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객관적으로 보면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국부‘라 부르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의 초대 대통령이기도 하지만, 헌법에 따라 대한민국의 적통을 상해 임시정부로 놓는다 해도 초대 대통령은 이승만이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이승만이,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탄핵당한 대통령이라는 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혹은 이승만을 국부로 추대하려는, 입만 열면 자유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일부 세력은 이 사실을 절대 언급하지 않습니다). 아마 박근혜가 탄핵당했을 2016년에 몇몇 언론에서 쓴 기사 외에 이 사건을 다루는 곳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 이승만의 탄핵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다룬 기사는 2016년 KBS와 2019년 내일신문에서 쓴 것입니다.

[취재K 대한민국 첫 탄핵대통령은 이승만…다음은?] — KBS, 2016
https://news.kbs.co.kr/mobile/news/view.do?ncd=3389227
[임시의정원, 헌법 거스른 이승만을 헌법절차로 끌어내리다] — 내일신문, 2019
http://m.naeil.com/m_news_view.php?id_art=306101

-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이승만은 1919년 상해로 통합된 임정에서 초대 대통령이 되었고, 대통령이 된 그해 미국에서 한반도의 국제연맹 위임통치를 제안합니다. 그리고 1925년이 되는 7년차까지 상해에 반년도 머무르지 않습니다.
- 이승만을 끌어내리려는 시도는 1920년부터 이미 시작되었지만, 이승만은 상해의 자기 세력을 이용해 그 시도를 집요하게 방해합니다(그 와중에도 상해에는 징하게 가지 않습니다). 탄핵안은 폐기됩니다. 내각불신임이 한번 통과되어 무정부 상태에 이른 적도 있지만 그 때는 대안이 없었고 혼란 속에 다시 이승만이 권한을 잡습니다.
- 결국 1924년 임정은 전략을 바꿉니다. 대통령이 장기간 부재일 시 ‘유고’로 판단하여 권한을 박탈시키는 법을 통과시킨 것입니다. 이 법으로 이승만의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은 다시 박탈당했고, 내각이 바뀐 뒤 그들은 이승만 탄핵을 다시 추진, ‘면직’이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 그 당시 임정이 어떤 분위기였는지 엿볼 수 있는 사료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승만의 면직을 판결한 ‘임시대통령 이승만 심판서’입니다.

[이승만은 구실을 외교에 가탁하여 職務地를 떠나서 5년간 遠洋의 한 구석에 隔在하여 난국 수습과 대업 진행에 아무런 성의도 다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허무한 사실을 제조 刊布하여 정부의 위신을 손상하고 민심을 분산케 하였음은 물론, 정부의 행정을 저해하고 국고 수입을 방해하며 의정원의 신성을 모독하여 公決을 부인하고, 심지어 정부의 행정과 재무를 방해하며 임시헌법에 의거 의정원의 선거로써 취임한 임시대통령으로서의 자기 지위에 불리한 결의인 의정원의 결의를 부인하여 漢城 조직 계통 운운함과 같음은 대한민국의 임시헌법을 근본적으로 부인하는 행위이다. 이와 같이 국정을 방해하고 국헌을 부인하는 자를 하루라도 국가 원수의 직에 둠은 대업 진행을 기약할 수 없고 국법의 신성을 보장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순국 제현이 눈을 감을 수 없는 바이며 또한 忠勇의 소망이 아니기로 주문과 같이 심판함.]

- 두 번째 사료는 2018년 발견된, 이승만 탄핵 직후의 독립신문 호외입니다(맨 앞 사진).
- 이 호외를 자세히 보면 이상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는데, ‘李承晚’ 중 유독 ‘晚’자만 제목이 아닌 본문 활자로 인쇄되어 있습니다. ’유고‘를 주된 탄핵 사유로 제시한 상태이므로, 이승만이 만에 하나 상해로 돌아오면, 그동안 그가 해온 짓을 봤을 때 탄핵사유가 해소되었다고 우길 수 있습니다. 얼른 대중에 탄핵 사실을 공표해야지, 제목 활자를 찾을 여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 어쨌든 이승만은 1925년에 임정에서 탄핵당했고, 쓸쓸히 상해를 떠났…지는 않았습니다. 여전히 상해에 오지 않았으니까요.
- 그리고 20여년 뒤 그는 다시 대통령에 오르고, 1960년 4.19로 또 다시 끌어내려집니다.
- 어떻게 보면, 1925년에 정치인들끼리의 정치와 법으로 탄핵된 이승만이 1960년 거리로 나온 인민의 행동에 의해 스스로 물러나게 된 사건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양 축을 상징하는 서사라 할 수 있습니다. 혹은 2016년 박근혜의 탄핵이 이루어진 과정은 4.19에서 보여준 한국의 민주주의가 6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4.19를 기념해야 하는 이유는, 혹은 이승만을 국부로 칭해야 한다면 그 이유는, 오늘 윤석열이 열변을 토했듯 [거짓 선동과 날조에 속지 않는 것] 때문이 아니라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