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3/06/17 01:14:44
Name aDayInTheLife
Link #1 https://blog.naver.com/supremee13/223131079832
Subject [일반] <엘리멘탈> - '스트레스 적은 이야기'의 장단점.(최대한 노스포)

저는 픽사 영화를 정말 좋아합니다. 일단 <월-E>, <업>, <토이스토리 3>을 제일 높은 위치에 놓고, 그 아래 단계에 <소울>과 <인사이드 아웃>을 놓는 편입니다. <코코>도 쓰다보니 그 근처에 놓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네요.


여튼, <엘리멘탈>이 칸 영화제에 처음 공개되고 로튼 지수가 나왔을 때는 그래서 꽤 걱정이 컸었습니다. 평가가 평범 내지 아쉬운 수준이었고, 픽사 영화 기준에서는 낮은 축에 속하는 작품이었으니까요.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저는 영화를 좋아하고, 또 픽사를 좋아하기 때문에 보고 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우화' 내지, '스트레스가 적은 이야기'의 장점과 단점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동시에, 칸 영화제 공개 당시의 평가는 좀 가혹했지 않았나? 싶기도 한 작품이네요.


영화는 꽤나 정치적입니다만 평이합니다. 그러니까, 서로 다른 원소를 서로 다른 인종에 비유하고, 주인공 앰버 가족의 서사를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로 그대로 치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만 이미 비슷한 소재였던 (개인적으로는 더 높게 평가하는) <주토피아>에 비해서 단순히 '물'과 '불'의 이야기만 다루고 있고, 갈등이 굉장히 얕다는 점이 이 영화의 갈등, 내지 이야기들이 피상적이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초반부 혹평이 가혹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에 물음표가 붙는 지점이 여기 있습니다. 저는 그러니까, 어느 시점부터 디즈니-픽사의 애니메이션들이 '스트레스 적은 이야기'를 지향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른도, 아이도 볼 수 있는 가족 영화에서 스트레스를 심하게 주는 것도 애매합니다만, 제가 좋아하는 작품들은 조금 더 깊고, 조금 더 플롯이든, 이야기든 비틀기에서 나오는 지점이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공교롭게도 이번 영화 앞에는 <업>의 후일담에 가까운 <칼의 데이트>라는 단편이 나옵니다. 생각해보면, <업>의 이야기는 확실한 악역이 있었고, 그 악역은 '탐험'이라는 미명 아래 다뤄진 개척자의 어두운 면을 상징하는 캐릭터가 있었습니다. 반면에 이번 영화 <엘리멘탈>은 꽤 괜찮은 갈등 소재를 가지고 피상적으로 소모한 느낌이 있습니다. 더 깊고 진한 이야기를 할 수 없었을까의 아쉬움이 느껴집니다.


동시에, 이야기의 방식이 굉장히 산만합니다. 영화의 시간이 길지 않은 편인데, 메인 플롯만 따지면 30분 더 줄일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건 조금 다른 측면일 수 있을 것 같은데, 기술적인 측면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그 메인 플롯 바깥에서 등장하고, 반대로 이야기 측면에서는 따로 놀거든요. 어찌보면 이게 가장 치명적인 문제일 수 있겠네요. 이야기가 보여주는 바와 들려주는 바가 어긋나 있고, 때때로 충돌합니다.


저는 갈수록 '스트레스 없는 이야기'를 지향하는 방식이 아쉽습니다. 그러니까, <코코>의 자백 생중계나, <소울>의 '오케이 원코인!' 같은 결말 방식이나.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가족 영화 지향에서 지나치게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이야기는 피해야하는 것이 맞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픽사의 이야기꾼들은 다른 이야기를 해주길 바란다고 해야할까요.


픽사의 이야기를 단순히 '우화' 내지 '어른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이야기'라고 퉁치기에는 저는 아직 픽사에게 기대하는 측면이 많은 것 같습니다. 충분히 즐거웠고, 원소들의 시각적 효과, 인상적이었던 순간들이 없던 건 아니지만, 동시에, 이렇게 좋은 소재, 이야기 거리를 이렇게 소모하는 것이 맞는가. 또는, 이야기의 흐름이 하나의 일관된 흐름이라기 보단, 여러 이야기와 상황들의 교차로 이뤄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 영화였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이 정도면 걱정보다 괜찮다는 묘한 안도와 함께, 조금의 아쉬움이 같이 느껴졌습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이경규
23/06/17 01:17
수정 아이콘
무슨 말씀인지 어느정도 공감 가네요. 어제 재밌게 보고 울긴했습니다만
aDayInTheLife
23/06/17 01:26
수정 아이콘
저도 따지자면 재밌게 보긴 했습니다. 그리고 뭐 사람도 많이 바뀌긴 했는데, 근데 픽사를 학생으로 따지면 항상 A 받던 학생이니까요. 흐흐. 내려가면 무슨 일이야? 싶고 아쉬운 느낌이라고 해야할까요.
Betty Blue 37˚2
23/06/17 15:27
수정 아이콘
디테일한 부분들이 신선하기도 했고 어떻게 이렇게 표현하지? 싶은 부분들도 꽤 있었으나 본문 말씀처럼 갈등의 깊이가 너무 얕다보니 그걸 풀어가는 부분이 너무 지루해서 결국 후반부에는 좀 졸았네요ㅠㅠ 심야 영화이기도 했지만 하하
aDayInTheLife
23/06/17 16:44
수정 아이콘
그런 이야기의 밀도나 혹은 상상력이 막판에 갈수록 떨어지는 느낌이 아쉽더라구요.ㅠㅠ
23/06/21 08:48
수정 아이콘
피상적으로는 주토피아를 기대했는데 내용물은 좀 달랐더라고요
그래도 재밌게 보고 왔습니다
aDayInTheLife
23/06/21 11:06
수정 아이콘
좀 결이 다르긴 했죠 흐흐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9017 [정치] 양자역학 알아야 푸는 대학 전공 수준 11번 문제? 어떻길래 이권 카르텔까지? [93] 사브리자나15697 23/06/19 15697 0
99015 [정치] 올해 수능부터 "킬러"문항 배제 [240] 우주전쟁19541 23/06/19 19541 0
99014 [일반] 팬이 되고 싶어요 上편 (음악에세이) [4] 두괴즐8773 23/06/19 8773 2
99013 [일반] 새벽강변 국제마라톤 대회 참석 개인적인 후기(하프 코스) [12] 기차놀이7779 23/06/19 7779 14
99011 [정치] 윤석대씨가 수자원공사 사장이 되었습니다. [48] 검사15054 23/06/19 15054 0
99010 [일반] 브루노 마스 공연보고 왔습니다~ [16] aDayInTheLife8911 23/06/19 8911 1
99009 [일반] 뉴욕타임스 6.12. 일자 기사 번역(미국은 송전선을 필요로 한다.) [4] 오후2시9282 23/06/18 9282 7
99008 [정치] [단독] 尹, ‘수능 난이도’ 논란 [이주호 엄중 경고]…‘이주호 책임론’ 확산 [92] 졸업17648 23/06/18 17648 0
99007 [정치] 구소련이 동해에 무단 투기한 방사능 폐기물 [239] 숨고르기21186 23/06/18 21186 0
99006 [일반] [팝송] 비비 렉사 새 앨범 "Bebe" [1] 김치찌개7337 23/06/18 7337 4
99005 [정치] 양수발전 [13] singularian11901 23/06/18 11901 0
99004 [일반] <익스트랙션 2> - 계승과 가능성 탐구의 연장선. [9] aDayInTheLife7254 23/06/17 7254 0
99003 [일반] 로지텍 지프로 슈퍼라이트 핫딜이 떳습니다. [46] 노블13060 23/06/17 13060 1
99002 [일반] 도둑질 고치기 (下편) (도둑질 후기) [10] 두괴즐8297 23/06/17 8297 12
99001 [일반] 생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15] 번개맞은씨앗8243 23/06/17 8243 10
99000 [일반]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OST가 나왔었네요. [13] 제가LA에있을때8563 23/06/17 8563 0
98999 [일반] 가상 KBO 대진표 짜보기 (브레인스톰편) [7] 2'o clock6583 23/06/17 6583 4
98998 [일반] (강아지 입양홍보) 보신탕집 탈출견이 산속에서 낳은 귀한 아가들의 가족을 찾습니다. [19] 델타 페라이트9524 23/06/17 9524 23
98997 [일반] <엘리멘탈> - '스트레스 적은 이야기'의 장단점.(최대한 노스포) [6] aDayInTheLife7082 23/06/17 7082 3
98996 [일반] KBS 수신료 환불받았습니다. [36] 토마스에요12357 23/06/16 12357 10
98995 [정치] BOJ 대규모 완화정책 유지…원·엔 환율 800원대 코앞 [34] 기찻길12851 23/06/16 12851 0
98994 [일반] 교회는 어떻게 돌아가는가:태신자 초청(중소교회편) 목사님 첫 만남썰 [13] SAS Tony Parker 9189 23/06/16 9189 3
98993 [일반] 일본 락덕후들의 축제! 일본 락,메탈 밴드들이 개최하는 페스티벌 모음집 [8] 요하네9433 23/06/16 9433 9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