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는 5호16국 말기 장소는 남조의 유송. 관직에 있던 아버지와 황가의 공주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던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치휘. 아버지 치엽도 남조에서 어느정도 이름이 있던 가문출신이었고, 황제의 딸과 결혼했으니 부마가 되어서 관직도 당연히 높게 올랐죠. 그녀의 어머니였던 심양공주는 유송의 명군이었던 문제 유의륭의 딸이었고, 그녀가 치휘를 낳았을때 방안의 모든 기물들이 스스로 빛을 내는 기이한 현상을 맞았다고 합니다. (유의륭의 시대가 궁금하신 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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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지도 한번 보시고 가실게요.
높은 관직의 아버지, 공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명망있는 귀족가문의 영애였던 치휘. 게다가 어릴때부터 용모도 아름다웠고 총명했다고 하는데요. 황제가 눈독을 들인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당시의 황제는 7대황제 후폐제 유욱. (한자는 다르지만 한글이름은 같으니 그의 아버지인 6대인 명제 유욱과 구별하기 위해 7유욱으로 쓰겠습니다. 아버지는 6유욱으로) 치엽은 황제의 성품이 잔인한것을 알고 있었기에 무려 딸이 황후가 된다는 제안을 받았지만 몹시 꺼려졌습니다. 그래서 조심스레 딸이 너무 어리다는 핑계로 혼사에 대한 논의를 다음으로 미룹니다. 치휘는 무려 황제의 구혼을 뺀찌놓은 여자가 된거죠. 물론 그녀본인이 한것은 아니지만. 도대체 황제가 어떠했길래 황후자리를 마다했을까요?
남조 유송의 가계도. 모든 황제가 다 나왔습니다. 화살표는 부→자녀. 숫자는 황제가 된 순서.
후폐제 유욱
후폐제 유욱. 후폐제인 이유는 폐위된 황제가 많아 전폐제가 따로 있기때문이다. 농담아님.
7유욱은 고자였던 6유욱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아니 잠깐 뭔가 이상하죠? 6유욱은 본인이 고자였기에 후사를 위해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대여해서 후사를 만들었습니다. 시험관 시술이 없던 시절이니 직접 주입을 했었죠. 믿음직한 신하였던 이도아에게..자신의 와이프를 빌려줘서 얻은 자식이었습니다. 7유욱이 이도아의 아들이라는 풍문은 궁중내에서도 이미 퍼져있었습니다. 7유욱은 황제가 된뒤 그 소문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짐을 (아버지가 이도아니깐) 이장군이라고 부르도록해라."
어떻게 보면 당당한 정면돌파이긴한데.. 다른 행적들과 합쳐보면 그냥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었습니다. 고작 9살에 불과했으나 본인이 황제의 핏줄이 아니다라는 말을 당당히 할정도로 범상치 않았던 어린아이가 황권을 쥐게 되었으니 어디로 튈지 몰랐습니다. 그는 사람의 배를 갈라서 속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잔인한 어린아이였습니다. 가끔 어릴때 잔혹성을 보이는 아이들이 없는건 아닌데 어른들에 의해 제어가 되서 사회화가 되죠. 근데 다소 잔인한 개구장이였을수 있던 아이가 황제가 되버려서 제어가 안되고 교정이 안되니, 폭군이 되게 된겁니다. 7유욱이 단비꺼야를 시전하면 어떻게 될지 상상이 가시나요? 이 유단비가 지나가다 신하나 백성것을 보고 단비꺼야를 시전하면 바쳐야죠. 하루는 한 신하의 재산이 7유욱의 눈에 들어왔고, 신하는 가급적 맞춰드리려했으나 7유욱은 통크게 신하의 전재산을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유단비꺼야를 시전했죠. 신하는 도저히 받아들일수 없어서 거부했고, 유단비는 재산도 몰수하고 본인의 취미생활인 사람속도 갈라보는 일석이조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황후자리를 마다할만 합니다.
단비꺼야!! 아니 유욱이꺼야!!
7유욱의 어머니였던 태후가 그런 7유욱을 말리고 잔소리를 하자 7유욱은 어머니도 죽이려고 시도 합니다. 죽으면 잔소리는 못할테니깐요. 자신을 제어할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겠죠. 신하들이 그런 7유욱을 막았습니다. '태후마마가 돌아가시면 황제폐하께서는 상을 치르셔야 해서 지금 처럼 (놀며) 지내실수 없습니다!' 이 얼마나 심금을 울리는 간언인가요. 7유욱은 뜨끔해서 이전처럼 놀기 힘들어지기 때문에 어머니를 죽이려는 계획은 반려합니다.
제 고제 소도성
이렇게 재미난걸 한번만 하고 말긴 좀 아깝지
원래 유송이 황족들의 반란이 잦은 나라였는데, 스스로 황제의핏줄이 아니라며 이장군이라고 부르라는 황제가 있으며 성품까지 잔혹하니 반란은 당연히 일어났습니다. 그런 반란들에서 7유욱을 지켜준건 장군 소도성이었습니다. 하루는 7유욱이 장군부에 들어가니 거기서 소도성이 배를 까고 낮잠을 자고 있는겁니다. 7유욱은 그런 소도성의 배에 과녁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활연습을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보다못한 신하들이 말리고 나섰습니다 "폐하 저 과녁에 그 화살을 쏘시면 한번쓰고 두번다시 쓸수 없게됩니다. 화살촉은 빼고 연습하시지요." 7유욱이 생각해보니 이런 재미난 놀이를 한번하고 그만두는건 좀 그래요. 화살촉을 빼고 소도성에게 활을 쐈습니다. 반란을 평정하고 공로를 세운 장군에게 돌아온건 화살과녁역할이었으니..소도성이 현타가 오기에는 충분한 사건이었죠.
그러던 어느날이었습니다. 때는 칠석날이었는데, 7유욱은 변복을 하고(일반인 코스프레) 절간에 가서 개를 잡아먹고 술한잔 거나하게 취한뒤 궁에 돌아왔습니다. 철석날 거나하게 한잔했더니 기분도 좋고 견우와 직녀가 보고 싶은겁니다. 측근 양옥부에게 명합니다. "너는 반드시 눈 똑바로 뜨고 자지말고 오늘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걸 확인하고 나에게 보고해라. 똑바로 보고를 못한다면 내일 해를 볼수 없을것이다." 아니 무슨 산타클로스 믿는 애들도 아니고..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오시면 나 꼭 깨워줘야해'를 시전한거죠. 즉위할때야 아홉살이었다지만 이때는 그래도 14살입니다. 14살이나 먹고 견우직녀를 보겠다니.. 그리고 아이들은 안깨우면 기껏해야 다음날 짜증내고 울고불고가 끝이지만, 이 유단비를 안깨우면 목이 달아납니다. 양옥부는 어쩔수 없었습니다. 견우와 직녀따위 없는것을 양옥부야 잘 알고 있으니깐요. 이대로는 내일 해를 내가 못보는것이 확정이다. 차라리 7유욱의 내일 해를 없애버리자. 그래서 양옥부는 7유욱을 암살하고 그 목을 소도성에게 보냅니다. 목을 받은 소도성은 군사를 몰아쳐서 궁을 점거하고요.
제나라의 창업자인 제 고제 소도성
소도성은 바지사장으로 다른 황제(위의 유송 가계도의 8번)를 잠시 앉혔다가 이내 선양받아서 제나라를 세웁니다. 이후 북위가 쪼개져서 나온 고환의 북제와 구분하기 위해 이 나라를 남제라고도 부릅니다. 자 정리하면 '황제의 구혼을 거절한 여자는 별일 없었다. 황제가 폐위되었기때문이다.'겠네요. 이 시대는 그런 시대니깐요.
신동 소연
소..소..소연아..
그럼 치휘는 어떻게 살게되었을까요? 고제 소도성이 즉위한 뒤로도 황제의 봉신들인 왕실의 러브콜이 이어졌습니다. 말씀드렸듯 이전 황가의 외손녀인 귀족가문 영애니깐요. 이때도 치엽은 치휘가 병에 들었다는 이유로 고사합니다. 왜냐하면 치휘는 이미 마음에 둔 상대가 있었거든요. 당시 신동으로 소문난 소연! 둘다 선남선녀에 총명으로는 지지 않는 캐릭터라서 잘 어울리는 한쌍이었습니다. 소연의 아버지가 소도성의 종친 이라서 황실의 먼 핏줄이기도 합니다만 소도성과의 핏줄 연관은 없기때문에 같은 성씨인 무늬만 황족인 방계입니다. 다만 뭐 그래도 왕(이시대 왕은 보통 직계황족) 이나 황제보단 못하지만 아주 빠지는 집안은 아니라 볼수 있겠네요.
치휘는 소연과 결혼하고 행복했을까요? 소연이 치휘를 끔찍히 아꼈기에 행복했었어야하는데 안타깝게도 치휘는 아들을 낳지 못했습니다. 소연은 어쩔수 없이 첩실을 들이게 됩니다. 당시의 시대에서는 어쩔수 없었다지만 치휘는 참을수 없었습니다. 소연은 하급관리인 정씨가문의 정령광이라는 처자를 첩실로 들였는데 치휘는 첩실을 쥐잡듯 잡았다고 하네요. 가문의 차이 본부인과 첩실의 차이로 아주 못살게 굴었다고 합니다. 정령광은 그 모든 괴롭힘을 묵묵히 받아내면서도 치휘에게는 잘 대했고, 나중되서는 치휘가 정령광을 괴롭힌것을 스스로 후회했다고 하죠. 왜 후회했냐면 치휘가 큰 병에 들게 되거든요. 사람이 큰병에 들면 지난 삶을 돌아보잖아요.
치휘는 결국 아들을 낳지도 못하고, 병에 들어 소연과 백년해로도 못한채 죽었습니다. 소연은 너무나 슬퍼했고요. 그리고 치휘가 죽은 뒤에 소연은 군사를 일으켜 남제를 뒤집고 양나라를 세웁니다. 소연이 바로 양나라의 초대황제 양무제입니다. 황제가 된 소연은 치휘를 그리워하며 무덕황후로 치휘를 추존하고, 공석인 황후자리에 다른 어떤 여자도 올리지 않습니다. 궁에 치휘가 생전에 입던 옷가지들을 놔뒀다고 하니.. 얼마나 그리워했었는지 짐작됩니다. 황제의 구혼을 거절한 여자는 결국 죽어서 황후가 되었네요.
소연이 세운 양나라 지도!
그 시대치고는 매우 아름다운 축에 속할 러브스토리지만, 실리적으로 따져보자면 황실은 그래서는 안됩니다. 정실에게 낳은 아들도 없고, 황후도 공석이고, 이런 상황은 후계구도에 큰 문제를 가져올법한 상황이죠.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원래 아들이 없어서 소정덕을 양자를 들였던 소연은 장남 소통이 태어난뒤 소정덕을 본래의 집으로 돌려보냅니다. 소정덕 입장에서는 소연의 아들로 크다가 갑자기 본가로 돌아가게된거죠. 근데 그 소연은 황제가 되었는데 (너무도 당연하게도) 자기가 아닌 다른사람을 태자로 삼고.. 근데 소정덕 생각에는 그 태자는 본인 자리여야 했거든요. 그래서 소정덕은 자신이 태자자리를 강탈당했다고 생각합니다. 장남 소통은 괜찮았는데 아버지보다 먼저 죽어버리고요. 차남 소종은 어머니가 제나라의 후궁이었습니다. 원래 소연이 제나라를 멸하고 양나라를 세우면서 제나라의 후궁을 본인의 후궁으로 받아들였는데, 소연에게 간지 고작 7개월만에 소종을 낳았다고 하죠. 소종은 스스로를 이전 제나라 황제의 자식으로 여겨서, (그렇게 치면 원수인) 소연밑에 있지 않고 북위로 도망갑니다. 이렇게 되니 다음 황위가 누구의 것이라고 확신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고, 그래서 황자들이 자신의 세력만 불리려고 했던겁니다.
유욱 : 아니 황제가 되고나서 다른 남자가 내 아버지다 라고 왜 당당하게 말을 못하냐고!!
소종 : 어떻게 그래요 ㅠㅠ (내가 너같은 돌아이는 아니자나 ㅠ)
그나마 다행인점은 양무제 소연이 장수해서 오래도록 이 문제는 잠잠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시간을 늦춘 것일뿐 결국 터져나올것이 터지게 되죠. 추후에 일어나는 후경의 난이 한방에 양나라를 멸망시킨 원인은 이런 소연의 후계구도에도 일정지분이 있습니다. 다들 다음 황제를 노리지 아버지를 도와주러 가지 않아요.
여기까지입니다. 대충 후경의 난 이전 남조 이야기를 써보았습니다. 여기까지가 프롤로그라고 볼수 있고, 다음에는 쓰기로 했는데 미뤄왔던 후경의 난을 써보겠습니다. 물론 원하는 분들이 있다면 말이죠.
* bifrost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3-08-1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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