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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22 18:09
호라즘인가 어딘가에서 몽골 사신들 수염깎아 능욕해서 쫓아냈다가 학살당하고 나라가 삭제됐는데
고려는 더 빡치는 짓을 하고도 삭제는 안됐네요 크크
21/01/22 21:34
요나라 주력군과 싸워 이겼고, 홍건적, 왜구도 수만이 넘어가는 대군이었습니다. 여요전쟁에서 요나라를 박살낸건 아예 동아시아 국제정세를 바꿀정도의 대승이었죠. 한국사에서 고려만큼 외세와 많이 싸워서 이긴건 고구려밖에 없을텐데요. 그나마 비교하려면 나당전쟁에서 이긴 신라? 그런데 신라도 토번덕을 톡톡히 봤고요. 왜란 말고는 비교 대상을 잘못정하신거같은데요?
오히려 외부 세력의 도움이 거의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반도라는 한계를 몇번이나 뛰어넘은겁니다.
21/01/22 21:56
여요전쟁 말고 고려시대 왜세 침략을 고평가할 부분이 대체 뭐가 있나요. 홍건적? 도적떼에게 수도 함락당해서 공민왕이 안동까지 도망쳤죠. 왜구의 경우 경기도 내륙 지방까지 설치는 걸 제대로 막지도 못해서 수도까지 위협당할뻔 했죠. 이걸 역량이 있는 국가라 표현한다면 황건적을 진압한 후한말 시기의 한나라도 역량이 있는 국가라 평가할 수 있겠네요.
21/01/22 22:05
고려사를 반으로 나눠서 전반기는 영광의 역사고
후반기는 치욕의 역사죠. 과대평가라기 보다는 전성기 유목민족이랑 어쨌던 맞싸워본게 가산점을 받고 있는거죠. 사실 무신집권기 동안 그렇게 난장치고 몽고랑 드잡이질했는데 나라가 정상인게 더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나라가 망했죠.
21/01/22 18:43
5년전 자유게시판에 신불해님께서 올려주신 글이 너무 인상깊어 아직도 기억하고 하고 있습니다
당시 고려 조정은 과연 저런게 차마 국가나 정부라고 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참혹한 역사더라고요. 그 시절 백성이 과연 몽고랑 고려조정 중 어디를 더 증오했을까 고민이 될만한 시대였던 것 같습니다. ○ 장군 송길유(宋吉儒)를 보내어 청주(淸州)의 백성을 섬으로 옮기게 하였다. 길유는 백성들이 재물을 아껴 옮기기를 싫어할까 염려하여 공사(公私)의 재물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 이 일보다 먼저 최항이 사신을 여러 도에 보내어 주민들을 모두 몰아서 섬 안으로 들어가는데, 명령을 좇지 않는 자는 집과 전곡을 불태워서 굶어 죽은 자가 열에 여덟ㆍ아홉은 되었다. ─ 고려사절요 1256년 ○ 송길유가 경상주도 수로 방호별감이 되어 각 고을의 인물을 검찰(檢察)하여 섬으로 들여보내는데, 영을 좇지 않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때려 죽이고, 혹은 긴 새.끼로 사람의 목을 잇달아 엮은 다음 별초를 시켜 양 끝을 잡고 끌어서 깊은 물 속에 던져 거의 죽게 되면 꺼내고 조금 깨어나면 다시 그와 같이 하였다. ─ 고려사절요 1258년 ○ 고주(高州)ㆍ화주(和州)ㆍ정주(定州)ㆍ장주(長州)ㆍ의주(宜州)ㆍ문주(文州) 등 15주의 사람들이 저도(猪島)에 옮겨가 사는데, 동북면병마사 신집평이 저도는 성이 크고 사람이 적어서 지키기가 매우 어렵다 하여, 드디어 15주의 사람을 옮기어 죽도(竹島)를 지키게 하였다. 섬이 좁고 우물과 샘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옮기려 하지 않으니, 집평이 강제로 몰아서 들여 보냈다. 사람들이 많이 도망하여 흩어져서, 옮긴 자는 10명 중에서 2, 3명뿐이었다. ─ 고려사절요 1258년 https://cdn.pgr21.com./freedom/68672 "우리나라 역사상 유례없는 폭력의 시대 - 몽골의 고려 침입 전쟁"
21/01/22 20:03
몽골 침략 30년은 그야말로 나라가 듀라한이 되었다고 보면 맞겠네요.
머리는 몸과 떨어져서 존버모드 잠수하는 동안 머리 잃은 몸은 허우적허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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