 결국 스타브카는 그나마 후퇴 중이었던 제8군과 제11군을 레닌그라드까지 쭉 물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후퇴가 다소 특이한 게... 다른 전선군과 비교해 보면 그렇습니다. 중부 전선군과 남부 전선군 일대에서는 문자 그대로 후퇴불가 현지사수 방침이 내려지면서 어마어마한 수의 소련군이 포위 섬멸당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예컨대 키예프에서만 무려 67만 명이 문자 그대로 "지워졌죠". 거 왜 태평양 전쟁에서 제대로 피를 보는 바람에 체스터 니미츠가 성심성의껏 유족들에게 편지를 써서 전달해야 했던 그 타라와 전투 있잖습니까? 그거 사상자가 미군 측만 따져서 3천 8백 명입니다. 적지는 않았습니다만(그리고 이걸 가지고 고작이라고 하면 전체주의를 상대로 피를 흘리며 죽어간 분들에게 엄청난 실례죠), 단 한 번의 키예프 전투에서 "소멸되어 버린" 사람의 수는 두 자리나 다른 수였습니다. 이어 민스크, 스몰렌스크 등지에서 줄줄이 박살나면서 병력 손실은 이미 2백만을 돌파해 버렸죠.

그런 어마어마한 병력 손실은 무리하게 방어하려다가 박살난 쪽에 가까운데(단, 이렇게 하지 않았으면 소련군이 그야말로 모랄빵 상태에 빠져서 더욱 손쉽게 무너졌으리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며, 저도 거기에 일정 부분 동의하는 바입니다), 북서부 전선군은 그렇지 않았다는 게 특이하죠. 분명히 스탈린이 냅다 화를 내기는 했겠지만(실제로 이 시점, 7월 3일에 이 북서 전선군의 대패의 책임을 물어 쿠즈네초프가 해임되고, 사령관이 표트르 페트로비치 소벤니코프 소장 - 1성 장군에 상응, 우리로 치면 준장이 3군사령관을 맡은 격 - 으로 교체됩니다) 이 후퇴로 북서 전선군은 병력의 일부나마 보존할 수 있었고, 최대한 북부 집단군의 진격을 늦추는 데 어느 정도는 성공할 수 있었으며, 그 귀중한 시간을 벌어 레닌그라드의 방어를 강화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러니까 만일 여기에서 북서 전선군이 죄다 포위, 섬멸당했다면 가뜩이나 기적적으로 버텨낸 레닌그라드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었을지는 큰 의문이 드는 거죠. 그래서 (라세이니아이 이후 별반 큰 전투 없이 죽죽 밀려나갔음에도 불구하고) 후퇴가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구요.

다만 이건 어쨌든 결과론이고... 어쨌거나 당시 상황으로서는 드비나 강을 지키지 못한 건 못한 거라, 결국 소련군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제공권 등의 문제로 개활지에서 싸울 수는 없던 노릇이라 별수없이 한참을 쭉 밀려나야 했습니다.



당시 독일군의 진군입니다. 출처 영문 위키피디아.

이 뒤의 이야기는 소련군의 레닌그라드 전선 방어 계획으로 이어집니다.



자료출처

《독소전쟁사》, 데이비드 글랜츠
《제2차 세계대전 : 탐욕의 끝, 사상 최대의 전쟁》, 폴 콜리어 외
《German Tactics on the Eastern Front》, Edited by Bob Carruthers
《모에! 전차학교》 3권, 타무라 나오야, 장민성 역
https://de.wikipedia.org/wiki/Schematische_Kriegsgliederung_der_Wehrmacht_am_22._Juni_1941#Heeresgruppe_Nord - 북부 집단군 전투서열
https://de.wikipedia.org/wiki/Schematische_Kriegsgliederung_der_Roten_Armee_am_22._Juni_1941#Nordwestfront - 북서 전선군 전투서열
https://ru.wikipedia.org/wiki/%D0%A0%D0%B0%D1%81%D1%81%D1%82%D0%B0%D0%BD%D0%BE%D0%B2%D0%BA%D0%B0_%D1%81%D0%B8%D0%BB_%D0%B2_%D0%BE%D0%BF%D0%B5%D1%80%D0%B0%D1%86%D0%B8%D0%B8_%D0%91%D0%B0%D1%80%D0%B1%D0%B0%D1%80%D0%BE%D1%81%D1%81%D0%B0 - 북서 전선군 전투서열
https://ru.wikipedia.org/wiki/%D0%A1%D0%B5%D0%B2%D0%B5%D1%80%D0%BE-%D0%97%D0%B0%D0%BF%D0%B0%D0%B4%D0%BD%D1%8B%D0%B9_%D1%84%D1%80%D0%BE%D0%BD%D1%82_(%D0%92%D0%B5%D0%BB%D0%B8%D0%BA%D0%B0%D1%8F_%D0%9E%D1%82%D0%B5%D1%87%D0%B5%D1%81%D1%82%D0%B2%D0%B5%D0%BD%D0%BD%D0%B0%D1%8F_%D0%B2%D0%BE%D0%B9%D0%BD%D0%B0) - 북서 전선군 역대 사령관 관련
https://en.wikipedia.org/wiki/Battle_of_Raseiniai - 라세이니아이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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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11 01:38
수정 아이콘
쓰다 보면 끝도 없이 길어지는 건 독자에게 행복... 아니 당연한거죠 (...) 그것도 이 말도 안되는 규모의 전쟁이니
잘 읽었습니다 '-'
이치죠 호타루
16/08/11 01:43
수정 아이콘
원래 진짜 가볍게 세 번의 글 정도면 충분하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프란츠 할더의 심정을 좀 알 것 같더군요.
-안군-
16/08/11 17:17
수정 아이콘
유경험자께서 이리 말씀하시니 신뢰도가!!
16/08/13 18:59
수정 아이콘
어헣헣 ( '-');;
억울하면,테란해!
16/08/11 04:03
수정 아이콘
개그 하나....

"내 이름은 KV-2다! 나랑 생사를 겨룰 녀석은 나와라!!"

말 그대로 만인지적....
칼라미티
16/08/11 10:39
수정 아이콘
정말 잘 보고 있습니다!
간디가
16/08/11 12:40
수정 아이콘
잘 보고 있습니다.수업때 대충했던 내용들을 이렇게 다시 짚으니 느낌이 새롭네요.자주 올려주지 않으셔도 되니 연재중단만 하지 말아주세요.부탁합니다.
이치죠 호타루
16/08/11 13:43
수정 아이콘
이번에는 제대로 쫑을 내 보려고요. 늘 마무리를 못 지어서 참 짜증났는데... 예상보다 심각하게 길어진다는 문제만 빼면 그래도 해볼만할 것 같네요.
원더보이
16/08/11 13:51
수정 아이콘
와우 감사합니다. 잘 보겠습니다.
설탕가루인형형
16/08/11 14:21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꽃보다할배
16/08/11 16:00
수정 아이콘
곱씹어도 이해가 안가는게 영국만 고사작전으로 가도 미국은 전쟁 회의고 소련은 물량 안터지는 시기에 도조 히데키나 히틀러가 왜 건드렸나 싶어요 아마 독소전과 진주만 공습 안했음 미 소 추축 3세력으로 갔을것이고 우리는 지금도 천황폐하 만세 했겠지만요
이치죠 호타루
16/08/11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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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글에서 밝혔듯이...
독소전 - 유럽에서 독일을 상대할 영국의 동맹국을 찾으려는 시도를 무위로 만들어버림으로써 영국에게 빠른 협상을 강요. + 레벤스라움 건설.
태평양 전쟁 - 빠르게 미 해군을 절단내고 초장에 기습하여 잡아버림으로써 중국 및 태평양 일대에서의 일본군의 영향력 강화. + 자원 확보.

...정도라고 봐야죠. 쓰고 나서 봐도 둘 다 한참 헛짓거리 망상이지만.

그 망상을 실현하고자 했던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있던 것부터 잘못되었다고 봐야죠.
수원감자
16/08/11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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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레벤스라움을 러시아에만 건설해야 하는 건 아닐진데.

보면 볼수록 아까운 전력입니다. 가장 약하다는 북부집단군이 저 정도 전력이니, 독소전만 시작 안 했으면, 아마 독일과 미국의 냉전 시대가 열렸으리라 봅니다.

북부집단군이 북아프리카집단군이 되었다면. 북아프리카와 중동 전체가 줄초상이 났을테고, 제 아무리 미국이라 해도 3개 집단군의 독일군 전력을 고스란히 받아내기란 엄청난 부담이 되었겠죠. 물론 소련처럼 작정하고 싸우면 미국이 이기기야 하겠지만.

그렇게 독소전 하고 싶으면 하다못해 터키까지만 진출하고 시작했어도 성공했을텐데. 도무지 히틀러 판단이 이해되지가 않네요.

딱 봐도 동부전선 보다는 북아프리카가 만만한 것이 안 보이나.
이치죠 호타루
16/08/11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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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프리카는 로멜이 상부의 명령 - 방어적으로 있을 것 - 을 씹고 자기가 돌격하다가 늘어난 병참선 때문에 스스로 무너진 것 + 애초에 북아프리카 전선에 끼어드는 일 자체가 독일로서는 "돌발상황"이었던 것이 컸죠. 반면에 독소전쟁의 경우, 히틀러가 주구장창 참모들에게 (특히 프랑스 점령 이후) 러시아를 지배할 계획을 세우라고 이야기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히틀러로서는 러시아의 점령은 다 떠나서 자신의 야망과 이상(그런 걸 이상이라고 했다가는 전세계 사람들에게서 비웃음을 받을 일입니다만 어쨌든)을 실현해야 할 것 그 자체였죠. 결국 인종주의가 전략적인 안목을 가려버린 셈입니다.

레벤스라움이 러시아에 건설되어야 했던 이유는, 우크라이나의 곡창 지대 때문이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치면서 곁다리로 쳐야 할 목표에 가까웠던 셈이죠. 우크라이나에서 생산되는 엄청난 밀이 바로 "아리아 족을 위한 식량자원"이 될 것이었으니까요. 여기에 "볼셰비키 및 아시아에서 출발한 열등한 슬라브족의 위협으로부터 유럽을 구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개소리지만) 나치 당 및 히틀러 그 자신의 강령과, 공산주의를 싫어하는 군부의 찬동이 더해져 독소전쟁은 필연적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사막과 비교해 보면 그 자원적인 이점이 더욱 명백합니다. 사막은 몇백 제곱킬로미터 점령해 봐야 (군사적 및 지중해 해상의 요충지라는 점을 제외하면) 쓸모없는 땅이죠.
이쥴레이
16/08/11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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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네요. 드디어 다음은 레닌그란드인가요
토다기
16/08/11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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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퇴를 잘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들어서 후퇴를 잘 했지만 역시 공산주의식 특유의 '당에 대한 충성심'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였군요. Kv-2는 장판파의 장비였습니다... 그러나 그냥 많이 만든건 t-32네요. 주력으로 삼지는 않았나요?
이치죠 호타루
16/08/1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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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2를 주력으로 삼기에는, 이놈이 지나칠 정도로 느려터진 게 문제였습니다. 게다가 T-34가 KV 못지않은 화력을 갖추고, 대량양산이 가능했던 소련 측에서 T-34를 양산하기로 결정하면서 밀려난 거죠. 하지만 무식할 정도의 장갑과 티거조차 안심할 수 없게 만드는 전차의 필요성은 소련도 충분했고, 그 결과가 KV 시리즈의 후계인 IS 전차 시리즈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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