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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0/06/14 20:53:07 |
Name |
zeros |
Subject |
Mr.Waiting - 3 |
벤치에 얼마나 앉아 있었던 걸까. 좀 전에 내가 쏟아냈던 토물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아직은 물기가 남아있었다. 피던 담배를 그 쪽으로 던졌다. ‘치익’ 하고 담뱃불이 꺼지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적당히 쌀쌀한 바람도 좋았다. 다시 기억에 집중했다. 그녀와 갔던 장소, 했던 일, 나눈 대화. 그 세세한 하나하나 까지 모두 생생했다. 몇 십분 전 그녀가 말한 이별까지도.
"우리.. 그만두자."
"...뭐..?"
우리가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친구였기 때문인지 그녀는 내가 친구이상이긴 하지만 남자로 느껴지는 것이 잘 되질 않는다고 했다. 이래서 사랑이 타이밍이라고 하는 걸까.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그 때는 비로소 나의 시험이 끝났던 시기였다. 그제야 비로소 그녀를 위해 뭔가를 제대로 하고픈 시기였다. 난 그녀에게 줄 것이 너무도 많았다. 아직 준비가 덜 된 그녀와 주기위해 너무도 오래 참은 나. 나의 '줌'의 메아리는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돌아와 버렸다. 일주일 정도 그녀 생각만 했다. 다른 일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어딘가를 갈 수도 없었다. 어디를 가든 그녀가 보였다. 그녀를 닮은 뒷모습을 볼 때 마다 괴로움에 휩싸였고, 괴로움은 날 방구석으로 내몰았다. 가끔은 그녀와 함께 했던 곳을 혼자 찾았다.
내가 그녀에게 고백했던 공원, 항상 이야기를 나누던 벤치. 추억에 잠시 행복해졌다가도 남아있는 것은 아픔과 허전함 뿐이었다. 담배연기는 바람을 따라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난 원인을 내 안에서 찾기 시작했다. 그 당시 내가 슬펐던 건 결국 그녀의 마음을 얻지 못한 나에게 있었으니까. 난 그녀에게 매력적일 수 있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많은 것을 배우고, 해보았다. 이미 그녀에게는 3개월 후에 다시 찾아가겠단 말을 해놓은 상태였다. 바쁘게 지내온 덕에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갔다.
그렇게 흘러간 3개월. 난 그녀의 집 앞, 그 벤치에 앉아있었다. 날씨는 꽤나 추웠다. 난 몇 시간씩 기다렸다. 매일 찾아오는 나를 경비원은 이상하다는 듯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녀를 만날 수 는 없었다. 남아있는 것은 발 밑 몇 개의 담배꽁초뿐 이었다.
며칠이나 그녀를 찾았을까. 그 날 역시 남아있는 담배꽁초의 수를 헤아려 보던 나는 나와 그녀를 그만 괴롭혀야 할 시간이 왔음을 느꼈다. 집으로 돌아와 작은 쇼핑백을 준비했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했던 모든 물건들을 넣었다. 중학교 시절 그녀가 주었던 크리스마스카드, 함께 보았던 수많은 영화의 티켓들, 내가 지난 3개월 동안 매일 그녀를 향해 쓴 편지가 담긴 공책까지. 그 모든 것을 담은 쇼핑백을 이상하다는 듯한 눈길을 보내는 경비원에게 맡겨놓고, 난 돌아왔다.
그녀를 다시 만나고 흐른 일 년 남짓한 기간 동안 단순히 연애감정 뿐만이 아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소중한 경험들을 할 수 있었다. 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 했고 그랬기에 후회는 없었다.
그녀는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점점 가슴에서 그 뿌리 만큼의 가슴과 함께 뽑혀 나갔다. 딱 그 모양대로 생겨버린 가슴 속 구멍 때문에 바람 부는 날이면 이불 속에 몸을 둥글게 말았다. 잠은 쉬이 이룰 수 없었다.
"수고하세요. 전 이만 가볼게요."
"어! 마지막까지 수고 많았어. 이따가 일 끝나고 갈게."
"연락해 준오야."
"네네. 안녕히 계세요. 고마웠어요."
이제 한 달 반 남짓한 시간이 남았다. 나라의 달갑지 않은 부름을 받은 나는 7개월째 되는 아르바이트 자리에서 마지막 퇴근 인사 중이었다.
"오늘 몇시까지 놀거야?"
"글쎄 뭐. 그냥 노는 데까지 노는거지 뭐. 이따가 너도 와 같이 한잔 해야지."
"그래. 알았어."
단순히 아르바이트 자리에서 만난 사람들로 생각해버리기엔 섭섭한 소중한 인연들은 고맙게도 송별회 자리를 마련하여 주었다.
나는 허리를 조이던 앞치마를 풀고 카운터 구석에 자리한 핸드폰에 손을 뻗었다. 바깥쪽 액정엔 부재중 통화를 알리는 불빛이 떠올랐다. 가게 문을 나서며 번호를 확인해 보았지만 발신정보 없음 이라는 글씨 뿐 이었다. 12월 말의 날씨는 얇은 유니폼만 입은 채 밖에 있기엔 쌀쌀했다. 이미 수도 없이 오르내린 익숙한 언덕길을 서둘러 오르며, 구겨진 담뱃갑 속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입김인지 연기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동안에 전화가 왔다. 발신정보 없음이라는 글씨가 떠올랐다. 조금 전 걸었던 그 사람이 건 듯했다.
"여보세요?"
"..."
전화는 끊어져버렸다. 잠시 후 나는 이제 마지막으로 신발을 신고 있었다. 전화기는 또 울려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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