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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18 17:44
승정원 일기에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적혀있다고 하는데 아직도 번역이 안끝났습니다
(초서체로 적힌데다 분량이 조선왕조실록의 몇배라서 번역만 몇십년정도 걸릴거라는 글을 본거 같네요) + 사도를 보시면 '세초'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록 원본을 물에 씻고 종이를 말려서 다시 알뜰살뜰하게 아껴썻습니다
22/01/18 18:17
승정원일기는 아예 다른 거라고 봐야겠고, 압축전 원본인 사초는 다 물에 풀어서 저장장치(종이) 포맷했죠..저장장치 단가가 비싸서...ㅠㅠ
22/01/18 17:48
승정원일기 인조 전 내용은 임진왜란, 양 호란, 이괄의 난을 거치며 사라졌습니다. 인조내용도 많이 남아있지않구요
이유는 실록은 나눠서 보관을 하는데 승정원일기는 말 그대로 승정원의 일일업무일지 같은 내용이라 춘추관에 딱 한부 보관되어있던게 불나서 다 타버렸거든요
22/01/18 17:43
세자빈의 폐위는 며느리 욕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정치적으로 엄청나게 중요한 이벤트죠. 그것도 두 번째였으니 그만큼 정당성을 부여해야 했고요.
22/01/18 17:44
첫째 며느리였던 휘빈을 폐위한 뒤에 둘째 며느리까지 폐위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세종이라도 장문의 설명을 할 수 밖에 없었고 사관으로서도 단순히 요약해서 적으면 나중에 '이 임금은 며느리 폐위가 취미였나?' 하는 오해가 올 수도 있으니 자세히 적어놓을 수 밖에 없었을듯한....
22/01/18 18:01
솔직히 문종 수명을 저 기구한 결혼들이 깎아먹었을 거 같네요.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었을 듯;; 최소한 세번째 부인이 장수만 했더라도 더 오래 살았을 거 같은데..
22/01/18 20:40
이게 사실 굉장히 중요한 이유가 뭐냐면 세자빈을 폐위시킬 때 이유를 공표해야하는데 당시 공표 내용에는 동성애 부분이 빠져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당시 일반인들은 세자빈의 동성애 사건을 전혀 모르거나 그냥 풍문으로만 알고 있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근데 세종의 저 발언이 실록에 남아있어서 후대의 우리는 공식발표에는 없었던 세자빈의 동성애 이야기를 공식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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