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2/04/02 17:54:17
Name Love&Hate
Subject 수강신청.
군대를 다녀와서 처음으로 복학하던 학기의 일이다. 나는 육군병장 만기전역후 뭐든 할수 있다는 각오로 열심히 공부를 해봐야겠다며 수강신청을 했기는 개뿔.. 할머니의 병환으로 1년을 더 쉬었기때문에 간만에 복학하는 학교가 다소 두려웠다. 그래서 그전 까지는 하지 않던 소위 꿀교양으로 수강신청을 도배하기로 결심했다. 널럴하고 후한 학점을 준다는 교양으로 나의 시간표를 빼곡히 메웠다. 전공을 한두개정도 들을 생각이었지만 일단 교양으로 전부 신청을 한 뒤에 첫시간을 들어보고 듣지 않을 강의를 결정하고 그 자리에 맞는 시간대의 전공을 넣어볼 생각이었다.  전공이야 설령 다 차있어도 초안지만 넣으면 해결이니깐. 그리고 계획대로 일찍 일어나서 수강신청에 모조리 정말 퍼펙트하게 성공했다.



그렇게 수강신청에 성공했으나 당시 18학점 즉 6과목을 넣었었는데 웬지 독점하는 기분이 들어 찜찜하고 미안했다. 내가 누군가의 수업을 들을 기회를 빼앗아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때문이었다. 그런 찜찜한 기분으로 학교 사이트에서 놀던 중에 누군가가 내가 신청한 과목을 급히 구한다는 글을 올려놓았다. 꼭 듣고 싶다고. 그날은 수강신청 마지막 날이었다. 그것을 보고 더욱 마음이 찔린 나는 그 과목을 양도하고 그 자리에 전공을 그냥 듣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내가 그 사람에게 연락을 했다. 제가 수업을 양도해 드리겠다고.



나의 문자를 받고 연락을 해주신 그 분은 생각보다는 매우 귀여운 목소리의 여자분이셨다. 그때 시간이 오후 세시 반쯤이었는데 학교의 수강신청은 다섯시까지였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자신이 지금 본가에 내려와 밖에서 일을 보고 계시다고 하셨다. 수강신청 양도는 두명이 동시에 접속해서 한명이 빼자마자 다른 사람이 넣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지금 급히 근처의 피씨방에 갈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셨다. 나는 당시 학교에 전산실과 열람실이 함께 되어있는 건물에서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하고 있던중이었고 괜찮으니 근처 PC방에 가셔서 연락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 오후 네시 반쯤에 난 그녀의 울먹이는 전화를 받게 된다.



지금 시간이 얼마 안남았는데 PC방에서 수강신청사이트에 접속이 되지 않는단다. 다른 PC방에서도 그랬다는 것이다. 이걸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울먹였다. 나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울먹이는 전화를 받은것이 꽤나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침착하게 잠시만 기다려 보라고 했다. 전산실이 있는 층으로 내려와보니 학교에서는 접속이 가능했다. 그리고 일단 별거 아닌 일이니 진정하시고 학교에서는 접속이 가능하니 학번과 비밀번호를 알려주시면 제가 컴터 두대를 각각 로그인해서 신청을 대신 해주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울먹임을 그치고 "진짜요?"라고 물어본뒤에 자신의 성적을 보시면 안된다고 말했다. (수강신청시 직전학기 성적이 뜬다.)나는 그녀의 학번과 비밀번호를 듣고 그녀가 이제 2학년에 올라가는 그녀에게 목소리만큼이나 귀여운 학번이라며 긴장을 풀어주었고 "어.. 보지말라고 했는데 봐버렸네요. 제 눈이 문제네요.3.6정도면 우수한 학생인데요~우와 잘했네요~?" 라며 너스레를 떨고는 무사히 수강신청 시켜주었다. 고마워서 밥을 사겠다는 그녀에게 본가에 내려가셨으니 부모님께 효도하시라는 이야기로 거절을 대신하며 그날의 통화를 끝냈다.



그리고 그날부터 그녀는 나를 줄기차게 귀찮게 했다.



내가 그녀의 답례를 거절한건 지금보면 별것 아닌 학번차이인데 그당시 나이대에서는 일단 학번이 많이 위였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얻어먹는게 너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기도 하며, 하나의 귀여웠던 약간의 해프닝정도로 본 사건을 남겨두고 싶었던 마음때문이기도 했다. 귀여운 동생같은 그녀와의 추억이 실제로 얼굴을 보고 깨어질수도 있으니깐. 그리고 다른 목적 그러니깐 인연의 상대로 생각을 해도 당시 여자친구는 없었지만 나는 좀 성숙하고 키가 큰 스타일의 여성을 선호하기에 목소리가 귀여운 그녀가 내 스타일이 아닐거라는 생각을 한 것도 분명 있다. 하지만 그녀는 서울에 올라오기전까지 줄기차게 하루에 한번 꼴로 문자를 보내며 뭐하는지 물어보고 꼭 답례를 하고 싶다고 했다. 밥사겠다고. 거절을 하면 안된다고 사야된다고 했다. 그래서 그럼 학교밥이나 한끼 사라고 했더니 그것도 안된단다. 큰 신세를 졌으니 밖에서 갚겠단다. 뭐가 그렇게 큰 신세인지 모르겠지만 정그러면 나는 모르는 사람이랑 밥 먹는거 싫어한다고 술이라면 생각해보겠다고 그랬더니 자기도 술 좋아한다고 우리 술마셔요! 라고 이야기했다. 동생같은 귀여운 마음에 그만 알았다고 했다.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능숙하게 곤란함을 해결하던 나의 모습이 꽤나 맘에 든 듯 보였다. 날짜는 서울에 올라오는 바로 다음날..그러니깐 한시라도 빠르게 그녀는 답례를 하고 싶어했다.



자. 이야기를 빠르게 마무리해야겠다. 그렇게 만나게 되었던 그녀는 내 생각과는 달리 그리고 목소리와도 달리 키도크고 늘씬하고 대학교 2학년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성숙하고 그리고 아름다운 미모의 여성이었다. 내가 두근거릴 만큼. 그리고 밥대신 자기도 술을 좋아한다던, 나에게 술을 사겠다던 그녀는 갑자기 속이 안좋다며 술대신 밥을 먹자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식사를 끝내고 빠르게 사라졌다. 내 생각보다 그녀의 속은 훨씬 더 불편했었나보다.










- 예전에 피지알이 잠시 날라갔을때 같이 날라갔던 글인데
제가 백업을 해두지 않아서 언젠가는 복원을 한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같은 화제로 다시 썼어요~

- 아 물론 실화입니다. 재미를 위한 약간의 과장 이런것 조차도 없는 담백한 수기입니다.



* 信主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2-04-13 06:07)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2/04/02 18:06
수정 아이콘
역시 피지알퀼리티는 이래야지! 과연 이름난 명필의 솜씨!
Empire State Of Mind
12/04/02 18:10
수정 아이콘
오호.. 이번엔 '실화' 군요!!
오프라인표시
12/04/02 18:18
수정 아이콘
왠지 어디서 본듯한 느낌었는데 복구한 글이군요.
잘읽었습니다! [m]
바람모리
12/04/02 18:18
수정 아이콘
줄기차게 귀찮아 했다 일거야.. 하고 살짝배아파지려는 찰나에
그녀의 속이 생각보다 많이 안좋았던 덕분에 웃으며 읽었습니다.
진중권
12/04/02 18:19
수정 아이콘
복원한 글이지만 마지막 문장의 느낌은 정확히 오리지널의 그것이군요. 크 [m]
12/04/02 18:42
수정 아이콘
아니.. 다른분도 아니고 Love&Hate님 글인데 끝이 저럴리가 없어요...
PGR러를 위한 마지막 부분 자체 반전처리 하신거 아닌가요?!
LadyBrown
12/04/02 18:52
수정 아이콘
그때 댓글에 어느 분이 '목소리가 좋으신가 보네요' 라고 하셨던 게 기억이 나네요 크크
12/04/02 19:21
수정 아이콘
참으로 바람직한 결말이라고 봅니다..배 아플 뻔 했는데 다행이에요.
그아탱
12/04/02 19:28
수정 아이콘
좋아요 버튼 만들어주세요!!
아 결말 너무 훈훈하다! [m]
12/04/02 19:29
수정 아이콘
바람직한 결말입니다. 아 이런글 좋아요.
거간 충달
12/04/02 19:50
수정 아이콘
내가 픽업에 눈을 뜨게 된 계기.txt
12/04/02 19:56
수정 아이콘
아 이런 훈훈한 결말이라니.
역시 기승전훈의 대명사십니다.
RegretsRoad
12/04/02 20:02
수정 아이콘
아 훈훈한글 잘봤습니다 [m]
12/04/02 20:03
수정 아이콘
PGR스러운 결말입니다.
암 이래야지요.
내사랑사랑아
12/04/02 20:19
수정 아이콘
헐.. 전 안타까운데
훈훈하다는 분들이 많군요
잘되서 결혼까지했다는 얘기를 기대했는데 헝
포프의대모험
12/04/02 20:46
수정 아이콘
솔로들의 마음에 훈기 남겨주는 아름다운 글 추천 꾹!
12/04/02 21:09
수정 아이콘
암 이래야지. 이래야 내 피지알이지...
뺑덕어멈
12/04/02 21:27
수정 아이콘
훈훈하군요. 기대가 크면 실망하고 또 반대죠. 크~
12/04/02 21:50
수정 아이콘
뭔가 안타까운데 안도감이 드는건 왜일까요...
유리별
12/04/03 00:14
수정 아이콘
아하하하 반전에 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호의에 감동한 여자분께서 계속 거절당하시며 점점 기대를 키우셨던 것일지도..요..;
여튼, 댓글들도 정말 재밌네요^^
12/04/13 11:19
수정 아이콘
학교 중전에는 슬픈 전설이 있어..ㅜㅜ
sad_tears
12/04/13 15:35
수정 아이콘
우아

해피엔딩이다!

웃음과 감동이 있네요.
15/06/12 04:55
수정 아이콘
크크크크 오랜만에 읽어도 여전히 재밌습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1806 픽업과 연애 #17 쉬운 남자. [50] Love&Hate13781 12/04/14 13781
1805 [음모론]20세기말 한국 남성의 이상형 변화 [29] 절름발이이리9825 12/04/10 9825
1804 여느때와 다름없는 커피숍에서 벌어진 꽁트. [30] nickyo7580 12/04/10 7580
1803 연애상담의 불편한 진실- '내가 을인데 상대가 갑이에요' [52] 無의미8958 12/04/10 8958
1802 신문의 날에 즈음한 신문,언론의 현주소.. [6] (Re)적울린네마리5866 12/04/09 5866
1801 너무나도 멋졌고, 감동스러웠던 7경기 리뷰 [105] start11198 12/04/09 11198
1800 기적같은 이야기의 새로운 꿈의 무대를 그리며.. [16] 전준우5247 12/04/08 5247
1799 머리를 잘랐습니다. [47] 유리별7364 12/04/06 7364
1798 바람부는 날 [20] 삭제됨12913 12/04/06 12913
1797 [신곡발표] 다윗의 막장이 부릅니다, '투표하자' [18] jjohny=Kuma4764 12/04/06 4764
1796 그녀의 속살 보기 [51] 삭제됨21791 12/04/04 21791
1795 [선택2012] 쉽고 간단히 배워보는 여론조사 이야기 [10] Alan_Baxter3921 12/04/04 3921
1794 금천구 시흥동 재래시장 [45] 삭제됨15247 12/04/03 15247
1793 [오늘] 4.3 (2) [23] 눈시BBver.24980 12/04/03 4980
1792 [오늘] 4.3 (1) [11] 눈시BBver.25587 12/04/03 5587
1791 남고생의 첫 키스 성공하기-화이트폰트 해제! [82] nickyo9588 12/04/03 9588
1790 봄비가 옵니다. [28] 유리별4763 12/04/02 4763
1789 수강신청. [30] Love&Hate6980 12/04/02 6980
1788 스타인 이야기 : 통신사 더비의 역사 [12] 한니발7361 12/03/31 7361
1787 픽업과 연애 #16 나 이런 사람 이야~ [54] Love&Hate9657 12/03/31 9657
1786 프로리그, 병행, 팬, 선수, 방송, 그리고...... [44] The xian6440 12/03/29 6440
1785 내 첫사랑, 보고있나? [51] 다시한번말해봐9125 12/03/30 9125
1784 반상위의 돌부처 - 2 - [14] fd테란6651 12/03/28 665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