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금요일 저녁.
현장에서 회의가 끝나고 유관부서 직원들과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제 집에 가면 이틀간은 사랑하는 아이들과 놀아주어야 하기 때문에
싫지만 어쩔수 없이 가는 회식이(라고 마님에게 이야기해야하는 회식이) 마냥 즐겁다.
지이이잉...
한번의 진동. 문자구나. 이제 퇴근한다는 문자인가?
밍기적거리며 확인을 한다.
'96동기 김모모'
아직 솔로인 친구라, 술한잔 땡기자는 건가하며 메세지창을 열었다.
"스타 한 겜 하자"
2.
마지막으로 스타를 한 게 언제였나...
둘째아이를 낳기 전이니 최소 20개월 전이군.
아니지, 큰 애가 나오고부터 거의 못했다고 봐야하니 더 오래되었겠군.
이렇게 앉아있을 시간이 없어.
"학교앞 콜"
3.
주종족이 플토인 친구 셋이 모였다.
마지막 스타리그 플토 우승을, 뒤늦게나마 축하하며 곱창을 씹었다.
8년만에 가본 막창집 아저씨도, 젊은날의 우리들을 기억하며 반가워하신다.
생각해보니, 요 세명이서 같이 한 일들이 참 많구나..
하숙집에서 자고 충동적으로 농구응원을 가서 되도않는 식탁보 깃발을 만들어 응원했던 일..
(그시절엔 무슨 일이 있을때마다 깃발을 만들었는지 원..)
다들 4학년이었던 2002년 월드컵.. 6월을 불태워버리고는 졸업이 2년씩 늦춰진 일..
재수강하던 공수 시험전날, '스타얘기하지말자'라고 약속하고 공부하다가.. 결국 참지못하고 밤새 전패.. 전원 3수강했던 일..
4.
토요일 출근하는 총각도, 내일 필드에 나가야 한다는 친구도,
아직 회사사람들이랑 술먹고 있는 것으로 보고된 상태인 나도, 맘이 급하다.
술-당구-골프-카드... 여러가지 취향이 공존하는 동기모임에서
이렇게 스타를 하러 갈 기회는 적지 않다.
오랜만에 와서 평소보다 훨씬 일찍 일어서는 모습에, 막창집 아저씨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몇년만에 간 PC방... 카드를 집어들며 '잘하면 아직 우리 아이디 있지 않을까?' 했는데,
PC방 회원으론 여전히 등록되어있고, 배틀넷 아이디는 전부 소멸되었다.
슬쩍 주위를 돌아보니 스타를 하는 사람은 정장입고 배나온 우리가 전부다.
뭐 그래도, 예의 그 방제로 익숙하게 들어간다.
"3:3 헌터빨리조인"
5.
한게임이라도 이기고 갈 수 있을까...
빨리 집에가서, 밀린 설겆이 하고 빨래도 해야하는데...
오랜만이라도 질럿까진 잘 뽑는다. 요즘에도 센터 6질럿으로 한집 미는게 가능하네?
한 집 밀고, 밀기가 무섭게 한 집 털리고, 뒷심부족으로 지지...
한 집 밀고, 밀기가 무섭게 한 집 털리고, 뒷심부족으로 지지..
한 집 밀리고, 한 집 못밀고 지지...
아.. 이기고 싶다..
집이 일산이라 오지 못한 유일한 테란유저 길마와
형수님눈치에 전화도 길게 못한 빡뺌형님.. 둘 중 하나만 있었어도 한게임 정도는 이길텐데.. 아..
아쉽다.
6.
그 옛날.. 우등생 연합이었던 '쿨데삭' 녀석들(세녀석이나 유럽으로 유학을 가버린..)에게
'스타'로도 지는게 말이 되냐고 전의를 불태우던 고고클럽..
늘 모여서 하기때문에 높은 승률을 자랑하며, 팀플은 우리가 쫌 하지! 하다가
들어선 광고방의 세계.. 통한의 철야전패..
'이번판 이기고 집에 가자'는 결의가 통한걸까?
질럿드래곤만으로 센터를 잡고 두 집을 밀어내고, 마지막 사람도 나가버렸다.
우오오오오오오
7.
옛날처럼 복기할 시간도 없이 다급하게 발길을 옮긴다.
이제 언제 다시 만나서 게임을 할지 기약도 없다.
새로 만든 아이디가 또 사라질때쯤 만날수 있을까?
아니, 그때쯤 되면 이 게임이 아직 살아 있을까?
아쉽다. 그리고 그립다.
* 信主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2-08-27 09: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